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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12월 22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1222수] 조계사 성탄트리의 의미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에 한지로 만든 커다란 전통 등(燈) 모양의 성탄트리 3개가 20일 불을 밝혔다.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불교계도 축하메시지는 발표했지만, 조계사 앞마당에 대형 트리까지 세우고 캐럴을 부르며 예수 탄생의 기쁨과 의미를 함께 나누기는 처음이다.
조계사는 성탄 트리에 불교와 기독교 간의 화합 염원을 담았다고 했다. 성탄절을 맞아 두 종교가 갈등과 반목에서 벗어나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사랑과 나눔을 함께 하는 계기가 되자는 것이다. "구원과 평화, 고난 극복의 상징인 예수의 삶을 본받아 남북갈등으로 인한 불안, 정치권의 혼란으로 인한 상심, 평화와 관용을 위협하는 아집과 독선을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성탄절 축하메시지도 같은 뜻이다.
솔직히 요즘 우리 종교는 본래 정신과 마음에서 벗어나 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할 것 없이 종교 안팎에서 사랑과 자비, 나눔과 일치, 화해와 평화보다는 미움과 시기, 갈등과 분열, 독선과 아집에 빠져 있다. 템플스테이 예산문제로 확대된 불교차별 논란, 끝없이 이어지는 일부 개신교도의 불교 모욕과 배타적 행동,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천주교 사제들의 갈등이 우리 사회를 더욱 싸늘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국민들은 종교가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따뜻하게 해주길 바란다. 가난한 이웃과의 나눔에 앞장서고,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한다. 조계사의 성탄트리도 그런 자각과 자기 반성이 담겨 있지 않으면 의미가 적다. 성탄절을 맞아 누구보다 사랑의 실천에 앞장서야 할 개신교와 천주교에도 이런 마음가짐과 다짐이 더없이 절실하다. 정진석 추기경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는 성탄, 차별 없는 사랑의 공동체를 강조했다.
나눔과 봉사의 마당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거리에서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열심히 종을 울리고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종교계가 더욱더 이웃사랑을 선도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1222수] 번지수 잘못 짚은 ‘체벌옹호론’
최근 들어 교사들에 대한 학생들의 폭력 사례가 여럿 언론에 보도됐다. 중학교 학생들이 여교사를 성희롱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는가 하면 주의를 주는 여교사를 고교생이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5학년생이 싸움을 말리는 여교사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일도 일어났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겪는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겠다.
이와 관련해 한국교원노동조합, 자유교원조합, 대한민국교원조합 등 보수 성향의 3개 교원노조 협의체는 이런 일들을 체벌 금지 움직임과 연결시키며 ‘체벌 금지 불복종’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은 체벌 금지 이후 수업 방해와 교사 폭행 등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며, 체벌 전면금지 조처를 내린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 체벌을 금지하면서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 단체가 주장하듯이 수업방해나 교사 폭행이 체벌 금지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자료나 증거는 없다. 체벌이 허용될 때도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일탈적인 행위는 있었고 교실에서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교사들의 호소도 끊이지 않았다. 현재 교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체벌 금지 탓으로 돌리고 체벌 금지 불복종까지 선언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진정 교실 붕괴나 교권 실추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좀더 근원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학교가 진정한 의미의 교육의 장이 아니라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학교는 아이들의 지덕체를 균형있게 길러줌으로써 온전한 인간으로 키운다는 교육의 본령을 포기한 지 오래다. 아이들이 모든 욕구를 억압당한 채 학력을 위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탓에 인성은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다. 이런 상태에서 동료 학생들은 물론 교사나 부모에 대해서도 거친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렇게 억압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아이들을 체벌로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큰 착각이다. 교실 붕괴나 교권 실추를 극복하는 길은 오히려 그 억압과 통제라는 수단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아이들을 인격체로 대해주며 그들의 자존감과 자율적 통제력을 길러주는 게 타율적 통제보다 더 효과적임은 여러 연구 결과에서 확인된 바 있다.
[조선일보 사설-20101222수] 플리 바게닝 제도, 法官의 사전 심사 거치도록
법무부는 강력범죄·마약·테러·뇌물죄 등 4가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공범(共犯)의 혐의를 입증하는 증언을 하면 기소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다른 범죄의 경우도 범인이 그 범죄의 규명이나 공범 검거에 중요한 진술을 하면 형(刑)을 줄여주거나 면제해줄 방침이다. 예를 들어 정치인이나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기업인이 뇌물을 준 사실을 자백하면 그 기업인을 기소하지 않거나 형을 깎아주는 제도다. 유죄(有罪) 협상 제도(플리 바게닝·plea bargaining)라고 불린다.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뇌물 수수나 마약 거래처럼 물적(物的)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범죄는 공범자의 자백을 받아내지 못하면 범죄인 처벌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범 관계인 피의자나 피고인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진술 거부 또는 진술 번복 수법으로 진실 규명을 어렵게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로펌이 범죄를 저지른 개인이나 회사가 압수수색을 당할 경우 먼저 없애버려야 할 서류나 장부가 무엇인지를 자문해 주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에도 유죄 협상 제도가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도입되면 검사가 객관적인 증거 수집보다 피의자와의 협상에 의존해 손쉽게 수사를 끝내려 할 우려가 있다. 검사가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수사 중인 범죄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피의자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해 피의자와 협상하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플리 바게닝 제도의 남용을 막으려면 피의자가 검사의 압박이나 회유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백했는지를 법관이 심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미국에는 법관 심사 절차가 있다. 플리 바게닝 제도가 잘못 운영돼 법정(法廷)이 아닌 검사실에서 사실상 재판이 끝나버리는 부작용을 막을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01222수] 주연도 조연도 열연한 ‘이대엽 비리영화’
영화배우 출신인 이대엽 전 성남시장의 비리가 가관이다. 본인은 물론이고 조카 부부 등 친인척에다, 측근 공무원들까지 검은 돈을 서로 챙기려고 경쟁을 벌였다. 공무원 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이권이 걸린 사업마다 마수를 뻗었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이 맑을 리 있겠는가. 한마디로 주연도 조연도 열연한 한편의 ‘비리영화’를 보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 전 시장의 재임 8년(2002년 7월~2010년 6월) 동안 성남시가 이런 복마전 속에서 굴러간 게 신통할 정도다.
검찰이 이 전 시장의 집을 압수수색해 보니 온갖 선물과 원·달러·엔화 등 현금 뭉치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선물 중에는 해외 경매시장에서 5000만원에 거래된다는 ‘로열살루트 50년산’을 포함해 몇백만원대 양주가 수두룩하고 포장지를 뜯지 않은 고급 넥타이 300개, 명품 가방 30개 등이 발견됐다. 그는 승마연습장 허가와 택지개발에 개입해 2억여원의 금품도 받았다. 또 업무추진비를 가짜 영수증으로 처리하거나, 관사의 가정부를 공무원으로 속여 예산에서 임금을 주는 등 2억 5000만원의 시 예산을 횡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조카도 공영주차장 신축공사에 개입하는 등 6억여원을 챙겼고, 조카의 아내는 공무원 17명으로부터 인사청탁과 관련해 1억 50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더구나 호화청사를 지으면서 17억원짜리 조경공사를 조카의 아들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 전 시장 일가 6명이 챙긴 뇌물만도 8년 동안 21건에 15억원이나 된다니 놀랍다. 이러니 그가 국회의원(3선)과 시장을 지내면서 공직생활을 어떤 자세로 해왔는지 불을 보듯 뻔하다.
시장이 이 모양이니 측근 공무원들도 비리를 당연시했다. 이번에 구속된 공무원 2명과 청원경찰, 불구속된 공무원 등 4명의 범죄는 뇌물 액수만 적을 뿐, 이 전 시장의 행태와 거의 판박이다. 한통속 비리에 충성맹세나 하는 지자체가 어디 성남시뿐이겠는가. 민선 5기 들어서도 친인척·측근에게 이권을 나눠주고, 인사 장사를 해서 물의를 빚고 있는 지자체가 한두 곳이 아니라고 한다. 단체장이 먼저 청렴강직하지 않으면 제2·제3의 성남시는 언제든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1222수] 北, 비핵화 진정성 보이려면 NPT 복귀하라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혀 그 저의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우리 군의 연평도 포 사격훈련 직후 방북중이던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를 통해 영변 핵시설에 대한 IAEA 사찰단 복귀,우라늄 농축을 위한 핵연료봉 해외 반출,1만2000개의 사용 후 연료봉 판매를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쪽에선 추가 도발을 위협하면서 또 한쪽에선 대화를 제의하고 있으니 그 진정성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북한은 지난해 4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성명을 내자 6자회담 중단 및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발표하면서 IAEA 사찰단을 추방했는데 왜 갑자기 방침을 바꿨는지 이유를 알기 어렵다. 당장 북한이 수용하겠다는 영변 핵사찰이 일회성인지 아닌지 여부부터 불투명하고 플루토늄 프로그램과 우라늄 농축시설 모두가 포함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연평도 포격 만행으로 인해 국제적 비난이 고조되자 이를 모면하기 위한 국면전환 카드로밖에는 해석하기 힘들다. 특히 진작에 불발됐던 사용 후 연료봉 판매를 다시 협의하자고 제안한 것은 이런저런 구실로 미국 및 우리 정부와 핵협상을 벌이면서 돈을 벌려는 꼼수로 봐야 할 것이다.
지금 북한에 필요한 것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부터 입증하는 것이다. 한 · 미 · 일 3국 외무장관이 합의한 6자회담의 전제조건을 받아들일 뜻이 있다면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야 한다. 즉각 NPT(핵무기 비확산조약)에 재가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대북 자세를 일관성있게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북의 제안이 우리 내부의 분열을 겨냥한 측면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어제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수석급 비서관이 실장을 맡는 국가위기관리실로 격상한 것은 바람직하다. 지금은 굳건한 국제공조를 기반으로 북의 추가 도발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1222수] 근로시간 단축, 생산성 향상이 과제
내년 7월부터 5인 이상 20인 미만 사업장도 주5일 근무제를 적용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안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 확정됐다. 이에 따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증가 우려와 함께 이를 덜기 위한 생산성 향상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30만여개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 200만여명의 근로시간은 주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4시간 단축의 혜택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25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766시간보다 31.7%나 길다. 아직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을 더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지만 삶의 질 차원에서 주5일 근무제와 근로시간 단축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인건비 상승과 생산감소 등 기업의 부담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월차휴가와 유급 생리휴가 폐지, 연장근로수당 할증률 축소, 연차휴가 방식 조정 등이 이뤄지기 때문에 기업의 실질적 부담증가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연장근로수당보다는 여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기업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 확실시된다.
더구나 국내 임금수준은 생산성에 비해 크게 높은 실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고임금-저생산성 구조의 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의 생산성 및 GDP 대비 임금수준은 주요7개국(G7)보다 높다. 제조업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이 1인당 GDP의 85%로 G7 평균 53%보다 32%포인트나 높고 G7 중 최고인 독일의 62%를 웃돈다. 어느 자동차 업체의 경우 미국공장과 국내공장의 대당 조립시간은 각각 20.6시간과 33.6시간인데 평균임금은 6,122만원과 6,713만원으로 조사됐다. 국내 근로자의 생산성이 낮은데도 임금은 더 많이 받고 있는 셈인데 이는 과격투쟁 등 힘의 논리에 의한 노조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와 경직적 임금체계 등이 큰 원인으로 꼽힌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근로시간까지 줄어든다면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노사 상생풍토 정착, 업무몰입도 제고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횡설수설/정성희(논설위원)-20101222수] 공짜 의료쇼핑
부산 사하구의 임대아파트에 혼자 사는 40세 남자 A 씨는 병원에 들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당뇨 고혈압 척추협착 근육통 천식 우울증 등을 앓고 있는 그가 2009년 한 해에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거나 약을 타간 날은 1만6066일, 국고에서 약값과 진료비로 지급한 금액은 6976만 원이다. 한 번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평균 44일 치의 약을 받은 셈이다. 그 많은 약을 정말 다 먹었는지 궁금하다. A 씨는 국가가 의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수급권자다.
▷지난해 의료급여로 병의원 약국에 지급된 국고는 4조7548억 원으로 2008년(4조4735억 원)보다 6.3% 늘었다. 가난은 통상 질병을 동반하므로 저소득층의 건강이 그만큼 악화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공짜 의료에 따른 의료쇼핑도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급여(처방 진료) 일수가 2000일을 넘어선 수급권자가 379명이나 된다. 이들 중 병원을 적절하게 이용한 경우는 81명(21.4%)뿐이었고 나머지는 약물 오남용(23.5%), 습관적 이용(19.8%), 의료쇼핑(14.5%)으로 나타났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약을 타는 경우까지 있었다.
▷서울시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지급하는 의료지원금이 11월부터 바닥나 현재 6500건에 107억 원을 지급하지 못했다. 저소득층 의료지원금은 국고 78%와 지자체 예산 22%로 편성된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전북 경남 등의 의료지원금도 바닥이 난 상태다. 지자체들이 의료지원금을 못 주니까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병의원과 약국에 의료급여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병원 순례를 하며 공짜 의료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결국 가난하고 진짜로 아픈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의료급여를 일부가 악용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정부는 엉터리 환자에게 국민 세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태를 개탄하기에 앞서 제도가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유발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공짜 의료에 대한 제한이 없으니 의료쇼핑이 만연하는 게다. 전면 무상급식을 추진하는 쪽도 바닥난 무상의료 예산을 보며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김남중(논설위원)-20101222수] 플리바기닝
2005년 국내에서도 방영된 미국 CBS의 법정 드라마 ‘클로즈 투 홈(close to home)’의 한 대목. 주인공 여검사 아나베스 체이스가 피의자와의 거래를 놓고 검사장과 말다툼을 벌인다. 선량한 모녀를 총으로 살해한 마약 중독자가 지역 마약계 거물을 체포할 수 있는 ‘증언’을 제안한 탓이다. 그와 거래를 할 경우 살인의 죗값을 제대로 물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순간 “큰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잡은 고기를 놔줘야 하는 법”이란 대사가 나온다. 법정을 소재로 한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장면 중 하나가 이 같은 검사와 피의자 간 거래다. 유죄를 인정하거나 범죄 수사에 협조하면 형량을 낮춰주거나 기소하지 않는 걸 놓고 협상을 한다. 바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이다.
플리바기닝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에선 합법이다. 미국은 형사사건의 80~90%에서 플리바기닝이 이뤄진다고 한다. 얼마 전 미국과 러시아의 스파이 맞교환에서 미국이 활용한 것도 플리바기닝이다. 러시아 스파이 10명이 유죄를 인정하자 법원이 구금 날짜만큼만 형을 선고해 바로 석방 한 것이다. 위키리크스에 정부 기밀을 건넨 혐의로 잡힌 미 육군 일병 브래들리 매닝에 대해서도 플리바기닝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한다. 어산지의 연루 사실을 자백받기 위해서다.
플리바기닝은 한국에선 아직 불법이다. 그럼에도 은밀한 플리바기닝의 흔적이 적지 않다. 2007년 제이유그룹 로비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이 대표적이다. 검사가 피의자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그 대가로 구형을 낮춰주겠다는 내용의 녹음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검찰의 플리바기닝 시도가 법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2008년 세무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유흥업소 업주가 재판 과정에서 “검찰에서 고위 공무원에게 뇌물 준 것을 실토하면 형량을 줄여주고 구속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한 것이다.
이런 플리바기닝이 양성화될 모양이다. 법무부가 어제 플리바기닝 도입을 골자로 하는 관련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플리바기닝이 시행되면 내부 가담자의 진술이 중요한 조직범죄나 부패범죄의 수사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반면 부작용 우려도 만만찮다. 피의자를 회유·협박해 진술을 강요하거나 봐주기 수사가 될 수 있다는 거다. 플리바기닝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검찰 하기에 달린 셈이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1222수] 애기봉 트리
교회에 부적을 붙이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십자가를 들고 굿을 하거나, 성경을 펼쳐 놓고 주문을 외는 일이 가능할까. 기독교인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황당한 얘기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낯익은 풍경이 될지도 모른다. 일례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그것을 보여준다.
겨울 트리는 원래 이교적인 관습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연말연시를 축하하기 위해 녹색 트리로 장식을 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흔한 성탄절 풍경이지만 초대 기독교인들은 트리를 몰랐다. 성탄 트리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성탄 트리를 집안에 세우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전나무 가지를 꽂아 장식하는 것은 저주받을 미신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693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는 설교단의 트리 장식을 금하고, 어기면 엄벌에 처한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성탄 트리의 기원은 여러 설이 있지만 대체로 16세기 독일의 수공업 길드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이것이 가정집에까지 퍼진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다. 우상으로 간주한 교회와 정부가 이를 막은 탓이다. 성탄 트리는 처음에 귀족사회에서 유행했는데 보불전쟁(1870~71)을 치르면서 평민층에게까지 전파됐다. 독일군 지휘관들이 사기 진작을 위해 병영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는데, 전쟁 뒤 귀향한 병사들이 너도나도 집에다 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미신으로 여기던 트리가 성탄을 상징하고, 평화의 상징물이 전쟁 탓에 퍼져나갔다는 것은 돌아볼수록 아이러니하다.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의 성탄 등탑이 7년 만에 불을 밝혔다. 국방부가 대북 심리전의 일환으로 이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북녘을 향한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정작 북한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어제 점등식에 앞서 노동신문은 “새로운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망동”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성탄의 상징이 갈등의 빌미가 되고, 평화의 불이 적의를 불지르고 있는 셈이다.
성탄 트리가 군대 심리전의 도구로 쓰였다고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서양에선 십자가조차 귀신 쫓는 부적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 자체도 원래는 태양신을 기리는 이교도의 축제일이었다. 다만 이를 대놓고 발설하려면 이교도로 몰리는 걸 감수해야 한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토머스 로버트슨(와튼스쿨 학장)-20101222수] 사회적 기업
비즈니스적으로만 보자면 집집마다 동경하는 `영웅`들이 있다.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대형 M&A 전문가, 실리콘밸리의 벤처사업가가 그 전형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좀 더 신선한 영웅들이 비즈니스스쿨의 학생들을 사로잡고 있다. 바로 정부나 재단에 의존하지 않고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는 데 앞장서는 사회적 기업가들이다.
올해 와튼스쿨 졸업식에 초청된 방글라데시 마이크로크레디트은행 그라민은행의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 학문이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로 공동체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유누스 교수는 1970년대 초 학생들을 참여시켜 가난한 마을인 조브라를 돕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42명의 영세 가구공에게 27달러의 소액대출을 시작한 것이 바로 그라민은행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마이크로파이낸스가 과연 합당한 비즈니스 형태인가라는 의문에 그라민은 실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라민은행는 현재 800만명에게 86억달러를 대출하고 있으며 대출 회수율은 97%에 달하는 견실한 은행으로 성장했다. 은행 지분의 94%는 가난한 사람들인 대출자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65%의 대출자가 최저 빈곤 계층에서 벗어났다.
그가 선도한 마이크로크레디트은행은 전 세계에서 300억달러의 금융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대형 투자은행이 마이크로크레디트 시장에 뛰어들면서 그라민과 손잡고 있다. 사회적 병폐와 맞서면서 동시에 이윤을 바로 재투자하여 비즈니스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라민은 사회적 기업은 반드시 그 어떤 정부나 재단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지속 가능해야 하며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은 기업의 성장을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그라민은행은 소액대출 사업에서 멈추지 않고 헬스케어, 보험, 통신 등으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지식은 소수에 집중되는 부의 극대화가 아닌 전 지구인을 위한 부를 확대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을 유누스 교수와 그라민은행은 보여주고 있다. 영민한 MBA 출신의 전문가들이 현재 그 물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학자로서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필자에게는 큰 기쁨이자 보람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