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Henry Wadsworth Longfellow)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Henry Wadsworth Longfellow) 출 생 : 1807년 2월 27일 메인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사 망 : 1882년 3월 24일(75세) 배 경 : 변호사인 아버지는 아들도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다 교 육 : 보우댕 칼리지(Bowdoin College)를 졸업하면서 학교 측으로 부터 현대언어 교수직을 제의받았다./ 당시 19세 (졸업 후 약 3년 동안 유럽에 유학후 귀국) 1829년 : 1835년까지 모교인 보우댕 칼리지 교수로 재직하였다. 하버드대학 교수가 되기 전에 또다시 유럽으로 갔으며, 함께 갔던 부인 매리 스토러 포트가 유산 후 로테르담에서 죽었다. 1834년 :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임명 1837년 : 캠브리지에 혼자 돌아온 롱펠로우는 찰스강이 내려다 보이는 집에 하숙을 한다. 이 집은 크레이기(Craigie)라는 괴팍한 여인의 소유였는데 몇 년 후 이 집의 소유가 나탄 애플턴(Nathan Applet!!on)이란 사람의 소유로 바뀌면서 롱펠로우는 그집 딸 프란시스 애플턴 과 1844년 결혼하게 되며 이 집은 결혼선물로 롱펠로우 부부에게 주어졌다. 롱펠로우는 하버드에서 주옥같은 시집을 내놓아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롱펠로우의 집 은 하버드 대학촌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에머슨, 호오손, 줄리아 와드 호우, 찰스 서머 등 유명한 문학가, 철학자들과 학생들이 이 집에 모여들었다. 롱펠로우는 친구인 나다니엘 호오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1847년 자신의 대 표작인 [에반젤린](Evangeline)을 쓰는데 [줄거리] 에반젤린이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 미국 전역을 떠돌아 다니다가 마침내 필라델피아에서 가브리엘을 찾아내지만 이 때는 이 미 그가 죽어가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1854년 시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하버드 교수직을 사직하고는 시를 쓰게 된다. 그 결과
[Hiawatha의 노래]인데 이 장시는 처음으로 미국 인디언을 소재로 쓰여진 시로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861년 부인이 우연한 화재사고로 죽고 롱펠로우도 부인을 구하려 다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되고 이로 인해 롱펠로우는 수염을 기르게 된다. (사진 참조) 그 후 롱펠로우는 사망할 때까지 20여년간 고독하고 우울한 생활을 하게 되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단테의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하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롱펠로우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등 유명 대학으로부터 명예학위를 받기도 하고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초청받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명예를 받았다. 1882년 3월 24일 그가 죽었을 때(75세) 반 위크 브룩스는 “뉴잉글랜드의 아침을 비추던 모든 태양 가운데서 그는 가장 달콤하고 가장 큰 태양이었다” 라고 읊었다. 롱펠로우의 집에서 1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마운트 오번(Mount Auburn)이라는 공원 묘지에 롱펠로우는 묻혔다. 18년간 하버드대학 교수직에 있었으며, 케임브리지에서 많은 詩를 발표하였다.
[에반젤린/1847년] 핀란드의 칼레발라의 영향을 받고서 쓴 인디언의 신화적 영웅 이야기
시 [하이어워사의 노래 / 55년] [퓨리턴 군인의 연애 이야기 "마일즈 스탠디시의 구혼/58" 등의 장시(長詩)가 유명하다. [인생찬가, 밤의소리/39년] [마을의 대장간을 포함한 민요/42년] [화살과 노래를 포함한 블루주의 종루(鐘樓)/45년] [길가 여인숙 이야기/63∼74년] [단테의 신곡 번역/65∼67년] [황금 전설/51년] [뉴잉글랜드의 비극/68년] [신성(神聖) 비극/71년] [크리스터스/72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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