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04주일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큰 확증]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롬5:6-8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길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기독교 교회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것들은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귀하고, 위대한 것은 없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그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가 자신의 의를 유난히 자랑하고 있다면?]
교회에서 어떤 신자가 자기의 영성이나 영적 지식, 성취로 자신을 훌륭한 의인이 된 것처럼 자랑한다면, 매우 마땅치 않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믿는 자가 은혜로 받는 특권이 있기 때문에, 그려러니 생각하지만, 교회 안에서도 남 위에 올라설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하늘에 있는 축복이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은 자신들의 훌륭한 점 때문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논하기 전에, 우리의 신분상승에 대해 너무 집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 신앙본질에 있어서, 균형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논하기 전에, 나의 훌륭한 점을 말한다면, 껍데기만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옳게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또, 기독교 신앙에 대해 많은 오해를 불러 올 수 있고, 이단적 오류까지도 이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는가 하는 이해는 복음의 삶을 옳게 이루게 하는 장치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구원을 확신케 하는 귀한 안내자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뒷전에 두지 말고, 우리 중심에 두기 바란다.
[무슨 상황?]
지난주에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객관적으로 베푸신 사랑이 우리 속에 주관적으로 체험된다는 것을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의도적으로 하신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단지 지식의 수준이 아니라, 우리 속에 체험되어, 살아있는 진리로 역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것 뿐 아니라, 주관적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류의 역사속에서 계속 존재해 왔다.
여러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는데, 오늘 말하는 것만큼 큰 것은 없다.
인류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사랑.
이 사랑은 모든 사랑보다 가장 크게 나타난 사랑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영원전부터 영원끝까지 통틀어 가장 큰 사랑이다.
[스스로를 멸망에서 구원할 수 없는 자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 모두 육신에 속한 자였다.
이 땅에 살다 간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부패한 자들이었다.
영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무력한 자였다.
영적인 타락 때문에, 우리가 가졌어야 할 영성은 다 잃고, 영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볼 수도 없었다.
이것을 본문에서 우리가 연약한 때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의를 이룰 능력도 없고, 선한 것을 할 능력도 없고, 악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물론 우리는 억지로 선한 일을 하기도 하지만, 진실된 것으로 하지는 못한다.
상황적으로 할 뿐이다.
때로는 악을 거절하기도 하는데, 상황에 따라, 거절하기도 했다가 받아들이기도 한다.
진짜 악을 대항할 능력은 없다.
본문은 이것을 경건하지 않은 자라고 표현했다.
경건치 않은 자라는 표현은 큰 뜻이 없이 쓴 내용처럼 보이지만, 나름 충분히 강한 단어다.
하나님께 속한 것과는 완전히 분리된 자라는 표현이다.
경건치 않은 자는 육신에 속하여 하나님 없이 사는 자다.
삶 가운데 마귀의 속성에 푹 젖어있다. 그래서,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범한다.
세상에 널려 있는 인간들이 다 그렇다.
죄를 짓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하여 적대적으로 서 있다.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는 이와 같은 자였다. 그런 자들을 위해 예수께서 죽으셨다.
경건치 않은 자들은 자기들이 행한 하나의 행위에 대해서도 영원한 형벌의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형벌을 대신 치러주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는데, 왜 하나님께서 굳이 그런 자격없는 자들을 위해 그렇게 하셨는가 하는 생각이 대뜸 든다.
인간의 정서로는 이해가 안된다.
[구원받기에 마땅치 않은 자들]
악행, 불의, 죄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 문제다.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가오는 날들이 엄청 무서울 수 밖에 없다.
이런 엄청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을 도울 길이 없다.
위기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단도 없고, 도와줄 자도 없다.
이 땅에서는 모든 인간들이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도울 수 없다.
자기도 지옥에 갈 자인데, 누구를 돕는단 말인가.
또 하나님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 완전히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을 존중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실존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생각은 은혜 받은 자들이 떠올리는 것이지, 불신자들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버려져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포함하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셔서 죽게 하셨다.
인간으로는 어마어마한 축복이고, 하나님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대할 수 없는 자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자체가 불순하다.
이 세상사람들은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스트레스 엄청 받으면서 살 것이다.
서로 싸우고, 서로 악을 행하고, 앙갚음을 받으며, 육신의 시간을 다 쓰게 될 것이다.
어느날 마지막이 다가올 것이다. 이 시간이 끝나고 나면, 어마어마한 무서운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처절한 운명속에서 그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자기들이 그런 대위기를 알고는 있을까.
영적인 감각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임박한 멸망을 보지 못한다.
진짜 심각하게 망하고 있는데, 본인들은 모르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돌봐주셨다.
멸망의 위기 속에서 아무런 방법이 없을 때, 우리를 구해주셨다.
우리가 절대 신성에게 무슨 호소할만한 선한 요소, 진실한 요소 하나도 없었을 때, 그렇게 하셨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한번 보실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어떤 인격관계도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들을 보내, 죽게 하셨다.
이 사랑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사랑과 다르다.
우리가 하던 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하려고 하면 잘되지 않는다.
인간의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매력에 달려있다.
내가 어떤 자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마디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대상에 대한 사랑이 발생한다.
이 세상의 누구도 그 매력을 무궁하게 유지할 수 없다. 어느 때, 자신의 매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미치도록 사랑했는데도, 순간에 실망하고 돌이킬 수도 있다.
이렇게 인간의 사랑은 자기 본위적이고 이기적이다.
인간의 사랑은 많이 사랑했어도, 언제든 없어질 수 있다.
그런 가능성 속에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속에 뭔가 사랑할만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생각하는 사랑과 수준이 다르다.
본문에서는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표현했다.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게 구원하실만한 어떤 요소가 있어서,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존재하기도 전에 구원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내게 어떤 요소가 있어서 사랑하셨다면, 그 요소가 없어진다면, 그 사랑도 변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명백한 죄인일 때, 사랑하셨다.
내게 어떤 면이 있어서 구원하셨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고,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다.
[누가 악인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을까?]
하나님의 사랑은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 죽으시는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최상으로 증명되었다.
누가 악인을 위해 죽어줄 수 있을까.
진실함, 충실함은 전혀 없는 자, 그래서 지옥에 넣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악인을 위해 죽어주신 것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증명된다.
나의 하나님(찬양)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참 귀하다.
어느 보석보다 귀하다.
네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너를 온전히 사랑하고 너와 함께 하려 내가 왔노라.
주의 사랑 이 사랑은 결코 변치 않아 모든 계절 돌보시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신실해 실수가 없으신 주만 바라라.
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렴 없는 믿음 주실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
찬양하리 만군의 주 영원히 함께 하시네 존귀하신 사랑의 왕 영원히 통치하시네.
본문에서는 남을 위해 죽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훌륭한 사람, 명성있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라고 하면, 희생할 자가 있기는 있을 수도 있지만,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악당을 위해 죽어줄 자가 있을까.
악인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오히려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자일지라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내어주셨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 앞에 우리는 너무 사악한 존재여서 소멸할 대상이었다.
그런 존재에 불과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셨다.
그런 사랑은 하늘과 땅 어디에도 없고, 영원히 없을 것이다.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참 사랑이다.
[비밀 : 죄는 미워하시지만, 긍휼로 사랑하심]
우리가 완전히 죄인이었을 때,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셨다.
그는 죄를 절대 미워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을 참으시고, 사랑하셨다.
인간이 그를 공개적으로 미워할 때도, 여전히 그들을 걱정해주셨다.
세상의 많은 믿지 않는 자들도 아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가 죽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기회가 멈춘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순간부터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처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의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의 품안에 영원히 안전하게 있다.
확신하면 아멘하라.
[오직 그분만 하시는 참사랑]
본문에서는 그분만 하실 수 있는 그 사랑을 표현했다.
그 사랑을 확실히 아는 자들 되자. 평생 감사하고, 찬양하고, 세상에 전하기 바란다.
절대 교만한 자가 되지 말자.
우리 목숨을 다해 주님께 일생을 드리고, 주께 기쁨을 드리게 되기 바란다.
우리 구원은 쉽게 잃어질 수 없다. 안심하고, 주께 모든 것을 드리는 자가 되자.
주님 받으시기에 합당한 심령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