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9장
7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8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도다
9 내가 이 일들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내가 산들을 위하여 울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라
11 내가 예루살렘을 무더기로 만들며 승냥이 굴이 되게 하겠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
12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 같이 불타서 지나가는 자가 없게 되었느냐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14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16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 그들을 흩어 버리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설교
바로 앞에 있는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의 죄를 고발했습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우상숭배에 빠져놓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렸다며 하나님을 탓했습니다. 또, 다른 이웃들을 아프게 만들고, 착취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모두 실패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 말씀, 7절은 이 일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래서 보시면, “그러므로”라고 시작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단어는 7절 맨 뒤에 나오는 “연단하리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무지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 이 백성들을 연단하신다고 합니다. 연단은, 쇠붙이를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죠. 불순물을 제거하여 더 단단하게, 더 순결하게 만듭니다. 대장장이가 철을 연단하듯,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심판하셔서 그들의 죄악을 제거해 버릴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심판하신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백성들을 심판하셔야 했을까요? 먼저는, 하나나님께서 거룩하시고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죄를 가까이할 수 없으시고, 공의로우시기에 작은 죄라도 반드시 벌하셔야만 합니다. 재판장이 누군가의 잘못을 그냥 덮고 넘어가 버리면, 좋은 재판장이 아니죠.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반드시 벌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8절부터 보시면, 다시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이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백성들은 그들의 이웃에게 거짓을 말하고,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해를 꾸몄습니다. 또, 13절, 14절 보시면,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가나안의 신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백성들의 죄를 내버려둘 수 없으셨고, 심판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심판하셔야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7절에서 ‘연단’이라는 말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대장장이가 연단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더 나은 쇠붙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불순물이 섞인 쇠붙이가 아니라, 더 순결한 쇠붙이를 얻기 위해서죠. 하나님의 연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죄를 가까이할 수 없으셨고, 백성들의 죄를 없애시고 그들을 가까이하시기 위해서, 더 나은 백성으로 지으시기 위해서 그들을 연단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간혹,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심판하시고, 연단하시는 것을 즐기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지서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우리에게 잘 가르쳐줍니다. 오늘 말씀 10절 보시죠. “내가 산들을 위하여 울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선지자의 마음일 수 있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사람이죠.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은, 호세아서에도 잘 나옵니다. 호세아서 11장 8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호 11:8) 하나님은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마음이 아프셨지만, 그들의 죄를 해결하고 그들을 가까이 하시려면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 백성들의 죄를 모른 척 내버려 두시는 것이 그분의 사랑이 아닙니다. 백성들과 함께하시려고 그들의 죄를 처리하신 것이 그분의 진짜 사랑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혼내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을 심판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은,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외아들을 버리시는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를 심판하기를 즐기셨다면, 우리를 심판하시고 끝내셔야 했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그분의 아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딱 붙어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질 심판은 예수님 안에서 다 해결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까 두려운 마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대신 내어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지어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벌 받을까 두려워하며 사는 것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때로 우리를 연단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징계하신다 하셨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럴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은 변치 않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감사로 살아가시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