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주의'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당사자들이 우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는 이들도 있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어려운 사람들. 시골에 거주하는 노인들, 몸이 아픈 사람들의 현실을 마주하고 이를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장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프레시안 : 의료와 차별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또 의료의 영역에서 어떤 차별을 발견하셨나요?
양창모 : "시스템의 기준이 있을 때 그것이 차별을 만들어냅니다. 하나의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이를 이용하는 사람은 다양하게 있는데요. 이 시스템이 어떤 사람을 기준으로 구성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의 의료는 그 기준이 '젊고 건강한 성인'에 맞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제가 저희 부모님을 모시고 대학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진료를 보고 나서 검사실과 주사실에 다녀와야 했는데, 찾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 대학병원은 저의 모교이고 제가 그곳에서 수련까지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진료실을 나와 검사실하고 주사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제 부모님이 만약 저와 같이 오지 않고 혼자 오셨으면 제대로 찾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이었습니다. 큰 병원이지만 과별로 검사실이 있는 게 아니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과에서 한 곳으로 검사실, 주사실을 가야 해요. 그런데 거기까지 찾아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분이 없어요."
프레시안 : 병원 이용자 대부분이 노인이었는데 병원 구조는 노인에게 매우 불편하게 설계돼 있군요.
양창모 : "진료실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제가 함께 들어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2~3분 정도, 엄청 빠른 속도로 쉼 없이 말씀하셨어요. 저도 의사이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임에도 그 설명을 듣는데 이해가 안 되고 못 알아듣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요. 저희 어머니는 난청까지 있으셨으니 그 얘기를 거의 못 알아들으셨죠. 근데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는 또 아닌 거예요. 의사가 너무 바빴으니까. 그때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그 기준이 젊고 건강한 성인에 맞춰졌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젊고 건강한 성인. 말하자면 시스템 안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그럼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그 간격을 메꿔야 합니다. 그런 일이 제가 왕진가는 시골에서도 일어나요. 제가 왕진가면서 주로 뵙는 분들은 시골의 농사짓는 어르신들 이거든요. 대부분 70대를 넘어가시는, 주로 70~80대분들." … 프레시안 : 그런 태도를 어디에서 주로 느끼나요? 노인 문제에서 발견한 다른 사회문제가 있나요?
양창모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어떤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을 때 차별을 양산합니다. 지금의 노인분들, 제가 왕진가서 만나 뵙는 어르신들의 문제도 결국엔 사회적 문제와 연관된 거죠. '노인 문제'라고 이름 붙였지만 하나의 문제가 아니란 거죠. 정당정치를 예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대선에 접어들었잖아요. 그리고 지금 이 사회는 노인 돌봄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인 돌봄과 죽음에 관한 문제는 정치적 의제로 다뤄지지 않아요. 이야기하는 정당도 안 보이고요. 한국의 노인은 지지하는 정당은 있어도 자신의 정당은 없는 겁니다. 저도 그랬지만 제가 왕진가며 보게 되는 아픈 노인분들의 현실. 이건 제가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잘 몰랐던 부분입니다. 하물며 이런 현실을 보지 못하는 시민은 어떨까요. 누구에게나 다가올 미래인데 현실로 느끼지 못하죠. 결국 이슈화되지 못하고요. 그럼 노인 돌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면,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합니다. 방문진료하는 의료진, 공공의료 영역이 커져야 하죠. 여성이 대부분 담당하는 돌봄 노동에 대한 대가도 정상화돼야 하고요. 돌봄이 필요한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선 또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런 문제가 다 연결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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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비단 의료의 영역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시스템이 건강한 성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많은 차별이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또 이미 존재하는 차별이 이를 통해 더 문제를 만들어내고요. 이런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창모 : "'정상성'이라고 부르는 그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건, 지금 당장은 건강한 성인이고 소득과 자산이 많다 한들 노년은 우리를 찾아옵니다. 지금이 몇 시든, 아무리 햇빛 찬란한 정오라 한들 저녁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죠. 노인의 삶과 죽음에 둔감하다는 건 우리들의 삶과 죽음에 둔감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희 노인이 아닌 분들이 꼭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당사자주의'라고도 하죠. 어떤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문제의 피해자, 당사자가 먼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노인 문제는 그렇게 되기가 어려워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양로원에 있는 노인분들,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계신 분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리고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그러기는 불가능에 가깝죠. 저학력, 저소득의 노인분들은 이런 현실을 사회적 의제화하기도 어렵고요. 노인의 삶, 또 돌봄의 문제는 당사자주의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의 젊은 분들, 노인이 아직 아닌 분들, 거꾸로 이야기하면 먼 미래에 당사자가 될 분들, 이분들이 지금 현재 당사자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할지 선택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프레시안 : 의료의 영역, 노인 문제를 시작으로 여러 사회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 거라고 기대하나요?
양창모 : "전에 왕진 갔을 때 집안에 문턱이 사라진 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는데 하반신 마비가 있는 어르신이 살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엉덩이와 하체를 끌면서 이동을 해야 하는데 문턱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서 문턱을 일일이 깎아 놓으셨어요. 어찌어찌해서 집안의 문턱은 사라졌다 하더라도 집 밖의 문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깎인 문턱을 보면서 몸도 불편하신 분이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문턱을 하나하나 칼로, 대패로 깎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집안의 깎인 문턱은, 차별금지법이 없는 세상에서 차별받는 개인들이 어떤 악전고투를 겪고 있는지를 내게 느끼게 해주었어요. 차별금지법이 생긴다는 것은 이동에 제약이 없는 나 혹은 우리의 시선이 아니라, 그 어르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전문은 출처로 차금법에 관한 시리즈 인터뷰야~ 다 좋은 글이니 여유되먼 한번씩 읽어보는거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