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카족, 누에르족 등 나일제족들은 10세기 이전에 지금의 남수단 지역으로 들어왔고, 15~19세기에 부족 이동을 하며 바르 엘 가잘(Bahr el Ghazal)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남서수단족에 속하는 잔데족은 16세기에 남수단에 들어와 서에콰토리안 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하였다.
그 후 오랜 동안 크고 작은 국가들이 비교적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었으나 무역품을 조달하고 시장을 개척하려는 유럽인들의 야욕으로 인해 평화가 깨지고 말았다. 당시 남수단 지역은 노예, 금, 상아, 목재 등의 조달처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과 자원을 약탈당했다.
1870년대에 이집트는 현재의 남수단 지역에 에콰토리아주(州)를 세우고 이곳을 식민지로 삼았다. 1882년 영국이 수단을 침략하였고, 1885년 수단 북부에 수립된 이슬람 국가의 군대가 이 지역을 침범하였으나 1898년 영국군이 이 세력을 몰아냈다. 1899년 수단 전지역에 영국-이집트 공동통치가 시작됐다. 당시 영국은 수단 북부와 남부를 분리하여 통치하였는데 이때부터 현대의 남수단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47년 영국과 북부 수단, 남부 수단 대표자는 주바회의(Juba Conference)를 통해 두 지역을 하나의 식민지로 통합할 것을 합의하였으나 남부 수단은 이를 반기지 않았다.
1956년 수단은 독립을 이루어 남부와 북부는 하나의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수단 북부는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 민족, 남부는 토착 신앙과 기독교를 믿는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종교·인종·문화적인 이질감이 심했다. 이로 인해 1955년 남북 내전이 발생했고, 내전이 수습되지 않은 채 수단은 하나의 국가로 독립되었으나 남부와 북부는 한 국가라는 틀에서 공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북부 아랍계 중앙정부는 정치적 경험과 교육적 토대, 경제적 인프라가 열악한 남부를 정치와 개발에서 철저히 소외시켰고,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슬람식 이름을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이에 남수단인들이 반발하여 일어난 1차 내전은 1955년부터 1972년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중앙정부가 남부 수단에 이슬람 샤리아법을 적용하려고 하는 등 다시 이슬람화 정책을 추진하자 남부 수단 반군세력인 수단인민해방운동(SPLM)은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조직해 저항했다. 결국 1983년 남북 분리를 요구하며 시작된 2차 내전은 2005년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39년에 걸쳐 치른 두 차례의 내전으로 남수단에서만 25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500만 명에 이르는 피난민이 생겼다.
마침내 2005년 1월 포괄적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는데, 협정 내용은 6년간의 자치권을 가진 뒤 2011년 남수단의 국민투표로 분리 독립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2011년 1월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 투표인의 98%가 분리 독립을 찬성하여 2011년 7월 9일 남수단은 주권국가로 독립하였다. 같은 달 14일 유엔의 193번째 회원국으로 등록하였고, 28일 아프리카연합에 가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