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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강좌 - 톨스토이를 말한다(중)
인생은 ‘드라마’ 주역은 ‘나’
자기 자신이 보탑
인간을 억누르고 짓밟으려는 힘. 이것은 지금도 있다.
관리사회, 배금주의, 권력악(惡) - 이런 것들은 인간을 구분하고 분단하며 협소하게 만들어 살아갈 힘을 빼앗으려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한없는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다. 무상의 보물은 자기 자신 속에 있다.
니치렌 대성인은 문하인 아부쓰보에게 말씀하셨다.
“아부쓰보가 바로 보탑이고 보탑이 바로 아부쓰보이며 이것 이외에 재각(才覺)은 무익하니라”(어서 1304쪽)
묘법을 수지한 자기 자신이 ‘보탑(寶塔)’인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야말로 ‘보물 덩어리’인 것이다.
이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가르쳐 주고 계신다.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무한한 보물을 이끌어 내는 것이 불법(佛法)이다.
역사를 만드는 것이 위대한 민중
톨스토이의 창조적 에너지는 34세 때에 소피아부인이라는 좋은 반려자를 얻어 본격적인 문학의 길로 향했다. 부인은 헌신적인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체험을 바탕으로 사색에 잠기고 독자적인 스타일을 쌓아 올리며 톨스토이는 30대 후반부터 41세까지 <전쟁과 평화>를 저술하는 일에 몰두했다.
이야기의 무대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러시아에서 말하는 ‘조국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군대를 격퇴했다. 이때의 승리에 얽힌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켜 왔다는 사실을 톨스토이는 잘 알고 있었다.
<전쟁과 평화>의 스케일은 거대하다. 퍼내고 또 퍼내도 끝이 없는 깊은 샘과 같은 명작이다.
인상깊이 남아 있는 한 장면이 있다. 러시아군과 프랑스군이 격렬한 전투를 한창 버리는 가운데 안드레이 공작이 전쟁터에서 쓰러졌다. 눈에 비치는 것은 오직 높은 하늘뿐이다. 공작은 생각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정적과 편안함 그리고 장엄함. 조금 전까지 달리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별천지다.”
“다 같이 달리고, 소리를 지르며, 싸우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프랑스 병사와 포병이 증오심에 불타, 두려워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막대기(포신을 청소하는 긴 막대기)를 서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높은 하늘, 끝없는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의 모양새는 전혀 다르다. 어째서 나는 지금까지 이 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마침내 그것을 깨달은 나는 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이 끝없는 하늘 이외의 모든 것은 허망한 것에 불과하다. 이 하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있는 것은 오직 정적(靜寂)과 평안뿐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인간들이여 어리석은 전쟁을 언제까지 계속하고 있을 것인가. 인간들이여’ 하며 그렇게 하늘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의 격류 속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작은 한 사람의 인간. 그것을 묘하사면서도 톨스토이의 필체는 참으로 밝고 힘차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야말로 인간의 바람직한 생활이다. 삶은 모든 것이다. 삶을 사랑하라. 산다는 것은 훌륭하다. 그가 노래하는 것은 힘찬 생명의 찬가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피에르가 아내인 나타샤에게 하는 말은 그대로 세계를 향한 호소다.
“내가 말하는 것은 선(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서로 손을 잡자. 그리고 선을 실천하는 것을 우리의 가치로 삼자는 것이다.”
“나는, 오직 위대한 결과를 낳는 사상은 모두 간단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나의 사상은 만일 악인들이 단결하여 힘을 휘두르면, 선인들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실로 간단하지 않은가!”
톨스토이는 학대 받은 민중의 위대한 저력을 묘사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민중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민중이다! - 톨스토이의 외침은 영원하다.
무엇을 위해
<전쟁과 평화>를 완성할 무렵의 일이다.
톨스토이는 토지를 사기 위해 검분(檢分:입회하여 실태를 검사함)하러 나갔다. 매우 멀어서 5일이나 걸리는 여행이었다.
오랜 여행 중에 톨스토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점점 허무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 걸까!’
어느 날 밤, 공포에 휩싸였다. 그것을 나중에 <광인의 일기>(저서명)에 썼다.
“(도대체 자신은 무엇을 염려하고 있단 말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단 말인가) ‘바로 나지’ 죽음의 목소리가 소리도 없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여기에 있지.’ 오싹해지는 한기와 함께 내 온몸의 털이 빳빳하게 섰다.”
톨스토이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와 모든 것이 소멸할 텐데 이런 일을 하고 있어도 좋단 말인가, 인생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봐야 하리라.”
그렇게 절실히 느꼈다. 소설에서 높이 칭송한 이상을 어떻게 현실의 인생에서 살릴 것인가 하는 점에 직면한 것이다.
그는 칸트와 쇼펜하우어 등의 철학서를 탐독했다. 절대적 행복의 궤도를 진지하게 찾아 다녔다.
진정한 행복이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이다.
그럼,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내용은 사람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전쟁과 평화>를 집필할 무렵부터 톨스토이는 둘째 형인 세르게이 그리고 여동생 마리아의 결혼과 가정을 위해 열심히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남매가 정말로 행복해졌는지 그것은 모른다.
세르게이는 당시, 차별을 받은 민족의 여성과 결혼하여 이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마리아는 가정생활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결국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전쟁과 평화>를 저술한 후 45세에서 49세까지 집필한 <안나 카레리나>에서는 순수하게 사랑을 추구한 까닭에 부조리한 사회에 짓눌리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장편이 쓰여 진 배경에는 톨스토이 자신과 남매의 인생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행복도, 명성도 손에 쥐고 있던 주인공 안나. 남편과 미묘한 마음의 갈등에서 안나의 가정은 파괴되어 간다.
가장 사랑한 어린 아들과도 강제로 헤어지게 된다. 아들 생일날 몰래 만나러 간 안나는 쏟아지는 눈물로 가슴이 미어져 준비해 온 장난감을 건네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아들은 이유는 몰랐지만 가장 좋아하는 어머니가 불행하며 괴로워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랑을 왜곡시키는 사회, 지각없는 편견, 안나는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더욱이 <안나카레리나>의 마지막 장에서 남의 눈에는 행복의 절정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남편.
레빈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왜 이곳에 이런 모습으로 있는 것인가.’를 알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그것을 알 수 없다. 결국 살 수 없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무엇 때문에 사는지,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자살하기 직전, 벼랑 끝에 겨우 버티고 서 있는 것과 같았다.
안나도 불행했다. 그러나 애정에 감싸인 레빈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럼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 어려운 문제에 답을 준 것은 한 사람의 농민이 한 말이다.
“혼(魂)을 위해 살아라!”
민중과 나눈 대화를 계기로 레빈은 신앙에 눈을 뜬다. 인간을 철저히 탐구한 톨스토이의 행보는 마침내 종교로 향하게 된다.
50세를 앞두고 톨스토이는 인생 최대의 ‘위기’에 부딪쳤다. ‘생사(生死)란 무엇인가!’라는 근본 문제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비유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보트에 태워져 강의 흐름에 맡겨 온 것과도 같다. 본래는 강 건너 기슭을 목표로 노를 저어야 했으나 흐름이 빨라 목적지를 잊고 말았다. 내 주위에는 그저 강이 흐르는 대로 환성을 지르고 미친 듯이 기뻐하며 하류로 떠내려가는 뱃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하류의 여울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여울을 타게 되면 곧 보트는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사실, 박살이 난 보트도 보였다. 나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리고 흐름을 거스르며 보트를 젓기 시작했다.”
톨스토이는 어릴 적에 부모를 여의었다. 존경하는 큰형 니콜라이도 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죽음’이라는 문제는 늘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것은 끊임없는 한 곳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하나의 검은 얼룩이 되어 마음속 깊이 새겨지고 말았다.
톨스토이는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내가 죽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살다가 죽는다. 나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어떻게 나는 나를 구제해야 하는가!”
일상생활은 분주하게 지나간다. 영지를 관리한다. 아들을 교육한다. 글을 써서 큰 명성을 얻는다.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마음의 소리가 절규한다. 그러나 무엇 하나 대답할 수 없다. ‘답을 찾아야만 한다.’고 톨스토이는 생각했다. 그는 종교, 사상, 철학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민중이 구제해 주었다
톨스토이는 사색에 사색을 거듭했다. 타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교전(敎典)도 정밀하게 연구했다. 그러나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이윽고 그는 가난하고 소박하며 학식도 없는 사람들 속에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 신앙은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없어서는 안 되는 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인생의 의의를 자각하여 삶도, 죽음도 마음편안하게 흔들림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관념뿐인 학자나 위선의 성직자가 아니다. 민중 속에서 톨스토이는 살아있는 신앙을 보았다.
“민중이 나를 구제해 주었다”라고 톨스토이의 전기 속에서 로맹 롤랑은 통찰했다.
생활과 신앙을 일치시키고 있는 단순한 사람들 속에 단연 몸을 던졌다.
창가학회에도 무수한 민중의 ‘행복박사’ ‘희망박사’ ‘우정박사’가 있다. 용감하고 위대한 ‘인간학의 교수’가 있다.
대학의 교수가 학력이 없는 한 부인에게 위대한 생명철학인 ‘교학’을 배우는 아름다운 광경이 초창기 이후로 계속 있어 왔다. 이것이 학회의 강함이며 긍지이다.
궁극적으로 생사를 해결하는 길은 신앙밖에 없다.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우선 죽음에 관하여 배우고 나중에 다른 것을 배워야한다”(어서 1404 통해)라고 가르치셨다. 생사의 고통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것이 신앙이다.
행복이란 고난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난에 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대성인께서는 “마음만이 중요하니라”(어서 1192쪽)라고 말씀하셨다.
어떠한 거친 파도도 모두 승리를 향한 힘으로 만들어 금강불괴의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야 한다.
니치칸 상인께서는 “우리는 묘법의 역용(力用)으로 즉 연조 대성인으로 나타나느니라”(당체의초문단)라고 단언하셨다.
부처와 동등한 힘이 자신 속에서 솟는다. 여기에 신심의 가장 깊은 뜻이 있다.
법을 위해, 타인을 위해, 평화를 위해 행동하면서 ‘생(生)도 환희’ ‘사(死)도 환희’라며 연원한 행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자신이 바뀌면 가정이 바뀐다. 직장이 바뀐다. 지역이 바뀐다. 그것이 세게도 바꾸어 간다. 여기에 인간혁명이라는 희망의 방정식이 있다.
톨스토이가 종교를 탐구한 글을 쓴 자전적 소설이 <참회록>이다. 51세에 착수하여 53세에 완성했다.
<참회록>에서 톨스토이는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종교적 신념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는 이제까지의 자기 인생을 단호히 부정했다. 사회적인 영예가 정점에 달한 인간이 이른바 ‘나는 인생을 다시 시작 했습니다!’라고 공언한 것이다.
<참회록>에서 톨스토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인생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그는 민중 속에서 살아있는 ‘신앙’을 발견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점에는 아무리 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 정교회에 대해서 정면으로 맞서 투쟁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사형이나 전쟁을 일삼아온 사실을 엄중히 고발했다.
톨스토이는 성직자의 기만을 예리하게 폭로하고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종교’ ‘인간을 억압하는 종교’와 결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국가 권력과 영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성직자는 민중을 얕보고 있었다. 권력에 저항하는 자는 엄하게 단속했다.
<참회록>은 게재할 예정이던 잡지가 검열 받는 과정에서 삭제되고 말았으며, 훗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발표되었다.
인간을 위한 종교. 인간의 위대함을 빛내는 철학. 그것은 필연적으로 권력과 대결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자들의 뜻대로 되지 않는, 자립의 정신만큼 성가신 것은 없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썼다.
“신앙은 적어도 그것이 신앙인 이상, 그 본질에서 볼 때 권력에 복종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작은 새는 살아 있다. 그리고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톨스토이의 ‘제2의 인생’은 거대한 권력과 투쟁하는 인생이었다.
이제는 톨스토이에게 종교란, 의식이나 형식이 아니었으며 특정 종파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살아있는 신념의 체계이며 자립한 인간을 만드는 골격이었다.
톨스토이는 믿었다.
“그 무엇에도 파괴되지 않는 행복은 신앙이 아니고서는 잡을 수 없다. 인간은 숭고한 정신성을 자각하지 않으면 동물적인 삶의 방식으로 타락하고 만다. 자기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자 생각한다면 남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이다.”
보통은 은퇴할 만한 인생의 후반기. 톨스토이는 더욱 젊음이 넘치고 더욱 의기양양했다.
올바른 인생이란!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은!
톨스토이의 탐구는 더욱 깊어갔다. 그리고 사색의 결정(結晶)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민중을 위한 사상을 행동으로 옮긴다
톨스토이는 결심했다. ‘앞으로는 민중과 함께 살고, 민중을 위해, 민중의 말로 알기 쉽게 글을 써야겠다. 그리고 사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출판사를 만들어 민중을 위한 잡지를 냈다. <바보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많은 만화도 발표했다. 그리고 다시 재개한 학교에 심혈을 쏟았다.
인근에 사는 농민들 중에 환자가 생기면 즉시 달려갔다. 의사를 부르고 딸에게 약을 마련하게 했다.
가난한 사람이나 고아를 위해 톨스토이 자신이 가래로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 추수까지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쾌활하게 일을 했다.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래프 톨스토이가 우리 모두에게 전해 주었던 바로 그 발랄한, 환희 작약한 기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앞이 가로막혀 있던 동료가 있었다. 톨스토이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옛날, 어느 곳에 황제가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잘 안됩니다. 그 점을 현자(賢者)에게 상담하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때와 가장 소중한 사람과 가장 중요한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제는 자신에게 있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자 한 소녀가 말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는 때입니다. 누구보다도 필요한 것은 지금, 자신과 연관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일은 지금, 자신이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래저래 고민하기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금을 후회 없이 살아라!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구제하라! 바로 이렇게 톨스토이는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냉혹한 사람들은 자신의 냉혹함을 변호하기 위해 언제나 나쁘다고 말한다.”
톨스토이를 지지하며 돕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도 하려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21세의 프랑스 청년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예술과 인생에 대해 고뇌를 거듭한 끝에 혼(魂)의 구제를 구하고 있었다.
이 무명의 한 청년에게 톨스토이는 실로 38쪽에 이르는 정성어린 답장을 썼다. 청년은 감격했다. 그 청년이 나중에 대(大)작가가 된 로맹 롤랑이다.
톨스토이는 기근을 구제하는 데에도 동분서주했다.
“나는 한가롭게 집에서 생활하며 저작에만 열중하고 있을 수 없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완전무결하게 처리도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있는 것은 더더구나 할 수 없다.”
민중의 혼을 분기 시키는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 하나의 결론이었다.
톨스토이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 세계는 아름다우며 그리고 즐겁다.
우리는 이 세계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 다음세대를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더 아름답고 더 즐거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 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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