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디너(Easter dinner)
부활절 주일이지만, Covid-19 때문에 모든 상황이 예전과 다르다. 오후 2시쯤시내에 사는 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동생은 4-5시 사이에 가져오겠다고 했다. 신나는 소식이다. 오랜만에 누가 오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자체로 가슴이 뻥 뚫리는것 같았다. 매일 냉동고에 채워져있던 음식들을 처치 하겠다는 마음으로 손에 잡히는 재료로 조금씩 음식을 해먹고 있었는데, 그릴에 구운 갈비라니 입맛이 확돌았다.
마침 그 시간우리 집에서는 빵 굽는기계에서 막 익어가는 빵 한 덩어리가 맛있는 냄새를 온 집안에 피우고 있었다. 곧 도착할 동생에게 그 빵을 들려보내고 우리는 새 빵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갈비를 가져 온다니 아이들 생각이 났다. 나는 아이들과 같이하는 구룹톸에 이모와 엄마의 음식 교환 소식을
올렸다. 결혼한 큰아들에게서메시지가 왔다. 아들 집에는 근처에 사는 장모님이 라자냐(lasagne)와 양고기구이를 저녁으로 갖다줄 거라 했다. 최근에 혼자가 된 사돈은 늘 남편과 아이들과 같이 하던 부활절디너를 기억하며 외롭고 아픈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돈은 같이 먹지 못해도 집안에 있는 재료로 가장 풍요한 저녁을 만들어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작은 잔치 준비로 위로받을 사돈과 그 사랑을 받아 먹을 아이들 생각에 내 마음도 안도로 채워졌다.
조금 후 작은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는 룸메이트와 냉동 패키지에 들어있는 칼국수를 해먹을 예정이라 했다. 아들에게 칼국수에다 닭가슴살이라도넣으라고 했더니,닭가슴살은 두었다 카라레이스를 만들 때쓸
거라 했다. 대신 엄마가 사주었던 삼겹살을 몇 줄 구워 먹을거라 말했다. 식단이 엉뚱하다는 감이 있었지만
젊은이들은 삼겹살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아직도 따끈한 갈비가 놓여있고 동생은 이미 파킹장에 자신의 차 옆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방금 구운 빵과 냉동고에 있던 사골국을 집대문과 동생이 선 거리의중간쯤에뒤로
물러서며 비로소 인사를 나누었다. 내 모습이 보이니 동생 차의 문이 열리며 90이 넘으신 친정 어머니가 손을
흔들며 나오셨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뇌출혈로 기억력을 잃어가고있어 동생이 모시고살고 있다. 전염병이 돌아 서로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오면서 계속 들었지만, 큰 딸의 집까지 와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소리를 지르며 인사를 나눠야 한다는 사실이 혼란스런 표정이시다. 몇 주만에 뵌 어머니는 그 사이 머리가 자라서 백발의 단발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짠하다.
내가 선발코니 쪽으로 난 커다란 창에 또 다른 노인의 모습이 있었다.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던 시어머니께서 ‘사회적거리두기’ 라는 평생 들어보지 못한 상황에대처 책으로 우리 집으로오셨다. 97세의 노인이 혼자 헤쳐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자식들의 말에 동의를하신 것이다. 사돈 사이면서 50년 가까이 친구처럼
살아 온 두 노인이 오랜만에 보는데 인사도 못 나누고 창 너머로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서둘러 상을 차려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 부부와시어머님이 둘러 앉은 상은 호젓하고 간단했지만 중앙에 자리한 갈비가 눈길을 끌면서, 일상의 저녁이 부활절 디너로 급을 바꾸었다. 갈비 주위로 몇 가지 음식이 더 눈에
띈다. 조금 전에 다녀간 동생 집에는 최근에 시어머니까지 피난을 오셨다. 두 집에서 노인들이 소일 거리로
만든 만두와 김무침, 멸치볶음 등 밑반찬들이다. 외부의 긴급한 상황으로 익숙지 않은 날들을 같이 보내면서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은 노인들의 마음이 드러나 보이는 음식들이다.
우리 셋을 빼고 밥상 주위에 놓여있는 빈 의자들이 더 휑하게 보였다. 부활절 디너에 의자가 모자라 피아노벤치 까지 붙여놓고 식구들이 끼어앉아 햄이나 구운 칠면조를 나누어 먹던 모습이 먼 옛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딱히 마음이 허전하거나 울적하지는 않았다. 마치 이곳 저곳에 펼쳐진 디너상들과 다 연결된듯 마음은 따뜻했고, 식사는 한 없이 풍요롭게 느껴졌다.
평상시 아들들은 소소한 저녁 밥상 이야기는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표현이 그렇다. 요사이 별일 아닌 엄마의 메시지에 곧바로 답을 하며 전에 없이 자신들의 일상을 들려주는 일이 잦아졌다. 우리들 주변에 퍼져있는 불안, 극도로 제한된 생활은 얼굴을 가까이 할 수 없어도 마음 속에 담겨있던 감정과 생각들이 더 많이 표출되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주고받는사소한 메세지들에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과 염려가
가득하다.
김인숙 (64 Mrs. 김훈)
첫댓글 . . .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절은 지나간지 오래 되는데,
처음엔 읽으며 얼마전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얘기로 착각했엇습니다. ㅎ ㅎ !
계속 좋은 수필 올리시기 바랍니다. 추수감사절 애기는 내년 봄에 ?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두들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평범한 일상의 생활들이 얼마나 귀중하고 좋았었는지 확실히 가르쳐주는 때입니다.
모두들 바이러스가 퇴치되는 날까지 건강에 유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