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길 수필원고 - 호흡.hwp
호흡
조현길
어떤 것은 간접 경험만으로도 그 대상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것은 직접 경험을 해봐야지만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내 경우, 바다에서 오랜 세월을 일하셨던 아버지가 그랬고 바다가 그랬다.
“한 일 년만 나갔다 올라고.”
눈빛은 어디가고 목소리만 담담하게 왔다 갔다. 퇴직한 지가 몇 핸데, 또 사람을 부른단 말인가. 모르는 사람은 아버지가 얼마나 능력이 있으면 아직도 부르냐고 부러워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바다에 나간다는 얘기라면 달갑지 않다. 바다가 뭐라고.
아버지의 바다를 만나기 전까지 바다는 내게 그저 낭만적인 공간이거나,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고 품어주는 따뜻한 장소였다. 그것은 해변 모래밭에 앉아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짧게나마 체험했던 스쿠버 다이빙으로 환상적인 바다 속 세상까지 얼핏 느껴 봤으니 평온하고 몽환적인 바다의 모습이 내가 경험했던 전부였다.
아버지가 인도양이며 대서양의 망망대해에서 반평생을 넘게 일하셨을 때에도, 생사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에게 바다는 한 가지 모습뿐이었다. 그렇게 바다를 몰랐던 것처럼 아버지를 몰랐다. 아버지의 삶을 몰랐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아름다운 바다의 이야기만 들려주셨던 것 같다. 거칠고 사나운 모습을 띤 바다와 삶은 당신이 대신 짊어질 테니 자식에게만큼은 꽃길만 걷게 하고 싶은 마음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말이다.
아버지는 퇴직하고서 한참이 지나서야 바다에서의 치열했던 삶을 말씀하시곤 했다. 그것도 거나하게 취해서 말이다. 그때도 내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들었다. 아버지의 바다가 아니라 환상 속의 바다를 말이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되어 더 알고 싶고, 제대로 탐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기로 했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수영장에서 스쿠버 다이빙의 이론과 실제를 배웠다. 다이빙의 역사에서부터 입으로만 호흡을 하는 이유는 물론이고 장비를 착용하고 벗는 방법이라든지, 입수하는 방법과 함께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그렇게 익히고 나서, 드디어 바다 한가운데 다이빙하기 좋은 지점에 섰다. 최종 장비 점검을 마치고는 풍덩! 순간 몸이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재빨리 수면 위로 떠올랐다. 찰랑이는 파도에 몸도 따라 일렁였다. 주위를 살펴 현재 떠 있는 위치와 햇빛의 방향, 물의 상태, 함께 입수할 동료를 확인했다. 다이빙 강사가 주먹을 쥔 채 엄지를 아래로 내 보이며 하강 신호를 보이자, 같은 손 모양을 했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천천히 내쉬었다. 서서히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10미터 지점. 햇빛을 머금은 물속은 각양각색의 물고기들과 산호초의 화려함을 있는 대로 뿜어냈다. 수영장에서 배웠던 내용들도 곧잘 되었다. 배 위로 올라와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입수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깊은 곳으로 헤엄쳐 가서 다급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아직까지는 할 만 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바다 속을 드나들었다.
다음 날 바다 안. 늘 그랬듯이 강사는 수시로 괜찮은지를 물어왔다. 공기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확인했다. 수신호를 읽고서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는지 어제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환하던 바다 속에 어느 순간부터 빛이 조금씩 차단되더니 남색 물감에 하얀색 물감을 탄 것처럼 온통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뚜렷하게 보이던 강사도, 그의 뒤를 유유히 헤엄치던 물고기 떼도 선명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봤다. 어디쯤에 있는지,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같이 있지만 나 혼자만 내던져진 채, 어마어마하게 큰 진공관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순간 수면 위로 무사히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숨을 쉬고 있는데도 숨이 막혀오는 것처럼 호흡이 거칠어져서 아무 탈 없이 마칠 수는 있는지, 물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고 이 과정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겁나고 혼란스러웠다. 강사가 다가와 괜찮은지, 공기 양이 얼마나 남았는지 묻지 않았다면 한동안 꼼짝도 못했으리라.
쉬는 동안에도 다시 물속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두려웠다. 머릿속으로, 입으로 장비 장착하는 방법과 안전 점검하는 순서를 되뇌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바다가 지닌 위엄에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위엄에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아버지’의 바다가 밀물처럼 확 밀려왔다.
1988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귀국한 아버지는 거실 한 면에 사진을 펼쳐 보이셨다. 끝없이 이어진 바다 위로 기다랗게 놓인 다리와 네모난 구조물만 덩그러니 있는 사진. 아무리 뚫어져라 봐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데, 아버지는 눈으로 손으로 사진을 쓰다듬으며 이란과 이라크의 내전이 어떻고 플랫폼이 어떻다는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셨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왜 아버지는 사진에 없냐고 물었다. 이국의 낯선 냄새가 나는 아버지가 어색해 멀찌감치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해양 구조물을 설치하는 일을 하셨다. 바다에 파일이라는 철심을 박아 고정할 수 있는 구조물인 플랫폼을 설치해 놓으면, 석유나 원유를 바다로 뽑아서 원하는 곳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하셨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에 걸쳐 작업을 하는 동안 배 위에서 생활하셨기 때문에, 바다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살아남는 훈련은 필수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훈련은 해양 환경과 비슷한 인공 풀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작업선이 침몰됐다는 가정 하에 수심 4~5미터에서 그 이상 되는 꽉 막힌 공간에서 신속하게 빠져나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이기에 마스크는커녕 공기통도, 부력재킷도, 핀도 없이 오로지 맨 몸으로 헤엄쳐서 말이다.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서도 바다 속에서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아무 장비도 없이 훈련했을 생각을 하면 가슴 깊숙한 곳이 탁 막혀오는 것 같았다.
어디 한두 번으로 되었겠는가. 눈을 떴다가도 바닷물이 들어오면 따갑고 시리니 다시 뜨기가 두려웠을 것이고, 코로 입으로 마구잡이로 들이닥치는 바닷물은 당장 숨 쉴 수 있는 한 번의 ‘호흡’조차 녹록치 않음을 말해주었을 것이다. 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겠지만 그래도 어쩌나. 수십 번이라도 될 때까지 훈련을 받아야, 당신 자신이 살고 그 덕에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지 않냐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생과 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바다에서의 한 호흡, 한 호흡을 이어나가셨던 것 같다. 한 호흡에 가족을 떠난 외로움과 홀로 남은 고독함을, 또 한 호흡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잡아가듯 바다에 적응해 나가셨을 것이다. 그렇게 바다와 아버지는 하나가 되어갔다.
며칠 바다를 경험했다고 아버지와 바다를 어찌 다 알겠냐마는, 당신의 고달팠던 삶이 단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한 한 호흡이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삶을 지켜 본 바다가 오늘도 삶에 희망을 놓지 않으시는 아버지께 파도 소리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 같다. 그게 인생이라고.
나를 품은 바다가 말한다. 아버지의 숨결로, 살결로 지켜주겠다고 말이다. 아직은 무섭지만 아버지의 바다에서 편안히 호흡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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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2017년 <강원문학> 수필 등단
* 2018년 <복숭아문학상> 수필 우수상 수상 외
* 강원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