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서 1261년 원세조(쿠빌라이)때 빼앗긴 영토가 바로 동녕로이다.
아래 <원사> 지리지의 지명 내용으로 보면 동녕로는 현 하북성 창주 이북지역으로 보아야 한다.
동녕로에 포함된 지명들이 하북 지명이기 때문이다.
오대사에 기록된 燕雲 16州는 발해소유였다가 망한 후 後梁,後唐,後晉이 아주 잠시 소유하다 고려의 강동6주와 겹쳐 결국 고려가 차지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는것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이는 운영자만 주장하는것이 아니라 중국학자의 논문에도 강동6주의 郭州가 북경 인근으로 비정되었기 때문이다.
운영자 역시 동녕부가 요녕성 개주(蓋州) 북부였음을 증명하였고 동녕부의 서계는 요녕,하북이었을 것으로 여러 증거에 의해서 추정하였으나 원사에 기록된 지명들은 결정적인 것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元史 地理志
東寧路,本高句驪平壤城,亦曰長安城。漢滅朝鮮,置樂浪、玄菟郡,此樂浪地也。晉義熙後,其王高璉始居平壤城.唐征高麗,拔平壤,其國東徙,在鴨綠水之東南千餘里,非平壤之舊。 至王建,以平壤為西京。元至元六年,李延齡、崔垣、玄元烈等以府州縣鎮六十城來歸。八年,改西京為東寧府。十三年,升東寧路總管府,設錄事司,割靜州、義州、麟州、威遠鎮隸婆娑府。本路領司一,余城堙廢,不設司存,今姑存舊名。
동녕로 본 고구려 평양성(장안성)이다. 한이 조선을 멸하고 낙랑,현토를 두었는데 바로 낙랑지이다. 고구려 장수왕 고련이 평양성에서 기거하였다. 당이 고구려를 멸한 후 그 나라가 동으로 옮겼는데 압록강 동쪽 천여리에 있는바 옛 평양이 아니다. (고구려가 망한 뒤에도 그 잔류세력이 압록강 천여리에 옮겨 유지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잔류세력이 발해, 고려라는 언급이 없다. 중국기록에는 8세기까지 고려가 조공한 기록이 있다.혹시 明代에 사서 문장을 불확실하게 고친것인가?)
고려 왕건에 이르러 평양을 서경으로 하였다. 지원 6년(1269)에 고려의 이연령,최탄,현원렬등이 60성을 들고 원에 래부하였다. 1271년 고려 서경을 동녕부라 고치고 1276년 동녕부총관으로 승격시켰다. 정주,의주,인주,예원진을 나누어 파사부에 붙였다.
문맥으로 보아 왕건에 이르러 옛 고구려 평양을 고려 서경으로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錄事司。土山縣。中和縣。鐵化鎮。
都護府,自唐之季,地入高麗,置府州縣鎮六十餘城,此為都護府,雖仍唐舊名,而無都護府之實。至元六年,李延齡等以其地來歸,後城治廢毀,僅存其名,屬東寧路。
도호부,후당에서 고려 영토가 되었으나 부주현이 60개성이 되었다.도호부라고 한다.
定遠府。郭州。撫州。黃州。領安岳、三和、龍岡、鹹從、江西五縣,長命一鎮. (곽주는 북경 동남)
靈州。慈州。嘉州。順州。殷州。宿州。德州。領江東、永清、通海、順化四縣,寧遠、柔遠、安戎三鎮。( 하북의 순주(순의현),영청현 등이 포함)
昌州。鐵州。領定戎一鎮。
泰州。價州。朔州。宣州。領寧朔、席島二鎮。(삭주는 산서 북부)
成州。領樹德一鎮。
熙州。孟州。領三登一縣,椒島、椴島、寧德三鎮。(초도는 요녕성 개주)
延州。領陽巖一鎮。
雲州。(운주는 하북 밀운현)
아래는 고려와 거란이 개국 할 때 존재했던 오대의 영토를 그린 중국역사 지도이다.
거란이 연운16주를 할양 받았다고 했으나 그 지역은 고려와 중첩 되었던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역사지도- 5代나라들의 영토도 (심한 과장임을 알 수 있다)
관련글 - 운영자의 373번글 <고려말 자비령은 이곳이다>
운영자 심제.
첫댓글 베이징북쪽 발해진에 아직도 지리지에 그곳이 발해상경이다라고 된 것을 감안하시고 조선의 지리지와 비교하면 대부분 지리가 풀립니다. 조선역시 발해상경을 차지했다고 지리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