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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타이먼』(Timon of Athens) :
여성 혐오의 관점에서 본 타이먼의 몰락
1. 서론
1605년과 1608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테네의 타이먼』(Timon of Athens)은 1623년에 제 1 이절 판이 인쇄되었지만 셰익스피어 생존 당시엔 공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극은 타이먼이 그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아무 조건 없이 호혜적으로 베푸는 행위와, 자신의 파산 이후 그 친구들로부터 받은 배신감으로 세상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하는 그의 심리를 다룬 극이다. 극의 공간은 타이먼의 상황 변화를 반영하듯 아테네 도시와 아테네 밖의 숲속이라는 이분법적인 장소로 나뉜다. 그는 과연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과도한 인심을 주변인들에게 베풀었는가? 타이먼의 과도한 인심 베풀기 행위로 인한 파산의 주제는 2012년 영국의 니콜라스 하이트너(Nicholas Hytner)감독의『아테네의 타이먼』연극에서 당시 영국과 유럽 경제의 침체 현상을 보여주려는 공연 취지에 활용되기도 했던 점(Tink, 956)을 감안해보면 타이먼의 비극은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으로 인한 세계금융위기를 겪은 21세기의 소비주체인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타이먼의 과도한 호혜적 행위를 코펠리아 칸(Coppélia Kahn)이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 마르쉘 모스(Marcel Mauss)의 인류학적 설명을 빌어서 표현한 바를 보자면, 그는 “인류 사회의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는 첫째, 선물을 주어야 하는 의무, 둘째, 선물을 받아야 하는 의무, 그리고 받은 선물에 대해 언젠가는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40). 선물을 주는 행위는 선물을 주고받는 당사자들 간의 사회적 유대관계를 확립하고 표현하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타이먼의 지나친 호의는 아테네에서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주는 이가 받는 이로 하여금 보답하기에 너무도 과한 선물을 주는 행위는 권력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카렌 뉴먼(Karen Newman)은 고지대 뉴기니아(New Guinea)의 부족 사회의 빅 맨(Big Man)사이에서 이와 같이 권력으로 표현되는 호의의 사례를 설명한다(20). 타이먼의 호혜적 행위 또한 자신의 권력을 은연중에 과시하려는 무의식적 의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코펠리아 칸은 제임스 1세가 왕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귀족들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재정적 후원을 과도하게 해, 결국 파산하게 되었음을 셰익스피어가 타이먼을 통해 재현하려했다고 주장한다(35). 하지만 극 전반부에서 타이먼이 보여준 이타주의적인 태도가, 극 후반에 타이먼이 파산한 후 친구들의 도움을 거절당하고 아테네 외곽 숲에서 극도의 인간 혐오나 여성 혐오에 대한 태도로 바뀌는 정황을 그의 권력의 박탈로 인한 이유로 해석하기엔 극의 분위기가 너무도 차이난다. 이러한 극의 분위기 차이에 대해 뮤리엘 브래드부룩(Muriel Bradbrook)은 극의 구조가, 서로 나란히 배열되어 “리듬의 대조”를 이루는 뚜렷한 이야기로 구성되었음을 상징한다고 주장하며(38), 리차드 플라이(Richard Fly)는『셰익스피어의 중재된 세계』(Shakespeare’s Mediated World)에서 분리된 극이 사회통합에 대한 인간혐오주의자들의 거부를 반영하는 구조라고 서술한다. 필자는 본고에서 이러한 극의 구조를 타이먼의 심리적 차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타이먼의 과도한 호혜를, 모든 것을 제공하는 어머니의 행위와 동일시하는 데 있어서의 방어심리로 해석한다면 극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극을 분석한 정신분석 비평가들은, 코펠리아 칸, 씨. 엘. 바버(C. L. Barber), 리차드 휠러(Richard Wheeler), 수잔 핸델만(Susan Handelman) 및 자넷 아델만(Janet Adelman) 등을 꼽을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정신분석 비평가들의 선행 연구를 기본으로 해 타이먼이 극에서 보여주는 극도의 인간혐오나 여성 혐오의 행위를, 남성 자아가 권한을 주는 어머니와의 일체감으로부터 그가 힘을 쓸 수 없는 기만적인 남성 집단 안으로 내몰리는 두 장면으로 구성된 환상의 이중 구조로서 칸이 명명한 개념인 핵심 환상(core fantasy)에 따라 설명하고자 한다(35). 더불어 정신분석적 설명에 기반을 둔 가부장적 남성들의 주체형성에 미치는 환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필자는 셰익스피어가 타이먼에게 부여하고자 한 남성정체성이 결국은 여성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해 형성되었음을 반증하고자 한다.
2. 본론
극 전반부에서 타이먼은 행운의 여신인 어머니와의 일체감을 느끼며 스스로 어머니와 같은 자비로움을 가진 인물이라 여기는 환상을 유지한다. 이 환상이 유지되는 동안 그는 여성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환상이 현실에서 맞닥뜨린 파산으로 깨지자 그는 곧 그를 배신한 행운의 여신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는 어머니의 배신을 경험하게 된다. 여성이 영양을 제공해주는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불신의 이미지를 지닌 어머니의 모습으로 옮겨가는 어머니와의 동일시에 대한 주제는 비극에서도 볼 수 있다. 『맥베스 』(Macbeth)에서 던컨(Ducan)왕을 시해하는 데 용기를 내지 못하는 맥베스에게 “이가 없는 잇몸에서 젖꼭지를 잡아 빼고 그 머리통을 박살낼 수 있어요.”(Have pluck'd my nipple from his boneless gums. 1.7.58)라며 맥베스부인은 젖 먹이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투사해 겁 많은 맥베스란 아이에게 위협을 가해 맥베스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하는 장면이 있다. 또한 『코리올레이너스』(Coriolanus)에서 남편인 코리올레이너스가 전쟁에서 다칠 것을 염려하는 며느리인 버질리아(Virgilia)에게 시어머니인 볼룸니아(Volumnia)는 “핵토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헤쿠바 왕비의 앞가슴도, 그리스 군대의 칼에 찔려 피를 내 품고 있을 때의 헥토르의 이마처럼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거다”(The breasts of Hecuba/ When She did suckle Hector, look'd not lovelier/ Than Hector's forehead when it spit forth Blood/ At Grecian sword contemning. 1.3.40-43)라며 남성의 진정한 용기는 어머니 가슴으로부터의 독립임을 강조하는 냉정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인다.
『맥베스』와 『코리올레이너스』에서 이중성을 띤 어머니의 모습은 『타이먼』에선 행운의 여신의 역할과 교차된다. 맥베스와 코리올레이너스가 남성적 경쟁의 세계로 나아가기위해 어머니로부터의 모진 배신감을 경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이먼 또한 혹독한 현실을 직면하기 위해선 “행운의 여신의 변덕”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된다. 더욱이 시인이 인심을 베푸는 타이먼의 행위를 비유한 얘기에서 독자나 관객은 가부장적 남성들의 정체성 확립의 과정에 나타난 어머니로부터의 분리 환상을 엿볼 수 있다. 이는 핸델만이나 칸의 설명대로 행운의 여신을 신뢰할 수 없는 어머니와 동일시하는 정신분석적 해석에 기인한다.
어머니로부터의 분리에 대한 전조는 극의 초반에서 타이먼이 베푸는 잔치에 참석한 시인(Poet)의 찬사로부터 예견된다.
시인. 난 이런 그림을 상상해 보았어요.
높고 상쾌한 산봉우리에 운명의 여신이 옥좌에 앉아 있다.
그 산기슭에는 이 지상에서 자기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든 계급, 온갖 떨거지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겁니다.
그들 가운데서,
이 지엄한 여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고,
나는 바로 그를 타이먼공으로 그리는 겁니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은 그를 상아와 같은 손으로 손짓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여신의 총애를 보고 경쟁자들은 노예,
노복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이 변덕을 부려 이제까지
은총을 베풀어 주던 사람을 걷어차 버린다면
지금까지 무릎 꿇고 손 비비며 산꼭대기까지
기어오르던 자들은 허리 부러진 호랑이 격인 공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고 따라가는 자도 없단 말입니다.
Poet.
Sir, I have upon a high and pleasant hill
Feign’d Fortune to be thron’d. The base o’ th’ mount
Is rank’d with all deserts, all kinds of natures
That labour on the bosom of this sphere
To propagate their states. Amongst them all,
Whose eyes are on this sovereign lady fix’d,
One do I personate of Lord Timon’s frame,
Whom Fortune with her ivory hand wafts to her,
Whose present grace to present slaves and servants
Translates his rival....
When Fortune in her sift and change of mood
Spurns down her late beloved, all his dependants
Which labour'd after him to the mountain's top
Even on their knees and hands, let him sit down,
Not one accompanying his declining foot. (1.1. 65-73, 86-90)
시인의 상상에서 행운의 여신의 몸은 대지의 어머니의 몸과 혼용되며 “지엄하신” 운명의 여신과는 달리 인간의 모습은 “재산을 늘리려고 발버둥치는 떨거지”로 왜소하게 표현되고, “노예, 노복”으로 폄하된다. 하지만 타이먼은 여신의 “손짓”을 받게 된다. 화가(Painter)가 표현한 “산마루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람만이 손짓을 받아서 가파른 산길을 머리 숙이며 행복의 절정을 향해서 올라간다.”(With one man beckon'd from the rest below,/ Bowing his head against the steepy mount/ To climb his happiness, 1.1 78-9)에서 “가파른 산길을 머리 숙이며”의 상황은 어머니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있는 아이의 이미지를 암시한다. 행운의 여신의 이미지에 어린아이의 의존적 관점을 투사시키고 있다. 그는 행운의 여신의 자리를 차지해 그의 많은 추종자들이 “자유로이 공기를 들이마시게”(through him/ Drink the free air 1.1. 84-5)해준다. 하지만 시인의 표현대로 행운의 여신이 더 이상 영양을 주는 어머니로서 역할을 하지 않고 “변덕을 부린다”면 “노예 나 노복”이던 그의 추종자들은 “허리 부러진 호랑이 격인” 타이먼 공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고 따라가지”않게 된다. 극 초반에서의 시인의 이러한 상상은 타이먼의 말로를 예언해주기에 매우 의미 있다.
시인이 묘사한 타이먼의 몰락의 암시에서 보게 된 어머니의 환상 외에 타이먼은 던컨 왕이나 『리어왕』(King Lear)의 리어왕처럼 불안한 여성 근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풍요로움의 분배자로 자청해, 왕으로서 그의 백성들에게 “영양을 주는 아버지”로서의 가능한 이데올로기에 참가 한다. 미네르바 나이디쯔(Minerva Neiditz)는 타이먼이 “고갈되지 않은 풍성한 젖가슴을 소유하거나 아니면 공허하고 힘이 없는 아기의 상태”(32)에 처한 리어왕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모든 것을 함유한 가슴의 소유자로서,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고 자신과는 분리되지 않은 어머니와 동일시하는 심리가 극의 중심을 이룬다고 한다. 칸은 이 극의 미학적 일관성은 핵심 환상으로 강조된 어머니로 향한 감정과 타이먼의 연기나 텍스트로부터 나온 어머니로 향한 감정들의 일관성에서 비롯된다고 밝힌다(38).
그의 재산이 어디서 나왔는지에 관한 정보는 없는 채 타이먼은 전반부 3막에서 행운의 여신의 역할을 하면서, 자신을 사회적 관계 맥락에서 중심된 인물로 위치 지운다. 이에 대한 시인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보다시피 각 계층 여러 성격의 사람들,
진지하고 근엄한 사람들은 물론
입심 좋고 경망스런 자들도 모두 타이먼공을
모셔 받들려고 눈을 밝혀 아우성이죠.
그분이 너그럽고 자비심 많은 성품인데다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계시고 이를 자선을 위해 쓰려고 하시니
온갖 작자들이 내숭을 떨면서 설레발을 치며 덕을 보려고 하지요....
You see how all conditions, how all minds,
As well of glib and slipp’ry creatures as
Of grave and austere quality, tender down
Their services to Lord Timon: his large fortune,
Upon his good and gracious nature hanging,
Subdues and properties to his love and tendance
All sorts of hearts..... (1.1.53-59)
바버는 “타이먼이 모성적 영양도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제공하는 후원자가 되려고 한다”(305)며 “이타적인 방어 전략에 가담해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들에게 사랑을 베풀되 주기만 하는 위태로운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탓에 그들로부터 안전은 보장받지 못 한다”고 밝힌다. 타이먼의 인심 베풀기는 한 귀족의 표현대로 “은덕을 물 뿌리듯”(He pours it out. 1.1. 275)하면서 자신의 은덕의 카리스마를 마음껏 발휘한다. 벤티디우스(Ventidious)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은 뒤 타이먼에게 빌린 돈을 갚고자 하지만, 타이먼은 “기꺼이 드렸던 거요”(I gave it freely ever, 1.2.10)라며 자신을 오로지 베푸는 사람으로만 위치 지우려한다. 그의 인심 베풀기는 바버의 말대로 상호적인 게 아니라 일방적인 상황인지라 타이먼의 행위는 불합리해 보인다. 시인이 묘사한 타이먼의 인심 베풀기인 "은혜의 마력"(magic of bounty 1.1.6)은 결국 아델만이 “자기 생성” (self-renewing)(166)의 단어로 표현한 것처럼, 타이먼 자신의 몸이 마술에 걸린 듯 재산을 만들어 내는 환상 기제인 셈이다.
자신의 신체를 무한한 영양의 출처로 위치지우는 환상을 통해, 그는 스스로 양육의 특성이 있는 여성의 신체 소유자임을 무의식적으로 강조하면서 타자의 존재는 부정한다, 그는 자신으로 하여금 그가 믿고 있는 바를 자기 스스로 만들고자한다. 심지어 그에게 아부하도록 계획된 가면극에서 조차, 그는 “주인인 나도 흡족해 주었으니”(entertain'd me with mine own device; 1.2. 146)라며 무한히 인심을 베푸는 자기만족의 환상에 빠진다.
극에선 타이먼의 “은혜의 마력”을 그의 신체에 근거를 두게 되는 환상과 더불어 그의 재산을 타이먼의 신체와 동일시하는 측면도 있다. 극에서 가장 신랄한 인물로서 타이먼의 연회에 참석한 애페맨터스(Apemantus)가 타이먼을 비난하는 곳에서 보자면 이렇다.
저렇게 많은 작자들이 타이먼을 뜯어먹는데도 본인은 모르다니! 많은 무리가 단 한 사람의 생피에 적셔 고기를 처먹고 있는 걸 본다는 게 통탄할 일이고, 미친 짓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본인은 그걸 장려하고 있으니 말이지.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What a number of men eats Timon, and sees ’em not! It grieves me to see so many dip their meat in one man’s blood; and all the madness is, he cheers them up, too. I wonder men dare trust themselves with men... (1.2.39-43)
애페맨터스가 연회에 참석한 타이먼의 추종자들의 행위를 다소 식인행위와 비슷하게 표현해 지나쳐 보이는 감이 없어보이진 않지만 애페맨터스의 우려는 정확했다. 이는 타이먼의 개인적 자원이 무한히 재생되지 못할 것을 암시하는 바인데, 자신의 환상 속에 빠져있는 타이먼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아이러닉한 상황을 연출한다. 타이먼의 재산을 그의 신체와 동일시하는 심리는 이후 타이먼이 빌린 돈을 갚으라고 찾아오는 그의 빚 독촉 인들에게 말하는 표현에서도 볼 수 있다. “청구서로 날 후려쳐 두 동강을 내 어라!..내 심장을 그 액수만큼 저며라...내 피로 갚으마.”(Knock me down with 'em: cleave me to the girdle.../Cut my heart in sums./Tell out my blood. 3.4. 88-90, 92)라고 하는 곳에서, 타이먼은 자신의 몸을 재산의 출처로 상상하는 가하면 그 몸을 재산으로 치환시키기도 한다. 칸은 애페맨터스가 했던 우려의 말이 타이먼이 어머니와 같은 자비심을 베풀던 첫 장면과 3막 4장 이후 타이먼이 형제와 같이 생각했던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장면 간에 연관성이 있음을 주장한다(40).
극에서 애페맨터스는 타이먼이 인식할 수 없고 볼 수 없었던 그의 상황에 대한 극적 아이러니를 언급하는 중요인물이다. 그 뿐 아니라 타이먼의 집사인 플레비어스(Flavious)도 “흥청망청 지내는 걸 그만두시지도 않으셔”(Nor cease his flow of riot: 2.2. 3)라며 타이먼을 걱정한다. 많은 청구서가 오는 것을 보다 못해 타이먼에게 “가산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부채는 밀물처럼 늘어나는데 이를 보다 못해 여쭙다가 그만 호되게 꾸지람만 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I did endure/Not seldom, nor no slight cheques, when I have/Prompted you in the ebb of your estate/ And your great flow of debts. 2.2. 139-42)라며 타이먼의 파산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이 이에 대해 많은 노력을 해왔음을 주인에게 전한다. 타이먼은 자신의 파국을 몰고 올만큼 자신의 박애주의를 행사해왔던 것이다. 집사가 무한한 재생의 환상에 처한 타이먼에게 현 상황을 주지시키려 노력하지만 타이먼은 뜻밖의 생각과 계획을 알리게 된다. “왜 그리 우는가? 자네는 판단력이 모자라는가? 내겐 친구들이 없는 줄로 생각하나?..이로써 친구들을 시험 할 수도 있다. 내 재산을 잘못 알고 있다는 걸 곧 깨닫게 될 걸, 내겐 친구라는 재산이 있다고...”(Why dost thou weep? Canst thou the conscience lack,/To think I shall lack friends?.../;for by these/Shall I try friends: you shall perceive how you/Mistake my fortunes; I am wealthy in my friends. 2.2.175-76, 183-85)라며 자신만만하게 친구들에 대한 믿음을 과시한다. 그의 표현대로 “친구란 재산”을 믿고선, 하인들에게 자신의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오라고 심부름을 보낸다. 윌리엄 오 스콧(William O. Scott)은 타이먼이 “자신이 베푼 어떤 선물에도 보답 받는 거 없이 베풀기만 하는 타자에 대한 그의 우월성을 보여준”(295) 탓으로 그가 파산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자비로움의 환상에 내재된 타이먼의 우월성은 누그러질 가능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하인들은 타이먼의 여러 친구의 집을 방문해 돈을 구해보고자 하지만, 거절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이방인의 표현을 보면 상황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알기에, 타이먼 공이란 분은 이 사람의 아버지 역할을 해준 분이고
그분 돈을 풀어 이 사람의 신용이 지켜졌고
그의 땅도 지키게 해주었소. 또 타이먼공의 돈으로
이 사람 하인들의 노임도 지불 되었소. 술을 마시는 것도
타이먼공의 은 술잔을 사용하는 거지요. 그런데-아, 은혜를 모르는 꼴로 나타날 때의 흉측한 모습의 인간을 보시오!-
My knowing, Timon has been this lord's father,
And kept his estate, nay, Timon's money
Has paid his men their wages: he ne'er drinks,
But Timon's silver treads upon his lip;
And yet-O, see the monstrousness of man
When he looks out in an ungrateful shape!- (3.2. 69-76)
상황을 지켜보던 이방인의 표현대로 타이먼의 도움요청을 거절하는“은혜를 모르는”인간들만이 존재했다. 친구의 자격으로 돈을 좀 빌리려고 했던 타이먼의 처음 의도와는 달리 결국 그들로부터 법적 계약서에 따라 빚 촉구를 받게 되자(3.4) 타이먼은 금전의 회계를 앞에서 언급했던 신체 분할(3.4)의 표현을 사용해가면서까지 자신의 분노를 표현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급기야 채권자들에게 한 번의 연회를 더 열겠노라며 그들을 초대하게 된다. 식사 전 그들에게 하는 타이먼의 감사의 기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크신 은혜를 내리시는 신들이여,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비처럼 뿌려 주소서...신들이 인간에게 빌리려고 하시면 인간은 신의 요구를 거절하니까요. 음식을 사랑하게 하시되 음식을 제공하는 자는 무시당하게 하소서. 사람이 스무 명 모이면 그 수만큼 악당이 모이는 것이요, 열두 명의 여인이 식탁에 앉으면 본성대로 열두 명의 여인이-창녀가 모인 것이오...
You great benefactors, sprinkle our society with thankfulness.... for, were your godheads to borrow of men, men would forsake the gods. Make the meat be beloved more than the man that gives it. Let no assembly of twenty be without a score of villains: if there sit twelve women at the table, let a dozen of them be -as they are.
(3.4.70-79)
타이먼은 형제와 같이 생각했던 친구들에 대한 배신감과 혐오감에 “창녀”의 이미지를 투사시키는 초기 심리현상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뜨거운 접시의 물을 퍼 붙고 돌을 사정없이 던지면서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아델만은 이를 두고 의도된 무대화의 만찬에서 타이먼이 무한한 양육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에 대한 원망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169). 어머니와 같은 자비로움의 환상을 유지하기 전까진 극에선 그 어떤 여성의 비난에 대한 표현도 없었지만 그 환상이 무너지자 그는 아테네의 성벽외각에서 세상으로 향한 저주를 내뱉는다. 특히 여성의 이미지를 “창녀”로 바꾸게 되는 본격적인 심리 메커니즘을 작용시킨다. “아내들은 화냥년이 되어라!..새파란 처녀들은 당장 창녀로 전락되어라!”(Matrons, turn incontinent!..To general filths/ Convert, o' th' instant, green virginity! 4.1. 3, 6-7)며 여성에 대한 언어적 공격을 사정없이 하게 된다. 아델만은 연회의 축하 차 방문했던 부인들을 제외하고선 이 극에 여성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4막 1장을 기점으로 해 특히 창녀화 된 여성의 얘기가 나온다고 주장한다(170).
마지막 연회 후 타이먼은 숲으로 들어간다. 리어왕이 알몸으로 황야로 들어간 것처럼(4.1.32-35). 타이먼이 숲에 들어 온 이후 여성에 대한 비난은 계속된다. 그의 분노는 저주의 성격을 띠면서 여성은 사회 부패의 근원이 되며 여성의 생식성은 오염된 세상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전락된다.
오 만물의 젖줄인 고마운 태양이여, 대지에서
썩은 습기를 빨아들여 그대 여동생인 달의 궤도보다 하게로 접근하여
이곳 대기에 질병을 뿌려라! 잉태에서 자라고,
사는 곳이 똑같은 쌍둥이 형제일지라도...
피붙이까지도 멸시하게 된다.
O blessed breeding sun, draw from the earth
Rotten humidity, below thy sister's orb
Infect the air! Twinned brothers of one womb
...................................... with several fortunes,
The greater scorns the lesser. (4.3.1-3, 6)
대지의 썩은 습기는 여성의 오염에 대한 은유이며 만물에 영양을 보급하는 태양이 이를 다 흡수해 세상에 뿌려라 함은 여성으로 인한 세상의 파괴를 함의한다. 태양에 의한 여성 오염은 남성 세계에 있는 쌍둥이 형제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칸의 분석에 따르면, 4막 3장의 3절에서 16절까지에서 “Fortune"(행운의 여신)을 환기시켜 줄 “fortune"단어가 3번이나 언급되었는데, 이는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전반부에서 높고 상쾌한 산봉우리에 앉아 있던 운명의 여신이 줄지어서 산을 오르고 있던 이들보다 앞서 오던 타이먼을 걷어차는 모습을 묘사한 시인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게 하는 극적 효과로 사용되고 있음을 설명한다(51). 변덕스런 운명의 여신은 모든 사회적 갈등의 원인 제공자이며 어머니와 같은 자비로움을 베푸는 데 대한 환상을 심어주지만 그것을 박탈하는 잔인한 면모도 보여주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에 타이먼은 “그러므로 교제도 잔치도 사람들의 모임도 구역질이 난다!”(Therefor be abhorred/ All feasts, societies and throngs of men ! 4.3.20-21)며 드디어 자기인식의 단계에 이른 듯 보인다.
아이러닉하게도 순간 “대지여 나에게 뿌리를 다오!”(4.3. 23)하며 땅을 파자, 모든 악의 근원의 뿌리인 금을 파내게 된다. 인간혐오의 감정은 여성혐오의 감정 특히 매춘부의 담론에 귀착한다. 그가 캐낸 금은 이 극의 후반부의 극적 동인으로 작용하는 플랫의 메커니즘으로서 뿐만 아니라 타이먼이 가지는 환상의 대상에 중심이 된다.
이건 도대체? 이것만 있으면
당신을 옆에서 모시는 신관과 신자들을 끌어올 수 있고
기력이 멀쩡한 자의 베개라도 빼낼 수 있습니다.
이 황금의 노예는
신앙의 종파를 이합집산케 하며, 저주받은 자를 축복하며,
문둥이를 숭배케하니, 도둑들을
출세시켜 지위를 주고
......................................................................
.....인간을 사주하여 나라끼리 분쟁을 일으키게
하는 인류의 매춘부여,
내 너의 본성을 발휘시키리라.
멀리서 진군의 소리.
Why, this
Will lug your priests and servants from your sides,
Pluck stout men’s pillows from below their heads.
This yellow slave
Will knit and break religions, bless th’accursed,
Make the hoar leprosy ador’d, place thieves,
And give them title, knee and approbation
.............................................Come, damn’d earth,
Thou common whore of mankind, that puts odds
Among the rout of nations, I will make thee
Do thy right nature. (4.3.31-45)
타이먼이 캐낸 금은 금이나 매춘 및 행운의 여신을 상호 교환 가능한 관계로 형성지우는 데 대한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다. 스티븐 레이드(Stephen A. Reid)도 금을 매춘과 연관 지웠으며(449), 바버와 휠러 또한 둘 간의 관계를 설명해 두었다(307-8). 타이먼이 금에 매춘부의 속성을 투사하는 동안 그는 아테네 원로원으로부터 추방당한 후 프라이니어(Phrynia)와 티맨드러(Timandra)를 동반해 숲으로 온 앨시바이어데스(Alcibiades)와 대면하게 된다.
타이먼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앨시바이어데스의 등장으로 타이먼의 매춘에 대한 발언은 더 강화되어 표현된다. 창녀의 이미지가 투사된 여성은 병을 옮기는 근원이 된다. 타이먼은 “병독을 품은 너의 창녀”(This fell whore of thine 4.3,63)라든가 “창녀로 있거라. 병독을 옮겨주어라”(Be a whore still. Give them diseases, 4.3. 85-88) 또는 프라이니어와 티맨드러가 그에게 금을 더 요구하자, “창녀다운 교태를 부려서 놈들을 유혹하여 병을 옮겨 주라”(Be strong in whore, allure him, burn him up; 4.3.143)며 금에 성병을 옮기는 여성의 역할을 투사한다. 더 나아가 유부녀와 처녀 모두에게 창녀의 이미지를 부여한다.
정숙한 탈을 쓴 귀부인들을 패대기쳐라.
정숙하다는 것은 그녀의 겉옷뿐이요,
그 내부는 창녀다. 처녀 같은 수줍음을 탄다
해서 날카로운 칼끝을 무디게 하지 말라.
가슴의 창틀 사이로 남자의 눈을 흘리는
젖꼭지는 확실히
무서운 배신자이다.
Strike me the counterfeit matron:
It is her habit only that is honest,
herself's a bawd. Let not the virgin's cheek
Make soft thy trenchant sword; for those milk-paps,
That through the window-bars bore at men's eyes,
Are not within the leaf of pity writ,
But set them down horrible traitors. (4.3.114-20)
“가슴의 창틀“이란 바로 매춘 호객 행위를 위해 여성들이 창틀에 가슴을 대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젖꼭지”는 남성들에 대한 배신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이 메타포는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이 젖을 빠는 아이의 머리통을 박살낸다고 하는 곳(1.7.57-8)에서도 확인되듯이, 셰익스피어 극에서 젖의 이미지는 남성들로 하여금 어머니로부터의 배신을 상상케 하는 의미에 적용된다.
여성의 창녀성에 대한 담론은 마침내 극에 달해 종말론적인 담론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프라이니어와 티맨드러가 금을 더 준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고 타이먼에게 공언을 하자,
매독의 씨를 뿌려
인간의 뼈를 녹여라. 사나이들의 말라빠진 정강이가
문드러져 박차도 못 쓰게 하라. 변호사의 목을 부숴
부정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억지 수작을
부리느라 소동부리지 말게 하라. 정욕을 비난하면서도
스스로 그걸 믿지도 않는 신관들을 성병으로 썩게 하라.
콧대를 꺾고 코를 납작하게 하라,
국민의 행복보다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의 콧대를 비틀어 뜯는 거다.
곱슬머리 악당들을 대머리로 만들라.
전쟁터에서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자가
전쟁에 갔다고 허풍떠는 놈들은 너희로 인해 고통을 받게 하라.
모든 인간들에게 달라붙어서
정욕이 사그라질 때까지 근본을 다 빼버려라. 금화를 더 주겠다.
Consumptions sow
In hollow bones of man; strike their sharp shines,
And mar men's spurring. Crack the lawyer's voice,
That he may never more false title plead,
Nor sound his quillets shrilly. Hoar the flamen,
That scolds against the quality of flesh,
And not believes himself. Down with the nose,
Down with it flat, take the bridge quite away
Of him that, his particular to foresee,
Smells from the general weal. Make curl'd-pate ruffians bald,
And let the unscarr'd braggarts of the war
Derive some pain from you. Plague all,
That your activity may defeat and quell
The source of all erection. There's more gold. (4.3.153-66)
타이먼은 금으로 오염된 사회를 종말 시키기 위해 금을 매춘부로 치환시킨다. 금과 동일시된 매춘은 “변호사”나 “허풍쟁이”에서부터 “모든 인간들”에 이르기까지 적용되어 고통을 주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한다. 타이먼의 환상에서 성적 혐오의 담론은 금이나 금이 타락시키는 사회에서부터 타락의 근원인 여성의 신체에 이르기까지의 궤적을 보여준다.
아비 얼리취(Avi Erlich)가 타이먼의 상태를 환각의 상태(224)로 표현했듯이, 그의 정신에서 저주스런 대지는 금을 배양하고 이 금은 매춘을 양성하고 매춘은 매독을 퍼뜨리게 되는 고리현상을 이룬다. 이는 타이먼이 캐낸 금을 향해 “인류의 매춘부여, 내 너의 본성을 발휘시키리라”하던 저주가 시행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타이먼은 허기를 느껴 풀뿌리를 캐기 위해 다시 땅을 판다.
하지만 이 때, 잠시 대지는 타이먼에 의해 어머니의 이미지로 투사된다.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여,(땅을 판다) 그대는
무궁무진한 자궁에서 삼라만상을 내놓아 광활한 가슴으로
그것을 길러낸다. 그 기운으로
거만한 자식이, 오만한 인간이 부풀어 나며,
검은 두꺼비, 푸른 독사,
금색 도룡뇽, 눈이 없고 독기 서린 도마뱀,
태양신 하이페리온의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 아래
온갖 흉물스러운 생물들을 태어나게 하는 구나.
그대가 낳은 모든 인간을 증오하는 나에게
그대의 풍만한 가슴에서 보잘것없는 풀뿌리 하나 다오!
풍성하고 끊임없이 잉태하는 자궁을 마르게 하여;
배은망덕한 인간은 한 명도 낳지 말라!
Common mother-thou-
Whose womb unmeasurable and infinite breast
Teems and feeds all, whose selfsame mettle
Whereof thy proud child, arrogant man, is puffed,
Engenders the black toad and adder blue,
The glided newt and eyeless venomed worm,
With all th'abhorred births below crisp heaven
Whereon Hyperion's quickening fire doth shine-
Yield him who all the human sons do hate
From forth thy plenteous bosom one poor root.
Ensear thy fertile and conceptious womb,
Let it no more bring out ungrateful man. (4.3.176-187)
자기-생성의 심리 메커니즘으로 남성적 풍요로움을 즐겼던 타이먼은 이제 대지의 어머니의 “풍만한 가슴”을 의존해 그녀로부터 오직 풀뿌리 하나만을 갈구하게 된다. 자기만족의 화려했던 연회는 더 이상 부활하지 못하고 재생의 가능성도 없으며 어머니의 이미지로 투사된 대지는 출산의 가능성도 봉쇄당한다. 자신의 자비로움이 완전히 박탈당하자 대지의 어머니에게서 다산의 능력을 박탈하게 된다. “인류의 매춘부”라 부르짖던 금의 발견은 결국 어머니의 육체의 타락에까지 이른다.
시인이 예견했던 대로 초반에 행운의 여신의 은총을 누리다 그녀의 변덕을 경험하게 되었던 타이먼은 자신에게서 더 이상 무한한 자산이 나오지 않음을 알게 되자 곧 여성의 다산을 혐오하게 된다. 어머니의 다산 능력은 곧 자신의 가난함의 징표가 된다. 타이먼은 풀뿌리를 찾고 있지만 결국 그녀의 “온갖 흉물들 중” 하나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Kahn 173). 이는 모든 남성들의 배반은 어머니의 불신 탓으로 돌려지기 때문이다.
대지의 어머니에 대한 타이먼의 이러한 저주는 잠시 자신에게 은총을 준 행운의 여신에 대한 발언으로 옮겨진다. 숲으로 찾아온 애페맨터스가 숲에서 “자신의 오만을 매질하기 위해 거지꼴로 흉물을 떤다”(Thou'dst courtier be again,/Wert thou not beggar. 4.3.240-241)며 타이먼을 비난하자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나온 이야기이다. 애페맨터스의 신랄한 비난에 타이먼은 “너는 운명의 여신의 부드러운 팔에 안기어 귀여움을 받아 보지 못한 개처럼 자란 상것이야”(Thou art a slave whom fortune's tender arm/ With favour never clasped, but bred a dog.4.3.249-50)라며 자신이 지금껏 누린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잠시 무의식적으로 과시하게 된다. 그리곤 “이 세상을 과자점으로 생각했다”(Who had the world as my confectionary, 3.4.259)라며 자책의 말을 한 후, 다시 어머니를 모욕하는 말을 내뱉는다. “너 같은 시러베자식을 마구잡이로 만들어냈다”(compounded thee/ Poor rogue hereditary. 4.3. 272-73)며 애페맨터스의 출생에 어머니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투사시킨다. 애페먼터스를 향한 분노는 자신을 이 세계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자, 타이먼, 곧 너의 무덤을 준비하라.
매일 바다의 작은 파도가 몰려와
묘비를 씻겨 주는 곳에 누우리라.
Then, Timon, presently prepare thy grave:
Lie where the light foam of the sea may beat
Thy gravestone daily; (4.3. 373-75)
칸은 “파도”와 “묘비”를 대비시켜, 타이먼이 자아를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며 퇴행의 대상관계 발전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의 상태에 집중하고 있음을 설명한다(55).
숲으로 찾아온 모든 인물들에게 타이먼의 금-여성 혐오-여성의 창녀성-매춘-인류 멸망이라는 나르시시즘적인 고리는 여지없이 투사된다. 애페맨터스 다음으로 타이먼이 금을 나눠준다는 소문을 듣고 숲으로 들어 온 산적들 있다. 산적들에게 세상의 “모든 게 다 도둑”(Each thing's thief. 4.3.437)이라며 도둑질을 더 종용하는 시니컬한 행동을 보인다. 숲으로 주인을 찾아온 신복인 플레비어스에겐, “인간을 증오하고 저주하라, 누구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말라”(Hate all, curse all, show charity to none, 4.3.521)는 인간 혐오의 말을 남긴다. 레이드는 타이먼의 인간 혐오 행위를 그의 나르시시즘으로부터 나온 심리적 현상으로 해석했다(442-52). 4막 3장 마지막에서 주인을 다시 모시겠다는 플레비어스에게 “네가 축복을 받고 자유로울 때 떠나거라. 다시는 인간을 보지 말고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말라.”(Ne'er see thou man, and let me ne'er see thee. 4.3.531)는 말을 하고선 동굴로 들어가 버린다. 독자나 관객은 5막 4장에서 숲속으로 타이먼을 찾으러 온 한 병사가 발견한 그의 묘비의 문구, “타이먼이 잠들다. 본의 아니게 천수를 다하고도 남게 살았노라. 짐승이 이 글을 읽을 것이다.”(Timon is dead, who hath outstretched his span,/Some beast read this, there does not live a man. 5.4.3-4)를 통해 그가 죽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3. 결론
지금까지 본고에서는 『아테네의 타이먼』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나타난 극의 확연한 차이를 정신분석으로 설명해 보았다. 특히 남성 주체형성에 근간을 둔 어머니와의 일체감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기만적인 남성 세계로의 진입에 관한 핵심 환상을 전제로 해 타이먼의 인간 혐오나 여성 혐오에 대한 심리 기제를 설명했다. 남성적 경쟁의 세계로 나아가기위해 어머니로부터의 모진 배신감을 경험함으로써 분리 감정을 경험했던 비극의 맥베스와 코리올레이너스와 마찬가지로 타이먼은 극 중의 “행운의 여신”의 “변덕”을 경험함으로써 혹독한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시인이 타이먼의 자비로운 행위를 상상하는 설명에서 타이먼은 행운의 여신을 의존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투사되며, 이러한 행운의 여신인 풍요로운 어머니와의 일체감도 느끼기는 가하면, 자신의 신체를 무한한 영양의 출처로 위치지우는 환상을 지니기도 한다. 한편으론 스스로 양육의 특성이 있는 여성의 신체의 소유자임을 무의식적으로 강조하지만 타자의 존재는 부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러한 행동에 대한 애페맨터스의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타이먼은 계속 자기만족의 환상에 빠져 결국 개인적 자원이 무한히 재생되지 못할 파산의 경지에 이른다. 시인의 표현대로 “행운의 여신의 변덕”을 받아 파산을 경험하고 친구들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자, 그는 성벽외각으로 들어가 버린다.
타이먼의 정신에서 어머니와 같은 자비로움의 환상이 유지되기 전까진 여성의 비난에 대한 표현이 극에서 보이지 않지만 그 환상이 무너지자 그는 세상으로 향한 저주를 내뱉으며 여성의 이미지를 “창녀”로 치환시키는 심리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타이먼의 정신세계에서 여성은 사회 부패의 근원이며 여성의 생식성은 오염된 세상을 파괴하는 수단이다. 특히 타이먼이 캐낸 금은 매춘의 이미지가 투사되며, 금이나 매춘 그리고 행운의 여신을 무의식적으로 서로 교환 가능하도록 작동시키는 심리기제에 대한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뿐 아니라, 타이먼의 환상을 통해 독자나 관객은 금이 타락시키는 사회에서부터 타락의 근원인 여성의 신체에 이르기까지의 성적 혐오 담론을 보게 되며, 어머니의 육체 타락에 대한 메타포에까지 이르게 됨을 알게 된다. 결론적으로 셰익스피어는 타이먼의 과도한 지출과 친구들에 대한 지나친 호혜로 인한 그의 멸망을 단순히 재현하려한 것이 아니라 결국 어머니로부터의 분리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채 그녀와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된 타이먼의 실패한 가부장적 남성정체성 확립을 재현해두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혹독한 남성의 세계로의 진입에 실패한 타이먼의 정신세계에는 더 이상의 풍요는 없으며 결핍만 있게 되고 이와 함께 여성에 대한 비난만 무성하게 남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이러한 타이먼의 실패한 정체성을 극의 이중적 구조(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 차이)기법을 사용해 심리적으로 극화한 점은 이 극이 현대적 의의를 띠고 있음을 시사한다.
< 이어지는 강의 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