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글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절 고 장준하와 함께 박 대통령의 정책
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저주를 퍼붓던 백기완의 때늦은 참회록이다. 나는
이따금 소위 '민주화 투쟁'의 정신적 지주인 두 사람이 좀더 긴 안목으로 대
한민국과 3천만 국민의 장래를 내다보고 박 대통령의 국가발전정책에 긍정적
인 조언을 하는 협력자 역할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젖곤 한다. 민주화 투
쟁이라는 미명하에 국민의 눈을 속여 집권한 뒤 제 패거리들의 잇속 차리기
에 혈안이 되어 국가 발전을 가로막았던 김영삼 김대중이를 생각하면 허패가
뒤집어진다. 노무현이는 평가할 가치도 없어 독수리 두 형제를 아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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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유신을 일부 사람들은 유신독재라 부른다. 과연 그런가? 그 시
대는 세계적으로 어떤 시기였는가? 당시 민주주의 역사가 300년인 영국도 자
치구인 북아일랜드인들에게는 연방선거권을 주지 않고 구속할 때 재판받을 권
리를 가질 수 없도록 악법을 제정했다. 1972년의 '피의 일요일사건'은 바로
이 불평등법안 통과에 저항하여 평화롭게 행진하는 시위대를 영국군들이 무차
별 학살했던 날이다. 민주주의의 모범국가인 미국에서는 반민주적, 반인류적
인 '인종차별법'이 버젓이 통과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제대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나라가 있었던가? 대만은
장개석이 국민당정부에 저항하는 대만인 3만여명을 무차별 학살했다. 김대중
노무현이가 신주처럼 우르러 모시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정치적 반대
자들을 100만명 이상 학살했다. 입만 열면 '박정희 독재'를 외치는 김대중 노
무현은 대만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많이 허물었는데도 대만 곳곳
에는 장개석 동상이 수백 개나 서 있다. 박정희가 18년 재임 중 단 한 번이라
도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 한 적이 있던가? 유신을 마치 대한민국의 나치정권
처럼 폄훼하는 자들이라면 장개석이 수만 명의 대만인들을 학살한 '2.28 사
건' 정도는 알고 떠들어야 한다.
박정희 유신시절 전세계 어느 나라도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
라는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오늘날 굶어죽는 쥐새기
보다 많던 시절이었다. 박정희 이전까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꿈이라도 꾸었
던 정치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박정희 집권시절 김일성이 남한에 무장테러를 일으킨 사건만도 600건이 넘
는다. 철책선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목 없는 병사들의 시체가 나딩굴고 있었
다. 밖으로는 공산주의와 싸우며 나라를 지켜내야 했고, 안으로는 민주주의
와 인권으로 포장한 당신들과 같은 인간들이 저지르는 국가적 혼란 속에서 국
력을 극대화시켜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불철주야 노력했다. 힘이 없어 나라
를 빼앗겼던 식민지시절의 뼈아픈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절치부심 강
국 건설에 주력했던 박정희의 차거운 가슴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더냐?
1960년대 초 대한민국은 일년 예산의 80% 를 미국의 원조에 의존했고 춘궁
기만 되면 굶어 죽는 사람이 동네마다 수두룩했지만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았
다. 어딜 가나 영양실조로 얼굴에 마른버짐 핀 얼굴들이 가득했다. 1990년대
우리나라와 함께 아시아 4龍이라 불린 싱가포르, 대만, 홍콩의 1인당 GNP가
400~500불, 북한과 태국이 150불일 때, 남한은 고작 76불이었다.
박정희는 집권하자마자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하면 된다'를 외치면서 자
본, 자원, 기술 어느것 하나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개발계획을 성
공적으로 추진하여 재임 중에 이미 나머지 3龍들과 어깨를 견줄만큼 비약적
인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는 깜짝 놀라 경탄하면서 대한민국을 주시하기 시작
했던 것이다. 그 때가 바로 그대들이 거품 물고 박정희 타도를 외치던 유신시
절이었다. 세계인들이 '한강의 기적'이라며 찬사를 보낼 때, 당신들은 경제발
전은 외면한 채 소위 민주화 투쟁에만 매달렸다.
박정희는 '다른 나라에 우리의 안보를 맡길 수만은 없다.'며 자주국방의 기
치를 내걸고 총탄 한 알 만들지 못하던 상황에서 방위산업을 육성하여 탱크
와 미사일을 비롯한 수많은 국산장비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가발 만들고 와이
셔츠 만들고 쉐타 만들던 경공업시대에서 지금껏 한국인이 먹고 살아갈 수 있
는 중화학공업체계로 바꿔놓고 있었다. 이 때가 바로 '국력의 조직화'를 꾀
한 유신시절이었다.
베트남이 패망하자 김일성의 오판이 우려되어 전전긍긍하고 있던 1979년,
미국은 방위정책을 변경하여 주한미군 2만 명을 철수시키고자 했다. 이에 박
정희는 방한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에게 언성을 높이면서, '당신들이 철수
하면 우리는 핵으로 무장하여 스스로 나라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욕하는 유신독재의 참모습이었다. 온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오로지 선진조국을 만들고자 했던 10월유신이었다.
1979년 박정희 死후 미국 CIA보고서는 박정희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
다. '독단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반면 카리스마와 서민적 이미지를 함께 갖춘
인물이었다. 직관력과 통찰력을 겸비하면서 추진력이 강한 인물이었다. 남한
의 실질적 발전은 순전히 그로 인해 비롯되었다.(중략) 그의 일반적 생활은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청렴하기 그지없었다.'
박정희 사후 민주화를 외치던 자들이 집권하여 그들만의 잔치판을 벌이며
희희낙락대고 있을 때, 우리는 안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12년째 GNP
가 1만불 선에서 바둥거리는 사이 나머지 3龍이던 싱가포르의 GNP는 3만 2천
불, 홍콩은 2만 2천불, 대만은 1만 9천불로 멀리멀리 달아나고 있다. 대한민
국을 배우겠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날아와 머리를 조아리던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등도 어느새 성큼 다가와 우리의 목덜미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 중이다. 한국을 배우자며 전 공무원들에게 하루 한 시간씩 박정희교육
을 시키던 중국이 이제는 '한국이 어떻게 망했는가를 배워라'며 인민들에게
학습하고 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박정희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묻는다. 유신독재를
비난하기 전에 유신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왜 무너지고 있는지 답하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왜 유독 우리나라만 거꾸로 곤두
박질치고 있는지 답하라. 세계사를 통틀어 18년간 집권하며 국부를 20배 이
상 불려놓은 정치가가 한 명이라도 있었는지 답하라. 그런 정치인이 시저더
냐 나폴레옹이더냐 너희들의 대부 김대중이 그리 존경하는 모택동이더냐? 전
세계를 통틀어 이러한 위대한 영도자를 부관참시하는 나라가 있는지도 분명
답해야 한다.
민주화 투쟁으로 과대포장된 정권이 들어선지 10년, 당신들은 국가 발전에
대한 비젼도 없으면서 '준비된 대통령'이라 국민을 속이고 '민주주의의 화
신' 이란 교언(狡言)으로 미혹하고 '행동하는 양심'이라며 예수님보다 더
한 '선한 양'으로 행세해왔다. '대중경제론'이란 싸구려 만화같은 이론을 마
구 흔들면서 조국 근대화를 앞장서 이끌었던 경제석학들을 조롱하고 신처럼
군림하면서 온 국민에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도덕군자인 양 행세해왔다.
김대업이란 사기꾼을 앞세워 젊은이들에게 사기쳐서 정권을 훔쳤으면서도
지금까지 국민을 기만하고 한숨짓게 한다. 정권을 훔친 뻔뻔함을 바탕으로 본
성 자체가 선한 국민들을 현란한 수사로 미혹하고 선동하여 억울하게 죽은 박
정희를 부관참시하고 있다. 삼천만 명의 인민을 학살한 모택동은 존경한다면
서 제 민족의 영웅 박정희는 부관참시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독재자'라며 역
사의 심판을 받으라고 목에 핏대 세우고 친일의 개념조차 모르면서 없던 사실
도 흑색선전으로 호도하여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박정희 묘소를 파내라 외치
고 있는 것이다.
정작 파내야 할 것은 국헌을 유린하고 국민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노무현
정권이다. 정작 역사의 심판을 받을 자는 반인륜적, 반민족적인 김정일에게 5
억불을 갖다 바쳐 대한민국의 심장을 겨누는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도운 김대
중이다. 만약 그대들이 진심으로 나라를 위하는 일말의 애국심과 열정이라도
있다면, 고뇌와 회한에 찬 내 말에 양심의 귀를 기울여라.
"박정희는 우리 같은 사람 3만명을 못살게 했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3천만 국민을 못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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