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는 왜 이렇게 막히는 거야?
이러다 아랫집에 누수되면 어떻하지?
...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 3:25)
라디오에서 무심코 듣던 CM송이
내 삶에 실제로 미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 2023년 11월 26일 일기 참조
그렇게 시작된 문제는
집주인과 반씩 부담하기로 했고
그렇게 목돈이 나가버리면서 얼마나 허탈한지 모르겠다
클라이밍을 하는 사랑이 훈련비 마련을 위해
만 원도 허투루 쓰지 않는 나에게
아무리 반으로 줄었다지만 백만 원은 큰돈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는 집주인이 모두 보상해야 한다고 하는데
공사하신 분들이 배수구에서 나온 머리카락 때문이라고 한만큼
일 년간 살면서 머리카락이 들어가게 한 우리 책임도 간과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또 내 잘못이다
이를 대비해 아내가 처음부터 배수구에 거름망을 설치했는데
물이 잘 안 내려간다는 이유로 내가 떼어버린 것이 크나큰 실수였다
그때 아내가 해 놓은 대로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생각 없이 말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생각 없이 행동해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나!
이번에 또 이런 일이 벌어져 아내 볼 면목도 없고 가장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고 자연이 좋아
숲해설가까지 할 정도로 건강했던 사람이
지금은
병실에 누워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달변가였던 그가 언어 기능까지 잃어
기계의 도움으로만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보자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은 사치라는 것을 알도록 했다
어느 날 암에 걸려 그 후부터 사족을 못 쓰고
병실에서 간병인의 도움으로
24시간 가래를 뽑아내야 하는 처지가 된 예전 동료
... 2018년 9월 7일 일기 참조
그렇게 7년이 지난 지금도 별다른 차도 없이
계속해서 병실에 있는 것을 보자 너무도 안쓰러웠다
그런 데다 오래된 병원 생활에 집안 재정까지 바닥나자
앞으로 개인 간병을 못 쓰고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항시 누군가 곁에서 수시로 가래를 빼 주어야 하는데
그곳으로 가게 되면
지금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가장
그분의 병실에 가면 항상 붙어 있는 문구였다
당신도 하고 싶지만 평생 이루지 못할 바람이 되었다
그에 비해 나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씁쓸한 마음에 병실을 나서는데 성령께서 말씀을 주셨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나도 지금 한 푼이라도 절박한 사정이지만
그래도 이에 비하면 감사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