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시어지(concierge). 영한사전은 컨시어지를 ‘(호텔 따위의) 접객 관리인’로 건조하게 정의한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컨시어지협회 총회’에 모인 특급 호텔 컨시어지들은 열정이 넘쳤다. 그리고 “법적, 도의적으로 문제가 않는 범위에서 고객을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자신들의 역할을 설명했다. 컨시어지의 상징인 황금열쇠를 재킷 라펠에 꽂은 남정희(44·그랜드인터컨티넨탈), 황정희(32·웨스틴조선), 김준우(29·메리어트), 김주연(27·그랜드하얏트)씨에게 컨시어지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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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에게 길을 안내하는 컨시어지' 상황을 연출한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컨시어지 남정희씨(왼쪽)와 홍콩 콘래드(Conrad)호텔
수석 컨시어지 크리스천 서스만씨.
- 컨시어지의 유래는.
“중세시대 성(城)의 초를 관리한 ‘촛불관리자’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comte des cierges’에서 유래했다. 19세기 유럽 호텔산업이 발달하면서 고객을 맞고 객실 열쇠를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한 컨시어지는 이제 고객 서비스를 총괄하는 집사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 ‘고객을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도와준다’는데.
“이태원에 쇼핑하러 가고 싶다는 외국 손님에게는 호텔~이태원 교통편의 종류와 차이를 설명해주고 가게를 추천하고, 어느 식당에 가면 적당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안내하는 식이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 컨시어지가 나온다. 드레스를 사러 로데오 거리로 간 ‘콜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이 점원에게 모욕적 대접을 받고 쫓겨나오자 그녀가 머물던 호텔 컨시어지 톰슨(헥터 엘리존도)이 나선다. 알고 지내던 부티크 매니저에게 비비안을 데려가 어울리는 옷을 사도록 돕고, 테이블 매너를 가르쳐준다.”
- 손님이 ‘법적, 도의적으로 문제가 않는 범위’를 넘어선 요구를 해온다면.
“컨시어지들의 좌우명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never say ‘no’)이다. 대신 돌려서 완곡하게 말씀 드린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늦은 밤 ‘여자’를 불러달라거나, 퇴폐 안마시술소를 알려달라는 손님이 있다. 이런 경우 ‘한국에서는 성매매가 불법이다’ ‘나중에 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고 답한다.”
- 외국 손님들의 국적별 특성은.
“일본 손님은 쇼핑을 즐긴다. ‘욘사마(배용준)가 자주 간다는 식당을 알려달라’는 중년 여성들이 많다. 관광은 고궁이나 시티투어를 주로 한다. 미국 손님은 거의 대부분 판문점이나 비무장지대(DMZ)에 간다. 중국 손님들은 문의가 별로 없다. 아직 컨시어지를 포함, 호텔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에 익숙하지 않는 것 같다.”
- 특이한 요구는 없나.
“객실 내 소파를 구입하고 싶다는 손님이 있었다. 제조업체를 알려 드렸다. 재킷을 염색하고 싶다고 하셔서 종로5가에서 있는 염색공장을 찾아냈다. 자기 회사의 직원 채용시험 감독을 해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배용준이 커버모델로 등장한 의류업체 포스터를 구해달라는 일본 손님이 있었다. 옛날에 나왔던 포스터라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의류업체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포스터를 구해 손님께 전해 드렸다.”
- 각종 정보를 어떻게 다 구하나.
“신문, 인터넷, 잡지를 꼼꼼히 본다. 괜찮은 레스토랑은 여러 호텔 컨시어지들이 함께 가보고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한다. 서비스와 화장실이 중요 체크 항목이다. 레스토랑까지 가는 길을 직접 그려 지도를 만든다. 이 정도는 해야 자신 있게 안내할 수 있다.”
- 세계 각국 VIP들을 만족시키는 비법이 있나.
“VIP들은 자신을 알아봐 주길 원한다.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고 느끼고 싶어하는 것. VIP가 올 때는 호텔 내 모든 부서에서 VIP에 대한 정보를 돌려 보고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때 컨시어지는 모든 서비스를 총괄하는 선두에 선다.”
“VIP가 외부 레스토랑으로 갈 때는 미리 전화해 좋은 자리를 달라고 하고, 좋아하는 메뉴를 알려준다. 또 원하는 레스토랑에 자리가 없다면 매니저에게 부탁해 특별석을 만들어 달라 하기도 한다. 그러려면 매니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컨시어지는 인맥이 중요하다.”
- 기억에 남는 VIP가 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팬으로부터 팔찌를 선물 받았다. 함께 왔던 브리트니의 언니가 똑같은 팔찌를 갖고 싶어했다. 남대문, 동대문 등을 수소문해 똑같은 팔찌를 만들어 브리트니 일행이 한국을 떠나기 직전 전해줬다.”
‘한국컨시어지협회’ 총회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온 앤디 퐁코 ‘국제컨시어지협회’ 부회장과 싱가포르 풀러튼(Fullerton)호텔 수석 컨시어지 그레고리 탠, 홍콩 콘래드(Conrad)호텔 수석 컨시어지 크리스천 서스만씨도 참석했다. 모두 2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이다.
특히 서스만씨는 ‘세계 최고’라 인정 받는 홍콩 페닌슐라호텔 등에서 35년째 컨시어지로 일해왔다. 그에게는 ‘콘래드 호텔에 묵는 한국인 VIP들을 어떻게 모시는지’ 물었다.
“한국 정·재계 VIP들은 수행원이 많다. 수행원들이 한국어 신문까지 세세하게 챙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VIP들을 위해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 기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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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시어지 100% 활용법
컨시어지 업무는 ‘호텔 투숙객이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 제공하기’로 요약된다. 우리나라에는 특1급 호텔에는 모두 있고, 외국의 경우 별 다섯 개 호텔 정도면 특급 서비스를 제공한다.
짐 들어주기와 신문 제공은 기본 중 기본. 관광, 레스토랑, 항공권, 렌터카, 리무진, 호텔차량 무료 서비스, 각종 문화공연행사 안내와 예약을 컨시어지에게 부탁하면 가장 빠르고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백화점에서 산 물건을 교환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이런 부탁도 해결해 줄 정도.
웨스틴조선호텔 컨시어지 황정희씨는 “지난해 중국 비자 발급, 북한산 등산코스, 질좋은 인삼 파는 가게, 한국인이 카리브해 연안국가 여행시 비자 필요 여부, 다이빙 가능한 수영장을 알고 싶다는 손님들이 있었고 모두 해결해드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호텔에서는 돈을 받지 않으며(고객이 주더라도 돌려준다), 외국에서는 ‘눈치껏’ 팁을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