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미터 앞 막국수집 / 강만수
331미터를 천천히 걸어가 막국수집에 들렀다
그 길은 평탄한 길이다
331미터는 어떨 땐 가깝게 여겨지지만
근거리라고 생각되지 않고
331미터는 멀다 아주 멀게 느껴졌다
7월 14일은 매우 흐린 뒤 비가 내린 날이었지만
손에 쥔 방울토마토 11개를 씹으면서 걸어갔다
길가 어느 집 담장 안 빨랫줄에 걸어놓은
빨간 셔츠와 노란 셔츠가 바람에 펄렁인다
그 집을 펄렁이는 난닝구와는 관계없이 지나간다
집 앞엔 흰 고양이와 검정고양이가 비를 피하고 있다
걷고 또 걸었지만 331미터는 줄어들지 않고
331미터는 3311미터처럼 느리게 다가온다
그러다 어떨 때는 331미터가 3311미터처럼 생각됐다
여름엔 그 길이 멀다고 느꼈지만
가을엔 당겼다 놓은 고무줄처럼 가깝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혹서(酷暑)엔 그곳을 자주 찾았다
춘천막국수를 먹기 위해
-『마임이스트 권씨』, 문장, 2022.
감상 – 예술은 삶의, 의미 있는 기록의 측면도 있다. 일기나 메모도 그런 역할을 수행하겠지만 시를 쓰게 되면 단순한 의미의 기록을 넘어서서 새로운 의미가 생기도록 고심하며 언어 선택과 조합에도 좀 더 신경 쓰게 된다.
강만수 시인은 막국수를 좋아하나 보다. 평소 즐겨 다니는 막국수 집을 여름엔 더 자주 찾는데, 어느 해 7월 14일 문득, 막국수 집 찾는 하루를 스케치해두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묻는 시간을 통해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했을 것이다. 이전 날의 기억을 보태며, 막국수 집 가는 실제 거리가 331미터라면 어떤 날은 331미터 같기도 하고 어떤 날은 3311미터로 열 배 가량 거리가 늘어나는 듯한 감각에 시인은 주목한다.
실제 거리도 사는 데 유의미한 정보를 주겠지만 그 못지않게 심리적 거리, 주관적 거리 또한 삶의 여러 국면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도보로 출근길이 삼십 분이 걸리는 것을 두고 어떤 이는 가깝다고 하고 어떤 이는 멀다고 한다. 멀다고 생각하는 이는 자동차나 대중교통 수단을 찾을 것이고 가깝다고 여기는 이는 외곽으로 이사를 나가서 걷는 시간이 더 늘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물리적 시간대에 있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시간의 빠름과 느림은 상대성이 있고, 실제 거리와 상관없이 사람마다 길게도 짧게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 차이를 인식해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갈피를 이해하는 데 약간의 암시를 얻을 수 있다. 그해 여름엔 기분 내는 일이 적어서 그런지 막국수 집 가는 길도 길게만 느껴졌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그 집에 가는 것은 관성이 붙어서 이거나 막국수가 주는 맛과 위로에 끌려서 일 것이다.
위 시에서 빨간 셔츠와 노란 셔츠, 흰 고양이와 검은고양이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시인의 눈에 선택되어 언어 기록으로 남겨짐으로써 애초의 그 사물, 그 색채 이상의 존재감을 환기하는 면도 있어 보인다.
시인은 시집 뒷면의 글에 자신을 “다닥 다닥 다가닥 미래 도심을 배회”하며 “언어라는 말등 위에서 내려오지 못한” 존재로 묘사해둔다. 막국수 집 앞에 말을 내릴 것 같으면, 잠시 언어를 잊고 시원한 맛에 취해도 좋을 것이다. (이동훈)
첫댓글 뒷걸음질로 가는
국수집처럼
눈 감고도
외상도
곱배기도
자동으로
기억하는 막국수집 하나쯤
가지고 살자
쌤은 그런 집을 이미 가지고 있으실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