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병을 목욕시키며 / 조영안
오늘도 초병을 목욕시킨다. 어렴풋이 내 기억의 그 여자아이가 그려진다. 단발머리 소녀는 부섴(부엌)에 들어갈 때마다 시큼한 냄새에 상을 찌푸린다. 아궁이의 생솔이 타다 남았는지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다. 벽에는 작은 사각 구멍이 두 개 있다. 그 사이로 연기와 싸우듯 빛이 헤집고 들어온다. 벽 전체가 그을음으로 까맣다. 부뚜막 구석에 있는 초병으로 향한다. 그것은 까만 벽과 달리 항상 정갈하고 윤이 난다. 엄마가 그랬다. "이 초병은관리를 단디해야 된다이, 깨지는 순간 우리 집도 망한다 이이가." 날마다 닦는다. 병 입구에는 생솔 잎이 가지런히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꽂혀 있다. 소녀한테는 차츰 우상이 되었다. 들어갈 때마다 제발 깨지지 말라고 마음으로 기도했다.
부섴에 들어가는 문은 나무로 되어 있다. 제법 긴 빗장이 걸려 있는 곳은 요리하는 곳이다. 크고 작은 가마솥 두 개가 내기라도 하듯 나란히 걸려 있다. 설강(시렁) 위에는 오래 된 사발이 엎어져 있다. 투박하지만 파란색의 선이 예쁘게 새겨진 것도 있다. 입구에는 보리밥 바구니가 걸려 바람을 타고 흔들흔들 춤을 춘다.
뒷간 대밭으로 이어지는 길 옆에도 작은 부섴이 있다. 여기는 소죽도 끓이고, 때로는 그녀의 목욕간이 되어 준다. 소죽은 볏짚과 쌀겨를 넣고, 김이 나도록 푹푹 끓인다. 양념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 겨울이면 큰 대야에다 김이 나는 소죽을 퍼낸다. 따뜻한 아궁이 앞에서 동생들과 둘러앉아 터서 갈라진 손을 담근다. 살살 문지르면 거짓말 같이 매끈해진다. 쌀겨와 볏짚에서 우러난 물이 피부에 좋은 영양분이었으리라. 그곳은 추운 겨울이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하던 놀이터이기도 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큰 가마솥은 목욕간으로 변한다. 솥을 깨끗이 씻고 물을 반쯤 채워 끓인다. 양동이에 담아서 다시 찬물을 부어 적당한 온도로 맞춘다. 주로 할머니나 엄마가 목욕을 시켜 줬다. 바깥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그 공간은 아늑하고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불이 났다. 지난밤 울보였던 소녀한테 엄마, 아빠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했다. 누가 나를 버렸을까 싶어 서러웠다. 소죽을 끓이고 난 아궁이 앞은 따뜻했다. 부지깽이로 죄 없는 불씨만 두드리다 불똥이 튀어 쌓아둔 땔감에 옮겨붙었다. 겁이 난 소녀는 대밭으로 뛰었다. 동네 사람들이 물을 날라 불을 껐다. 다행히 부섴 천정만 탔다. 그 후론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소녀는 고등학교를 대처로 나가면서 부섴 기억은 잊었다. 새집을 지어서 이제 더 이상 그을음도 생기지 않았다. 그 자리를 연탄과 곤로가 대신했다. 간혹 엄마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잔치나 제사 등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그 무렵 소녀는 비가 새는 부섴에서 자취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재미나고 좋았다. 연탄불과 씨름하다 차츰 곤로를 썼다. 또 다른 자취 집은 칸막이도 없었고, 주인과 부엌을 공동으로 쓰기도 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얻어 준 집은 타일이 박힌 깨끗한 곳이었다.
어른이 되면서부터 큰 부엌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다. 티브이에서 보던, 넓고 깨끗한 공간에 싱크대를 마주 보는 곳에 기다란 조리대가 있는 부엌을 꿈꾸었다. 결혼하면서 반듯하고 넓은 부엌이 생겼다. 큰 창문이 있고, 일반 냉장고 두 대와 김치냉장고 한 대 그리고 찬장이 있는 제법 큰 공간이다. 뒤 안으로 통하는 문도 있다. 그 문을 열면 또 하나의 작은 부엌이 있다. 김치냉장고 두 대와 오밀조밀 정리된 수납공간도 있다. 바로 옆에는 불을 지필 수 있는 반질반질 윤나는 가마솥도 있다. 유일하게 옛 추억을 붙잡아 주는 곳이다. 불은 함부로 못 지핀다. 닭을 삶거나 젓장을 내릴 때만 잠깐잠깐 사용한다.
며칠 전 서울서 손님이 왔다. 요즘 한창인 땅두릅과 죽순, 그리고 갑오징어와 함께 회무침을 했다. 기본은 설탕 대신 달콤한 양파 발효액과 막걸리 식초였다. 새콤달콤 환상적인 맛에 모두들 감탄했다. 주인공은 단연 막걸리 식초였다. 옛적 그 소녀가 보았던 따뜻한 부뚜막은 아니다. 햇살 고이 받는 진열장 앞쪽에 두 병이 놓여있다. 지인에게서 얻은 100년이 넘은 귀한 증초로 만든 식초다. 두 병에다 앉혔는데 한 병은 실패했다. 처음에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무심한 탓이다. 가끔씩 흔들어 주고, 목욕도 시켜 줘야 한다고 들었는데, 깜박하고 말았다.
한 병은 노란빛을 띄운 고운 색이 되었고, 다른 것은 시커멓고 탁하게 썩어 있었다. 내 정성이 부족했다. 늘 닦아 주고 씻어 주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그 소녀가 아니었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신줏단지 모시듯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기에 햇살이 적당히 닿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었다. 가끔씩 흔들어 주고, 또 목욕도 부지런히 시킨다. 병 입구에는 생솔 잎을 가지런히 묶어 마개 대신 꽂았다.
아침에 남편이 부엌에 와서 한창 음식을 만들고 있는 나를 보고 구시렁거렸다. “여기는 내 공간이라, 내가 주인공이여.”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나는 솥뚜껑 운전수로 오늘도 당당하게 내 부엌을 지킨다.
첫댓글 초단지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던 옛 어른들이 그만큼 음식에도 정성을 다 기울여서 맛도 있었겠지요. 음식을 잘 못하는 일인 잘 읽고 갑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음식을 잘 못해요.
그 식초 우리집에도 있었는데! 솔잎 꽂아져 있던 게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생생하게 기억나시는군요. 저도 잘 살리려구 노력하고 있답니다.
회 맛이 좋은 집은 아직도 막걸리 식초 쓰더라고요.
종종 그 맛이 그리워 저도 광양읍 '뽀빠이 식당'에 서대회 먹으러 간답니다.
'뽀빠이 식당'에 서대회 맛보러 한 번 가봐야겠어요. 전 '모은정'에 잘 가거든요.
부엌의 역사를 담고 있네요. 선생님 글 읽으니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내 부엌까지 떠오릅니다.
하하, 그러셨군요.
역사 맞아요.
우리집 부엌 한켠에도 늘 지리잡고 있었어요. 제가 알기론 감식초였어요.
맛있는 음식에 침이 고이네요.
감식초도 맞을거예요. 지방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생각만해도 침이 고이네요.
저희 할머니도 촛병을 아끼셨어요.
그러셨군요. 촛병이라 많이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초병'을 글을 읽고 알게 되었네요. 좋은 초가 들어가야 음식이 맛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요. 글도 잘 읽고 갑니다.
저도 한동안 그냥 사과, 현미식초를 사용 했답니다. 막걸리 식초랑 감식초를 알고나서는 뿅 갔어요.하하
'뽀빠이 식당' 초 유명하지요. 회가 너무 맛있어 한때는 단골로 다닌 적이 있습니다. 초 병 간수 잘 하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선생님의 근면함이 지키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