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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중에 기쁜 것 즐거운 것, 사랑 그리고 소망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을 지나면서 무엇을 기뻐했습니까? 무엇으로 인해서 즐거워했습니까?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얼마만큼 사랑했습니까? 무엇을 바랐습니까?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 교회의 표어처럼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만 아니고 여러분도 다른 무엇보다도 더 하나님을 기뻐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 무엇보다도 더 하나님을 바라는 인생 분명히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많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 어쩌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기뻐하고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바라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잘 배우는 거예요. 지난주에도 전했지만 하나님이라고 다 똑같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이라는 말 신인이라는 말 이 거두라는 말로 할 수 있는 얘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반복하자면 우리의 경우는 믿는 우리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나고 교제하는 하나님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오늘 우리가 찬양대가 힘차게 찬양할 때 그 찬양을 올려드린 분 누구라고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잘 보여주는 본문 중에 하난데 내용적으로는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이 가 있는 갈릴리로 가셔서 그들에게 다시 아니면 마지막으로 이제는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났을 때를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정말로 기뻐하고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바라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배우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이에요. 마태가 전하는 마태복음을 통해서 전해지는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시고 사람입니다.
참 하나님이고 진짜 사람이셨어요. 마태복음이 그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죽으실 때까지. 그러니까 보세요. 사람인데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이게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쉽게 파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기적을 행하실 때 보면 하나님 같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고난을 당하셔요. 그러면 하나님이 아니신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다음에 지금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났을 때는 모든 것이 확실해진 것입니다.
이전에는 예수님에게서 사람이 더 확실하게 보였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지금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더 확실하게 보이는 거죠.
그래서 갈릴리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어떻게 합니까? 경배합니다. 3년 동안 함께 동행했던 그분 죄인들에게 잡히시고 중심을 당한 바로 그 사람이 지금 경배를 받으시는 거예요. 무슨 뜻입니까? 이 하나님이 경이 분이 지금 제자들 앞에 서 있는 이 분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 곧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직접 말씀을 하셨죠? 뭐라고요? 경배는 예배는 오직 주님만 하나님만 받을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지금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이나 이슬람 무슬림들에게는 신성 모독이 되죠.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신성 계시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경배를 받는 하나님이시다 하는 것이 본문이 전해주는 전부가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볼까요? 이 부분은 우리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라.
예수님께서 앞에서 경배를 받으셨어요. 그래서 그것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예수님은 경배를 받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구나라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 말씀을 들어보면 어떻습니까?
그가 하늘과 땅에 권세를 받아요. 그렇다면 그 권세를 그에게 주시는 더 크고 더 높으신 분이 있다는 것이죠.
누굽니까? 영원한 아버지 그냥 아버지가 아니고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것이에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주시는 성령이 있습니다. 이 본문에 이 말씀이 담겨 있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땅 끝 세상이 떠나자 하실 때 지금 말씀하시는데 세상이 끝날 때까지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어떻게 함께하세요? 지금 하늘로 올라가시는데 바로 보내주실 성령을 통해서 함께하시는 것이요.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성령이기 때문에 역시 하나님이시오. 나중에 제자들을 명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는 분이기 때문에 비인격체가 아니라 인격체로서의 하나님 성령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에게 받으시는 경배를 받으시는 신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에게서 전권을 받으신 아들로서 그리고 성령으로 세상 끝날까지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실 아들로서 하나님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하나님의 신비가 있어야 됩니다. 조금 따라오기 어려우실 수 있죠. 지금 이런 내용들은 그러나 우리가 잘 출발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되는 부분이 있어요. 우리가 이해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잘 생각하고 더 더 잘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신비가 무엇이냐면 아버지가 하나님이에요. 아들도 하나님이고 성령도 하나님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셋이 아니고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거를 설명을 하면 이 질문을 가지고 제가 설명을 하면 길어지고 조금 여러분에게 힘들 수기가 있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은 여러분이 주보에 내용이 담겨 있어요. 간단하게 그래서 그거를 참고하기를 바라고 하시고요. 저는 오히려 예수님에게 더 초점을 계속 맞춰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남은 시간에 여러분에게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나누고 싶은 말씀은 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니 아버지를 기뻐하면 하나님을 기뻐하는 거다. 우리가 아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성령을 바라면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은 지금 계속 말하고 있는 아버지나 아들이나 성령을 기뻐하고 사랑하고 바란다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오늘 본문 16절부터 21절, 20절 이 본문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와요.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으시는 높으신 분이 있는데 그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도 이 하나님 거드라는 단어가 사용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갖는 인격적인 관계에서 중요한 거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단순히 사람하고 관계하는 게 아니고 누구누구 누구와 관계하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거예요.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고 분명히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우리는 예수를 믿는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관계한다. 아버지께 나아가고 예수 안에서 그 아들 안에서 성령으로 대화하고 말하고 기도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같은 원리를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해에 적용해 볼 수가 있어요. 지난주 설교에서 예수님은 정말로 참 하나님이고 참 인간이다. 사람이라고 전했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믿죠. 그렇게 믿는 것보다 믿는 것도 어렵지만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은 사실 더 어렵다고 지난주에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진짜 사람이셔야 하고 또 진짜 하나님이여야 하만 우리 의 구원자가 될 수 있다고 저는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질문을 다시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사람이면서 하나님일까 어떻게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또한 하나님일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을 할 수가 있는데, 그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답을 찾기 전에 이 일이 참으로 신비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됩니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에요. 볼수록 놀라움이 커지는 신비지 한 번 알면 신비가 사라지는 그런 신비가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믿는 자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세 가지 반응이 있어요. 하나는 아예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그냥 우리가 차를 사용하듯이 기계를 사용하듯이 사용하는 거에 관심이 있지 이것의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에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은 거죠.
두 번째는 머리로 말로 다 이해하고 그래서 신비를 제거하는 거예요. 신비로움을 없애는 겁니다. 세 번째는 성경을 따라서 이 신비를 하나님의 신비를 그리스도의 신비를 유지하는 거예요.
첫 번째는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죠. 무관심이에요. 내가 무엇을 묻는지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경비하는지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교회에 나와서 사람들 만나고 내 욕구 충족하고 행복하고 기쁘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고, 교회를 마치 소비체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안타까운 것이죠.
두 번째는 열심은 있지만 이단이라고 해요. 잘못된 생각과 가르침입니다.
세 번째는 소위 정통이라고 해요. 진리라고 합니다. 이단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두 개의 존재로 투 퍼슨 투 크라이스트로 이해하는 것이에요.
그리스도 안에 뭐예요? 하나님이 있고 그리스도 안에 신성이 있다고 그랬어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고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같이 있는데 이것이 마치 물과 기름이 함께 있어서 섞이지 않고 분리되어 있는데, 이 분리가 어느 정도로 크냐면 그리스도가 갈라질 정도로 그리고 신성을 따르는 인격과 인성을 따르는 인격 이 둘로 있는 거로 보는 것입니다.
이건 교회 밖에서 있었던 게 아니고 교회 안에 있었던 이해예요. 그렇게 보면 어떻게 됩니까? 기적을 행할 때는 하나님으로서 기적을 행하는 것이고, 고난을 당할 때는 인간으로서 고난을 당하는 것이오.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신비가 풀린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따르는 것이 아니죠. 성경의 어디를 보아도 두 명의 그리스도나 두 인격의 그리스도를 전하는 곳이 없어요.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 성경이 전하는 예수 그로스는 오직 한 분 한 인격체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어떤 때는 하나님처럼 기적을 행하시고 우리가 알죠. 어떤 때는 사람처럼 우십니다. 어떤 때는 사람처럼 시험을 받으시고 또 어떤 때는 시험하는 그 자의 생각을 하셔요. 어떤 때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것 같은데, 또 어떤 때는 바로 앞에 일서 일어날조차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만난 예수님이죠.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어떤 때는 신성을 따르는 분, 어떤 때는 인성을 따르는 분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이거는 초대 교회가 이렇게 거부한 물리친 이단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성경을 읽을 때 복음서를 읽을 때 이때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이때는 예수님이 사람이시구나 이렇게 읽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읽으면 그분은 우리하고 그렇게 관계가 없는 신화적인 인물이 될 수가 있는데, 또 다른 비슷한 잘못이 두 번째예요.
이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신 인간들 있잖아요. 헤라클래스나 이렇게 신과 인간이 섞여서 태어난 초인 같은 존재 신화적 인문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때는 이 신성을 막 발휘하는데 어떤 때는 그게 힘이 없어 신성을 발휘 못하는 것처럼 이렇게 보는 것이 되죠.
첫 번째 이단이 신성과 인성 이것을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것이라고 보았다면, 이 두 번째는 신성과 인성이 물과 기름이 완전히 섞여서 제3의 뭐가 나온 거가 되는 거죠 예수님을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것도 머리로는 참 그럴듯한 것 같지만 역시 성경을 따르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을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것은 사람으로서 행하신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으로서 행하신 것임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사람으로서 당하고 기적은 하나님으로서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고난도 사람으로서 당하신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한 것이고, 기적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하신 것이라면 역시 사람으로서 행하신 것이다. 이 둘이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를 우리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대로 붙드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신비를 유지하는 것인데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이에요. 이터널 파더의 이터널 선이 누구예요? 우리 예수님입니다. 세상에 유일하신 분이고 아무도 그를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어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예수를 믿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우리처럼 여러분처럼 모두 다 하나님의 아들이오 하나님의 딸이 되게 해 주시는 권세를 주셨다.
무슨 뜻인가요? 그를 믿는 자들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과 비슷하게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작은 뜻이 담겨 있어요. 우리가 사람이지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어요. 자연적으로 본성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 안에서 거듭나서 성령 충만으로 성령을 따라서 될 일이라 하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죠. 그를 믿는 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이거에 대한 논쟁이 많지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정말로 믿음 안에서 거듭나고 성령 충만 안에 성령을 따라 행한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 그것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기쁘고 행복하고 건강할 때만 하나님의 자녀가 자녀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건강할 때만 좋을 때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입니다.
또 기적이나 영광, 그것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님도 기억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하고 싶고, 무슨 일을 해도 잘하고 싶고 무슨 일을 해도 영광스럽게 하고 싶었지만 그것만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을 해야 된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자녀는 기쁘지 않고 불평해야 하고 아플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이라고 딱 고정된 곳이 없어요. 성경적으로 보면 우리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들이 피하려고 하는 그 더러운 일, 어려운 일, 거기에도 하나님의 일이 담겨 있을 수 있다 하는 것이죠.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하기보다 섬기려 하고 더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 더 나눠주려 하는 것.
그것은 분명히 우리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오히려 온 세상이 얻으려고 쫓아가는 그것들 명예이든 권력이든 섹스이든 돈이든 재물이든 성공이든 그것들 중에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아들입니다. 그렇죠 그렇게 믿으시나요?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출발점이 돼요. 그분과 사귐이 있다면 하나님 아들과의 사귐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 아들과의 사귐이 있다면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또 성령과의 사귐이 있는 것이고 그러면 어떻게 돼요? 결국은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과의 사귐이 되는 것이에요. 그런 뜻으로 저와 여러분이 모두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중요한 것이 있는데 우리도 서로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을 하셨죠. 그거를 작은 의미로 우리에게 적용을 하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믿고 그의 길로 행할 때 우리를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가 또 그의 아들 그리스도가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거 머릿속에 갖고 있느냐 안 갖고 있느냐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우리 인생에 아주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찬양을 했죠.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느낄 때 어떻게 해요? 나의 삶이 주의 역사가 바뀐다. 그런 찬양에 담겨 있는 가사의 의미가 오늘 섬길 성경의 내용하고 그렇게 연결이 되는 겁니다. 믿으세요. 여러분이 이 세상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거 믿으세요 그 목적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고 사셨고 죽으셨다 하는 거 여러분의 마음 새기고, 그래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그 인생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하는 복된 여러분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