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378) / 스페인
코아 계곡의 선사시대 암각화
(Prehistoric Rock-Art Sites in the Coa Valley and Siega Verde; 1998)
코아 계곡[Coa Valley; 포르투갈]과 시에가 베르데(Siega Verde; 스페인)의 선사시대 암각화(巖刻畵)는 도루(Douro) 강의 지류인 아구에다(Agueda)와 코아 강 유역에 있다. 이곳에는 구석기시대 말부터의 인간의 활동 기록이 남아 있다. 수많은 동물 형상이 그려진 수백 개의 암석판[코아 계곡에 5,000점, 시에가 베르데에 약 440점]이 몇 천 년 이상에 걸쳐 새겨졌고, 이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구석기 미술의 노천 유적군이다. 코아 계곡과 시에가 베르데의 구석기시대 암각화를 보면 주제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동굴 안과 밖에서 동일한 표현 방식이 사용됨에 따라 암각화의 예술성을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지역의 특이한 선사시대 유적은 전기 구석기시대 활동의 충분한 증거 자료이다.
코아 계곡의 전기 구석기시대 암각화는 인류 문명을 여는 초기에 인류 조상의 사회적, 경제적, 영적 창의성을 특이한 방식으로 꽃피운 예이다. 알토 도루(Alto Douro; 도루 강 상류) 지역에는 작은 집단의 부족들이 주기적으로 거주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전기 구석기시대에 이러한 인간 활동이 최초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하천인 도루 강과 그 강의 지류, 그리고 코아와 아기아르(Aguiar) 강을 따라 암각화와 주거지가 모여 있다. 코아 계곡의 주거지는 킨타 다 바르카(Quinta da Barca)와 살투 두 보이(Salto do Boi) 사이에 있는데 이 지역과 하류 지역의 암각물 차이만으로는 초기 선사시대의 상황을 잘 알 수 없다. 이는 최근 몇 년간 경작지가 확장됨에 따라 조사되지 않은 많은 선사시대 주거지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주거지는 강의 자갈 및 대형 편암[schist] 석판으로 덮여 있으며, 그 위에 석기를 만들고 남은 잔석으로 두텁게 쌓아 놓았다. 산성 토양은 나무 또는 뼈와 같은 유기 물질이 남는 것을 막아 주는 작용을 한다. 근처에서 동물 시체 처리, 가죽, 뼈, 나무, 석재 가공 작업을 주로 하였다. 사용된 돌의 출처로 봤을 때, 이곳 정착민들은 돌을 약 200㎞ 이상 이동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수렵・채집 경제 활동은 구석기시대 최후기인 마들렌기[Magdalenian] 단계에서 중단되었다. 정착 신석기 농업 문화가 이베리아 반도의 북서부로 유입된 기원전 6세기까지, 이 지역에는 인간 활동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6세기 이후부터 이 지역에서 인간의 꾸준한 활동을 찾을 수 있다. 암각화는 전기 구석기시대에 이베리아 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코아 계곡의 자료가 모두 전기 구석기 대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자료나 암석판은 그 이후 시대의 것으로 신석기시대에서 초기 현대시대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지우고 다시 그린 것도 많다. 코아 계곡의 암각화는 가는 틈새로 구분되어 있으며, 세 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곽 남쪽의 파이아(Faia)에는 자그마한 화강암 암각 거주지가 있다. 그리고 8㎞ 정도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편암이 있는 킨타 다 바르카, 페나스코사(Penascosa) 지역의 강 양쪽에 유적들이 무리지어 있다. 마지막으로 히베이라 드 피스코스(Ribeira de Piscos)에서 시작하여 코아 계곡을 따라 내려와 도루 강 합류 지점에 이르는 곳까지 연달아 생겨난 유적군이 있다. 파이아, 킨타 다 바르카, 페나스코사 사이의 간격이 인위적일 수는 있지만 이와 같이 좁고 긴 틈새를 이용하여 부드러운 바위에 그린 구석기시대 암각화는 자연 풍화를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214개의 암석판은 22개로 나뉜 그룹에서 발견되었다. 거기에 그려진 동물은 야생 소[aurochs], 말, 붉은 사슴, 아이벡스(ibex; 산악 지대에서 자라는 염소)와 물고기[리베이라드피스코스에서는 사람 형상의 캐리커처가 함께 발견됨] 등이다. 각 동물의 비율은 암석판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이베리아 반도의 홍적세 동물군에는 없는 양 또는 닭과 같은 가축이 이처럼 명확하게 나타난 예는 없다. 사용 형태를 봐도 동일한 크기, 일정한 측면 모습, 뒤틀린 형태의 뿔, 부풀어 오른 복부, 지면을 그린 선이 없다는 것 등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유물군의 독특한 형태 중 하나는 동물이 움직이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하나의 몸에 2~3개의 머리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 말 형상과 연관되어 있다. 구석기시대의 예술가들은 몇 가지 다양한 조각 기술을 사용했다. 그 기술로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도가 강한 도구를 사용하여 미세한 선으로 절개하기, 쪼기, 표면 마모시키기, 긁기, 표면층을 선택적으로 제거하여 색상 차별화하기 등이 있다. 형상의 외곽선만 구분된다면 처음에는 미네랄과 식물성 안료로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쪼기와 절개하기로 그려진 조각의 수는 거의 동일하다. 코아 계곡의 조각은 완전한 노천 예술[파이아 바위 대피소에 있는 것들은 제외하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후기 선사시대의 사례이다. 구석기시대의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조각된 암석판들은 수직 형태의 암각 표면이며, 수평 또는 경사 표면에 있는 것은 사라졌을 수도 있다. 또한 구석기시대의 전통에 따라 바위 자체의 표면을 변형시킴으로써 형상을 더욱 선명하게 하였다. |
첫댓글 선사시대의 암각화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