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13승을 거둬 일본 역대 프로 골퍼 가운데 가장 많은 우승 기록을 보유한 마사시 '점보' 오자키가 대장암과의 싸움 끝에 전날 고국 일본에서 눈을 감았다고 AP 통신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의 24일 발표를 인용해 전했다. 향년 78.
오자키는 일본에서 존경받았으며, 스타일 감각을 지닌 강타자였다. 29년 동안 일본골프투어에서 94승을 거뒀는데 마지막 우승은 쉰다섯 살이던 2002년 ANA 오픈에서 거뒀다.
그는 마흔아홉 살이던 1996년 세계 랭킹 5위까지 올랐다. 오자키는 뉴질랜드 미프로골프(PGA) 챔피언십을 제외하고는 일본 바깥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자주 업신여겨졌다. 그는 2011년 세계 골프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투어는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통해 "그는 현재와 미래 모두 남자 골프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유일무이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오자키는 49차례 메이저 대회에 출전했으며, 1989년 오크 힐에서 열린 US 오픈에서 커티스 스트레인지에게 3타 차로 패배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그는 쉰세 살이던 2000년 19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마스터스에 출전해 공동 28위에 올랐다.
아오키 이사오는 세계 골프 명예의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일본인 선수였고, 마츠야마 히데키는 2021년 마스터스에서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됐다. 두 사람 모두 골프에 집착하는 나라의 개척자인 오자키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영감을 받았다.
오자키는 일본 오픈에서 다섯 차례, 일본 PGA 챔피언십에서 여섯 차례 우승했다. 그는 일본골프투어 상금 순위에서 역대 최다인 12회를 차지했으며, 1994년부터 1998년까지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쉰다섯 살이던 2002년에 마지막 머니 타이틀을 획득했다.
명예의전당에 헌액됐을 때, 오자키는 일본 바깥에서 더 많이 뛰지 못한 것이 유일한 후회라고 털어놓았다. 국제 투표에서 득표율 50%를 기록한 그는 "하지만 내 인생을 일본 골프에 바쳤고, 유권자들이 날 이 영예를 차지해도 된다고 여긴 것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자키는 강력한 스윙, 카리스마, 스타일 감각으로 '일본 골프계의 아놀드 파머'로 통했으며, 종종 실크 셔츠와 헐렁한 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그의 기술은 골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기타를 연주했으며, 명예의전당에 따르면 일본 팝 차트에 세 곡이 진입할 정도로 가수로도 성공했다.
그의 첫 사랑은 야구였으며, 골프로 전향하기 전 3년간 프로 투수로 활동했다. 열다섯 살에 일본골프투어 첫 타이틀을 딴 이시카와 료가 오자키의 영향력을 언급했을 때 그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이시카와는 1년에 약 10차례 오자키를 방문해 조언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시카와는 2010년 AP 인터뷰를 통해 "점보는 예전에 야구 선수였기 때문에, 항상 투구나 타격에서 골프와의 연결 고리를 가르치려 했다"면서 "점보는 내가 공을 멀리 치길 원했다"고 털어놓았다.
오자키는 해외 메이저 무대에서 경기할 때는 수행원들과 함께 여행했으며, 보통 빌린 집에 스시 셰프를 데려와 그를 돕는 이들이 집처럼 편안함을 느끼도록 했다.
두 남동생 나오미치(조)와 타테오(제트)도 투어에서 활약했다. 오자키는 1996년 프레지던츠 컵에 출전해 비제이 싱과 함께 미국 듀오인 프레드 커플스와 데이비스 러브 3세를 꺾었다. 그는 1998년 팀에 선발됐으나 호주 원정을 포기하고 대신 동생 조가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