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을 보내며 / 김석수
세월 참 빠르다. 올해도 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금년에 가장 큰 변화는 40여 년 다니던 직장을 마감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여러 사람 도움으로 무사히 정년할 수 있어서 모두에게 고맙고 스스로 대견스럽다. 요즘 아무 탈없이 정년까지 근무하기 어렵다. 3년이나 남은 후배 교장은 학교 관리가 어렵다며 명예 퇴직했다. 그는 승진하려고 여러 해 가족과 떨어져 섬에서 생활했다. 면 지역 중학교에 교장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3년 임기를 마치고 도시 학급 수가 많은 학교로 옮긴 뒤 문제가 생겼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학교에서 날마다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1년 근무하고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지난 여름에 책을 냈던 일이 보람 있다. 처음부터 책을 출간하려고 글을 쓰지 않았다. ‘일상의 글쓰기’에서 쓴 글을 모아 두었다 책으로 엮었다. 같이 근무했던 선배가 지나가는 말로 “정년하면서 책을 내면 어떻겠느냐?”라고 하면서 전남문화재단에 응모해 보라고 귀띔해 주었다. 검색해 보니 마감 날이 이틀 전이라 급하게 서류 작성해서 제출했다. 예전에 다른 분야 응모 계획서를 만들었던 경험을 되살려 최선을 다했다. 뜻밖에 당첨됐다는 연락이 왔다. 운이 좋아서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
출판사 선정도 잘했다. 수필 전문 출판사를 물색하다 우연히 알게 됐다. 책이 나올 무렵에 알았지만, 대표가 나와 동갑이다. 그는 내가 제대 복직한 학교 2회 졸업생이다. 나와 같이 대학교에 다녔던 친구와 동창이다. 원고를 꼼꼼하게 살펴 줄 뿐만 아니라 홍보를 잘해 주었다. 덕분에 책이 생각보다 많이 나갔다. 그와 전화 통화만 하고 아직 만나지 못했다. 고마운 사람이다. 책을 읽었던 친구가 내용뿐만 아니라 종이 질이 좋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책을 보고 이곳저곳에서 과분한 칭찬을 해서 쑥스러웠다. 아무튼 두고두고 즐거운 일이다.
정년하자마자 ㅅ 대학교에서 대학원 강의와 논문을 지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처음에 망설였다. 시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곡히 요청해서 한 학기 해 보고 결정하자고 수락했다. 코로나 시대라 강의는 온라인으로 한다. 일주에 여섯 시간이다. 네 시간은 동영상을 만들어서 사이버 학습실에 올린다. 두 시간은 줌(Zoom)으로 비대면 수업한다. 모두 중국 학생이다. 동영상과 줌 수업에 통역이 있지만 강의 내용이 잘 전달되는지 모른다.
처음 수업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특히, 수업 동영상 찍고 나서 편집하는 것이 어려웠다. 촬영 중에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영상을 찍는 일을 되풀이했다. 줌 수업 시간에 인터넷이 잘 연결이 안 돼서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도 했다. 매주 강의 준비로 바빴다. 논문 지도 학생이 보내온 영어 소논문을 밤늦게까지 읽느라 눈이 아팠다. 처음에 거절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어제 이번 학기 수업을 마쳤다. 수강생이 “강의 내용이 알차고 유익했다.”라고 말해서 그동안의 피로가 조금 풀렸다.
올해에 또 잘한 것 중의 하나는 청소년 상담사 1급 필기 시험 합격이다. 지난 10월에 응시해서 운이 좋게 합격했다. 작년에 임상심리사 1급 시험 합격하고 심리검사를 주로 하는 심리 치료 분야에 일하려고 했으나 심리 상담까지 욕심이 생겼다. 시험 과목이 임상 심리와 겹치는 것이 있고 1급 응시 조건이 되어 용기를 냈다. 하지만 1급 시험이라 만만치 않다. 큰 기대하지 않고 편하게 시험을 봤다. 올해 문제가 쉽게 출제됐다. 예전보다 합격률이 높았다. 운이 좋았다. 면접시험이 남았지만, 필기 합격해서 다행이다. 필기 합격자에게는 면접시험 기회를 두 번 주기 때문이다.
아내 회갑을 맞아 제주도에 간 것도 좋았다. 가기 전에는 시큰둥하던 아내는 다녀와서 재충전이 됐다며 좋아라고 했다. 내년 1월 말에 베트남 종주 가족 여행하려고 비행기 표 예약을 했다. 그동안 모아서 쌓아 두었던 마일리지를 사용해 싸게 샀다. 보름 정도 다녀올 계획이다. 15일 이상 베트남에 머무르면 비자를 발급받아야 해서 번거롭기 때문이다. 호찌민으로 들어가서 하노이로 나오려고 한다. 자유 여행이기 때문에 호텔을 알아보고 예약해야 한다. 아내와 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인터넷 여기저기 검색한다.
한 해를 보내면서 좋았던 일 중의 하나는 어머니에게 따로 집을 마련해 드린 것이다. 어머니는 올해 아흔하나다. 그동안 아내가 수십 년간 한집에서 모셨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내는 힘들어하고 어머니는 아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고민 끝에 내가 어머니를 모시려고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화장실이 두 개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얻었다. 어머니도 자식 눈치 안보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했다. 둘 다 만족해한다. 나는 복도 많아서 요즘 두 집을 자주 오가며 두 여자를 보고 산다. 인생이란 덧없는 것인데 한두 푼 아끼려고 망설일 필요 없다. 임인년를 보내면서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계유년에도 알차고 즐겁게 보내기 바란다.
첫댓글 원장님 참 대단하세요. 자꾸 운이 좋다고 하시는데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운도 따르지 않는답니다. 정년을 했는데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자세는 저도 배워야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2022년 알차게 보내셨네요. 베트남 여행도 잘 다녀오세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참 많은 일을 하셨네요. 내년에도 좋은 일 가득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베트남 여행! 멋진 계획 입니다.
알차고 행복한 한 해를 보내셨군요. 원장님의 열정이 부럽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저는 동치미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재밌게 봅니다. 어른들의 인생살이 이야기를 들으면 조급한 마음도 누그러집니다. 선생님처럼 많은 어르신들이 청소년, 청년, 중년에게 넓은 품과 지혜를 많이 나누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글쓰기반을 수강하면서 다양한 어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퇴직하셨어도 바쁘시네요. 대학 강의하시고, 글 쓰시고, 틈틈히 공부해서 합격하시고, 책 내시고, 가족들도 잘 살피시고... 이렇게 여러 가지를 다 잘 해내시는지 정말 훌륭하십니다.
현직에서도 누구보다 알차게 꾸리셨던데 퇴직 이후에도 그러시군요.
늘 공부하고 한 단계 성장하는 원장님이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