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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필 스승의 삶
1987.12.31. 김준호 선생
밤에는 연말 12월 31일 1987 12월 31일 밤입니다. 우리를 지도하던 선생님, 이 현필 선생님을 회고해 보면 오늘 밤에는 12시 영시까지 모든 식구들 이렇게 강당에 모아놓으시고 한분씩 한 분씩 금년에 살아오신 생활 보고 자기 신앙경험 체험을 말씀을 하시라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한 분 두 분 이야기 하는 시간이 흘러가면 12시가 넘고 새해 1988년 1월 1일 0시 새해가 시작되는 것을 맞이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마음이 없으신가 모르겠어요. 저는 그때 곡성에서 이 다리 밑에서 얻어먹던 소년들을 데리고 곡성 가거라. 해서 가서 살았습니다. 연말에 광주를 들어섰더니 그믐날 밤이에요. 제 차례가 되었어요. 준호 한번 말해보시오. 저는 곡성 선생님께서 가라 하실 때 가기 싫어서 울었습니다. 가기 싫은 곳을 만에 한 칸도 가기 싫었는데 억지로 갔었습니다. 그래서 한 일 년 사는 동안에 하도 깊은 산중이고 어린 소년들은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의 생각으로는 무미건조하고 참 답답하고 그런데 그때 사 성경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말을 안 듣고 조금만 꾸지람하면 광주 간다고 책보 싸버리고 막 뛰고 소리 지르고 싸우고 때리고 방구 뀌고 종일 들썩들썩하고 산에 가서 솔 나무를 막 베어다가 타는 수레를 만들어 가지고 마구타고 못 하게하면 광주 간다고 딱 책보 싸고 그러니 꾸지람 할 수도 없지 그러니까 할 수 없어. 성경을 그제 사 봤어요. 성경을 보기 시작하는데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하면 죽으리라.’ 지금 번역이 아니에요. 옛날 번역이에요. 그 말씀의 뜻을 알겠습디다. 그랬어요. 나 곡성 가기 싫었는데 갔거든요. 안 갈려고 여러 꾀를 냈어요.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저를 사랑 안하니까 안 따라갑니다. 그렇게 변명했지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라는 뜻인데 아이들이 안 따라가면 가지 말라고 할까봐 이야기 했는데 아이들이 안 따라가면 혼자 가십시오. 그렇게 선언이 내렸어요. 아이들이 안 따라가면 혼자가라니 어떻게 해요? 그래서 순종을 했지요. 그렇게 가기 싫은 곳을 갔는데 갔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뜻을 알겠습디다. 가기 싫은데 갔어요. 죽고자 했기 때문에 말씀이 마음속에 왔어요. 하나님 말씀이 마음속에서 그 눈을 뜨기 시작합디다. 아 이렇게 죽고자하면 영혼이 사는구나. 그 안 가버리면 영혼이 모를 일이지요. 광주서는 볼 것이 많지 않아요. 길 가에서 자꾸 보느라고 마음이 안 열려 영혼이 눈이 안 뜨여요. 그렇게 금년 이렇게 지냈어요. 보고를 했는데요. 그럼 선생님이 왜 자기 말 하라 하는가? 제가 말을 그때 안했으면 지금까지도 기억을 안 하지요. 그때 사람이 많은 앞에서 제가 고백을 했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그게 각심이 되어요. 그때 깨달음이 마음에 새겨져 버려 안 잊어버리거든요. 오늘 밤에도 요 앞에 소녀들 내가 한번 금년 일 년 동안 산 말씀해야 되겠습니다. 하면 이따가 손드세요. 얼마나 좋겠어요? 저녁에는 누가 복음 7장 36절.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 그 대목을 저보다는 여러분들이 큰 소리로 한 절씩 읽어주십시오. 끝 절까지 보겠습니다.
눅 7:36~50
또 그 이 선생님께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화순군 도암면 지금 중촌리, 이 선생님이 부모님 모시고 사시던 집에 지금 춘일 자매님이 가서 계시지요. 거기서 정월 총회라고 각 분원에서 대표들이 모여가지고 눈이 많이 오는 날 이렇게 모였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 선생님께서 방은 하나고 잠 잘 곳이 없기 때문에 밭에 짚으로 이어가지고 막을 쳤어요. 예수님도 마구간에 태어나셨기 때문에 그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막을 치시고 거기 불도 안 때고 누워 계셨는데 그때 몸 형편이 몸이 열 발만 걸어갈 수 없기 때문에 열 발을 가면 강당이 있고 예배 볼 장소가 있어요. 그러니 여기 보모님들이 어머님들이 업고 갔지요. 몸이 얼마나 풀어지고 올무 같은지 두 다리가 덜렁덜렁 했어요 그렇게 몸이 약하시고 아주 숨이 가프시고 목에서 껄껄 소리가 나셨어요. 그러면 강대상 이렇게 평평한 바닥인데 앞에 이렇게 업어다 뒤로 물러나시면 두 발을 괴어가지고 앉을 수가 없어요. 힘이 없어,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손을 들어가지고 발을 고어 드렸어요. 앉으시라고 요즘 소아마비처럼 힘이 없어요. 딱 무릎 꿇고 앉아계시고 그렇게 선생님 자신이 힘이 진해가지고 숨도 가프시지만 이렇게 모였어요. 노래 부르라고 쓸쓸하게 부르니까 제가, 몇 장 부릅시다. 그러면 왜 준호는 슬픈 노래를 부르는 거야? 딱 무시하고는 기쁜 노래 부르라고 가나안가 부르니까 왜 죽은 소리 하냐고 힘차게 부르라고 또 부르면 다시 힘차게 선생님 자신은 힘이 없지만 아주 마음에서 즐거움을 우리에게 소위 말하면 강조하셨어요. 그때 부르던 노래가 ‘딩동 댕동’인 가요? 한번 아시는 사람 불러보세요.
딩동 댕 동
빛나는 대한
1.딩동 댕동 보슬비는 단비를 주고 철썩 철썩 거친 파도 집터를 닦네.
둥실 둥실 밝은 달은 길을 밝히고 송이송이 꽃송이는 힘을 주누나.
2.구불구불 힘찬 산맥 산 애를 낳고 굽이굽이 시내 물은 집 애를 낳네.
산의 나무 다듬어서 집을 짓고요. 들의 곡식 거두어서 밥을 짓고요.
3.억 천만년 길이길이 살아 지이다. 자자손손 널리널리 퍼져 지이다.
손에손에 괭이 들고 이 땅을 파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힘차게 살자.
(후렴) 빛나는 대한 빛나는 대한 아름다운 강산이라 얼싸 좋구나.
황송합니다. 그때 이렇게 노래를 부르셨지요. 이거 낙제에요. 왜 이렇게 소리가 작으냐? 다시 부르라고, 다시 부르라고 슬픈 마음이 없어지도록 이렇게 아름답고 예수님도 태어나시고 새해가 돌아오는데 왜 그렇게 슬픈 노래를 부르냐? 힘 있게 불러라.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느냐? 하나님의 아들딸인데 기쁘게 살자. 몸은 약하시지만 그 영혼은 기쁘셔서 생동해. 생동 펄떡펄떡 뛰셨지요. 그게 성령의 기쁨이지요. 선생님이 임종하실 때도 기쁘니까 아, 기쁘다. 아 기쁘다. 이제 하늘나라는 가는데 숨이 끊어지는데 기뻐서 ‘오 기쁘다.’ 그러셨다고요. 아 기쁘다. 그것이 예수 믿는 것이거든요. 아 예수 믿는데 무엇이 슬퍼요? 예수 믿었으니 죽어도 기뻐 아 기쁘다. 아 기쁘다. 왜 그렇게 우는 소리를 하고 찬송을 부르냐고 기쁘게 부르라고 그러셨어요. 특별히 그믐날 밤인데 내일은 새 날이 시작하는데 희망을 가져라. 소망을 품으라. 저는 모릅니다만 여러분은 잘 불러요. 뭐 ‘아주까리기름 바르고’ 그 노래를 부를 때 세 번 네 번 잘못 불렀다고 꾸중해요. 다시 부르라고 힘차게 기쁘게 부르라고 그 노래 한번 이 선생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부르세요. 아시는 분들은,
‘노고 지리’
농부가
1.노고 지리 앞서가자 해가 뜨는 이 벌판 초롱불에 돌아가자 해가지는 저 벌판
황소굴레 풍경소리 자고 깨는 농부야 새 나라 새 천지에 어서가자 어서가
2.비바람이 불어온다. 삼천리에 넓은 들 오곡은 무르익어 풍년가도 높구나
치맛자락 걷어매고 강피 훑는 처녀야 아주까리 기름머리 비 맞으면 어이해
3.오천년의 이 강산에 피와 땀이 어리어 농투성이 가는 목숨 모질기도 모질다
푸른 하늘 방방곡곡 태평 고를 울리며 오천만년 우리 농군 자유롭게 나가세
이따가 더 부르시기로 하고 아까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보십시다. 46절 이하의 말씀.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 주었다. 47절. ‘잘 들어두어라.’ 이 말씀은 제 소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잘 들어 두어라.’ 이 말씀을 잘 들어 두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에 여기 할머니부터 소녀까지 지금 잘 들어두셔야 합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새 날이 시작하기 전에 이 1987년 12월 31일 지금 오후 몇 시 입니까? ‘잘 들어 두어라.’ 같이 따라하세요.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 만큼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적게 용서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누가복음 7장 47절 말씀. 이 말씀을 잘 들어두셔야 합니다. 이 여러분과 같이 어린 한 10세 와서 커가지고 한 스물 댓 살 먹어서 서울 갔어요. 누군지 몰라요. 옛날 여기 선생님 슬하에서 큰 사람이 수백 명인데 다 떠났지요. 모두 건강해서 떠났는데, 누군지 모르는 분이 편지를 부쳐왔어요. 제가 그 동산에 살 때 성경말씀이랄지 예배시간을 조석으로 수천 번 그렇게 참석했지만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제 가슴에 남아 있는 말씀은 용서 해준다. 예수님은 용서해주신다. 내 죄를 용서해 주신다. 그 말씀만이 잊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내 영혼의 등불이고 내 재산이라고 내가 그 공동체에서 살고 온 그 재산은 예수님은 내 죄를 용서해주신다. 그 말씀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게 보고서지요. 자기 인생의 보고서에요. 뜨거운 말씀입니다. 그 말 뿐이에요. 예수 믿은 것이 무엇이 좋을까? 병 나은 것이 좋을까? 부자 된 것이 좋을까? 자식 많은 것이 좋을까? 다 그런 것은 썩을 것이고 영원한 재산은 용서 받았다. 네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그 다음에는 해설이지요.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 받았다하고 말씀하셨다. 따라 읽으세요.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 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여자만 용서 하겠어요. 남자도 용서하지. 사람으로 네 죄를 용서 받았다. 이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이에요. 참 믿음 옳은 믿음 바른 믿음 정도(正道), 정도에요. 이 말씀을 안 믿고 다른 말씀을 믿으면 외도지요. 가도지요? 거짓신앙 이지요. 잘 들어, 이 말만은 잘 들어두어야 해. 임종할 때 까지. 낳아서 임종할 때까지 잘 들어 두어야해.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용서 받았다.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이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 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귀가 다르니까 오해하지요. 무슨 소린지 모르니까 예수께서 한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인데 죄 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그런 사람이 많아.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믿지를 않아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이거에요. 용서했습니다. 용서했다. 그 말 믿어야지요. 믿어야 딸이고 믿어야 아들이지요. 믿어야 제자이지요. 다시 따라 읽으세요.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7장 50절 말씀.’ 물어보겠어요. 몇 장이예요? ‘누가복음 7장 50절 말씀.’ 네 이말 잘 들어두고 믿어야지요. 믿음이 구원이에요. 믿음이 네 죄는 용서받았다. 하니까 믿어요. 네 믿음이 예수님이 네 죄는 용서 받았다. 그러니까 네가 내 말을 믿었어. 내 인격과 내 마음을 믿었어. 내 소리를 믿었으니 너는 구원이다. 하늘나라 간다. 저 천국가기가 그렇게 쉬워. 믿으면 천국가요. 무조건이야. 네 죄를 용서 받았다. 믿으면 구원이에요. 이제는 이 선생님 말씀이 그 말이에요. 기뻐하라. 춤을 추라. 무엇이 걱정이냐? 평안히 살아라. 평안히 가라. 평안히 살아라. 평안히 숨 쉬어라. 평안히 잠자라. 평안히 앉아 있거라. 왜 걱정하고 앉아 있느냐? 그러니까 수군수군하는 사람한테 보탬이 안 되지요. 마음을 믿지 않고 수군수군하고 있어요. 아마 이 강당에는 수군수군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지요? 왜 대답이 없어요? 수군수군하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지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그러니까 평안히 삽시다. 몸은 아파도 몸은 병들었어도 그런 것은 결국에는 한번 지나가는 세상이거든. 평안히 살아라. 평안히 가라. 얼마나 좋아요? 다시 따라 하세요. 그 여자에게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고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세 번 따라 읽고 외우십시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그렇게 했군요. 다시 하세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평안히 가라. 그렇게 말씀을 여러분 큰소리로 외워보세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그러니까 잘 들어두란 말씀을 우리가 요점으로 생각했어요. 네 죄는 용서 받았다. 그 말씀 하시니까 이 부인은 딱 믿었어요. 그러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이 두 마디, 네 죄는 용서 받았다. 그럼 계속해서 갑시다. 네 죄는 따라하세요. 네 죄는 용서 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평안히 가라. 요 두 마디를 따라 하시고 외웁시다. 이제 가라했으니 걸어갑시다. 어디까지, 하늘나라까지 평안히 가요. 무엇 때문에 뛰뛰 하고 앉아있어? 웃고 살아. 기쁘게 찬송 부르고 콧노래 부르고 딩동댕동 부르고, 그래 선생님은 그 경지를 맛보신 분이에요. 그런 말씀을 뒷받침하는 글이 또 있습디다. 신약성서에는 예수님이 직접 잘 들어 두어라. 했지만 이사야서 1장 18절에 그런 말씀이 있어요. 제가 읽어 드리지요.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오늘밤 그믐날 밤이에요. 그동안 무슨 일 했는가? 계산 해보자. 얼마나 돈 빌려 쓰고 갚고 못 갚았는가? 빚이 얼마인가? 또 누구를 몇 번 때렸는가? 몇 번 욕했는가? 사탕 나눠 먹었는가? 다 한번 계산해 보자. 오늘 저녁은 그믐날 밤이다. 한번 셈 해보자.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이게 하나님의 선언이야. 예수님의 아버지야. 다 우리를 보고 하는 소리에요. 금년에 정월 초하루부터 그믐날 밤까지 어떻게 살았는가? 한번 셈 해보자.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 같이 되리라. 우리는 눈 오면 하얀 눈을 보지요. 피는 붉지요. 그러니까 죄가 얼마나 많던지 빨개도 예수님이 네 죄를 용서했다. 그러면 눈 같이 희어져요. (끊김)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사야 1장 18절 말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병이 낫고 세상에 나가 취직하고 살고 이제 늙어서 임종할 때 아 우리가 그 귀일원에서 배운 것이 무엇이냐? 다 없어져요. 먹으면 똥 되어버리고 없어. 그러나 성경말씀을 외워둬요. 외워두면 하늘나라 갈 때 마음이 기뻐. 성경말씀을 기억하고 영혼이 기뻐 일평생 살다 오다 살다 오다 계산해보면 죄 뿐이에요. 확실해요. 그것은 틀림없어요. 아무리 좋은 일 하고 선한일 해도 늙고 병들어서 임종할 마당에는 남은 것은 죄뿐이야. 어떻게 할 거예요? 예수님이 네 죄는 용서 받았다. 나는 네 죄를 용서했다. 네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어지리라. 눈 같이 희어졌다. 그 말씀을 믿고 평안히 하늘나라 가는 거지요. 평안히 눈을 감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늘나라 간다. 믿음으로 마음이 평안하다. 믿음으로 안심입명이다. 용서했다. 라는 말씀에 평안해. 나는 흉이 아닙니다. 이번 함평 가서요. 여기 김 집사님 오셨어요. 그 대표 집사님이 하신 말씀이 우리가 은혜로 나누십시다. 거기 형제가 윗방에 사시고 집사님이 아랫방에 사십니다. 소죽 불을 때서 소죽을 끓이는데 아랫방을 따뜻하다고 윗방은 좀 차지요. 아침 일찍 식지요. 윗방에 계신 형제가 절대 아랫방에 오라고하면 안 오신다고 그래 집사님 보시기에는 그분이 천사라는 거예요. 절대 양보해. 따뜻한 방은 집사님 주무십시오. 하고 자기는 젊으니까 꼭 윗방 쓰신다고 그래. 양심에 괴로우니까 눈이 오거나 추우면 아랫방으로 내려오십시오. 그러면 절대 안 내려오신다는 거예요. 그래 양심이 아프고 괴롭다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하셨답니다. 죽으면 저 형제는 천국가고 나는 지옥 가겠다. 그럽니다. 왜 너 함평서 살 때 청년은 윗방에 찬방에 재우고 너는 따뜻한 방에 자지 않았냐? 아주 고민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청년이 내려와서 자면 같이 천국가면 쓰겠는데 찬방에 자니 나는 지옥 간다고 아주 고민이라. 그래, 내가 그랬어요. 그 말도 맞지만 그냥 예수 믿고 용서해 준걸로 믿읍시다. 그래야지 어쩌겠어요? 양보를 안 하니 그분은 절대 아랫방에 안 오시거든, 따뜻한 방에 그럼 어떻게 해요? 거기에는 양보가 없어. 내가 추운 방에 자고 내가 더 굶고 내가 더 일을 더하는 것은 양보 못하는 거예요. 덕에도 선생님한테는 양보를 안 하는 거예요. 내가 십자가 지고 내가 피 흘리고 내가 고생하는 걸 어떻게 양보해요? 실상은 누구든지 건실 하거든요. 누가 찬 방에 자고 싶겠어요? 그러니까 따뜻한 방을 양보를 안 해. 따듯한 방에서 자라는 소리를 절대로 자기는 양보를 안 하지요. 찬방에 자는 거예요. 그게 그 분의 덕이지요. 저분은 천사라. 그래요. 아 저 분은 천사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느냐는 거예요. 지어 만든 마음이 아니에요. 진실해, 절대 따뜻한 방에 안 내려오셔. 그건 그 형제의 덕이지요. 그러니 누가 하나님마음을 알며 누가 사람을 깊은 심정 알겠습니까? 오늘도 남반에 우리가 다녀왔어요. 거기도 천사가 우굴 우굴 해. 말씀 못하는 형제가 한분 계세요. 말을 못하니까 아주 기뻐서요. 말을 못하니까 소리를 지르며 세상에 그런 천사가 있어요? 자매들 방에는 못 가봤어요. 그런 분이 있는가? 없는가? 그걸 내가 어떻게 와서 전하겠어요? 그 말을, 그러니까 여기가 천사의 고장이야. 천사가 와서 사시는 곳이야. 참 좋은 곳이라고요. 어찌 되었든지 참 아름답습니다. 절대 고난은 선생님한테도 양보 안 합니다. 고생만은 형님 안 준다. 내가 한다. 그것이 덕이라는 말씀입니다. 덕이에요. 그러면 보십시오. 금년도 일 년 열두 달도 다 가는 이 마당에 가슴을 얹고 생각해 보면 참 황송하지요. 하나님 앞에, 사랑을 능동적으로 하지 못했어요. 마지못해 했다는 거 얼마나 미안해요? 이왕 하는 사랑 기쁘게 해야 하는데 하기 싫어서 했을 때 마음이 괴로워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 앞에 용서를 받고 신년도부터는 그런 적극적으로 사랑해야지요. 능동적으로, 사랑이 남의 재산입니까? 내 재산이지요. 내가 해놓은 사랑은 내 재산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고생은 양보를 안 해. 나도 농사를 해서 내가 수확을 해야지 왜 고생을 양보해? 그러니까 참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을 앞서서 하기 때문에 희생을 앞서서 해버려 그래 다른 사람은 일 할 것이 없어요. 그 사람이 다 해버리니까. 그러면 이 연말을 당해서 예수님 말씀을 믿고 또 구약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봐도 용서 했다는 선언입니다. 누구는 잘했고 누구는 못했겠어요? 살다보니 일 년이라. 생각해보니 죄뿐이야. 일평생 산 것을 회고해보니 죄 뿐이야. 할 말이 없어. 그러나 예수님은 용서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요. 그걸 너는 용서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하겠어요? 그럼 구주가 아니시지요? 구원하신 주인이 아니시지요? 그렇게 생각해 봅시다. 그런 말이지요? 이 날이 가기 전에 너를 용서했다. 네 죄를 용서 했다. 이 말은 들어두어라. 잘 들어 두어라. 네 재산이다. 여러분의 재산이다. 이것밖에는 참 재산이 없다. 그러니까 용서 받은 것 외에 다른 인생의 행복이 있겠는가? 그 말이에요.
용서 받았다는 그 믿음 외에 더 무슨 땅위에서 영원한 재산이 있겠는가? 시편 32편이지요.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죄 허물 벗겨진 자, 야훼께서 잘못을 묻지 않고 마음에 거짓이 없는 자, 말에 없지 않으렸더니 온종일 신음 속에 뼈만 녹아나고 밤낮으로 당신손이 나를 짓눌러 이 몸은 여름 가뭄에 풀 시들듯 진액이 다 말라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당신께 내 죄를 고백하고 내 잘못 아니 감추어 야훼여 내 죄 아뢰옵니다. 하였더니 내 잘못 내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따라 읽으세요. 야훼여 내 죄 아뢰옵니다. 하였더니 내 잘못 내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다시 하세요. 당신께 내 죄를 고백하고 내 잘못 아니 감추어 야훼여 내 죄 아뢰옵니다. 하였더니 내 잘못 내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시편 32편 5절 말씀. 시편은 다윗의 시인데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이 복이 있다. 그랬어요. 죄를, 누가 복이 있냐? 자식 많은 자가 복이 있냐? 부자가 복이 있냐? 건강한 사람이 복이 있냐? 아니다.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이 복이 있다. 참 복이 있다. 그러니 잘 들어 두어라. 예수 말씀은 다른 말 없어. 아무 조건이 없어. 네 죄를 용서 받았다.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너는 죄가 없다. 내가 너를 용서했다. 그 말씀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사연을 그렇게 말하지요. 이왕 빚을 졌는데 일 년 열두 달 살다보니 다시 말하면 빚을 많이 진 사람과 적게 진 사람을 어떻게 한번 생각해 보자. 그랬어요. 잘 들어 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아까 향수를 가져다가 예수의 머리에다 발에다 부어드렸다고요. 그러니까 사랑을 보여드렸어요. 요 장면을 생각하면 눈물겨워요. 예수님 식사하시기 위해서 손님들이 많이 와서 수백 명이 모인 곳인데 가정집 이니까 꽉꽉 차있다고, 앞뒤에 차있는데 그것도 어여쁜 처녀가 향수 한 병을 가지고와서 아무 예절도 없고 그냥 미친 듯이 들어왔어요. 그 향수를 그냥 계란 같은 것을 깨가지고 머리에다 덜컥 부어버리고 발에다 질질 흘러버리니까 다 미쳤다하지 그걸 누가 좋게 봅니까? 다 소리를 지르지요. 그 무슨 짓이냐? 그 웬일이냐? 그러니까 예수님이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주었다. 그렇게 이야기해요. 잘 들어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어. 그러니까 사람이 있든 없든 너무 예수님이 자기 죄를 용서 받은 게 너무 감격해서 그냥 인사불성이야. 사람이 안보여. 예수님만 보이는 거예요. 쫒아가 서 향수를 머리에 부어버렸어. 그러니까 이토록 사람이 정신 빠진 것 같이 사랑을 보여 버렸어. 대중 앞에서, 이렇게 향유를 예수님 몸에 붓는 광경이 너무나 극적이야. 많은 사람이 보고 비웃어요. 너무나 지나쳐서, 그것은 왜 그러냐하면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죄가 하나나 되었으면 사탕이나 하나 가져다 줄 텐데 이놈은 너무 많이 무거운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자기 피를 다 쏟아도 아깝지 않아. 그러니 자기가 일평생에 돈 벌어서 제일 비싼 향유하나 사다 놓았는데 자기가 바르지 않고 예수님 몸에다 부어 버렸거든. 그러니까 너무 많은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변호하는 거예요. 변호 하는 거 그 미친 여자 아니다. 지금 다른 것도 아니고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저 모양이야. 너무 많은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저토록 사랑을 보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그럼 적게 용서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랬어요. 적게 용서 받은 사람이야 그렇게 까지 하겠어요? 속으로 감사하지. 너무 많은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그 부인은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남이 생각지 못했던 사건을 저질러 놓은 거예요. 그래 성경에 이 기록을 안 써넣을 수가 없어요. 보통 상식으로는 지나쳤어. 모든 사람이 오해를 해요. 그렇게 자기 죄가 많다는 증거가 아니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많이 용서를 받았다. 그렇게 설명하고 계시지요. 그럼 문제는 그거에요.
제가 이제 어느 분 임종할 때 이야기인데요. 그분이 23살인가 24살인가 임종할 때 육이오 후에 서울에서 댄스홀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죄가 많았던가 보지만 우리는 몰랐지요. 죽을 때 고백했어요. 절대 임종할 때 까지는 자기 신분을 감추었으니까 몰라. 그런데 임종하기 일주일쯤 전에 제가 뵈었는데 얼굴이 퉁퉁 부어가지고 대소변을 못 가리고 배가 불룩해지고 이제 숨이 차고 그때 말씀 합디다요. ‘저는 서울서 춤을 추던 무희입니다.’ 춤추던 여자라고, ‘저는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 말 한번 들어봤는데 그 다음에 임종할 때 보니까 무섭대, 이 숨이 하늘나라 가게 되었는데 무서워서 막 ‘아이고 무서워 아이고 무서워’ 그러더라. 그래요.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까 옆에서 계신 분들이 하나님은 다 용서 하셨습니다. 안심 하십시오. 그 말이 참말이냐고 아니 성경말씀에 있다고, 예수가 직접 말씀했다고 그래 안심해요. 그럼 안심하고 있어요. 조금 있다가 또 의심이 나요. 아니고 무서워 아니고 무서워. 아니 이건 믿으라고 예수님은 다 용서 했다고 이 말을 믿읍시다. 다 용서 하셨습니다. ‘예, 믿습니다.’ 하면 마음이 평안해. 조금 있다 또 공포심이 일어나면 얼굴이 파래지고 그래, 거듭하더라. 그래요. 몇 번 임종하기 전에 하룬가 이틀인가 나중에는 믿었어요. 그래 자기가 결핵으로 죽은 이 마당에 내가 결핵병을 안 걸렸으면 이렇게 춤추는 여자로서 세상에서 평생에 죄를 지을 여자인데 이 병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의 피 공로로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죄 씻음을 받고 죄 용서함을 받고 천국을 가게 되었으니 내가 폐병 들어서 죽게 되는 것이 얼마나 나는 행복 한가 그러더라고. 내가 이 병들어 죽게 된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용서받았으니까 죽는 마당에 아주 행복하게 죽었다 그래요. 임종할 때 그 실제 있는 일이거든요. 평소에 믿어둬야지, 죽을 때 믿기는 힘들어. 자꾸 의심이 되어요. 네 죄를 용서했다.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믿는 것이 얼마나 복이 있습니까? 그 죄 사함 받은 찬송하나 부르시고 그 다음에는 제가 빈손에서 다른 어른들이 하신 말씀을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찬송)
내 죄 사함 받고 예수를 안 뒤
책 이름은 빈손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본 책은 테레사 자서전이고 해설하신 분의 해설 가운데 94페이지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금 우리는 용서 받은 여자를 이해하고 있지요. 여기 그 사연입니다. 여기는 추리고 성경학적으로는 이름이 안 쓰여 있지만 막달라 마리아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쓰여 있는 것 같아요.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 이야기 하는 가운데 테레사는 그 은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죄를 용서 받았다는 것은 무조건 용서지요. 조건이 없어요. 그게 은총이에요. 그러니까 처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것은 은총으로 잉태되지요. 그러니까 죄녀가 죄가 없어진 것이 은총이야 똑같아요. 처녀가 아이를 밴 것도 불가사의 한 거예요. 초자연의 이치, 우리 머리로는 배워서는 알 수 없어. 믿을 것뿐이야. 어찌 남자 없이 애기를 배느냐? 그건 믿어야지 이론은 안 되어요. 죽도록 이론해도 그건 안 믿어져 믿어야지. 그러니까 처녀가 애기를 잉태한 것은 은총을 받아서 잉태했다. 그걸 우리는 믿지요?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가 죄를 용서 받았다. 그게 은총이에요. 은총은 천지만물을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하시고 천지만물을 이렇게 창조하시고 그러시지요. 그 하나님의 능력, 초자연 하나님의 권능 그게 은총이지요. 그러니까 은총은 아무리 죄가 많아도 탁 용서하면 용서 되요. 나병 환자라도 깨끗 하라. 그러면 나아버려요. 그게 은총이에요. 지금 우리한테 병 있는 사람 있지요? 예수님이 병 나아라. 그럼 낫는 거예요. 믿는 것이 은총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성녀 된 어느 아가씨 24살에 아가씨가 병으로 죽었지요? 그 아가씨가 믿는 믿음이에요. 그러니까 막달라 읍에 가서 바람난 여자 마리아 그 사람이 예수 만나용서 받았다. 그 이야기를 할 때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랬어요. 그 말을 요약해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자기는 이 여성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그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소문난 막달라 여자의 죄나 일평생 15살에 수녀원에 가서 24살에 죽은 수녀의 마음이나 똑같다는 이야기에요. 본질상 죄가 똑 같아. 사람 보기에 하나는 드러난 죄인 하나는 죄 없는 성인이라 하지만 실상 본질은 그 피는 똑같은 죄가 있다. 그 본인이 그렇게 자복했다는 거예요. 제 삼자가 그렇게 말하면 비평이지만 성녀 본인이 그걸 자복하고 세상을 떠났어. 막달라 여자가 죄가 많아서 용서 받았다 하지만 나 수녀인 나는 죄가 없냐? 똑같은 죄인이다. 그걸 자기가 말 했다. 그랬어요. 본문이지요. 그분이 스스로 자술한 자서전에 제가 피조물의 사랑에 피조물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든 것 남자도 피조물이에요 여자도 피조물이고 사탕도 피조물이고 새도 피조물이고 전부 하나님이 만든 것이지요. 아 사탕은 사람이 공장에서 만들었구나. 그렇지? 어찌되었든지 단물도 하나님이 만든 거예요. 단물도 제가 피조물의 사랑에 몸을 내 맡기지 않았다고 해서 무슨 공로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나는 막달라 읍에 가서 술도 팔고 몸도 팔고 그렇게 안 했다 해서 내게 무슨 공로가 있겠느냐는 거예요. 수녀원에 있다고 해서 무슨 공로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선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내가 일찍 애기 때부터 죄를 안 지었다. 하면 그건 선하신 하나님의 크신 자비에 의한 창작이지, 하나님이 그렇게 했을 뿐이지 내가 그렇게 죄를 안 지은 게 아니다.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었더라면 저도 막달라 마리아는 회개했으니까 성녀지요. 깨끗한 사람이지요. 성녀 막달라 마리아 만큼이나 떨어질 수 있었다. 그거에요. 있었을지 모른다. 가정이니까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시몬에게 하신 말씀이지요. 누가복음 7장에 시몬에게 하신 말씀 그대로 우리 주님의 심오한 말씀의 뜻 여기에서 그 여자한테 말씀하실 때 여러 가지 대화 적게 용서 받은 사람 많이 용서 받은 사람 그 심오한 말씀이 제 마음에 아주 고요히 팍 울려온다는 거예요. 실제 자기한테 말씀하시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때 광경이, 그러면 적게 용서 받은 사람이. 적게 사랑한다. 그렇게 나오지요. 47절에 적게 용서 받은 사람이 적게 사랑한다. 그럼 나는 적게 용서 받았느냐는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는 많이 용서 받고 나는 죄가 없으니까 조금 용서 받았는가? 스스로 생각해 봤어요. 저는 적게 용서 받은 사람 적게 사랑할 것인가?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성녀 막달라 여자 마리아보다도 저를 더 많이 용서해 주신 것을 압니다. 이 말이 소리는 적어도 천지가 폭발 하는 소리보다 큰 소리예요. 귀속에 들리는 소리지만 이것은 너무나 큰 우리가 귀가 터지도록 잘 들어둬야 할 말씀이에요. 그 막달라 마리아는 죄가 많으니까 많이 용서해 줬지요? 그러나 더 많이 용서해 준 것도 압니다. 그러나 제게 대해서는 자기 그 성녀 자신에 대해서는 더 많이 용서해 주신 것도 압니다. 그 밑에 설명을 해요. 저를 미리 용서해 주셔서 제가 떨어지는 것을 막아 주셨으니까요. 미리 용서해 주셔서 제가 떨어지는 것을 막아 주셨으니까요. 그러니까 15살 먹어서 그 땀을 치고 새도 못 날라들어가는 봉쇄 수도원에 자기를 가둬둔 거예요. 하나님의 섭리가 그러니 길거리에 나다니면서 아무 죄나 안 지었어요. 그거에요. 사실 테레사는 넘어진 후에 일으켜 주는 것보다도 걸림돌을 앞질러 치워버리는 편이 더 자비로운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이라고 깨달았고 의인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을 구하시려 오신 그리스도께 자기는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그 분께서는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은 ‘많이’가 아니라 모두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 말이 요절입니다. 따라 하세요. 그분은 ‘많이’가 아니라 모두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우리 소녀들한테 물어보겠어요. 대답하세요. ‘많이’가 많습니까? 모두가 많습니까? ‘많이’가 많지요? ‘많이’가 많지요? 모두가? 아하 많이 보다는 모두가 많은 거예요. 이 비밀을 소화 테레사 성녀가 깨달았다는 거예요. 기생 노릇하고 죄를 지은 여자는 많이 용서를 해줬어요. 이 처녀로 감옥에 갇히듯이 수도한 사람은 모두 용서해 버렸어 그러면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이 열 개라면 모두는 모두인데 셀 것이나 없지요. 가만히 생각해 봐요. 여기 붉은 물을 자꾸 뿌리면 많이 묻지요? 많이 묻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