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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걸음걸이를 체크해보셔요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2월 17일 월요일인 오늘 하루 동안도 즐겁고 기쁜 날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곳 김포는 지난 12일에 눈이 조금 내린 후, 요즘은 푸근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주도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3년 반째 인테리어필름 기술직에 종사하고 있는 도승현(22) 씨는 그 자신이 고교 시절 이과에서 전교 1등을 여러 번 했지만, 그러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기술을 배워 월수입 400만 원을 달성한 이야기를 공개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문득, 우리도 삶에서 억울하게 자꾸 넘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일도 잘 안 풀리고 인간관계도 꼬이고, 뭔가 될 것 같았는데 안 되고 그렇게 자꾸 넘어지곤 합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나도 남들 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데, 도대체 나더러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지?’ 넘어져서 울고 싶은 아이처럼 그렇게 막막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 삶에서 부딪히고 찢어지고 부서지고,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그 이유를 밖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내 걸음걸이를 한 번은 점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컨대, 반복해서 넘어지는 내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꾸 이 동네에서 넘어지니까 이 동네를 떠날 거야.’ ‘자꾸 이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니까 이 직장을 떠날 거야.’ 그래서 계속 옮기고, 옮기고, 또 옮깁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내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면, 나 자신 안에 갇혀있던 나를 밖으로 꺼내어 내 걸음걸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내가 안짱다리는 아닐까요?(출처 ; 지금까지 산 것처럼 앞으로도 살 건가요? 김창옥)
●악인의 길은 캄캄한 어두움과 같아서 그들이 넘어져도 무엇에 걸려넘어졌는지조차 알지 못한다.(잠4:19)
●아픈 마음에도 간절함은 희망을 피울 수 있다는 걸. 후회의 페이지 또한 나의 일부였다(김정은)
●혹시 이 편지를 원치 않으실 경우 ‘노’라고만 보내도 됩니다.
●아래의 글은 원하시는 경우에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공무원 '홍 누나'의 조용한 죽음
오랜 인연이라 해도 그 시작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고 끝까지 그러하리라 믿었다고 했습니다. 언론에 짧은 부고가 실렸습니다. ‘홍선옥(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 씨 본인 상(喪), 향년 66세’. 개인적인 친분이 없다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SNS에 그를 기리는 추억담이 잇달아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가리기로 정평 난 까칠한 기자들의 글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일을 놓을 수 없던 천성, 자기주장 대신 언제나 듣는 데 열중했던 누나…. 그들이 평소와 달리 넘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슬픔과 회한으로 추억하는 ‘홍 누나’가 어떤 이였는지 궁금했습니다.
몇몇 사람에게 사연을 물었습니다. 국가공무원 공채 시험 출신은 아닌 듯한데, 수십 년간 교유하고도 공무직인지 몇 급인지 그의 신분과 지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한목소리로 홍선옥이야말로 문체부 홍보 행정에서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레전드’라고 했습니다. 그는 문체부와 언론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메신저였습니다. 대통령 9명, 장관만 31명을 거쳤고 1만여 기자의 연락처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보도 자료 전달부터 민감한 정치적 문제에 대처하는 장차관의 인터뷰까지, 기자 T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일개 사무관으로서 ‘장관급 대응’을 했습니다.
홍선옥 씨 개인에 대한 자료는 ‘박물관 신문’ 제578호의 인터뷰뿐입니다. 그것을 통해 198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홍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17년 동안 매달 ‘박물관 신문’을 홀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전공자가 아니고 학벌도 없었던 그는 오로지 발로 뛰어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증명했습니다. 올해로 창간 55주년을 맞는 ‘박물관 신문’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박물관사의 사료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선옥 씨의 특이점은 성과나 역할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철저한 그림자이자 조력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긴요하고 대체 불가능했습니다. 기자 P는 인간적인 친밀감을 바탕으로 어느 누구도 적으로 두지 않는 인간관계를 그의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만날 때마다 “밥 먹었냐?”고 물어보았고, 먹었다고 대충 답하면 “뭘 먹었냐?”고 꼭 물었습니다. 공무원 대 기자(記者), 공무원 대 민원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었습니다. T가 해직 기자 시절 우환으로 고생할 때 대기업 재단에서 공모하는 논문 프로젝트를 소개해 숨통을 틔워 준 것도 그였습니다. 한편, 여행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H 씨가 사전 통보 없이 협회비 미납으로 관광업 허가가 취소되는 날벼락을 맞았을 때,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사업자 등록증으로 영업이 가능한 방도를 일러준 사람도 그이, 홍선옥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졌을 때, 기자들이 발 벗고 나서서 정식 채용을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하루에 카카오톡 메시지만 수백 개를 받아 응답하고, 끝없이 반복되는 일을 성심껏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암 수술 후에도 후임을 구하지 못해 복직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일했고, 끝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특별한’ 공무원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무원 사회의 ‘무능과 무기력, 헛짓거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공무원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공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주지 못하는 풍토는 개선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아픔을 느낄 때, 모두가 비명을 지르지는 않습니다. 비명을 듣고 놀랄 사람들을 염려해 고통을 삼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난세에는 흔들리지 않는 것도 작지 않은 일입니다. 흔들리지 않아야 흔들리는 사람들의 의지가 될 수 있습니다. 빛나지 않는 곳에서 그 자리의 소임을 끝까지 지켰던 홍선옥씨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소하지만 참으로 흔치 않기에, 그를 잃고 나서, 많은 이들이 이토록 애통해 하는 것이리라.(출처; 김별아의 문화산책, 김별아 소설가)
똑똑한 사람들의 10가지 태도
1. 그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조용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종종 대화를 지배하기보다는 듣고
관찰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2. 그들은 자신의 무지함을 알고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의 한계를 알고
더 많이 배우는 데 열려 있습니다.
3. 그들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랑하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으로
스스로를 표현합니다.
4. 그들은 겸손합니다.
그들은 지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겸손합니다.
5. 그들은 가까운 친구가 적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독특한 관점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기 어렵습니다.
6. 그들은 통찰력 있는 질문을 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깊이 질문하여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합니다.
7. 그들은 결함과 허점을 파악합니다.
그들은 종종 시스템이나 주장을 조사하여 불완전함을 찾습니다.
8. 그들은 독서를 즐깁니다.
책을 좋아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것은 지적인 사람들에게 일반적입니다.
9. 그들은 강한 직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의 진정한 의도와 감정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10. 그들은 대립을 피한다.
지적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불필요한 논쟁과 갈등을 피한다.
TEN ATTITUDES OF SMART PEOPLE
1. They are usually quiet than others ? Smart people often prefer to
listen and observe rather than dominate conversations.
2. They are aware of their own ignorance Smart people
recognize the limits of their knowledge and are open to learning more.
3. They avoid bragging ? Instead of bragging, smart people let
their actions speak for themselves.
4. They are humble ? Despite their intelligence, they remain modest
about their abilities.
5. They may have fewer close friends ? They find it difficult to
connect deeply with others because of their unique perspective.
6. They ask insightful questions ? Smart people question deeply,
seeking to understand and analyze.
7. They identify flaws and loopholes They often examine systems or
arguments to find imperfections.
8. They enjoy reading ? A love of books and continuous
learning is common among intelligent people.
9. They have strong intuition ? They can often sense the true
intentions and feelings of others.
10. They avoid confrontation ? Intelligent individuals generally
avoid unnecessary arguments and conflicts.
정직이 가져다 준 선물
1990년대 미국의 자선사업가 케네스 벨링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빈민가를 지나던 중, 지갑을 잊어버린 것을 알았다.
벨링의 비서는 빈민가 사람들이 주운 지갑을 돌려줄리 없다며
포기하자고 했지만, 벨링은 지갑을 주운 사람의 연락을
전화기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전화연락은 없었다.
비서는 ‘지갑에 명함이 있으니 돌려줄 마음이 있었으면
벌써 연락이 왔을 겁니다.’ 라며 퇴근을 종용했지만
벨링은 침착한 모습으로 전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질 무렵 드디어 전화가 왔다.
지갑을 주운 사람은 남루한 차림의 어린 소년이었고, 돌려준 지갑에
든 돈은 그대로였다.
지갑을 돌려준 소년이 주저하면서 말했다.
“혹시 돈을 좀 주실수 있나요?”
비서는 그럴 줄 알았다며 소년을 비웃었지만, 벨링은 웃으며
소년에게 얼마가 필요한지 물었다.
“감사해요. 저에게 1달러만 주시면 돼요. 지갑을 주운 후
연락하기 위해 공중전화가 있는 곳을 찾긴 했지만,
전화를 걸 돈이 없어서 주변 가게에서 빌렸어요.
그 돈을 갚으려고요.”
소년의 말에 벨링은 속으로 감탄하면서, 의아하여 물었다.
“내 지갑에 돈이 있었는데 왜 그 돈을 쓰지 않았니?”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그건 제 돈이 아니잖아요.
남의 지갑을 허락도 없이 열면 안 되잖아요.”
소년의 얘기를 들은 비서는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소년의 맑은 눈을 본 비서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고,
벨링은 감동한 나머지 소년을 꼭 끌어안았다.
벨링은 즉시 지금까지의 자선사업 계획을 변경하여,
빈민가에서 학교에 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그곳의 몇몇 학교에 투자를 했다.
그렇게 마음이 바뀐 것은 바로 그 정직한 소년 때문이었다.
그 학교의 개학식 연설에서 벨링은 “다른 사람을 멋대로
추측하여 평가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사람들 속에 내재한 선량함을 믿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하늘은 정직한 사람을 도울 수밖에 없다.
정직한 사람은 신이 만든 것 중에서 최상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출처 : 세르반테스 글
노블레스 오블리주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한다.
'1347년, 칼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더 이상 원병을 기대할 수 없어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후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파견된다.
그러나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프랑스어: Eustache de St Pierre)’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한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 섯 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된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이
다르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실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관점의 차이
굉장한 부자 집 아버지가 가난한 사람들이 어찌 사는 가를
보여주려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갔다. 둘이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의 농장에서 2∼3일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어때 재미있었냐?" "네, 아주 좋았어요."
"그래,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알았어?"
"예, 아빠!!"
아버지가 묻기를
"그래, 무얼 배웠느냐?"
아들이 대답하기를,
"우린 개가 한 마리뿐인데, 그 사람들은 네 마리더라고요.
우린 수영장이 마당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끝없는
개울이 쫙 놓여 있더라고요.
우리 정원에는 수입 전등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밤에 별이
총총이 빛을 내더라고요.
우리 Patio(테라스)는 앞마당에만 있는데, 그 사람들은
지평선처럼 끝이 없더라고요.
우리는 작은 땅 안에서 사는데, 그 사람들은
넓은 들과 함께 하고 있더라고요.
우린 하인이 우리를 도와주는데, 그 사람들은 남들을 도와 주더라고요.
우린 음식을 사서 먹는데, 그 사람들은 직접 해서 먹더라고요.
우리 집은 담장으로 둘려 싸여 있는데, 그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싸여 있더라고요."
아버지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그런데 아들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아빠, 고마워요.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가를 알게 해주셔서."
사람의 성향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비판을 하므로 불필요한 논란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똥오줌 못 가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사이비 이단 종교에 빠진 사람도 불쾌감을 줍니다.
교주에 성향을 따르며 추종하며 순종하며 타인들을 우려시킵니다.
신앙생활은 가정에 평안을 안겨줘야 하는데 이분들은 가정을
파탄시키고 이혼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감입니다.
이 나라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줍니다.
종교는 정치의 중립을 지켜야하는 데 그렇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예수님도 예수님 제자 분들도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목사들이 정치에 개입해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비판을 해서 무신론자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하시는 분들이 증가합니다.
이분들 때문에 기독교 교계가 전체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참 슬픈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각자의 성향이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름의 이해성이 부족합니다.
내 생각이 다 틀린 것도 아니지만 옳은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길을 물을 때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쪽 코너에 호프집이 있거든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막걸리 집이 보입니다.
거기서 300미터 직진하면 됩니다."
목사님에게 길을 물으면 당연히
"저기 교회 보이시죠? 네 그 교회를 지나서 100미터 가면
2층에 교회가 보입니다.
그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다."
사람들에게 '+'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고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목사는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틀린)것이 아니고 (다를)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늘 이해의 대상입니다.
세 사람의 생각을 살펴보겠습니다.
세 명의 친한 친구가 세계에서 가장 큰 협곡인
‘그랜드캐니언’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한 친구는 그랜드캐니언을 보자마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말 장관일세. 그림보다 더 멋진 장관이야.
이 모습을 화폭에 그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네.”
이 사람의 직업은 미술가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두 번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하나님의 솜씨이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참으로 자연을 웅장하고 오묘하게 만드셨어.”
이 사람의 직업은 신학자였습니다.
세 번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여기서 소를 잃어버리면 도저히
찾을 수가 없겠는걸?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야.”
이 사람의 직업은 카우보이였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같은 세상도 다르게 보입니다.
다들 사람의 성향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
애썼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김용호 《영원의 양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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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게 우기는 놈
☞ 몽고반점을 중국집이라고
우기는 놈
☞ 복상사를 절이라고
우기는 놈
☞ 설운도를 섬이라고
우기는 놈
☞ 으악새를 새라고
우기는 놈
☞ 안중근 의사를 병원의사라고
우기는 놈
☞ 청남대를 종합대학이라고
우기는 놈
☞ 구제역을 지하철역이라고
우기는 놈
☞ 공모주를 술 이름이라고
우기는 놈
☞ 세 발 낙지는 발이 세 개라고
우기는 놈
☞ 갈매기 살을 갈매기의 살이라
우기는 놈
☞ 노숙자를 노씨 여자라고
우기는 놈
☞ 달마도를 섬이라고
우기는 놈
☞ 대주교를 다리라고
우기는 놈
☞ 고물상 노점상을 밥상이라고
우기는 놈
☞ 곡선미를 아끼바리 쌀이라고
우기는 놈
한 가지 성공 조건
공무원 한국사 강사 전한길은 그의 책 ‘네 인생 우습지 않다’(21세기북스)에서 자신의 성공 비결을 조심스럽게 밝힙니다. 그는 자신이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명문대를 졸업한 것도 아니며 외모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니라고 합니다. 성공할 조건에 100가지가 있다고 친다면 자신은 99가지를 가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신 그가 자신 있게 말하는 한 가지는 ‘열정’이라고 합니다.
열정은 부족한 모든 것을 채울 만큼 강력하고 요긴합니다. 고 조용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핵심 조직을 ‘구역’ 조직이라고 설명하면서 그 구역을 이끄는 구역장의 기준을 몇 가지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첫 번째 자질은 바로 열정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열정이 없는 사람,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열정을 가진 사람은 다른 모든 부족함을 디디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 열정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깃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다시 오토바이를 타자
80세 안팎의 대만 할아버지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대만을 일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이 사연은 2008년 대만의 한 은행 광고에 소개돼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 친구의 장례를 치르고 난 할아버지 다섯 명이 식사하기 위해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그중 한 할아버지가 “다시 오토바이를 타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말에 모두 젊은 시절의 꿈을 떠올립니다.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집 창고에 틀어박혀 먼지가 수북이 쌓인 오토바이를 꺼내 수리하고 대만 땅 전체를 일주하는 여행을 떠납니다.
당시 그분들의 평균 연령은 81세였습니다. 한 분은 청각에 문제가 있었고, 한 분은 암 투병 중이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심장에 문제가 있거나 관절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젊은 시절의 꿈을 안고 6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대만 땅 북에서 남으로 1139㎞를 13일 동안 밤낮으로 달렸습니다. 오토바이 앞에는 친구의 영정 사진과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입보다는 귀
요즘 우리 사회는 모이면 말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모처럼 웃음으로 가득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20여명이 모였는데 시종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가볍지만은 않은 모임이었지만 웃음이 계속됐습니다. 돌아오면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라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상대의 생각을 소중하게 다루려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결론처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생각이 결론되길 원합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좋은 길을 찾으려하기 보다 생각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법정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내 이야기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로 남의 의견을 듣는 것, 이것들은 조금만 열린 마음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용납하셨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입이 발달한 사람보다는 귀가 발달한 사람으로 살면 어떨까요.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재일교포 4세, 감사합니다
일본 오사카를 여행했습니다. 20년 만에 방문하는 오사카입니다. 코리아타운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길거리에 온통 K팝이 울려 퍼지는 것이었고 청소년과 젊은이가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거리의 치킨집 떡집 떡볶이집 국숫집 등 한류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추워서 몸을 녹이려 깔끔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재일교포 3세인 어머니와 4세 따님이 함께 2주 전에 오픈한 가게였습니다. 가게 이곳저곳에 개업 축하 화분이 전시돼 있었는데 보낸 사람의 이름이 모두 한문으로 쓰인 한국식 이름이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이 사람들이 한국 친구들이냐고. 그랬더니 한국 친구가 아니고 재일교포 친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을 살았어도 여전히 한국식 이름을 고스란히 지닌 것에 가슴 뭉클했습니다.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부하고 그냥 ‘특별영주권자’라는 불평등의 삶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시민권을 얻고자 애쓰고 현지식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여타 지역의 교포들과는 전혀 다른 민족의식이었고 왠지 모를 감사함도 느꼈습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진짜 행복한 사람
스승이 1m쯤 되는 선을 긋고 긴지 짧은지 물었습니다. 어떤 제자는 길다고 하고 다른 제자는 짧다고 했지요. 스승은 그 선을 건드리지 말고 반으로 줄여보라 했습니다. 제자들은 그럴 수 없다고 했지요. 그러자 스승은 그 선 옆에 2m쯤 되는 선을 그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그 선은 반 토막 난 듯 짧아졌습니다. 우리가 길고 짧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상대적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도 그렇지 않을까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마 5:3, 새번역) 산상수훈의 제일성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지요. 세상에서는 부자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궁핍하게 살기를 바라실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진짜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지요. 그런데 진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주는 보상이 아니라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큰 사람입니다.
서재경 원로목사(수원 한민교회)
바베트의 만찬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이 쓴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바베트라는 여인이 덴마크의 작은 해안마을에 사는 자매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오게 됩니다. 어느 날 자매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마을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풉니다. 바베트는 자신이 준비해 보겠다며 최고급 요리재료를 공수해 기막힌 음식들을 선보였습니다. 평소 대화가 단절되고 상처와 앙금이 깊었던 마을 사람들은 신기한 최고급 요리 덕분에 마음이 열리면서 따뜻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바베트는 자신이 프랑스 파리 유명 레스토랑의 수석 요리사였는데 프랑스혁명에 가담해 망명을 왔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운 좋게 당첨된 복권 1만 프랑 전액을 이 만찬을 위해 사용했다고 고백합니다. 과도한 낭비가 아니었나 싶었지만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공동체가 치유되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이 없으면 은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가장 큰 희생은 최고의 은혜를 만들어냅니다. 1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로서 희생과 양보, 배려와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베푼 은혜와 사랑은 어딘가에서 또 다른 바베트의 만찬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초상화이야기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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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이라는 도둑
미국의 유명한 저술가이자 성공학의 권위자인 지그 지글러가 쓴 책에서
'당신이라는 도둑'이라는 예화가 있습니다.
첫 번째 도둑은 화가였던 ‘엠마누엘 닝거’입니다.
그의 죄목은 ‘지폐 위조’. 닝거는 평소처럼 채소가게에서 20달러 지폐를
건넸지만 그날따라 점원의 손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고
점원의 손가락에 지폐 잉크가 번지며 그의 죄가 드러났습니다.
솜씨가 뛰어난 그는 완벽한 위조지폐를 그렸기에 출동한 경찰 중에서
‘진짜 지폐’라고 장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을 조사한 결과 다락방에 다량의 위조지폐와
그가 그린 초상화 세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후에 그가 그린 초상화는 한 장당 5,000달로 경매에서 팔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20달러 지폐를 그리는 데 걸린 시간과 초상화를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은 같았다는 것입니다.
허황 된 일들로 시간을 낭비하고 잘못된 곳에 뛰어난 재능을 사용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이처럼 인생의 가장 값진 것을 우리는 스스로 도둑질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나를 무너뜨리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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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옆에서 본 얼굴
옛날 영국에 애꾸눈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백성들로 칭찬과 존경을 받는 임금이었지만
애꾸눈인 까닭에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흉측한 얼굴의 모습이 화상에 담겨 관공서마다
걸려 있었기 때문 이였습니다.
그래서 왕과 신하들이 의논하여 어떻게 하여야 임금님의 얼굴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고 임금님의 인자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임금님의 초상화를 새롭게
그릴 수 있는 화가를 모집하였고 화가들은 저마다 임금님의
얼굴을 인자하게 그리려고 노력했지만 한쪽 눈이 없는
임금님의 모습은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화가가 기발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임금님의 모습을 옆면에서 그린 것입니다.
옆면으로 비스듬히 그린 얼굴은 흉측한 임금님의 애꾸눈을
커버하였고 옆에서 본 임금님의 모습은 공포 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인자한 모습으로 보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간과 인간 속에 관계와 관계 속에
한번쯤 한발자국 물러가 옆에서 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치 않을까요?
앞에서 보면 흉측한 모습이지만 옆에서 보면 인자한
모습으로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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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흐와 우체부 룰랭 가족
해바라기’ 같은 정물화와 풍경화로 유명한 화가 반 고흐는
인물화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활동 초기부터 여러 사람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었지만, 모델을 쓸
형편이 안 돼 열심히 자화상만 그렸습니다.
룰랭 가족은 그런 고흐를 따뜻하게 대해줬을 뿐 아니라 기꺼이
그림의 모델이 돼 줬습니다.
고흐는 룰랭의 초상화를 유화로 여섯 점을 그렸고, 펜화로는
세 점을 더 그렸습니다.
룰랭 부인의 초상화는 자장가 연작 여섯 점을 비롯해
모두 여덟 점을 그렸습니다.
두 아들과 아기였던 딸의 인물화도 빼놓지 않고 그렸습니다.
고흐는 모델료 대신 룰랭과 부인에게 인물화 한 점씩을 줬습니다.
우체부 룰랭의 초상화는 130년이 지난 지금 1억1300만 달러의 가치를 지닙니다.
이 가치보다 더 큰 보상은 무명의 우체부 가족을 그린 초상화가
명화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최고의 화가가 그린 이들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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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머리를 짧게 깎지 않은 이유
윌리암 제임스 브리안은 초상화를 그리려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화가가 그를 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장발을 하셨죠?" 잠시 후 브라안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구혼 시절에 나의 신부감 이었던 나의 아내는 귀가 튀어나온 것이
보기 싫다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머리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다시 화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수년 전의 사건입니다.
이제는 머리를 짧게 깎아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을 듣고 브리안은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요.
우리는 요즘도 연애하는 젊은이들처럼 살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정상적인 사랑을 위해서 노력하는 일은 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결혼은 로맨스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아내는 꾸준히 사랑 받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남편이 사랑스러운 말을 해주기를 바라고, 품어 주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보살펴 줄 때 자라나게 됩니다.
부부는 서로 이런 다짐의 말을 듣기 좋아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성경에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고린도전서 7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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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속과 겉
영국의 크롬웰(Oliver Crowell 1599-1658)은 장군이요.
명정치가로 한때 영국의 실권을 장악했던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의 초상화를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최고의 미술가가 고용되었다.
크롬웰은 얼굴에 큼직한 사마귀가 있었다.
그 당시 유명인사의 초상화는 흉터 같은 것은 없애고 오히려 실물보다
더 잘 생기게 그리는 것이 전례였으므로 이 화가도 크롬웰의
사마귀를 빼버렸다.
이것을 알게된 크롬웰은 크게 노해서 호령했다.
"사마귀도 크롬웰의 일부요 사마귀도 그리시오."
나의 약점을 엄폐하려는 것보다 솔직하게 내어놓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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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일한 기회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거부 조콘다의 부인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가장 초상화를 잘 그린다는 유명한 화가를 찾은
여인은 자신의 출신을 밝히지 않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제 초상화를 그려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여인을 힐끗 쳐다본 화가는 거절했습니다.
“나 같은 화가가 그리기엔 당신은 너무 평범합니다.
나는 지금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골치가 아플 지경이니 돈은 상관없소.
저기 길 건너편에 일이 없어 한가한 화가가 있으니 그 사람이나 찾아가 보시오. ”
여인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나 한가한 화가를 찾아갔고, 그는 여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단 번에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한가한 화가가 그린 이 초상화는
‘모나리자’라는 작품으로 세기의 명화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살아가지 않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워진 오늘의 기회는 유일한 기회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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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두 장군의 초상화
그리스의 한 장군이 전투 중에 애꾸눈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를 불러 절대로 애꾸눈이라는 것이
그림에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말을 했고 지혜로운 화가는
장군의 머리를 늘어트려 한쪽 눈을 가리는 모습으로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정치인이자 장군인 크롬웰은 초상화를 그릴 때 완전히
다른 부탁을 화가에게 했습니다.
“내 얼굴을 있는 그대로 그려주게, 흉터 하나, 주름 하나라도 빼놓는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네. ”
수많은 전쟁터를 경험한 크롬웰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많은 상처가 패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롬웰은 그 상처와 주름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영광의
훈장이라고 생각했기에 조금도 가리지 않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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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
“나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
프랑스 화가 폴 세잔의 말이다.
그는 평생 그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간직하고
살았으나 불행히도 생전에 화단과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더없이 곤궁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 세잔의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판매해 준 사람이 화상 볼라르였다.
한 번은 볼라르가 세잔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했고 날마다 세잔의 화실에 들러 모델을 섰다.
“당장 일어나 사과같이 가만히 있으라고 그토록 말했는데
움직이는 사과가 어디 있어.”
괴팍하기로 소문난 세잔의 호통에 볼라르는 번쩍 눈을 떴다.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는데 밀려드는 졸음을 못 견디어
잠시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세잔의 날카로운 눈빛에 볼라르는 잠을 쫓으며 완벽한 사과가 되어갔다.
볼라르는 초상화 모델을 서는 동안 한 점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세잔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는지 알게 되었다.
150여장 넘게 볼라르를 그리고 나서도 겨우 셔츠 앞쪽은
나쁘지 않게 그렸군 하고 중얼거리며 한숨쉬었던 세잔 뿐만 아니라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초상화를 그리면서 “나는 재능이 없어” 라며
괴로워하는 세잔을 보며 볼라르는 진심으로 연민과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됐다.
세잔은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 노력을 통해 세잔은 마침내 마티스와 피카소에게 강한
영향을 끼치며 20세기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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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정직한 초상화
헝가리의 어느 정치인이 한 화가를 찾아가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실력은 있지만 아직 유명하진 않았던 화가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
최선을 다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을 본 정치인은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그림이 도대체 나와 어디가 닮았다는 거요?
약속한 백만 원은 줄 수 없소.
만약에 십만 원쯤에 판다면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군"
"그 가격에는 팔 수 없습니다.
다만 이 그림이 선생님을 닮지 않았다는 확인서는 하나 써주십시오.
그래야 저도 팔지 못한 명분이 서지 않겠습니까?"
그림을 싸게 사기 위한 수작이었지만 화가가 팔지 않겠다니
정치인도 어쩔 수 없었고, 원하는 대로 글을 적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뒤에 화가는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팔지 못한 정치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작품의 제목은 ‘한 도둑놈의 초상화’였습니다.
자신의 초상화가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정치인은
다시 화가를 찾아가 그림을 구입하겠다고 했고, 원래 가격의 10배가 넘는
큰돈을 주고야 겨우 그림을 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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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가 받는 보상
아이버 포웰은 {성경의 유리창}이라는 그의 훌륭한 책 속에서
유산을 남기지 않고 죽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가 죽었을 때 그 집의 가구 경매에서 죽은 그의 아들의
초상화를 산 유일한 사람은 남루한 옷을 걸친 늙은 어느 여인이었다.
그 아들은 어린 시절에 죽었기 때문에 그 부자는 그 그림을
무척이나 아꼈다.
그러나 모여든 경매자들은 그 그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왜 그 그림을 샀느냐는 질문에 그 여인은 수년 전에 소년의
유모였고 그 소년을 무척 사랑했다고 대답했다.
뒤에 그 초상화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그림 뒤에 있는 두꺼운
서류뭉치를 발견했다.
봉투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
그의 사랑스런 아들에 대한 기억을 고이 간직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내용이 명백히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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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떤 자세로
어떤 사람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품 중 하나인 그리스도의 초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그림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아
무리 봐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림으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안내원에게 말했습니다.
“저런 그림이 어떻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저 그림을 그렇게 칭찬하는 것입니까?”
이 말을 들은 안내원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 그림은 꿇어앉아서 보아야 합니다.
꿇어앉아서 그림을 보십시오.”
그래서 그는 그림 앞에 꿇어앉았습니다.
그런 다음 그림을 보자 그림 전체에 예수님의 자애와 엄위가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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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어빙이라고 하는 학자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도서관에는 역사적인 석학들의 초상화가 쭈욱 걸려 있었습니다.
잠깐 잠이 든 그는 한 꿈을 꾸었습니다.
자기가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머리에는 면류관을 썼는데,
초상화에서 보았던 역사적인 석학들이 와서는 그의 몸에 걸쳤던
화려한 것들을 하나씩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내 것이요" 하며 면류관을 빼앗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지를, 또 어떤 사람은 팬티마저 가져갑니다.
저마다 자기 것이라며 빼앗는 바람에 그는 그만 알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그러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그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맞다, 내 지식이라는 게 내 것이 아니로구나.
이것은 이 사람에게, 저것은 저 사람에게 다 빌려오는 것이었구나.
이제껏 남의 것을 입고 마치 내가 대단한 것인 양 자랑했는데,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출처 : 크리스천 인용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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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어머니의 뽀뽀가 나를 화가로
벤저민 웨스트는 어린 여동생 샐리를 잘 돌봐주는
오빠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실 때였습니다.
벤저민은 색색의 잉크가 들어있는 병을 발견하고는
샐리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돌아와서는 테이블과 의자와 바닥에
온통 잉크가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벤저민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사방을 둘러보다가 아들의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림을 들여다본 어머니는 “어머나 샐리잖아” 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러고는 허리를 굽혀 아들에게 뽀뽀를 해 주었습니다.
스물 다섯 살이 된 벤저민은 영국의 왕 조지 3세의 궁정
화가로 발탁되었고, 당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화가의 길로 접어든 계기에 대해 말하면서
“어머니의 뽀뽀가 나를 화가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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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모나리자의 미소
이탈이아 밀라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매우 신비스러운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이
도시에서 꽤 이름난 화가를 어렵게 만났습니다.
“그림 값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 초상화를 그려 주시겠습니까?”
여인을 본 화가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습니다.
“나는 너무 바빠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저기 길 건너 초라한 곳에 가면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가 있소.
그 사람에게 가보시오.”
‘일거리가 필요한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였고,
여인은 모나리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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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원숭이 그림
17세기에 활약하던 화가 피터 렐리 경은
어느 날 한 참사회원으로부터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참사회원을 만난 렐리 경은 ‘풍채며, 용모며
모두 보잘것없이 생겼구나.
자세히 보니 원숭이를 닮은 것 같네’라고 생각했다.
렐리 경은 초상화 그리는데 적합한 가격을 말했다.
참사회원은 구두쇠라고 듣던 소문과 달리
순순히 비싼 값이라도 좋다고 응낙하고 곧
그날부터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서로 얘기가 잘 돼 그날부터 착수, 이윽고
일주일 만에 그림이 완성됐다.
정성 들여 그린 그림이라서 렐리 경이 보기에는
실물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그러나 당사자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상화의 주인공은 약속했던
돈을 모두 주지 않고 3분의 1 가량을 깎으려고 했다.
“이건 약속하고 틀리지 않소?”
렐리 경이 항의를 했지만 참사회원은
한사코 배짱을 부렸다.
“그 그림은 나 아니면 살 사람이 없을 것이오.
쓸데없는 그림을 쥐고 있느니 적당한 가격에
나에게 넘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러자 렐리 경은 피식 웃었다.
“이 그림을 살 사람이 없다고요?
나는 이 그림을 당신보다 두 배를 더 받고 팔 수 있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두 배씩이나 주고
그것을 살 만큼 나를 닮은 사람이 없을 텐데요.”
“물론이지요.
당신을 똑같이 닮은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이 그림에다 약간의 수정을 가한 후
제목을 붙여서 팔 생각입니다.
그러면 아주 훌륭한 원숭이 그림이 될 테니까요.”
“그… 그게 무슨!”
참사회원은 크게 당황하면서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끝내는 처음 약속한대로 돈을 꺼내
렐리 경에게 건네주었다.
출처 : 월간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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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가난한 이웃을 사랑한 화가
12세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자신도
그와 같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던 화가 박수근.
그는 1965년 5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하고 있는 여인이나 장터 사람들,
할아버지와 손자 등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소박한 우리 이웃을
그림 속에 담았다.
그것은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는
말을 듣게 된 까닭이기도 하다.
박수근은 외출했다 집에 돌아온 때면
빈손으로 들어오는 법이 없었다.
꼭 엿가락 하나, 고구마 한 개라도
사 와서 자식들 손에 쥐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자잘한 생필품들도
사 와서 아내에게 건네기 일쑤였다.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군요?”
아내의 웃음기 섞인 타박에 박수근은
우물우물 변명을 늘어놓았다.
“거, 얼마나 고생이 많겠소.
내가 뭐 하나라도 더 사 주면 좋을 텐데….”
박수근은 물건을 살 때면 큰 상점이 아니라
노상의 손수레나 광주리 장사에게서 샀다.
광주리를 이고 장사하러 다니는 여인들을
늘 불쌍히 여겼고 한국전쟁 뒤 고생을 겪는
이웃들을 늘 애처롭게 여겼던 것이다.
박수근 역시 미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고, 잡지나 신문에 실리는
삽화를 그려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 갈
정도로 고단한 형편이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이웃들을 보면 항상 주머니를
열 줄 알았다.
그것은 선하고 진실했던 화가 박수근의
성품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편의 구두와
은수저를 반들반들하게 닦으며 남편의
자리를 지켜 주려 했던 아내
덕분이기도 했다.
출처 : 월간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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