▲ 방송됐던 시와 수필을 CD에 담아 놓았다. 이 세상에 단 1개밖에 없는 '필자 소장용' 낭송수필 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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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바다에서 형님이 보내주신 방송 녹음테이프 - 형님은 어떻게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동생의 수필을 녹음할 수 있었을까? 밤 11시~12시에 방송되는 이 문학 프로그램을 형님도 빼놓지 않고 녹음하여 두 번, 세 번 다시 들으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 형제에 대한 그리움을 삭이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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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명절이 다가오면 / 윤승원 자식이 부모님을 찾아 뵙는 명절이 일년에 두 번 정도이다. 음력 팔월 열 나흗날, 그리고 섣달 그믐날. 그러나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하는 자식의 아픈 마음이 있고, 기다림이 끝내 서운함으로 변하는 부모님의 마음도 있다. 노 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에서 살았던 나는 명절이 되어 소식도 없이 못 오시는 형님들에 대한 야속함을 부모님 못지 않게 크게 가졌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으로 선물과 정종 술병을 양손에 힘겹게 들고 버스에서 내리는 객지인들이 부러워, 나는 길가 논다랑이에 엎드려 피사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 내 고향 -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중추리 가래울 마을 그러나 우리 형님들은 그들의 대열에 한 번도 끼어 오지 않으셨다. 명절이 무슨 대단한 날은 아니더라도, 아버지께서는 객지에 나간 자식들을 행여나 기다리셨다. 해 질 녘, 담장 너머로 신작로 께를 기웃거리시다가 어스름이 깔리고 끝내 막차의 엔진소리가 머얼리 사라지면 아버지께서는 입에 물었던 장죽을 툇마루의 받침돌에 두어 번 때리시고 방으로 드신다.
▲ 아버지의 기다림(삽화 = 손자 종운) 그러면서 혼자 말씀으로 “또 못 오는 게로군!”하신다. 기다림으로 주름진 노안에 수심이 드리워지는 순간, 당신도 모르게 나오는 그 말씀 한 마디가 곁에서 보는 막내아들의 어린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자제 분은 이번 명절 쇠러 왔나요?”하면 그저 말꼬리를 흐리시던 모습이 얼마나 쓸쓸해 보였던가! 그래서 이 다음에 내가 객지 생활을 하게 되면 부모님의 기다림에 실망을 드리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쯤 되니까,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 그런 까닭으로 명절이 다가오면 나는 쓸쓸해진다. 돌아가신 뒤에야 형님들과 함께 부모님 산소를 찾아 뵙게 되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렇지만, 나는 형님들 앞에서 지난 날 부모님의 기다림을 충족시켜 드리지 못한 점을 회상하여 말씀 드릴 수는 없다.
형님들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삶이 그렇게 고달프고 힘겨웠음을 동생인 내가 잘 알고,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그 당시 고향을 찾지 못하는 형님들 마음이야 어찌 동생의 서운함에 비기랴. 이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객지가 고향처럼 되어버린 우리 형제들은 명절 때 큰 형님 댁으로 모이게 된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다. 거기서 또 객지에 나가 명절 쇠러 못 오는 조카 걱정을 큰 형님이 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모습이 옛 아버지의 수심처럼 깊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새 노인이 되신 형님의 얼굴도 자식 걱정을 하실 때는 그다지 밝은 표정은 아니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의 염려이지, 결코 노여움은 아니라 느껴진다. 그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이 자식을 대학까지 보내어 소박한 농부의 꿈을 이루시고, 자식들이 저마다 그 직에 충실하느라 명절 때 귀향치 못한다는 것을 오히려 자부심으로 여기셨던 것이다. 그러나 못난 자식이 어찌 넓은 부모님 마음을 다 헤아리랴. 자식이 부모가 된 뒤에야 비로소 그 깊은 정을 깨달으며 사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통회痛悔하는 마음으로 부모님 산소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고, 자신을 한 번쯤 뒤돌아보게 되는 지 모른다. (1990) ■
명절을 앞두고 이런 글을 소개하고 위안을 받는다. 옛 고향 친구도 따뜻한 우정의 댓글을 달아주고, 존경하는 이웃집 교장 선생님도 공감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또한 많은 분들이 페북에서 공감의 단추를 눌러 주셨다. 자식 며느리 손자와도 이글을 함께 나눈다. 할아버지의 가슴 아린 눈물이 따뜻한 '행복의 눈물'로 변했다. [필자 주]
첫댓글 ♧ 박영진 교장선생님 페이스북 댓글
♧ 카카오스토리에서 / 고향친구
필자 답글
명절을 앞두고 이런 글을 소개하고 위안을 받는다. 옛 고향 친구도 따뜻한 우정의 댓글을 달아주고, 존경하는 이웃집 교장 선생님도 공감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또한 많은 분들이 페북에서 공감의 단추를 눌러 주셨다. 자식 며느리 손자와도 이글을 함께 나눈다. 할아버지의 가슴 아린 눈물이 따뜻한 '행복의 눈물'로 변했다. [필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