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고전독서-시카고플랜] 9.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대제국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아테네 대중들이 초래한 참사로 해석한다. 그 혼란의 와중에 성장기를 보낸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실망한 나머지 정치에는 다소 관심을 놓아 버린 청년이었다. 게다가 소크라테스마저 민주주의가 건넨 독배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플라톤은 방랑의 길에 오른다. 이 시기에 쓰여진 그의 초기 저서들 중에 《국가》 1권이 있었다.
《국가》는 시민 전체가 최대한으로 행복할 수 있는 나라의 성립조건을 논하고, 이런 나라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철인(哲人)왕'으로 제시하고 있다. 철인은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자이며, 앎과 권력의 결합을 시도하는 자이다. 플라톤이 이상 국가의 초석을 다질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학원이 '아카데미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7살에 아카데미아에 입학하여 20년 동안 이곳에서 공부했다. 플라톤이 세상을 떠나자 그도 이곳을 떠나는데, 플라톤이 끝내 아리스토텔레스를 후임 원장으로 임명하지 않았던 일을 이유로 드는 역사가들도 있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라는 그들의 성향 차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왕이 철학자가 되는 것은 필요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 오히려 왕은 참된 철학자들의 충언을 들어야 한다.
플라톤이 '철학자 왕'이 통치하는 모델을 이상으로 제시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에 다양한 국민과 국가가 있기에 어떤 통치 방식이 가장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현실에 존재하는 정치체제들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플라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그 저서가 서구 정치학의 초석을 다진 《정치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국가는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공동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영역인 만큼, 결국 가장 좋은 경우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모든 공동체는 어떤 선(善)을 실현하기 위해 구성된다. 무릇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선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실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국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모여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정치학》은 당대 그리스 사회의 시민 계급에게 '가장 좋은 정체(政體)'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1차적 정치 집단은 가정이다. 가정은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관계로 형성된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노예는 재산의 일부였으며, 이를 어떠한 불합리도 없는 자연의 섭리로 간주한다.
어떤 사람은 지배하고 어떤 사람은 지배받아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이며 유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것은 날 때부터 지배받고 어떤 것은 지배받도록 구분되는 것들도 더러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하는 노예는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들과 천성적으로 노동에 알맞은 몸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해당된다.
비(非)헬라스인들 사이에서는 여자와 노예의 지위가 같은데, 비헬라스인들에게는 천성적으로 치자(治)의 요소가 없어 그들의 공동체는 여자 노예와 남자 노예의 결합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헬라스인들이 비헬라스인들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몸을 사용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되 그럴 경우 최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인간들은 모두 본성적으로 노예이며, 이들은 모두 앞서 말한 원칙에 따라 주인의 지배를 받는 편이 더 낫다.
오늘날의 상식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이지만,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이민 천재도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플라톤을 극복했을망정 그 시대의 패러다임은 극복하지 못했던 경우이다. 노예와 시민을 태생적으로 분리해서 바라보는 이런 시각은 정복 전쟁의 정당성을 피력하는 명분이기도 했다. 우월과 열등은 자연이 정한 것이기 때문에, 우월한 종족이 그보다 못한 종족을 지배하는 현상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자연은 어떤 것도 불완전하거나 쓸데없이 만들지 않는다면, 자연이 이 모든 것을 만든 것은 인간을 위해서라고 추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사냥은 재산 획득 기술의 일부인 만큼, 어떤 의미에서 전쟁 기술은 본성적으로 재산 획득 기술의 하나이며, 이런 기술은 들짐승은 물론이요 지배받도록 태어났음에도 이를 거부하는 인간들에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의 다른 저작에서 자주 보이듯 《정치학》에서도 플라톤에 대한 비판이 빠지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국가를 과도하게 통일적인 체계로 만들어 버린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원칙적으로 국가의 시스템이 구성원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공공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으나, 플라톤이 철인의 전제정치를 이상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개개인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경우가 보다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국가가 훌륭해지는 것은 행운의 소산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훌륭한 국가가 되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훌륭해야 한다. ·우리의 시민들은 모두 국정에 참여한다. 시민 각자가 훌륭하지 않아도 시민 전체가 훌륭할 수 있겠지만, 시민 각자가 훌륭한 것이 더 바람직하다. 각자가 훌륭하면 전체도 훌륭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은 교육을 다루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리케이온'의 교사이기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였기에,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교육은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야 할 정치의 일환이었다. 물론 노예를 제외한 시민에 한정된 교육을 일컫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유용한 것이라고 해서 다 배워서는 안 되고, 덕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것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나친 교육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여가를 빼앗고, 그런 닦달과 시달림이 되레 생각을 비속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이유. 같은 맥락에서, 높은 교육수준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비속해져만 가는 오늘날의 풍토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는 꼭 배워야 할 교육 내용으로 '읽기와 쓰기', '체육', '음악', '그리기'를 뽑았는데, '그리기'에 대해서는 '항상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를 달았다. '읽기와 쓰기'는 일상생활에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서 가르쳐야 하고, 체육은 용기를 길러 주기에 가르치며, 음악은 여가를 활용할 때 해롭지 않은 즐거움의 목표를 달성해 주는 기능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단테의 《신곡》<지옥편>을 보면, 고결하고 훌륭한 삶을 살았지만 끝내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장면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 시대 철인들이 다수 등장한다. 단테는 이들 중 단 한 영혼에게만큼은 '성현들의 스승께서 철학자들 사이에앉아 계심을 보았노라'며 더없는 존경심을 표하는데, 그 존경의 대상이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단테의 헌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물론 단테당대의 기준이겠지만, 서양사상사에서 학문의 정수로 꼽혔던 제1의 지위가 아리스토텔레스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은 저편의 세계에 몰두했던 스승 플라톤과 달리 지상의 것들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의탐구는 당대의 지평으로 인식할 수 있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으며,이것이 그대로 서양 학문분과의 근간이 되었다.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작을 꼽으라 한다면,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으로 그 대답을 대신할 수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플라톤의 손에는 《티마이오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에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들려 있다. 난해한 부분이 적지 않아 끝까지 독파하기가 꽤나 힘든 다른 저서들에 비해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현대의 독자들이 비교적 무리 없이 완독할 수 있는 고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열거한 수신(修身)의 덕목들은 플라톤과 같은 이상적 도덕은 아니다. 이는 그의 현실주의적 성향을 반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적절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자연스레 실천할 수 있는 도덕의 원칙들, 그것들을 통해 각자의 자족적인 삶을 실현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주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신적 존재의 도움에 기대지 않고서도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현실적 존재라는 확신을 가졌다. 인간을 원죄(原罪)의 굴레에 가두고 인간을 신에게로 한계 짓는 중세 기독교 사상에서는 빗겨 서 있는 이해 방식이었다. 때문에 교부철학의 시대에는 금서의 멍에를 지고 있어야 했으나, 훗날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의 기반으로 거듭나게 된다. 교부의 시대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의 철학은 이슬람문화권으로 넘어가 발전을 거듭하고, 르네상스 시기에 유럽으로 되레 역수입이 되어 스콜라철학의 근간이 된다. 수도원을 모태로 하는 대학 개념이 이때 생겨난다.
학창시절의 역사 시간에 배운 지식을 상기해 보자. 로마제국은 점점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어 갔다. 기독교의 담론 역시 무턱대고 믿으라는 신앙적 요구보다는 논리적 뒷받침을 위해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일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상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상과 지상을 설명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구성이었다. 니체가 대중화된 플라톤주의라고 표현했을 만큼, 플라톤의 사상은 기독교와 합이잘 맞아 돌아갔으며, 기독교 공인에 참여했던 신학자들도 거의 다 플라톤주의자들이었다.
플라톤주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은, 이데아라는 개념이너무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기만 하며 인간의 실천적인 노력으로 실현하거나 획득할 수 있는 실재적 성격이 아니라는 요지이다. 그것은 결코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좋음'으로 볼 수 없다는 것.
우리 벗들이 이데아 이론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정든 것들이라도 버리는 쪽이 더 나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일 것이다. 특히 우리가 철학자인 경우에는 우리에게는 둘 다 소중하지만 친구보다는 진리를 선호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사물 자체'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리송하다.… 보편적으로 좋음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하나의 좋음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분명 인간이 실현하거나 획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런 좋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좋음'이란 구체화된 현상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정치학을 윤리학의 상위범주로 두고 정치의 중요성을 강변한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엔 다 같이 잘 살고자 하는 노력의 결정체이지 않은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안에서 잘 살기 위한 행위는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느냐가 관건이다. 때문에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윤리학뿐만이 아니라 정치학의 전형이기도 하다.
좋음을 아는 것은 가장 주도적이며 가장 권위 있는 학문의 관심사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치학이 바로 그런 학문인 것 같다. 정치학은 다른 모든 학문을 이용할뿐더러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정하는 만큼, 정치학의 목적은 다른 학문들의 목적을 포괄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치학은 인간을 위한 좋음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좋음과 개인의 좋음이 같은 것이라 해도, 국가의 좋음을 실현하고 보전하는 일이 분명 더 중요하고 더 궁극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