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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박 연 희
객혈(喀血)을 하고 나서, 준은 보석(保釋)이 되었다.
지금쯤은, 폐에 구멍이 평하니 뚫려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이 며칠째 호흡은 뜻밖에 좋아진 것 같았다. 부풀어 흐르던 열도 삼십구 도에서 삼십오 도 칠 부로 부쩍 내렸다. 그러면서부터 피부가 추근하였다.⁕ 기름이 피부에 놔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반비례로 손발이 한결 까칠한 감촉을 주었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어떤 다른 증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릿속은 맑았다. 그런데도 오한은 오싹거려 몸에 피어 흘렀다. 이런 때면, 준은 가라앉는 듯한 피로와 알 수 없는 흥분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머리끝이 쭈뼛할 때도 있었다. 일종 공포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눈을 딱 감고, 어떤 환상을 물리치려고 애써보았다.
“강선생님이 곧 올 거야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갑자기 침대 위의 이불을 걷어차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준의 아내가 하는 말이었다.
준의 병세가 그처럼 위독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준은,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지수인 시간까지를 두고,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준은, 마음속으로만 머리를 저어보았다. 아무리 추려보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결핵균을 보균하였다 하여, 인체에 이처럼 빠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의문 때문이었다.
‘그거야…….’
준은 딱 단정을 내려보았다.
결핵균만이 준의 생명을 줄여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러이 깨달았다.
‘살아야 해……’
준은 입술을 펄럭이며, 속으로 뇌까려보았다.
삶을 단념한다는 것은 돌이켜 생각하면, 무의미한 일 같았다.
어쩌면, 그러한 의식은 자신의 무력함을 속이려는 짓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현군(玄君)을 하루에도 몇 차례 떠올려보는 것부터가 뚜렷한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우스운 일이야!’
준은 픽 비웃음을 띠어보았다.
알 수도, 윤곽도 뚜렷하지 않은 얼굴들이 낡은 뉴스 영화처럼 스쳐보이기도 하였다. 희생이라는 말을 대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계몽적인 일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한 속에서 자아(自我)의 절망과 싸운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준은 생각하였다.
다만 생명의 의의(意義)를 가져야 하는 조건만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어디까지나 준 개인의 존재가 문제될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준의 방에 침대가 있고, 책상이 있고, 양복이 걸려 있는 것도 준이 있기 때문에 존재해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준과 현군의 사이도, 그와 비슷한 경우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현군은 올 때에도 그러하였고, 갈 때에도 그처럼 자연스럽게 갔다고 준은 믿는 때문이었다.
‘현군은 현군이지…….’
준은 입속으로 뇌까리며,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썼다.
열기를 풍기는 호흡이 자신으로서도 싫었다. 그 이상으로 현군과 준의 사이에 흘러간 기억을 더듬어본다는 일은, 괴롭지 않을 수 없었다. 모아 쥔 손길이 바르르 떨렸다. 의식이 희미하기를 바랐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한히 큰 거울에 비치듯 잣수〔尺度〕를 알 수 없는 거무스름한 관(棺)이 뚜렷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힘을 주어 눈을 꼭 감아보았다.
죽기 싫다는 의식이 머릿속을 빙글이 돌아 흘렀다. 온몸이 달달 떨리도록 죽음이 두려웠다. 두려운 이유를 더욱 알 수 있었다. 죽음을 의식하자, 준은 저도 모르게 축 늘어져 몸을 뻗어보았다. 흥분에 싸인, 자신의 뒤번지는* 심리 상태에다 안정을 주어보려는 마음에서 였다.
그러나, 폐결핵균이 한결 침투되어, 준의 자신이 죽어가야 하는 사
실을 이해해야만 흥분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지난 겨울 일이었다.
그때부터 어떤 숙명적인 것을 준은 지니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준은 신문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헌법개정안 가결에 대한 기사 때문이었다. 여당지(與黨紙)면서, 오히려 야당의 입장을 유리하게 썼다는 것이 문제되었던 것이었다.
“장군, 이리 좀 와요.”
준이 편집국에 들어서기를 기다리기나 한 듯이, 편집국장인 S가 부르는 것이었다.
“이 기살 의식적으로 쓴 거요?”
○○ 란(欄)에다 삘건 잉크로 죽죽 선을 그은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그렇다면 더욱 문제야.”
“그럼 의식하지 않고, 어떻게 기살 씁니까?”
준은 빙긋이 웃음을 띠며, S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아, 웃을 일이 아니야.”
S는 날카로운 눈매로 노려보았다.
“신문사 사시(社是)를 생각해야 할 것 아니야? 그게 기자야?”
준은 관자놀이가 움찔함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준은 어안이 벙벙하여 S를 마주 바라보기만 하였다.
“사푤 내게.”
S는 회전의자를 옆으로 돌리며 명령조로 말하고, 담배에 불을 붙여 무는 것이었다.
“어디가 잘못되었습니까?”
“기살 다시 읽어봐. 문맥이 어디로 흘러먹었나…….”
“기억 할 수 있어요. 어디가 어떻게 되었다는 걸 지적해주십시오.”
“우리 신문사 사실 알지?”
“네.”
“그렇다면 답변은 끝났어.”
“그러나, 사실 그대로 보도하지 않았어요? 선량(選良) 생활도 초등 수학쯤은 알아야 사사오입도 이해한다는 것이 어디에 모순이 있습니까?”
준은 약간 흥분하여 오히려 대들었다.
“듣기싫여.”
S는 자리에서 움찍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그러면 국장은 의식적으로 기사에 대해서 왜곡할려는 거요?”
“무엇이 어째? 왜곡이라구? 되잖은 소릴 말고 얼른 사표를 내어.”
S는 편집실이 떠나가라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준은 자신의 위치를 잃을 뻔하였다. 불을 뒤집어쓴 듯한 가운데서도 수십 개의 눈이 준에게 쏠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자, 몸마저 부르르 떨렸다.
“당신이 어떤 사실을 제삼자에게 보도할려는 양심을 가진 사람이오?”
준도 의식하지 못하리만큼 낮은 목소리로 S에게 물었다.
“자신을 속이지 말란 말이오…… 내가 사표 내는 건 문제가 아니오. 그 기사에 대한 모순을 구체적으로 말해보시오.”
S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준을 쳐다보고 있었으나, 준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S를 노려보았다.·
“그따위는 신문의 ABC도 모르는 무식이야. 너 아직 세상이 어떻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구나.”
“협박이오?”
얼굴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떨리고 있음을 느끼며, 준은 비웃어 보였다.
“그러면 한마디 더 묻는데, 신문사 편집 방침을 거역하는 이유는 뭐야? 또 기사로 비꼬는 건 누구한테 하는 짓이야?”
S는 손가락을 바르르 떨면서도 침착하게 묻는 것이었다.
“그것이 기살 왜곡할려는 것만이 아니요, 어떤 선입견으로 해석할려는 사고 방식 때문이오.”
“사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상을·……?”
“분열 의식을 자아내려구 하는 것이, 다시 말하면 그러한 증거야. 그 되잖은 기사로 인해서 사 전체가 어떤 곤경에 빠지고 있는 줄 알어?”
상아 파이프를 끄집어내어, 타들어가는 담배를 꽂으며 S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소리 질렀다.
“분열 의식은 뭐고, 정당한 기사가 어째 그러한 조건이 될 수 있소?”
“이 자식아 나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S는 유리 재떨이를 준을 향하여 던졌다.
S가 던진 재떨이는 벽에 부딪혀 부서지고 말았다. 이러자, 편집국 기자들이 자리에서 움찔거렸고 편집부장 R이 복도로 준을 밀고 나왔다.
“장형? 지금 그 기사 때문에 상부에서 전화가 오고 야단이오. 국장 자신의 인책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으니, 내일이라도 천천히 이야기하시오.”
매사에 타협이 많은, R의 말에서도 적지 않이 불쾌감을 느꼈다.
“알았소.”
준은 밖으로 총총히 나와버렸다.
그러고, 그날로 사표를 써서 우편으로 부쳐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타성과 무비판이 태풍처럼 휩쓰는 가운데에서 자신을 건져낼 수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준은 실직자가 되고 말았다. 준이 이렇게 실직하면서부터, 누구보다도 아내의 조바심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못난 척하고 그대로 있음 되잖아요?”
준을 나무람하였다.
“그것도 말이라고 해?”
“그러니 당장 어떡해요?”
“어떡힌 뭘 어떡해, 그래도 살 테지…….”
“살자니 좀 해요.”
아내는 앞날을 걱정하였다.
주변성이 없는 준의 지금까지의 일을 잘 알고 있는 때문이었다.
실상, 아내의 예언(豫言) 비슷이 들어맞은 셈이기도 하였다. 준은 매일같이 아침을 먹는 대로 부지런히 외출하였다. 그것도 한 달을 하루같이, 꼭 볼 일이 있어서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아내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일이라면, 대중 잡지에 잡문(雜文)을 팔아 얻은, 고료를 받아가지고 들어온 일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던 어느 날이었다.
통행금지 시간을 대어, 준은 막 현관으로 들어섰다.
“여보, 이쪽으로 들어와요.”
아내는, 소곤거리며 준을 이끌다시피 하여 안방으로 들어오라 하였다.
“누가 왔소?”
“오늘 학생 하날 하숙 넣었어요.”
“학생?”
아내는 손가락으로 윗방을 가리키며, 학생이 있다는 눈짓을 하였다.
“퍽 얌전해 뵈는군요. S대학 철학과에 다닌대요.”
나직이 말하였다.
준을 빤히 쳐다보는 눈치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 달에 만 오천 환씩 두 달치 선금 삼만 환 받았어요.”
아내는 엷은 웃음마저 띠어 보였다.
실상은, 아내가 독단으로 한 일도 아니었다. 준은 바둑을 즐겼다. 그래서 가끔 외박을 하는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도둑이 문을 흔들어, 아내는 단잠을 자는 애들을 깨워가며 꼬박 밤을 드새기를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신이 이렇게 사람을 혼을 빼니 살림도 보탤 겸, 얌전한 학생이라도 하나 하숙시킵시다.”
밖에서 자고 들어오는 날 저녁이면 으레 푸념처럼 말해왔었다.
“그러구려.”
준도 무심히 대답하였던 것이 눈앞에 실현된 것이었다.
“고향이 어디래?”
준은 저녁상을 밀어놓으며, 못마땅함을 억지로 참고 물어보았다.
“이북 황해도 어디래요, 성은 현가구요.”
“부모들은 있대?”
“이북에 있지, 이남엔 친척도 없나봐요.”
“음…… 몇 학년이래?”
“금년에 졸업반이래요. 그런데 제가 얌전한 탓이겠지! 지금까지 미군부대에 다니며 공부했대요. 그래서 내 말이, 학생은 그럼 미국유학이라도 가겠군요 했더니, 미국은 안 간대. 서독(西獨)을 갈려구 독일어 공불 하고 있다는군요. 작년엔 그 부대 어느 장교가 미국 함께 가서 공부시켜준다는 걸 제가 안 갔대요…… 좀 요새 학생들 같지 않은 데가 있는 모양이죠?”
아내는 벌써 겉으로도 믿음직하다는 눈치였다.
“응, 요새 그런 학생이 많아.”
아내의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오나 하여, 더이상 따져묻지도 않았다.
“하숙빈 아예 걱정 말래요. 언제나 한 달치씩 선금 내겠다고…… 당신의 직업을 묻기에 신문기자라고 했더니, 그렇다면 더욱 좋대요. 선생님한테서 배울 점도 많겠다고 하며·…… 그런 걸 봐서 돈푼이나 저축하고 있는 모양이야요. 지금은 부대에 안 다닌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 좋겠구려…….”
준은 덤덤히 대답해버렸다.
현군이 하숙해온 지가 한 달도 못되어서였다.
현군에 대한 아내의 신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준의 아들 윤이라는 놈마저 아저씨 하며 따랐다. 집안 식구가 이러자, 준도 현군과 자연 숙진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준과 현군의 사이를 가까이 한 것은 바둑을 두면서부터였다. 현군의 바둑 수는 준보다 이급(二級) 정도 아래였으나, 재치있게 두는 바둑이라고 준은 늘 생각하였다.
“장선생님은 무자비한 데가 있습니다.”
판국이 기울어 가면, 매양 현군이 하는 말이었다.
“바둑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그런 거 아니겠소?”
“그 본질적인 걸 긍정하십니까?”
“그럼!”
“전 부정합니다. 허허허……”
“음, 또 철학이오? 마찬가지야…… 지고 이긴다는 사실이 현이 말하는 부정적인 세계니까.”
“그럼 제가 양보하지요.”
“양보라니? 어디까지 실력이지…… 실력이 없음 밀리는 게 당연하지 않어?”
“바둑판에서만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허허허……”
현군은 내리 몇 판을 져도 언제나 허허 웃고, 물러앉았다.
준은 이런 점으로도 현군을 좋아하였다. 지고 이기는 일에 승벽*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성품이 어질거나, 교양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말하는 증거라고 믿은 때문이었다. 날이 갈수록 현군은, 준의 기대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으리 만큼 성실한 데가 있어 보였다.
꼭 바둑을 두는 때의 심중한 태도처럼, 그의 하루의 일과도 변함없이 반복되었다. 현군은 취직자리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매일 같이 학교에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아내의 말을 벌리면, 나가보았어야 제가 가지고 있는 책 따위를 강의하는 정토라고 코웃음을 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현군은 어쩌다가 밖으로 나갔을 뿐, 밤이면 꼬박 새워가며, 초 두 자루씩 태우고야 자리에 들었다. 그러고는 오정이 가까워야 늦잠에서 깨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학생은 좀 별다른 데가 있어요.”
어느 토요일날, 현군이 윤이라는 놈을 데리고, 역시 늦잠에서 깨어나 밖에 나간 사이에 아내가 한 말이었다.
“왜?”
“오늘은 특별하군요. 저렇게 늦게 깨서는 아침을 먹지 않아요? 변소도 가는 눈치가 없어요. 하루 종일 턱에다 손을 괴고 멍하니 앉아있군요.”
“한참 사색하는 시기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내가 한번 슬쩍 중띠길 해봤어요. 그렇게 하고 정신이 드느냐구? 우리 애 아버지도 꼭 학생처럼 전엔 그랬는데 내가 습관을 고쳐드렸다구……그러니까 학생도 우리 집에 있는 한 우리 집 가법을 따라야 하지 않냐구? 그랬더니 그저 흐흐거리고 넋 없이 웃는군요.”
아내는, 의혹이 가득 찬 눈으로 준을 바라보더니, 제풀에 싱거운 듯이 웃었다.
“그다음이 걸작이야요. 소리가 나고, 사람이 다니는 때는 글이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대요. 제가 연구하는 글은 그처럼 높은 거래요. 호호호……그래서 내가 높은 게 아니라 무슨 비밀이 있는 게지? 했더니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짓지 않아요.”
현군을 나무람하는 조가 아니라, 이즈음 학생으로는 드물다는 말 눈치기도 하였다.
“그대로 버려두구려.”
준은 싱거운 대답을 하고 나서 그날도 밖으로 나가버렸다.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후, 과일과 구운밤까지 사가지고, 준은 늦게야 집에 돌아왔었다.
“여보?…… 이리……”
아내는 과일 봉지를 받으며, 현군이 있는 방 쪽을 눈짓하였다.
“좀 앉아요.”
“왜 수선이오?”
“아니, 지금 학생이 막 동무하구 나갔는데, 아무래도 수상해요.”
아내는 눈을 치떠 두렵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말이오?”
“그 학생이 빨갱인가봐요.”
“어떻게 알어?”
“오늘 찾아온 동무가 학생 책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마르크스·엥겔스 전집』과 헤겔 책뿐이야요.”
아내는 나직이 말하면서도 눈을 곤두세워 준을 쏘아보듯 하였다.
“무식한 소릴 말아요. 철학 할려면, 학문의 체겔 알아야 하잖소? 그걸 알려고 책 정돌 가지고 있는 게 뭐가 빨갱이야?”
옷을 갈아입고, 준은 저녁상을 마주하여 앉았다.
“그래도 의심스러워요.”
아내는 잠잠히 앉아 있다가, 준이 상을 물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혼잣말하듯 하였다.
“믿을 땐 언제고, 의심하는 건 뭐요?”
자신의 심경에서 오는 반발로 준은, 퉁명스러이 쏘아붙이듯 말하였다.
그러나, 입속으로는 아내의 말을 되새기며, 현군의 늘 침울해 보이는 얼굴을 그려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현군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면, 그가 교회를 나간다는 것을 알았던 일이었다. 일요일이면, 미사를 드리러 간다 하고, 꼭 새벽같이 식전에 나가는 것이었다. 또 교회를 나가는 날이면, 으레 밤늦게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그런 때면, 저녁을 먹었노라 하며, 방에 들어서는 대로 담요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현군은 응응 앓는 소리를 치기도 하였다. 이튿날이면 또 시간을 어기지 않고, 친구가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친구와 뒷산에 올라가 있다가도 방에 들어서면,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오래 한다는 것이었다.
“알 수 없어요.”
준이 밖에서 돌아오면, 으레 아내는 한마디라도 현군에 대한 말을 해야만 안심 된다는 듯한 눈치였다.
“그대로 버려두어요.”
“그럼 두지 않고, 누가 뭐래요?”
“당신이 말이 많으니 말이오.”
“하두 세상이 무서우니 그러잖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어찌 제삼자의 생활을 간섭할 수 있단 말이오? 또 책임질 것도 없는 일이구…….”
아내와 준의 사이에는 가끔 현군을 두고, 말다툼 비슷이 해왔었다.
뾰족한 성미를 가져서, 쉽사리 사람에게 흥미를 잃는 아내를 준은 마음속으로 오히려 나무람하였다. 그것이 착각이 아닌 이상, S의 경우와 같이 무비판에서 오는 의식이라고 믿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선생님, 산볼 나가실까요?”
겨울날 같지 않게 푸근한 어느 저녁 무렵에 현군이 한 말이었다.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소?”
“공부야 늘 하는 공부니까요.”
현군은 시무룩이 웃으며, 준을 유인하는 것이었다.
백 미터만 굽이저어 올라가면, 검은 암석이 군데군데 드러나고, 하얀 눈이 깔린 산이었다. 이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준은 현군과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으며, 서울 시가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서울은 불쌍한 도시 같군요!”
현군이 불쑥 하는 말이었다.
“불쌍한 도시라니?”
“생기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야 보기에 달렸지 않소?”
“그렇긴 합니 다만…… 용기가 필요한 도시로 보입니다.”
무슨 의미에선지 현군은 준을 힐끗 쳐다보며, 어색한 웃음을 띠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라면, 서울뿐인가? 세계 각국에 무수한 도시가 있을 것 아니겠소?”
준은 현군을 마주 바라보다가, 먼 하늘에다 시선을 던졌다.
‘알 수 없어요’ 하던 아내의 말이 빙글이 머릿속을 돌아 흐르기도 하였다.
“달은 저런 때가 좋아 뵈는군!”
찬물에 담가놓은 송편처럼, 희멀쑥이 이지러진 달을 가리키며, 준이 딴전을 부리듯 말하였다.
“선생님도 로맨티스트는 아닙니다. 흐흐흐…….”
“어딜 보구?…….”
“달을 보시는 감상력이 그렇습니다. 흐흐흐…….”
분명히 현군의 웃음은 어색하게 들리었다.
“그럼 진짜 로맨티스트는 어떻게 보아야 옳소?”
준도 시무룩이 일부러 웃어 보였다.
“이태백이가 좋아하는 금색이 찬란한 달이지요.”
“나야 그까지 아나?”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드십시오.”
현군은 외투 주머니에서 위스키 병과 컵을 내미는 것이었다.
“용의주도한데…… 이건 어떤 니스트에 속하는 거요?”
준은 기계적으로 잔을 받아마시고, 현군에게도 따라주었다.
“그동안 거의 일 년 가까이 교회에 나갔습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않느냐는 문제는 둘째로, 여러 가지로 회의가 생기는군요. 성경을 현실에 비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가 의문스러웠습니다.”
하이얀 눈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산등성이에 올라섰을 때 현군이 미리 준비했다가 뱉듯이 말하였다.
준은 한참이나 어리벙벙하여 있었다. 거뭇하게 물들어가는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현군의 말을 되씹어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또,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를 몰라 준은 망설였다.
“그것이 진실에서 출발했다면, 인간에 대한 애정을 뜻하는 게 아니겠소?”
현군의 말뜻은 따로 있을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슬쩍 건드려보았다.
“네, 서로 애정을 가진다면 투쟁할 일도 없다는 말씀이죠?”
“그런 뜻도 되겠지…….”
“그러시다면, 현실적으로, 공리주의(功利主義)의 화신이 된 인간부터 개조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니지. 애정을 갖는다는 자체, 의식부터가 인간을 개조한다는 시초가 되어야 하겠지.”
준은 울컥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끼며 현군을 노려보듯 하였다.
꼭, 미소공동위원회 때, 참가와 거부를 싸고돌며, 이론투쟁을 하던 때와 흡사한 감정이 슬그머니 머릿속을 흘러 보이기 때문이었다.
“장선생님은…… 마치 세계연합정부론과 비슷한 말씀입니다. 흐흐흐……”
현군은 실신한 사람처럼 어깨를 흔들어 웃었다. :
“선생님이 현실을 매일같이 보시구 있으시죠? 선생님은 제삼자에게 임의로 애정을 베푸실 수 있으셔도 제삼자가 선생님이 베푸시는 애정을 다루〔計量〕며 받지 않는 경울 당하는 때가 있으시죠? 일테면, 선생님이 베푸시는 애정이 진실인가 아닌가를 회의하기 때문에 요…… 그러니까 보다 진실한 것 같은 데서 출발하는 것보다도, 허위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게 생각됩니다.”
현군은 흥분하여 연설조로 말하고 나서 머리를 푹 수그리고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음, 알아들어…… 그것이 고민이 될 수도 있고, 모색이라는 말도 될 수 있을 거야.”
“흐흐흐……·선생님, 반갑습니다. 그런 숙제(宿題)가 없이 살 수 없으시죠? 흐흐흐……·한잔만 더 하십시다.”
현군은 또 위스키병을 내밀었다. 준은 못 받을 것을 받는 때처럼, 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잔이 차기를 기다려 받아마셨다.
준이 따라주는 마지막 잔을 현군도 죽 들이켰다.
“생각하면…… 돈을 벌어야 하겠어요.”
“먹고살면 되지 갑자기 돈은?…….”
“일하기 위해서요.”
“돈도 인격이야. 함부로 모여지는 건 아니구…….”
“선생님의 사고방식이 그러시기 때문에 저 같은 놈을 하숙시키고, 물가지수에다 생활을 맞추시려구 하시는 겁니다. 흐흐흐·…‥”
“그 말은 잘했어.”
준도 웃지 않을 수는 없었다.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얻은 이윤을 가지고 피아놀 산다 승용찰 산다 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일반적인 건 아니지·……”
“물론입니다.”
현군은 기다랗게 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준과 이만치 떨어져, 머리를 푹 떨어뜨려 섰다가도,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준도 희멀쑥하던 달이 어느 사이에 차디차게 하얀 눈을 번득여 비추는 것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현군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무 결론이 잡히지 않으면서도, 가슴속이 서늘한 것 같아서 준은 현군을 몰래 쏘아보았다.
“인제 내려가볼까?”
준은 나직이 말하였다.
“네.”
한참이나 말없이 걸어내려와, 오솔길에 접어들었을 때였었다.
“장선생님, 저 내일 아침 첫차로 부산 내려가겠습니다.”
“갑자기 부산은 왜?”
“친구의 형이 일본에서 무역 합니다. 그분이 며칠 전 부산에 왔답니다.”
현군은 말뿐이 아니라, 걸음마저 주춤거리는 것이었다.
“음…….’
“가면……·얼마간 돈을 줄 겁니다. 그래서……얻어 써야…… 그것이……삼 일간이면 돌아오겠습니다.”
준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띄엄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더 좋은 일이 어데 있소.”
“잠시라도, 장선생님 곁을 떠나는 것이 괴롭게 생각돼서요…….”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도, 머리를 수그리고 걸음을 옮기는 현군의 모습은 더 침울할 수 없이 보였다.
“허허허…… 일테면 현이 나한테 애정을 베푸는 거야?”
웃음을 띠고 준이 말하자 현군도 마주 웃어 보였다.
이리하여 현군은, 준과 이야기한 대로 그 이튿날 첫차로 부산을 간다 하고, 훌쩍 떠나버렸던 것이었다.
사흘이면 온다던 현군은 이 주일이 가까워도 돌아오지 않았다.
“학생이 웬일일까?”
제일 아내가 조바심치듯 물었다.
“책까지 두었으니 올 테지.”
“아니 야요. 어데 군대에라도 끌려갔나봐요. 지금 생각하니 그래서 그 학생이 밖에 못 나갔에요.”
아내는 부쩍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대학에 적을 두고 있으면, 징집보류가 돼 있는데 무슨 소리오?”
“누가 따라가 봐서 아나요? 언제 학교에 간다는 말 듣지 못했어요.”
“당신은 그 버릇을 고쳐요. 사람을 의심하는……하루 있자던 예정이 열흘 되는 수도 있지 않느냐 말이야.”
준은 역정을 내다시피 하여 아내를 나무람하였다.
“글쎄……·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내는 푸념 하듯 하며 새침을 떼기까지 하였다.
바로 이런 말을 주고받은 다음 날, 통행금지 시간이 가까워서, 준이 막 잠이 들려는 때였었다.
“여보세요?”
현관문을 쿵쿵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무의식중에도 준은 섬뜩하여 어둠 속에서 귀를 기울였다.
“여보세요?”
한결 힘차게 현관문이 울렸다.
“네. 누구세요?”
준은 간신히 미닫이문을 열며 대답하였다.
“전기 조살 왔습니다.”
“밤중에 무슨 전기 조삽니까?”
“아니오. 이 일대를 일제히 하니까 얼른 여세요.”
어째 어엿하게 말하는 바람에 준은 쭈뼛한 심경이면서도 문을 열었던 것이었다.
플래시가 얼굴에 덮이자, 쏟아져 들어오듯이 사오 명이 구두를 신은 채, 낭하에 올라서는 것이었다. 어느 사이에 벌써 꺼져 있던 전등이 켜 있었다.
“현일우가 누구냐?”
“네. 지금 없습니다.”
“어디 갔어?”
“이 주일 전에 부산 간다고 갔습니다.”
“뭐 어째?”
“어데서 오셨습니까?”
“똑똑히 봐야 알겠어?”
플래시를 쥐고 있는 사나이가 ○○서(署) 신분증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봤어? 이만하면…….”
“네. 그러나 저희 집에 하숙하고 있는 건 분명하구요, 이 주일 전에 부산 간 것도 틀림없습니다.”
“흥! 이 자식이…….”
준의 얼굴은 보지 않는 채, 벽장문을 모조리 열어 플래시로 비춰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군이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책을 들추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허! 좋은 놈들이다.”
빈정대며, 현군의 책을 골라서 내동댕이쳤다.
표제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일본 카따까나를 금박으로 박은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이었다. 준은 직각적으로 현군이 사상 문제로, 혐의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현일우가 무슨 사골 일으켰습니까?”
준은 짐작하면서도 물었다.
“빨갱이야. 이 자식 이 사람을 바지저고린 줄 아나봐. 멀쩡한 자식? 이 책을 보고도 물을 용기가 있어? 이 자식…… 그냥…….”
한 손으로는 절꺽 권총을 재며, 주먹으로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순간, 얼굴을 싸안은 준의 손에는 선지피가 좌르르 흘러내려 붉게 물들었다.
“이게 웬일이에요? 우리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사람을 이처럼 때려요?”
아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몸을 와들와들 떨며, 준을 가로막아 섰다.
“아주머닌 나가 있어요.”
다른 형사 한 사람이 꾸짖듯 말하였다.
“우리한텐 없이 살다보니 하숙시킨 것밖에 죄가 없어요.”
아내는 발을 구르며 울상을 하였다.
“그러니까 나가 있어요.”
“무엇이 어째? 빨갱이하구 공모하구도 죄가 없어?”
준을 후려갈기던 형사의 말이었다.
“이 책을 내다 실어요.”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준의 팔목에다 수갑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었다.
“가는 건 좋습니다. 영장을 가지고 있습니까?”
준은 한 손으로 코를 닦으며 물었다.
“염려마십시오. 또 보셔야 하겠습니까? 히히히…….”
준의 이름 석 자가 박힌 영장을 준의 코밑까지 치켜 보이는 것이었다.
“인제 안심 했습니까? 히히히……”
준을 쳐다보며, 조롱하듯 웃었다.
“그렇다면 가는데요,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수갑은 채지 말고, 그냥 갑시다. 도망칠 비겁 한 놈이 아니니까요.”
“좋소. 신사적으로 합시다.”
준은 옷을 주섬주섬 도로 입었다. 그리고 외투깃을 일으켜 세우며, 살을 에는 듯한 현관 밖으로 따라나섰다.
“한 명이 불었군, 흐흐흐…….”
무거운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가 끝나자, 감방 안에서 들려오는 말이었다.
준은, 그대로 우두커니 선 대로 한참 동안 주위를 응시해 보았다. 미결수들이 비스듬히 눕기도 하고 혹은 몸을 꼬부리고 서로 기대고 있는가 하면 준이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 앉는 치도 있었다.
“와서 앉으시오.”
일어나 앉은 사나이가 탁한 음성으로 말을 거는 것이었다.
준은, 그제야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똥뚜껑이 가까운 곳에 느슨히 앉았다.
“그 담요 가지고 앉소.”
아까 말하던 사나이가 명령하듯 또 하는 말이었다.
그때에야 준은 담요를 끌어안으며, 사나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수염이 무더기로 났고, 움퍽 꺼진 눈에다 광채를 띠어 쏘아보고 있었다.
“무슨 일로 들어 왔소?”
“대단치 않은 일이오.”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준은, 대답하였다.
“음!”
사나이는 준을 훑어보다가 알았다는 듯이 담요를 말아 쓰고, 도로 눕는 것 이었다.
준은, 오래 앉은 대로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담요를 머리 위까지 올려 써보았다. 그래도 추위는 뼈마디를 쑤시었다. 제풀에 눈이 감겼다. 꿈이 아닌가 의심하며 펀뜩 눈을 떠보았다. 바로 준의 곁에 새우처럼 꼬부라져 누운 담요 속에서 쿨럭쿨럭 기침소리가 일었다.
준은 못 볼 것을 보는 때처럼 눈살을 찌푸려 담요 무더기를 쏘아보았다.
‘여섯 이구나……’
입 속으로 뇌까리며, 담요 속에다 머리를 묻어버 리고 말았다.
준이 유치장에서 자고 난 이튿날 오정 이 지나서였다.
육중한 유치장 문이 열리며, 준을 부르는 것이었다. 준이 이끌려 간 방은 훈훈하고, 태양 광선이 가득 차 있었다.
준은 그때에야 알았다. 어젯밤, 준을 후려갈기던 형사 앞에 섰다는 것을.
“잘 주무셨소?”
형사는 해쭉이 웃으며, 양담배 한 대를 피우라고 주는 것이었다.
꼭 갸름한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아서 준도 싱거운 미소를 띠어보였다.
“처음이오?”
입술이 얇은 형사는 눈에다 웃음을 띠고 담배를 빨며 물었다.
“세번쨉니다.”
“음……·무슨 일로?”
“일제시대에 사상범으로 일 년 살고, 팔일오 해방 직후에 북한서 두 달 살았습니다.”
자신으로서도 싱거운 대답이라고 생각하여, 준은 또 웃어 보였다.
“그런 사람이 왜 그래?”
“뭐가요?”
“히히히…… 어젯밤 대답하던 식이군요. 참 어제는 미안했소. 대한민국은 당신이 알다시피 법치국간데…… 인권을 존중한다는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대답을 비꼬아서…… 양해하시오.”
“천만에 말씀입니다.”
입으로는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준은 의심이 부쩍 치밀어올랐다.
동정하거나, 호의를 가질 리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더욱 애정은 아니었다. 순간 준은, 온몸에 쪽 퍼지는 공포를 느꼈다. 갑자기 태양 광선이 싫었다. 사물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이라는, 희미한 의식이 멍멍히 흐를 뿐이었다. 오히려 어둑시그러한* 유치장 속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까지 생각하니 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유리창 밖에 보이는 전선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었다.
“뭘 생각하오?”
“네?”
준은 얼른 머리를 돌렸다.
그동안 형사는 준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살폈음이 분명하였다. 가느스름히 찢어진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으로도 점작할 수 있었다.
“에……신사적으로 묻는 대로 똑바투 말해야 돼?”
준은 인제 시작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는 데까진 말하지요.”
“직업이 신문기자라지?”
“전직입니다.”
“그럼 지금은?”
“놀고 있습니다.”
“신문산 왜 그만두었어?”,
“국장하구 싸워서요…….”
“왜?”
“기사 때문에요.”
“히히히…… 구체적이 아니지, 틀림은 없어……”
형사는 의자를 끌어 바로앉으며, 곁에 앉은 동료를 바라보고 웃었다.
불리할 수 있는 조건을 알고 있다고 믿어지자, 가슴이 뛰고 있음을 준은 다음 순간에야 느꼈다.
“에……그것도 그거지만, 음……현일우를 언제 알았어?”
“집에 와 하숙하면서 알았습니다.”
“바른대로 말해…….”
“그것 뿐입니다.”
“그럼 현일우가 간 곳이 어데야?”
“부산 간다고 했습니다.”
“부산 갔는데 주소가 어디며, 어디 가서 숨었느냐 말이야?”
“그건 모릅니다.”
그의 가느스름히 찢어진 눈자위는 갑자기 독살을 풍기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준은 당황해하지도 않았다. 현군의 일만은 시간이 이해시키리라 믿은 때문이었다. 그보다도 S와 싸운 기사를 두고 꼬집어 뜯으면, 어쩌랴 싶기만 하였다.
“현일우가 간첩인 줄은 알고 있지?”
“모릅니다.”
“히히히……이 양반이 수상(首相)이군…….”
그는 또 자리를 떠나 스토브 옆에 와서 뚝 뻗지르고 서 있는 동료를 쳐다보며, 의미 있게 웃는 것이었다.
“좌익서적 보는 줄도 몰랐어?”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간첩인 줄은 모른다는 거지?”
빈정대는 조로 말하는 것이나, 소름이 끼치도록 어떤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현일우가 S대학 철학과에 다닌다고 했소. 제 생각엔 공부하는데 참고 정도로 보는 줄만 알았을 뿐입니다.”
“히히히·…‥ 이 자식이 기어이 사람을 바지저고리로 몰 작정인데…… 두구 보아.”
웃으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준을 노려보며, 유치장 당번 형사에게 내맡기는 것이었다.
제일차로 심문이 끝나자, 준은 전에 들었던 감방과는 다른, 독방에 수감되었다.
무거운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치장 당번 형사의 발자국 소리도 멀어졌다. 형사가 밀어넣은 대로, 그 자리에 준은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둑시그러한 감방 안에는 창살을 통하여 가느다란 태양 광선이 흘러들었다.
준은 속으로 아 하고, 길게 소리를 질러보았다. 무슨 뜻으로 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찌 생각하면, 희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게 광선에서 자극을 받았을 뿐이었다.
누런 미국군대 담요가 놓여 있는 곁에 가서 준은,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겨우 마음속이 아까의 희열에서 벗어나 정리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또 문득 치밀어오르는 것은, 어찌 되었든, 준 자신이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이었다. 준은 무의식중에 어깨를 흔들며 바로 앉아보았다.
그리고 준은 현재의 위치를 곰곰이 생각하였다. 인제 더 확실할 수가 없었다. 현군의 위치에 놓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름자가 다르니까……’
입가에다 엷은 미소를 띠고, 준은 속으로 뇌까려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준은, 독방에 수감되었어도 태연해 있었다.
지금은 날짜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무서운 추위로 감방 안이 얼음판처럼, 싸늘하던 날 밤이었다.
준은 담요 한 장을 머리 위까지 휘감아 쓰고, 여윈 개처럼 온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계속되던 열이, 이 순간에도 화끈거리도록 뒤덮이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꼭 한 사람이 되풀이하는 괴로운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자신으로서도 알 수 없었다. 준은 괴로움을 잊은 일이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되풀이하는 기침소리에 이상한 흥분과 흥미를 가졌다.
‘저자도 증인(證人)이 아니면?…….’
준은 소리도 없이 웃어보았다.
기침소리는 아까보다도 한결 자주 일었다.
‘못난 자식 같으니…….’
새우등처럼 몸을 구부려 돌아누우려 할 때였었다.
육중한 자물쇠를 건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퍼뜩 제 의식에 돌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와…….”
“……”
그래도 준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모른 체하고, 누워 있었다.
“야, 일어나……”
엉덩이를 발길로 찰 때에야 준은 겨우 일어나 앉았다.
유치장 당번 형사였었다.
“몸이 떨려서……”
준은 몸을 바르르 떨면서 말하였다.
“너만 추우냐?”
키가 후리하고 건강해 보이는 형사는, 준의 팔을 잡아채며, 일으켜세우는 것 이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으나, 전등불이 낮과 같이 환한 것이 반가웠다. 자그마한 테이블을 마주하여 똥똥한 체격을 되똑거리며, 처음 심문을 하던, 가느스름한 눈을 가진 형사가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왜, 추워? 히히히…… 자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못 피울 것 같소.”
“……피우면 죽는 거 아니야.”
준은 기계적으로 받아서 담배에다 불을 붙이는데도, 손이 떨려서 한참 시간이 걸렸어야 했다.
담배에 취하여 의식이 아뜩할 때였다.
“네 이름이 장준이지?”
“네.”
“H신문사 S씨를 알지?”
“왔다 갔습니까?”
“이 자식아, 묻는 대로만 대답해…….”
형사는 발끈하여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다가 도로 앉았다.
“S씰 아느냐 말이야?”
“네.”
“넌 사사오입을 아느냐?”
준은 가슴속이 뜨끔하였다. 일이 이까지 이르렀다면, 모든 것을 단념하려는 생각이 픽 스치는 것을 느꼈다.
“압니다.”
“알어? 이 자식이…… 그러니 어떻단 말이냐?…… 그래서 간첩을 비호한다는 말이냐? 현일우가 어디 있어?”
“모릅니다.”
“기어이 부인하는 거지?”
“부인이 아닙니다. 모를 뿐이지…….”
형사는 가느스름한 눈이 반짝 빛나 있었다. 그리고 엷은 입술을 옆으로 비뚜름히 꼭 다물고 준을 쏘아보는 것이었다.
“여게 와 꿇앉어.”
가까이 가서 꿇어앉자, 갸름한 손가락을 모아 쥐고, 푹 수그린 준의 턱을 가벼이 괴어서 위로 치켰다.
“신문기자까지 한 머릴 가지고, 왜 미련하게 굴어? 대신 받을 테야…… 말해봐.”
형사는 입가에 비웃음마저 띠어 보이는 것이었다.
“모르는 거야 어떡합니까?”
준은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대신 받을 테야’ 하는 말에서 준 자신이 범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자식이……”
형사는 흥분하여 씩씩거리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준은 두 손으로 머리를 싸안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야, 들어가 잘 생각해봐.”
준을 일으켜 세우며, 한참 만에 형사가 한 말이었다. 준은 분노와 슬픔이 치밀어올라, 눈물이 글썽 괴어서 형사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턱으로 끄덕여 태답을 대신하였다.
“사내 대장부가 울기는?…….”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다르게 준의 등을 가벼이 두들겨주었다.
얼마를 잤는지도 몰랐다.
높이 달린 창살을 통하여, 길게 광선이 뻗어 흘렀다. 준은 몸을 꼼짝 들추어놓을 수도 없었다. 무엇이든지 새로우리만큼 의식도 희미하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관절이 굳어진 것인지, 손발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일이었다. 반비례로 몸은 불덩이처럼 이글거려 열에 들떠있었다.
준은 한참만에야 상반신을 일으킬 수가 있었다. 아내가 사식을 차입한 것을 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처럼 말짱히 식욕이 가시었다. 입술이 타서 부풀어올랐다. 메슥메슥 군침이 돌아서 뚜껑이 덮인 똥뚜껑으로 네발걸음을 하여 기어갔다. 소변색이 핏빛 같았다. 야릇하게 몸이 오싹거렸다. 폐가 오그라붙는 듯한 기침이 연거푸 치밀어올랐다. 이마에만 땀이 돋는 것은 아니었다. 금방 온몸이 추근하였다. 울컥 목구멍이 부어오르는 것 같은 싫은 감촉이 일었다. 무엇인지 입안에 가득 차 있었다. 무의식중에 뱉어버렸다. 손으로 입술의 상처를 피하여 조심스럽게 씻어보았다. 붉은 핏자국이 아침 햇빛에 한결 선명하였다.
준은 의식이 아득히 멀어짐을 느꼈다. 몸도 가눌 수 없었다. 그보다도 타격이 컸던 것은 객혈을 하였다는 사실에서 받은, 무서운 충격이었다.
준은 오래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눈이 뜨였을 때에는 침대 위에 누운 채 알지 못할 주사를 맞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선생이 인제 오시는가봐요.”
중학 동창이요, 군의관인 강을 두고, 아내가 하는 말이었다.
“좀 어떻습니까?”
“열이 아침보다 많은 것 같애요.”
“그럴 리 없는데요…….”
강과 아내가, 현관에서 주고받는 말이었다.
“여, 준! 좀 나은가?”
준은, 머룩이* 촛불에 비치는 강의 건강한 얼굴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일부러 숨을 죽여가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기침이 튀어나와, 목을 찢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
입술만 펄럭이어 말하였다.
“열이 좀 있어.”
강이 진정제부터 놓아서, 기침과 경련이 조금 멎었다.
준은 알지 못할 주사를 몇 대나 맞았다. 그리고 강은 링거병을 늘 걸던 자리에 걸었다. 고무줄을 길게 늘어뜨려, 뼈에 말라붙은 피부에다 주사기를 꽂기에 한참 시간이 걸렸다.
“미안하네…… 매일·…‥”
곁엣사람이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준은, 강을 쳐다보았다.
“그런 인산 말고, 얼른 나아서 일어나 나게.”
“가망은 있나?”
“그럼! 아직도 자넨 중환자가 될려면 멀었어……”
준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강이 사망진단서를 쓰지나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자, 얼굴을 마주 하기가 싫어서였다. 준은 또, 알지 못할 흥분으로 몸이 떨려났었다. 한 시각에도 수없이 오르내리던 생각이 희미하게 또 돌아 흐르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폐결핵균이…….’
준은 눈을 부릅뜨고, 마음속으로 부인해보았다.
지극히 짧은 시간 사이였다. 준은 문득 삼팔선을 넘던 때부터의 지난 생활을 생각해보았다. 투명하면서도, 끝내 자신이 이해하려는 합리성을 추려 잡을 수는 없었다.
“자……·자네가 왜 매일 오나?”
준도 알 수 없었다.
꼭, 밖에다 형사를 세워놓고 강만이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스쳐 보이기 때문이었다.
뜻밖에 묻는 말이어서 그런지 강은, 흥분하여 떨고 있는 준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보석인 줄은 알지?…….”
준은 비웃음을 띠고 재차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강은 어안이 벙벙하여 가까이 왔다.
준은 아까와 똑같이 엷은 미소를 띠다가, 사뭇 날카로운 시선으로 강을 노려보았다.
“의사의 직분으로 끌려왔지…….”
“이 사람이 선경질을 내고 있군그래. 히히히…….”
강은 터무니 없다는 듯이 유쾌하게 웃었다.
준은 부쩍 강이 미워졌다. 더욱 그 유쾌하게 히히 하고 웃는 웃음소리가 싫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축 늘어져, 준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눈을 감았다. 취조실에서 여러 번 듣던 웃음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준은 거의 한 시간 만에 눈이 띄었다.
강이 링거 주사기를 거두는 바람에 잠에서 깨었던 것이었다. 준은 유난히 의식이 맑음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강이 언제 왔던가 싶기도 하였다.
“좀 정신이 드네.”
“문제없이 나어. 요는 정신력이야…… 병을 이기는 건.”
“두렵지는 않어. 죽음이…….”
“병이 나아가는데두 왜 그런 말을 하나?”
강은 물끄러미 준을 들여다보며, 타일렀다.
“자네 힘을 빌어…… 꼭 살아야지……”
눈으로는, 촛불이 벌렁거려 타오르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준은 귀를 바싹 기울였다.
어디선가 성당의 종소리가 아득히 들려오기 때문이었다.
준은 아까운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때처럼, 오래 눈을 감고, 종소리를 엿듣고 있었다.
『현대문학』 14호(1956. 2); 『방황』 (정음사 1964)
박 연 희
박연희(朴淵禧)는 1918년 함남 함흥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공부한 후 월남해 『자유세계』 『자유문학』 등의 잡지사에서 활동했다. 1946년 『백민』에 「쌀」을 발표해 문단에 나온 뒤 「삼팔선」 「교목」 「방황」 「닭과 신화」 「변모」 「고향」 등을 발표했다. 대표작 「증인」 에서는 자유당 말기 독재정권의 부패와 이념 대립을 보여주었고, 『방황』 에서는 일본군에 징집된 조선 학병들의 고뇌를 그렸다.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받아 서민 감정과 사회의식을 강조하는 작품을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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