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 한상호
홀쳐매지 마라
다시 풀기 어려우니
해결이란
묶인 것을 푸는 일
화해란
풀리고 녹아 물로 흐르는 일
분노한 손으로는
매듭짓지 마라
잘 풀려야
잘 묶은 매듭이니
-『어찌 재가 되고 싶지 않았으리』, 책만드는집, 2023.
감상 – 매듭을 잘 짓고 싶다. 누구든 그러할 것이다. 한때는 단단하게 매듭짓는 것이 매듭의 존재 이유에 충실한 것이라 여기고 남보다 성의껏, 잘 잡아매는 것이야말로 실속 있는 태도인 양 여겼다. 삶의 태도도 그렇다. 맺고 끊는 것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적 결함으로 보는 시각이 적잖다. 결정을 미룬 채, 딱 부러지게 매듭짓지 못하는 것을 두고 우유부단하다고 스스로 자책하고 남도 나무란다.
시인은 이러한 인식을 애써 부정하는 대신 매듭의 또 다른 면을 통찰해서 우리에게 들려준다. “잘 풀려야 / 잘 묶은 매듭”이란다. 가만히 생각할수록 공감되는 말이다. 사는 데 정확한 것도 좋고 단호한 것도 좋지만 그 이상으로 일이나 관계가 느슨해지고 풀어진 데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때도 많다. 또한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충실해서 부당하고 부정한 것에 섞이거나 물들지 않는 것도 중하지만 언제든 서로 간에 진의가 오가는 것은 아닌 걸 감안하고 저쪽의 입장을 듣는 태도도 필요해 보인다. 실수투성이인 사람에게서 더 친밀감을 느끼는 그 감정으로 상대의 실수에 좀 더 너그러워져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인은 당부하건대, “분노한 손으로는/ 매듭짓지 마라”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분노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태이고, 성찰이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다. 다만, 뜻대로 안 되는 인생에 부처인들, 예수인들 감정 조절해가며 매듭을 잘만 지었겠는가 하는 일말의 회의감은 있지만 시인의 아포리즘이 빛나지 않은 건 아니다.
실제, 매듭에 관한 단어를 찾아보니 겹매듭, 막매듭 같은 매듭짓는 방법에 대한 것은 드물고, 나비매듭, 굼벵이매듭, 매화매듭, 가락지매듭처럼 매듭 모양새에 관한 것이 많이 검색된다. 쓸모보다는 아름다운 무늬에 대한 관심이 어휘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잘 풀리게 묶는 매듭에서 그런 무늬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