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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0환언특강(강석준집사님 정리)
마태복음 11:12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태복음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태복음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당부의 말
여러분이 성경본문을 읽을 때, 습관처럼 형식적으로 읽는 것이 안타깝다.
설교의 본문은 그것에 대해 설교하겠다는 것이다.
성경 전체를 예배시간에 읽을 수 없으니, 부분만 발췌해서, 말하는 것이다.
주일 설교에 은혜받지 못하는 까닭은 그런 본문을 중요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주일을 소홀히 한다.
첫째도 주님이요, 둘째도 주님이어야 하는데, 사람의 약속을 더 중요시 한다.
그것이 시험에 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어느 순간도 끊어지면 안된다.
이는 여러분이 성경말씀을 폐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라 하셨다.
성경을 절대로 폐해서는 안된다.
여러분의 신앙은 들음에서 온 것이다.
들음은 전하는 자들에 의해서 온 것이요, 전하는 자들은 보내신 이에 의한 것이다.
보내신 이는 주님이시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환언이라는 것은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교리와 말씀은 틀리다.
교리는 인간들의 상식과 지식을 동원해서 인간들의 입장에 맞도록 조정해서 만든 하나의 신념이다.
종교는 교리가 없으면 큰 종교가 되지 못하고 미신이 된다.
기독교는 교리가 없어도 살아남는다.
교리는 어린아이들의 초보같은 것이다.
로고스는 교리가 아니다. 그냥 하나님이시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성경에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에 성경을 폐할 수 없다.
설교본문도 잘 명심하자.
설교요지에도 성경구절이 있다.
그 성경구절도 찾아보면 화끈하게 들어온다.
명절 때가 되면, 사람들이 명절에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시험 들어있는 사람이 많다.
명절 때 식구들끼리 모이면 서로 싸워서 시험들고, 서로 미워한다.
순간에 성질났다고 하지만, 그 순간에 귀신이 들어간다.
그래서 혈기가 가장 무섭다.
부부간에 귀신들기가 가장 쉽다.
혈기를 많이 부리기 때문이다.
혈기는 육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하여튼간에 혈기부리지 말라.
구원받지 못하는 종교인만도 못한 사람도 있다.
종교인들은 혈기부리지 않는다.
아주 참을성있다. 거기에 성령만 받았으면 아주 굉장했을 것이다.
혈기는 귀신이 들어갈 수 있는 대문이다.
귀신마다 거의 80프로가 혈기낼 때 들어왔다고 한다.
혈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건드리면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다.
혈기 나오려고 할 때, 꾹 참아야 한다.
명절 지나면 귀신들 많이 들려서 온다.
귀신은 사람 몸 바깥에서 괴로워서 못견딘다.
몸 안에 들어와야 산다.
귀신이 나갔다가, 물없는 곳을 다니면서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다가, 예전에 자기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 할 때, 저보다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온다.
귀신이 어디 가서 편안한 곳이 없다.
어디가나 귀신은 목마르다. 결국은 자기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혈기 부리는 것 기다렸다가, 잽싸게 들어간다. 들어갈 때, 저보다 악한 것을 데리고 들어간다.
명절 때, 전통적으로 조상 섬기는 법이 있다.
죽은 사람이 자기 문제도 해결못해서 죽었는데,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잘되게 할 수 있는가.
자기는 예수 믿는다고 절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마음이 괴롭다.
시험에 드는 것이다.
그렇게 귀신에게 늘 기회를 주고, 자리잡게 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천국은 네 안에 있다 하셨다.
이 다음에 부활해서 가는 천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네 안에서 천국을 발견해야 그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네 안에 천국이 없는데 어떻게 천국을 가는가.
천국이라는 것은 아주 행복해야 한다.
복이라는 말은 행복이라는 말이다.
하나님만이 복되신 분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복을 빌어주시는 분이다.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뿐이시다.
예수께서 하늘로 오르실 때, 제자들에게 축복하셨다.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 복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고, 저가 나의 기뻐하는 자라 하신다.
아들 때문에 행복하다 하신다.
우리도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하려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서 행복해야 한다.
말로는 아멘 아멘 하지만,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한 것이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
사랑 속에 거짓을 품고 있으면, 절대로 사랑할 수 없다.
겉으로는 사랑한다고 웃어도, 사랑하지 않으면 헛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 사랑하는 독자를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 하셨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소망이요, 자산이다.
자기 육체 뿐 아니라, 자기 미래를 통틀어도 아들보다 크지 않다.
그 사랑하는 독자를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 한다.
모리아산은 예루살렘 시온의 언덕이다.
다윗 때부터 그곳을 시온성이라 하였다.
그곳까지 사흘길을 아들을 데려가면서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잡으려 할 때, 하나님이 손대지 말라 하시고, 대신 산양을 준비하시고,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기업으로 주셨다.
이삭으로 인해서, 네 자손이 번성하고, 대적의 문을 밟는다고 하셨다.
사망의 권세를 이긴다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독자라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므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 알았다 하신다.
입으로만 하는 헌신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몸과 마음과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가.
모든 것을 다 드려야 사랑이다.
율법의 강령이 무엇인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였다.
또,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오늘날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있는가.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하셨다.
인색한 자는 마음이 그것뿐인 것이다.
연보를 하되,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라 하신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것을 받으신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물, 예배, 헌신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가.
이는 하늘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하늘에 대한 소망이 충만하다.
소망이 없기 때문에 하늘에 대한 믿음이 없고, 사랑이 없고, 그러니까 인색할 수 밖에 없다.
신앙생활을 육체의 생각대로 하지 말고, 육체의 생각을 능가하는 성령의 힘으로 하라.
성령으로만이 예수를 그리스도라 할 수 있고,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다.
그래서 성령받으라는 것이고, 성령충만하라는 것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 같이 너를 살리신다는 것이다.
성령을 소멸한 자는 금세와 내세도 사함을 받지도 못하고, 다시 회개케 할 방법도 없다.
속죄할 제사도, 제사장도 없다.
여러분이 성령 소멸을 많이 했다.
그래도, 아직 진리를 사모하면서 있는 것은 밑바닥에 조금 남아있는 것이다.
이미 다 쏟아버렸어도, 바닥에 하늘에 대해 갈급한 심령이 있으니, 자주 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지키라는 것이다.
처음 받았을 때, 보존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남은 것이라도 지킬 수 있도록, 자주 말씀을 듣고, 성령의 은혜받음으로 하나님께서 취할 것이 있으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받아 불사름이 된다.
요즘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자살한 사람들이거나, 귀신이 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녹음한 것이 많이 있다.
그것을 잘 정리하면 책한권이 나올 것이다.
비난받겠지만, 사람들을 경성시키기 위해 쓰고 싶다.
얼마나 후회하고 비통한지 말못한다.
말씀
기독교의 신앙은 개혁된 신앙이다.
신앙이 개혁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전에는 모세와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이 믿음이 없었다.
믿음이 올 때까지만 맡겨둔 것이라 하셨다.
믿음과 과거 사람의 종교생활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 개혁한다는 것은 보통 무식한 소리가 아니다.
기독교 자체가 개혁한 것이다.
첫언약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성전이 있고, 제사장이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은 하나의 비유로서, 개혁할 때까지만 맡겨둔 것이다.
장막을 짓고, 장막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은 여호와를 섬긴 것이다.
그것을 개혁한 것이다.
율법을 개혁한 것이 은혜와 진리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개혁된 신앙, 개혁된 믿음을 가진 것이다.
그전에는 믿음이 아니다.
그저 종교일 뿐이다.
아벨의 믿음은 자기의 신념으로서 소경이 바늘귀 꿰듯 맞아들어간 것 뿐이다.
피없이는 아무도 하나님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계시하신 것인데,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일러주셨다.
독자를 제물로 해서, 하나님께 네 사랑을 바쳐라 하는 것이다. 속죄는 아니다.
이는 비유일 뿐이지 정답은 아니다.
구원의 약속이 아니다.
첫언약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다.
시편 105:6 그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시편 105: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시편 105:8 그는 그 언약 곧 천 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시편 105:9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시편 105: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시편 105:11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시편 105:12 때에 저희 인수가 적어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시편 105:13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적으니 유리하는 자가 되었다.
그들을 애굽에서 키워서 백만명이 되게 하셨다.
시편 105:37 그들을 인도하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시편 105:38 그들의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으니 저희가 그들을 두려워함이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금방 역사한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숫자를 키워서 나오게 하실 때는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셨다.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마침내 가나안 땅, 예루살렘에 와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 계명을 받아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분하여 광야로 끌고나와 거룩하게 하였다.
선지자들은 광야에서 이들을 예루살렘까지 끌고와서, 예루살렘에서 죽는 것이다.
본문에 율법과 선지자는 침례 요한의 때까지라 하신다.
이 땅에 하나님이 와 있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요한의 침례를 받고, 물위로 올라오실 때, 하나님이 직접 저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다.
베드로가 예수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하였을 때, 이를 알게 한 것은 하나님이시라 하셨다.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이다.
사람이신데, 물 속에서 나오실 때부터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하나님이 시인하시고, 그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인도하신다.
이제까지 시내산에서 보여주었던 천사를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는데, 요단강에서 끝났다.
침례 요한의 때까지다.
물 위로 올라오실 때부터 개혁이 된 것이다.
기독교는 개혁된 종교라고 말한다.
기독교를 개신교, 개혁한 새 종교라고 한다.
그들이 말한 것은 꾸민 것이다.
그들은 마틴 루터에게 근거를 둔다.
마틴 루터는 카톨릭의 신부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학자다.
자기가 직접 성경을 번역하다보니까, 카톨릭의 모순을 발견했다.
성경에서는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하였는데, 그들은 신부를 아버지라 한다.
그가 카톨릭의 모순점을 백 가지를 지적했다.
40년 전에 내가 읽은 책 중에, 백 가지 중에 아닌 것을 발견하면 백만불을 주겠다고 천하에 광고한 사람도 있었다.
단 한사람도 아닌 것을 발견한 자가 없다고 했다.
마틴 루터는 개혁한 것이 아니라, 카톨릭의 교리와 행습을 수정한 것이다.
교정만하면 훌륭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몇 가지 수정하자고 제안했다가 이단으로 몰려서 숱한 핍박을 받았다.
그 후의 사람들이 마틴 루터가 한 일을 종교개혁이라고 말한 것이다.
예수가 개혁한 것이지, 마틴 루터가 개혁한 것이 아니다.
개파들이 우리 보고 맹종한다고 한다.
맹종은 눈 멀고, 귀 먹은 체로 따르는 것이다.
지금 영적지도자가 누군가.
장사치가 영적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내가 자부심을 갖는 것은…
내가 18세부터 말이 칠십오독이지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공부 못한 대신에 성경만 엄청 읽었다.
나는 장사도 못하고, 세상 일도 못해봤지만, 부름 받아서, 24세부터 전국을 누비는 부흥사가 되어 오늘까지 온 것이다.
결혼하고도 50일이 지나 신방을 차릴 만큼 아이 낳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가장 성령 충만할 때, 김성현 감독을 잉태했다.
잉태한 배에 손을 얹고 항상 하나님께서 써 달라고 간구했다.
나와 함께 전도하고, 개척하면서, 영욕을 함께 했다.
누구보다 내 말을 많이 듣고, 내가 한 일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만이 정통성이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신학교 나와서 얻은 것도 아니고, 그 전에 성령 충만했고, 십년 후에 신학교를 졸업했다.
오직 성령으로 일해왔다.
내가 다른 지식이나 상식으로 하려 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만 했다.
빨리 결정해달라고 해도, 나는 기도하면서 확증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있는 곳에는 교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장사꾼은 영적지도자가 아니니까, 교회 재산 밖에 안보인다.
어떻게 교회가 사유화 되는가.
그런데, 사유화 된다고 하는 말에 속아 넘어간다.
뭐가 영적 지도자인가.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신이라 하셨다.
모세를 바로와 아론 앞에 신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영적 지도자가 되게 하셨다.
여러분이 김기동 목사 앞에 와서 무엇을 얻었는가.
여러분의 신앙을 얻지 않았는가.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지 않았는가, 성경에 대해 눈을 뜨지 않았는가.
영적인 지혜와 지식이 열린 것이다.
잘 나가다가 왜 딴 짓 하는가.
예수를 열심히 따라다니다가, 예수가 잡혀가시니 순간에 다 도망간다.
제자중 한사람은 옷도 벗고 도망갔다.
에봇은 달릴 수 없는 옷이다. 걸리적 거린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봤다면 도망갈 수 없다.
예수를 그 동안 하나님 아들이라고 했지만, 잡혀가는 것을 보니까 흔들린다.
예수를 잘 보다가, 왜 김기동을 보고 다 도망가는가.
세상은 여러 가지로 당신을 속이고, 하나님과 이간하려고 별 짓 다한다.
주님 말씀을 들으라.
율법과 선지자는 침례 요한 때까지다.
요즘 교회가 여전히 여호와를 부르고, 종교화 되었는데, 무슨 개혁이 되었는가.
어떤 책을 보니까, 기독교가 개혁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세례를 그대로 가져와 놓고 무슨 개혁이 되었는가.
신학교도 안 나온 서리 전도사가 침례 때문에 감리교에서 종교재판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선배들 앞에 재판을 받는데, 나는 왜 침례가 옳은지 설명했다.
나 보고, 혼자 나가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들어와서 다시 세례하라고 했다.
지금보다 더 무섭다.
그것을 오늘까지 견뎌온 것이다.
진리가 큰데, 왜 버리겠는가.
율법과 선지자는 침례 요한(요단강) 때 까지다.
이후부터는 임마누엘,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율법이 오늘날과 무엇이 다른가.
율법은 율법의 의무가 있다.
율법이 있기 때문에 지옥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에덴에서 선악과를 먹으므로,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 불순종하여 영이 죽은 것이다.
의사가 암을 진단하므로, 암이 생긴 것이 아니다.
이처럼 율법은 죽는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다.
의사가 진단을 해주므로, 자기가 암인 줄 알았지만, 말기이면 고칠 방법이 없다.
율법이란, 사람의 영혼이 왜 지옥 가는지, 왜 죄인인지 알게 하는 법이다.
율법이 없어도 이미 사망이 왕노릇했고, 죄가 왕노릇했다.
율법이 없으면 죄인이 아닌 것이 아니다.
율법은 의사와 같은 것이다.
의사는 병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발견하는 자다.
율법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율례다.
이는 이삭을 통해서 모리아산에서 맹세하신 것이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율법은 이방인이 취하지도 못한다.
율법은 전파되는 것이 아니다.
엄마를 몽학선생이라 한다.
골방에서만 엄마가 율법을 가르친다.
전파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는 전파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전파될까봐 꼭꼭 숨기고 있지 않은가.
율법은 전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방인은 맛도 보지 못한다.
제사장은 양날칼을 가져서, 이방인이 들으면 멸망하게 되어 있다.
율법이 있는 자는 율법으로 심판 받고, 율법이 없는 자는 율법으로 망한다.
우리가 침례 받으므로 율법이 전파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율법은 끝난 것이다.
예수 십자가의 고난을 보면,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죄는 저주요, 형벌이요, 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죄에 간섭하면 죽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율법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예수 십자가를 보면 율법을 통달한 것과 같다.
예수의 죽으심은 죄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죽으신다.
아무리 권능을 많이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도, 죽는 것이 율법이다.
우리가 율법 공부를 다시 안 해도, 예수 십자가의 공로를 믿으면, 이미 율법을 통달한 것이다.
입으로만 한 것이 아니라, 침례를 통해서, 죄와 율법을 장사 지내는 것이다.
첫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은 죄를 앞에 두고 있다.
사람과 만날 때, 잘못한 것이 있으면, 거리낌이 든다.
율법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율법은 사람 뒤에 있지 않다. 언제나 앞에 있다.
죄를 지었는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염려한다.
저주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율법의 권능은 죄요, 죄의 권능은 사망이다.
양심이 앞에 있으면, 아무리 할렐루야 겉으로 웃어도, 속으로는 나는 어떻하지 한다.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참소는 죄사함 받았다고 믿는 사람을 재고소하는 것이다.
마귀가 밤낮 참소한다.
은혜 받았다고 해도 소용없다고 한다.
주여, 기뻐했다가, 나는 어떻하냐고 고민한다.
율법이 앞에 있으면 마음이 저주 받는다.
그래서, 율법이나 양심이 앞에 있지 말라는 것이다.
침례는 법을 뒤로 보내는 것이다.
침례 받았으면, 뒤로 두는 것이다.
육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뒤에 두고, 앞만 보고 간다고 바울은 말했다.
침례 받은 사람은 내 죄를 뒤에 두고, 앞만 보고 가는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는 이미 지났으므로, 뒤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율법을 읽고 있다.
방송설교를 들어보면, 율법을 해석하느라 바쁘다. 율법은 비유다. 그것을 뭐하러 해석하는가.
자기 어머니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네 어머니는 아버지의 처남의 아버지의 큰 딸의 동생이 네 어머니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설교의 능력이 없으니까, 구약의 성경구절들이 설교하기 좋다.
이미 지난 선지자의 글은 잠언과 같다.
잠언은 어린아이에게 훈계로 가르치듯 설명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어른이 자기 경험을 말하므로 알게 하는 것 뿐이지, 그 경험으로 살지 못한다.
구약은 옛날 이야기다. 지금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나에게 성경을 부인한다고 뭐라고 한다.
나는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하는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는 참고로 하라.
그러나, 창세기는 하나의 근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전 세계 사람들이 똑같이 가져야 한다.
창세기1장부터 11장까지 그래서 중요하다.
구약은 창조사, 건국사, 종교사다.
구약에 있는 절기와 십일조와 오늘날 하는 것에 대해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다.
마태복음 8: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마태복음 8:2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마태복음 8: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태복음 8: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모세의 예물을 드리라 하신다.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율법을 다 폐했다고 해서 다 안 지키는 것이 아니다.
십일조는 모세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부터 한 것이다.
또, 하나님께 예물 드리는 것은 아벨부터 한 것이다.
근본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
그런데, 베뢰아를 한 사람들이 타락해서 베뢰아 욕하면서 글 쓰는 사람들이 있다.
십일조는 옛날 율법시대에 레위사람에게만 명한 것이라고, 오늘날은 아니라고 한다.
예수께서는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리라 하시고, 십일조도 버리지 말라 하신다.
율법이 있기 전부터 우리 신앙의 근본이 있다. 이는 절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
복음은 앞으로 가는 것이다
율법은 전파되는 것이 아니다. 전파되면 저주 받는다.
그러나, 복음은 골방에서 말한 소리를 지붕에서 전파하는 것이다.
공격적이다.
그래서, 복음을 적극적인 전도라고 한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망한다.
우리는 예수의 은혜와 진리를 전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사람은 율법을 통달한 사람이다.
율법의 어떤 것도 십자가로 다 끝나는 것이다.
복음은 막 전하는 것이다.
서양 선교사들은 야구가 복음전도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공을 받으면 바로 던진다.
내게 들어온 복음은 막 전해서, 담 너머로 넘겨야 한다.
야구의 규칙이 그래서 생겼다고 한다.
야구는 공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던지면, 방망이로 치고, 잡으면 던진다.
복음은 내가 받는 즉시 전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 안 믿던 중학교 때, 행운의 편지를 받았었다.
받으면, 바로 열 장을 전해야한다고 했다. 안 쓰면 저주 받는다고 했다.
하루 종일 고생해서 보냈다.
나중에 그런 것들이 내게로 또 왔다.
개척할 때, 그와 같이 전하니, 사람들이 몰려온다.
우리는 침례를 이미 뒤에 두었다.
율법과, 죄와 모든 것, 과거는 다 뒤에 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앞으로만 가는 것이다.
앞에 율법이 가로막으면 전도 못한다.
자기 양심에 거리껴서 전도 못한다.
힘이 없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 사용하지도 않으신다.
내 영혼아 구령하자.
내 영혼아 전도하자.
벌써 말이 안 나오는 사람은 양심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내가 율법을 앞에 두었는가, 뒤에 두었는가.
곧 침례를 받았는가, 받을 사람인가.
죄와 허물과 옛 사람을 뒤에 두고 앞만 보고 가자.
전하지 않으면 화가 내게 있다.
입을 잠잠히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