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푸념
푸념 1.
아신역(양평)에서 서울 나들이를 하려면 왕십리역까지 전철 타고 약 1 시간이 걸린다. 책을 보자니 조금은 어지럽고 눈감고 있으면 지루하다. 오전 11 시경 승객이 별로 없는 전동차의 노인석에 앉아서 살피는 중에 옆자리 노인이 느닷없이 말을 걸어온다.
- 노인 A) 내 이야기를 좀 들어 볼려우? 내 나이 80 이 넘었으니 노인 푸념인가 보오. 나는 여주 읍내 작은 아파트에 산다오, 댁은 어디에 사슈?
- 노인 B) 나는 아신리에 삽니다.
말끔한 옷차림에 금테안경을 쓰고 지팡이를 무릎사이에 세워놓고 보청기를 귀에 꽂고 맑은 푸른색 눈동자에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지난 일을 엮어나가니 마침 오전이라 승객이 별로 없어 다른 승객에게는 별 불편함이 없어보인다. 오랫동안 전철 타는 시간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지루하지 않고 즐겁다고 어린아이처럼 무척 좋아한다.
여주 노인이 말한다.
- 나는 1 남 3녀 자식을 두었고 아들이 54 세 인데 지금 택시 운전을 하고 며느리는 구청인가(?) 어디에서 임시직으로 일 하면서 내외가 버니까 근심 걱정은 없다오. 이제 부지런히 돈을 모아 전셋집에서 작은 집을 사는 일이 남았지요. 손녀는 시집을 갔고 아주 늦게 본 손자는 이제 초등학교에 다닌 다오. 아들이 매달 생활비를 30 만원을 보내줘요. 그런데 말이요, 본래 약조는 월 50 만원을 보내주기로 하였지. 왜냐하면, 7 년 전 사업자금이 부족하여 여러 번 청탁이 있어 내가 가진 게 전부인 밭을 팔아 1 억원을 주면서 사업의 승패와 관계없이 평생 매달 50 만씩 생활비를 주기로 하였으나 사업이 부도가 나서 모든 게 탕진 되어 어쩔 수 없이 20 만원을 깎아주고 오늘에 이르러 조금은 괘씸한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쑤?
- 예부터 내리사랑이지, 치사랑은 그리 쉬운 아니니 다소 언짢은 일 이지만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요.
이렇게 응답하니 ‘그렇지요!’ 하면서 금세 수긍을 한다.
여주 노인이 다시 말을 이어간다.
- 하늘이 돕고 모두가 지난 세월 부지런히 일하여 나라가 富國이 되니 6.25 참전 보훈수당이 월 30 만원 나오고 불광동 사는 딸네가 월 20 만원 생활비를 보태주고 나라에서 생활 보조금이 월 20 만원이 나오니 모두 100 만 여 원이니 넉넉치는 못하나 노인 둘이 작은 아파트에 사는 데는 지장이 없고 노후를 즐겁게 지난 다오. 늦게 본 손자에게 볼 때마다 꼭 만원씩을 준다오, 그 기쁨은 참으로 좋아요.
그런데 말이요, 여주 태생인 나는 읍내에서 가정을 꾸려 평생 열심히 살면서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여 처 이름으로 등기를 해주고 조용한 가정평화 속에서 여유롭게 사는데, 갑자기, 오래 전 출가한 막내 딸이 사업을 실패하여 손을 벌리니, 과부족이 없는 내 생활에 갑자기 그림자가 내리니 어쩌면 좋소? 이미 사업자금으로 사는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융자를 5 천만원을 지원하였는데 망막하구려! 아파트를 팔면 차액이 7 천만원 정도 생기니 할멈은 그 돈 갖고 막내딸 집으로 가고 나는 서울 아들집으로 가자 하니 할멈이 싫다고 하니 대책이 없구려.
건너편 노인 석에 앉아있는 70 대 중반의 노인부부가 얼굴에 가벼운 웃음을 띠며 경청을 하는구나. 이제 결론을 내리려는 듯 여주 노인은 자세를 가다듬고 지팡이를 곧게 세운다.
목소리를 조금 높여 여주 노인은 이야기를 계속한다.
- 우리나라에는 지금 노인 인구가 너무 많아. 보시오, 전철도 무임승차 노인이 얼마나 많소? 의술이 발달하고 보험으로 치료하니 수명은 길어지니 나라에 큰 부담이 될 것이요. 먼저 온 사람은 부지런히 먼저 가야 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네요. 얼마 전 전철역 오르막 계단 중간쯤에서 넘어져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오. 그때 구르면서 ‘아! 이대로 눈을 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지요. 눈을 뜨니 별반 다친 데도 없어 부스스 일어났다오.
노인의 걱정은 끝이 없어 보이네.
- 그래도 노인장은 아주 작은 기반이라도 자식들에게 줄 수 있으니 하늘의 복이라고 답하여주고 자식들이 분수에 알맞은 꿈을 다시 키우면 필경 이루어 질 것입니다.
- 정말 그럴까요!
노인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회기역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조용히 지팡이를 의지하여 떠나는 모습이 스쳐지나 가는 어느 노인의 푸념이지만 어쩐지 마음에 잔상으로 남는구나.
불현듯 밝은 내일을 노래한 Sarah Brightman(영국)의 영혼의 노래 Nella Fantasia(환상 속으로)의 한 구절이 마음 속에 자리를 잡는구나.
“각자의 어둠이 너무 어둡지 않기를
환상 속에서 난 밝은 세상이 보입니다.
Li anche la notte meno oscura,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chairo.”
푸념 2.
젊은 시절부터 아주 오래된 친구가 능력이 있어 아직도 교수직을 수행하고 있으니 이 가을에 기별이 오기를 대학축제에 참가를 원하여 새벽부터 준비하여 2 시간 넘게 전철을 타고 교정에 도착하니 소강당에서 학술 세미나가 준비 되어있어 다소 생각이 어긋나는 순간이 있었으나 붉은 잠바차림으로 객석에 앉아 3 시간이 넘게 주제에 대한 panelist들의 왕성한 의견 교환을 편안한 마음으로 듣는다.
점심 시간을 훌쩍 넘어 계속되는 토론에 허기가 진다. 다행히 주머니에 아침에 할멈이 넣어준 초콜릿이 있어 잠시 시장끼를 메우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러 귀를 기울여 본다.
勞使政 위원장의 축사와 한국 표준 협회장의 發題와 함께 토론을 시작하여 여러 가지 의견과 제안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래의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한국기업의 이상적 형태를 각 분야별로 모색하는 것으로서 향후 기업의 국제적 인증 제도의 자격 조건인 ISO 26,000 에 대한 준비와 이를 통한 또 한번의 한국 기업의 도약을 위한 명제를 매년 4 회째 이어 오고 있다.
참가한 panelist 들의 살펴보면;
한국 표준협회장, 바른 경제고문, 한국노총 부위원장, 전 민주노총 위원장, 환경 운동연합 대표, 경실련 상임 위원장, 한국 벤처협회장, 이코노비즈 회장, U.N 글로벌 컴팩트 사무총장, 유타 대학[미국] 교수 등이다.
ISO 26,000이란 기업의 투명성과 윤리성을 바탕으로 노사문화의 창달, 친 환경적 기업 행위, 기술 개발, 안정적 고용방안 등을 바탕으로 총괄적 기업의 자격을 認證하는 제도로서 이를 통하여 새로운 경쟁성을 기업이 확보 함으로서 미래의 Global market 에서 생존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분야 별 협조사항이 개진된다.
한국노총의 상생과 발전을 위한 연구와 타협은 humanism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책임의 완수를 강조하며 그와 같은 정책이 이미 국, 내외에서 수행 또는 목표로 삼고 있다.
민주노총은 권태일 열사가 자결하기 전 일기를 보면 자본금 5 천만원으로 창업하여 투명하고 도덕적인 노사문화를 바탕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꿈을 기록하고 있어 미래에는 이러한 꿈이 실현이 되는 날을 기대하여 본다.
환경운동 측면에서는 생산되는 제품으로 인하여 대기로 발생되는 탄소량이 기재됨에 따라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시대가 올 것이고 地上의 환경보호 활동의 참여도에 따라 기업의 활동이 제한되고 기업의 Rating이 적시될 것이다.
경실련과 벤처협회는 기업의 조건이 무엇보다 건전한 고용과 성장 동력을 유지하는데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유타 대학(미국) 교수는 한국의 지난 40 여년의 경제적 기적은 감동적이며 유타 주도 척박한 환경(대부분 사막)에서 지난 100 여년 동안 오늘의 경제적 풍요를 이루었으므로 한국의 경이적 경제성과를 느낄 수 있으며 더욱이 ISO 26,000 운동을 한국이 먼저 시작하는 모습에 높은 격려를 보낸다.
구내 교수 식당에 잘 차려 놓은 늦은 점심을 들면서 마무리에 나선 김 총장이 감사를 표하는 세련된 진행이 돋보인다. 역시 장관 경력도 있고 경제학 박사답게 분야별 closing remarks를 하던 중 본인에게 작은 의견을 부탁한다.
- 가을 운동회 인줄 알고 잠바차림으로 왔으니 양해를 부탁합니다. 기업에 오래도록 봉직 한 후 지금은 시골에서 세월을 낚고 있는 총장의 오랜 친구 입니다. 3 시간여의 토론내용을 경청하며 즐거웠습니다. 단지 작은 의견을 첨언한다면 미래의 이상적 한국 기업을 추구하는 과정에 있어 많은 분야의 참여가 불가피 함으로 각 분야의 권리와 요구를 먼저 주장하면 그 열매를 쉽게 거두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제시된 목표의 성취를 위하여 나 스스로가 먼저 무엇을 기여하고 노력할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푸념 섞인 소리를 하니 총장이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며 즉시 화답하여 준다.
- 옳은 말씀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이 그의 시 “담쟁이”를 직접 낭송하고 그 시비를 대학 교정에 제막함으로써 푸념 섞인 하루가 저물어간다.
담쟁이
도 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10. 28. 2010.
효천 정 웅
첫댓글 최근 '남자, 나이가 드는 게 아니라 멋이 든다" 는 남성화장품 CF 처럼 曉泉형의 멋진 隨想은 매일 아침 洗顔 후 바르는 Apre's Rasage향취 같습니다. 내외분 건강하시고 매일 매일 좋은 하루되시기를...
효천, 날이 갈수록 글 솜씨가 늡니다. 이러다가 글쓰기로 먹고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특히 '푸념1'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네요. 亡言多謝 !
예! 학헌형의 말이 맞는 것 같네요 갈수록 글 쓰기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푸념1은 요즘 많은 노인들이 느끼는 공통분모가 아닐런지 모르겠네요, 형편이 좋아 일찍 집장만 해준 분들은 다행이려니와 자식이 못살아 울고 있느데 강심장의 노인이 몇분이나 된런지요. 좋은 곳의 착안 글입니다. 적당한 시도 돋보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