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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집중호우로 제방이 무너진 병암리 주변 논산천 모습(위), 1년이 지난 지난 4일 같은 장소(아래). 강 상류쪽은 제방공사가 진행중이지만 하류쪽에 제방이 유실된 곳은 정비가 되지 않았다. |
ⓒ 최지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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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외된 국민이다. 하천 정비 한 번 안 하다가 홍수 나니까 제방 쌓는다고 한다."
지난해 '논산천'의 범람으로 수해를 입은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리 주민 박아무개씨의 한숨 섞인 푸념이다.
1년 전 강둑이 처참하게 쓸려갔던 강변에는 10m 높이의 새 제방이 들어섰다.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수위가 얕은 강안으로 들어가 자갈을 파내는 동안 10여 명의 인부들은 제방 한쪽 면에 돌을 쌓고 있다. 시멘트로 바르는 대신 돌을 촘촘하게 쌓아 제방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사의 이름은 '하천 정비'가 아닌 '수해 복구'였다. 마을에 수해가 난 지 일 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난 4일 방문한 현장은 아직도 복구 중이었다.
홍수가 잘 발생하지 않는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 본류에 '치수를 위한 4대강 사업'이라며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공사하는 동안, 정작 수해를 입은 지천 지역의 복구공사는 수해를 입은 지 1년을 훨씬 넘겨 내년 3월 완공예정이다. 4대강 사업의 전체 예산은 22조, 논산천의 본류인 금강은 약 2조 5천억 원인 반면, 논산천 수해 복구공사에 투입된 예산은 약 36억 원이다.
홍수 일어났던 지천 공사는 '느릿느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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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충남 논산 병암리 일대 수해 복구공사 현장. 인부들이 제방에 돌을 쌓고 있다. |
ⓒ 최지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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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병암리 일대, 논산천이 넘쳐 딸기, 멜론 등을 재배하던 비닐 하우스가 무너졌다. |
ⓒ 환경운동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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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에서 수해가 일어났다. 피해는 특히 한강의 지류인 원주천, 낙동강의 지류인 조만강, 금강의 지류인 논산천 등 지방하천 유역에 집중됐다.
다른 지천은 '보'나 '교량' 등 시설물 위주의 피해가 컸던 반면, '논산천' 유역은 농경지와 주택의 피해가 컸다. 총 57가구 153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병암리는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보았다. 멜론과 딸기를 기르던 하우스를 비롯해 116ha의 농경지가 침수됐고, 겨우 복구했지만 빗물에 쓸려나간 토지는 예전만 못했다. 주민들의 생계가 달린 피해가 발생한 만큼 다른 어느 지역보다 빠른 복구와 대책이 필요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수해복구는 겨우 30%가량 진행된 상황(시공사 측 설명)이다. 주민들은 더딘 제방공사를 지켜보며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작년과 같은 집중호우가 또 오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복구공사는 수해가 나고 8개월이 지난 3월 29일에서야 시작됐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들은 "지난해 발생한 수해는 명백한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평소에 하천을 정비하지 않아 물이 잘 흐르지 못해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에 강둑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제방 공사가 늦어진 것에 대해서도 '인재'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주민 박아무개씨는 "논산시에서 '설계다', '예산편성이다' 하며 공사를 시작하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걸렸다"며 "제방공사를 하고 있지만 아주 짧은 구간만 하고 있어서 작년처럼 비가 오면 안심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짓고 있는 제방도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논산천 전체적으로 정비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신흥교'(제방공사가 끝나는 지점) 하류 쪽도 제방 공사를 해야 하지만 시에서 나온 담당자는 예산이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현재 제방공사는 병암리 일대 논산천 유역 0.89km에서만 진행 중이다.
4대강 공사는 '초고속', 우기 대비도 '순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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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하천 '논산천', 지방하천 관리 권한은 시, 도지사가 가지고 있다. |
ⓒ 최지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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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환경단체와 함께 병암리 지역의 수해피해를 조사했던 박창근 관동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도 "수해가 일어났던 지역이 1년이 다 돼 가도록 복구가 안 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고작 0.89km 구간의 복구공사도 4대강 사업처럼 밤을 새워 불을 켜고 했다면 벌써 끝났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박 교수는 이어 "그 정도 구간 설계와 예산집행에 8개월이 소요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주민들이 불안해하지 않게 가장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공사가 늦어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4대강 공사에 예산이 집중되면서 지천에 투입되는 예산이 늦게 집행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또 "적어도 우기가 시작되기 전인 6월 말에는 공사를 끝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주민의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제를 뒷전에 두고, 4대강 공사만 순식간에 해치우는 정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12월 4대강 사업을 착공해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4대강 전체적으로 40%에 가까운 공정률을 달성하고 있다.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에 따르면 4대강에서 퍼 올린 준설량은 1억2100㎥로 전체 준설량 목표치 5억2000만㎥의 23.4%, 보 건설은 42.4%가 진행되어 당초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4대강 공사현장에서는 우기에 대비한 조치도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물길을 막았던 가물막이 제거가 한창이다. 하천 주변에 쌓여 있던 준설토가 치워진 것도 순식간이었다.
지난 2일 국토해양부 이재붕 대변인이 '하천 주변에 쌓여 있는 준설토가 유실될 수 있다'는 언론의 지적에 대해 "하루 30~40만㎥씩 준설토를 옮길 수 있고 200만㎥이라도 일주일이면 처리한다"고 밝힐 정도로 정부는 4대강 사업에 엄청난 장비 물량을 쏟고 있다.
한편, 수해 복구공사가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충남도청의 관계자는 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 정도(공사진행상황) 만으로도 홍수 걱정은 없다"며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공정률은 45~50%"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수해가 일어나고 공사에 돌입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사실"이라며 '공사가 늦게 시작됐다'는 지적을 일부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논산천이 '하천정비 기본계획'이 수립되어 있지 않은 하천이라 강폭이나 제방의 높이 등을 결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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