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시 150:3~5).“
이 말씀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로는 여러 가지 악기들을 다 사용해서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어떤 악기도 가리지 말고 골고루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해석은 결국 같은 말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위 말씀에 등장하는 악기들은 성경 시대 당시의 악기들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위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이스라엘 민속 악기로 찬양해야
더 영감이 있고 성경적인 찬양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 말씀은 특정 악기를 사용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각 나라와 시대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악기들을 동원해서 찬양하라는 뜻이다.
내가 처음으로 예수를 믿고 찬양을 접하게 되었던 때는 이미 교회 안에 포크 계열 복음성가사 대세가
되어 있었다.
기존의 전통적인 교회 음악인 클래식이 여전히 교회 음악을 주도하고는 있었지만,
각 부서별 모임이라든지 젊은이들 사이에는 성악 발성과 4성부와 오케스트라 중심의 찬양이 아니라
기타와 피아노와 코드와 리듬이 주도하는 이른바 복음성가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비록 장르적으로는 현대화가 되어 가고 있었고, 수백년 된 찬송가나 합창이나 오케스트라 편성으로만
가능한 곡들 대신에 혼자서도 기타나 피아노를 치며 부를 수 있는 더 간단한 곡들이
많이 번역 또는 창작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찬양 선교단이나 찬양 가수들은 이미 드럼, 베이스, 신디사이저, 일렉 기타, 색소폰 등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교회 밖에서의 활동에서만 가능했고,
거의 모든 교회들의 예배와 모임에는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와 탬버린 정도만 찬양의 악기로 인정을
받았다.
사실상 그 나머지 악기들은 거의 ‘마귀의 악기’, ‘세속적인 악기’로 낙인 찍혀서 교회, 특히 본예배 때는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좀 더 영적으로 민감한 교회들을 필두로
오케스트라 악기, 통기타, 피아노, 탬버린 외의 악기들이 급격히 예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악기들이 찬양에 추가되면서 우리가 상상한 이상으로 좋은 열매들이 많이 맺혔고,
그 후로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실력이 있는 팀이든 없는 팀이든
신디사이저와 드럼과 일렉 기타와 베이스 등의 밴드 악기들을 마구마구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런 악기들의 영향인지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인지 미처 구별하기도 전에 어느 새
교회의 찬양의 주 장르는 클래식과 포크가 아닌 밴드 음악과 전자 음악이 되어 갔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정말 아무나 드럼을 치고 아무나 일렉 기타를 치는구나 할 정도로 교회 안에
악기들이 넘쳐났다.
나는 찬양에 다양한 악기들이 사용되고 장르가 다양해지는 것을 지지해 왔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찬양을 더 영적이게, 더 아름답게, 더 찬양답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교회안의 찬양은 인원 수와 악기만 많고 장비만 비싸지고 정작 찬양의 맛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더니 점점 더 교회는 특정 악기나 장르를 편식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최신 트렌트의 장르만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와 악기만
고집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를 한 몸으로 하는 교회의 각 지체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각의 역할이 다르고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주장해도 된다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나는 원래 예수 믿기 전부터 특정 뮤지션의 특정 장르의 음악만 좋아하고 그 나머지 음악은
거의 배척하다시피 듣지 않았었다.
내가 인정하는 음악은 오직 폴 모리아(Paul Mauriat) 오케스트라의 연주 음악뿐이었다.
그랬으니 내가 처음 교회를 갔을 때 받았을 충격을 생각해 보라!
교회에서 예배 때 들은 음악은 내 기준으로는 거의 음악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도 아닌데다가 그나마 실력도 없는 성가대나 찬양팀의 음악을 듣는 것은
내게 고역이었다.
하지만, 이랬던 내가 예수님과 성령님을 체험하고 나서 찬양에 영적 감동을 받게 되었고,
그 감동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든 악기와 장르와 실력에 대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람이 멜로디를 노래하는 장르가 아닌 연주 음악만을 좋아했던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을 알게
된 후로는 사람이 부르는 음악들을 듣게 되었다.
나는 점점 더 여러 장르와 악기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싫어하던 장르였던 락과 힙합까지도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개인적인 음악 취향이 바뀌었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하나님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나는 여전히 락이나 힙합이 싫다.
그리고 나와 가장 안 맞는 장르들 중 하나는 국악인데 하나님을 위해 곡을 쓰다보니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국악 풍의 곡도 만들었다.
다시 한번 말한다.
내가 국악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곡을 쓰다보니 국악적인 곡을 쓴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장르나 좋아하는 곡이 존재한다.
그리고 특정 장르나 악기나 곡이나 가수를 좋아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에 묶인 나머지 하나님의 영감이 담긴 수많은 찬양들을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어쩔 것인가?
우리는 우리 영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음악적 편식 또한 포기해야 할 것이다.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