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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씻어 정결케 하라
30: 17-21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8.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19.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찌니라
21.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찌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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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물론 예수님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한 성경은 구약 성경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구약 성경이 곧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막 역시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막으로 들어가는 문이 오직 하나인 것은,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예수님 한분 밖에 없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막의 문이 동쪽으로 향하였던 것은, 예수님께서 동쪽에 진을 쳤던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예표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막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맨 먼저 번제단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번제단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희생동물이 불태워 죽음을 당하는 곳을 말합니다. 번제단에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했던 구약 시대의 모든 희생 동물은, 장차 이 땅에 오셔서 속죄 제물로 바쳐질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번제단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번제단은 일명 놋제단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번제단을 놋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놋은 심판과 저주, 그리고 승리와 강한 능력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라고 할 때에, 이는 극심한 가뭄 재앙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 요한은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할 때 “그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빛난 주석 같고 그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라고 했는데, 여기 빛난 주석과 같은 예수님의 발이란 놋을 말하는 것으로서, 원수들을 발아래 짓밟고 승리하신 강하고 능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신 심판과 저주의 상징이지만, 한편으로 십자가는 마귀를 이기고 사망 권세를 이기게 해주신 능력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번제단은 조각목을 놋으로 싸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조각목은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으로 이는 버림받고 쓸모없는 인생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죄악으로 쓸모없는 인생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싸여진 인생은 지옥 불에 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번제단 위에는 네 개의 뿔이 있었는데, 어떤 죄인이라도 성소에 들어가서 이 번제단의 뿔을 붙잡기만 하면 살고 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또한 제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의 손으로 붙잡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
이 찬송가 작시자의 기도와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고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막 안에 있는 일곱 개의 성구 가운데 두 번째인 물두멍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이 물두멍은 아론과 그 자손인 제사장들이 번제를 드리고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일종의 커다란 세수 대야를 말합니다. 그러나 물두멍은 단순히 더러워진 손과 발을 씻는 실용적 가치를 위해서 있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만일에 손과 발을 이 물두멍에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는 자가 있다면, 그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물론 죄인들은 번제단의 흘린 피로써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역시 손과 발을 또 씻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는 지성소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일까요?
1. 물의 상징
성경에서 물은 먼저 말씀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도 대야에 물을 담아가지고 가서 씻기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내 발만 아니라 온 몸을 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어도 족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대야의 물은 말씀을 상징한 것입니다. 물이 말씀의 상징임은 요 15:3에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하신 것이나,
엡 5:26-27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의 물과 말씀은 동격으로 사용되어 있음을 보아도 물은 곧 말씀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두멍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음으로 물은 성경에서 성령을 상징합니다.
요 7:37-38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성령을 물에다 비유하셨습니다. 달걀이 노른자위, 흰 자위 그리고 껍질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성막은 뜰, 성소, 그리고 지성소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뜰은 성자의 사역을 암시해 줍니다. 성소는 성령의 사역을 암시해 줍니다. 그리고 지성소는 성부의 사역을 암시해 줍니다. 성막의 문에서 예수를 믿고, 번제단에서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라도 물두멍까지 가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죄를 버렸는데 성령을 받지 못한 이는 번제단과 물두멍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입니다. 물두멍은 성결이요 물두멍의 물은 성령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성도들은 거룩한 영인 성령을 받아야만 성결하여 질 수가 있습니다.
2. 물두멍의 효용
1)손과 발을 씻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 성결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를 씻지만, 성령과 말씀은 오염된 마음을 씻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합니다. 더럽혀진 마음을 깨끗이 합니다.
시 119:9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이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 마음의 오염을 깨끗이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오염이란 말과 죄란 말은 다릅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어도, 인간의 근본 성품의 오염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죄로 향하는 근본 성품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오염은 날마다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다고 곧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생과 성결은 다릅니다. 거룩해지는 것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손과 발을 씻어야 합니다. 이것이 물의 효용이며 이것이 곧 말씀의 역할입니다.
2)거울로 사용했다.
이 물두멍은 손과 발을 씻을 뿐만 아니라,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이 자기의 얼굴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 사용했습니다. 출 38:8에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고 했습니다. 이같이 이 물두멍은 거울로 대용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놋 거울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거울을 유리로 만들지 못하여 놋쇠를 잘 닦아서 비치게 하여 만들었던 것입니다. 거울은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비춰주는데 사용됩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임이 확실합니다. 사람들이 거울로서 자기 얼굴의 허물과 더러워짐을 발견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의 얼굴을 비추어 볼 때, 죄악으로 허물진 자신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처럼 우리의 허물과 죄를 발견하게 합니다.
또한 번제단 다음에 물두멍이 있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번제단이 ‘피의 구속’의 상징이라면, 물두멍은 성화의 상징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은, 뒤이어 물두멍으로 상징되는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항상 자기의 허물을 발견해야 하고 그리하여 늘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번제를 집행하는 제사장들과 수종드는 여자들에게 물두멍이 필요했던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게 됩니다. 성막에 들어갈 때 이 물두멍에 손발을 씻어 죽기를 면하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말씀으로 자기의 오염을 씻는 것을 무시한다면, 그는 중생한 성도라고 보기가 어렵고 사실은 중생하지 않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번제단에서 속죄함을 받은 자라도 반드시 손과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3)물두멍은 성령과 말씀의 위로를 상징합니다.
시 46:4에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고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소와 시냇물이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했듯이, 제사장들이 땀과 피로 물든 힘겹고 고된 임무를 마치고 그 물두멍에 손과 발을 씻을 때에, 마음에 날아갈 듯한 가벼움과 기쁨을 느꼈을 것임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물두멍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함에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말
씀과 성령의 위로는 성소의 물두멍이 그러했듯이,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 119:50절에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달픈 인생길에 지쳐 실의와 낙담 가운데 빠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어 승리한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처럼 제사장들과 수종드는 자들에게 물두멍의 물은 곧 기쁨의 상징이며 위로의 상징이었습니다.
3. 성령과 말씀의 무제한 능력
성막의 다른 모든 성구들은 자세한 치수가 지시되어 있었으나, 이 물두멍만은 그러한 제한이 없었습니다. 물두멍은 크기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다. 물론 놋이 얼마큼 들어갔는지 언급이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학자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세례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받는 은혜는 무제한하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은 성소의 물두멍에 그 제한이 없듯이, 우리의 심령의 요구를 무제한으로 채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모든 성구는 덮는 보자기가 있은데 물두멍만은 예외로 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4장에 보면 성막의 모든 성구들은 낱낱이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로 덮도록 되어 있는데, 물두멍만은 빠져 있습니다. 다른 성구들은 덮지 않고서는 광야에서 이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물두멍만이 예외로 됨은 무엇 때문일까요? 다른 모든 성구들은 성소 밖에서는 드러나게 하거나 만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만지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물두멍만은 어디서나 마음껏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때가 올 때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일정한 처소가 필요했으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아무런 제재도 제한도 없이 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을 수 있었고 또 그래야할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번제단과 성소의 문에 이르는 그 중간에 물두멍이 있음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의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 것이라면, 성소의 문은 곧 장차 나타날 하늘의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속함은 받은 성도들이, 장차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의 그 중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곧 물두멍이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늘 힘써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물두멍의 물로 상징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자기를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이미 목욕한 자라고 해도 손과 발을 자주 씻어야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은 성도들이라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씻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두멍은 곧 성령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막 안에 있는 일곱 가지 성구 가운데 두 번째인 물두멍에 대해서 상고해 보았습니다. 이 물두멍은 성막 바깥뜰에 두었는데, 놋으로 만들어졌으며 언제나 깨끗한 물을 가득히 담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와 양을 잡느라 피로 물든 제사장들의 손과 발을 씻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고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만일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지 아니하고 들어가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이 물두멍에서 피로 물든 그들의 수족을 씻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아직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신앙생활에서 까지 항상 죄와 더러움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들이 마시고 있는 공기가 오염되어 있듯이, 우리는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불경건한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정직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의 온갖 더러움에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 모두 알고 계시며, 우리들의 육신의 연약함도 익히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계속적으로 깨끗케 되는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우리의 죄악을 부인하는 데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그것을 솔직하게 자백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정결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그렇다면 우리가 얼마나 자주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까? 성막에 있는 물두멍은 치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물의 양도 규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처럼 한계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언제라도 영혼이 더러워지고 씻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면 가서 몇 번이라도 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자백하면 일곱 번 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시고 깨끗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물두멍의 물은 오늘날 같은 유리 거울이 없었던 때에 거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는데, 성도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려면 거울을 보면 됩니다. 거울이란 것은 나를 항상 정확하게 비춰주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나의 외모만이 아니라 나의 중심과 나의 영혼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누구인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영혼의 거울입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나를 비춰보면 나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 앞에서의 자신의 추한 모습을 깨닫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말씀의 거울은 주님의 모습도 보여주고 나의 모습도 보여 줍니다. 말씀을 통하여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다가, 또 반대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추하고 더러운 부분은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약 1:23-24절에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얼굴에 더러운 침이나 눈곱이 끼인 것을 보고도 그대로 방치해 두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매우 비정상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삶을 고치지 않으면, 매우 비정상적인 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거울을 데려다 보고 곧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고치고 삶을 고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사나 숙녀가 밥을 먹고 나서 이빨에 고추 가루가 묻어 있거나 상추 잎이 붙어있는 것을 보면 아무리 좋은 옷을 입었거나 화장을 잘했어도 부끄럽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영혼의 거울인 성경을 얼마나 자주 데려다 보는지요? “성경에서 멀어지면 사탄에게 가깝고, 성경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께 가깝다”는 말이 있고, 또한 “성경책이 더러울수록 그의 마음이 깨끗하고, 성경책이 깨끗할수록 그의 마음이 더럽다”는 말도 있습니다. 번제단을 통하여 근본적인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도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어야 했듯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저 하늘 지성소에 들어갈 때까지 영혼의 거울인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데려다보고 자신의 심령을 씻어 정결케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거룩한 백성의 성령 충만의 생활
30: 17-38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요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20)
1.물두멍은 어디에 두라고 하셨읍니까?
2.물로 씻지 않고 단에 나아가면 어떻게 됩니까?(19,20) 물로 씻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관유는 어디에 사용합니까?(22-31)
4.관유와 향풍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려면 기도의 생활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 수 있읍니다. 성막의 지시를 마치신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물두멍과 관유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물두멍은 죄를 씻는 것이요, 관유는 성령의 기름부음 받음을 의미합니다.그러면 어떻게 백성으로 살 수 있읍니까?
1.물로 씻어야 합니다.(17-21)
하나님께서는 물두멍을 만들어서 성소의 입구와 제단 사이에 놓으라고 하셨읍니다. 그리고, 회막에 들어올 때 물로 씻어 죽기를 연하라고 하셨읍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수 없을을 보여줍니다. 죄를 즐기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읍니다. 죄 씻음을 받기 전에는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으며 성도의 삶도 살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죄를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씻기 전에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마5:26) 죽을 수 밖에 없읍니다.(20)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깨끄케 하실 수 있읍니다. 이미 깨끗하게 씻어주셨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읍니다. 또한, 깨끗함을 입은 우리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읍니다.
2.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22-38)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관유를 만들어서 제사장에게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성막의 기구들에 발라 그것들을 성물로 구별하라고 하셨읍니다. 기름 바르는 것은 성령의 덧입힘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여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신 것은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충만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성별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관유를 다른 곳에 바르거나 붓거나 또 향품을 냄새 맡으려고 사르든가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읍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자기 자랑과 유익을 위해 함부로 잘못 사용하면 벌을 받게 됩니다.(33)
암송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오늘의 영상
나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그 증거는?
출처: 천성을 향하여 글쓴이: 하늘 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