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끝에 달린 햇살
김남희
입추가 지나도 한여름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36도의 열기가 땅을 데운다.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남편은 오늘도 시골로 향한다. 밭에 풀을 뽑으러 간다고 했다. 나도 남편의 도시락과 반찬을 챙겨 시골로 향했다. 농사일이 힘에 부치는지 오늘따라 시골 가는 것을 힘들어 하고 아로니아밭에서 벌에 쏘여 젓가락질조차 제대로 못 하던 남편의 부은 손이 걱정되기도 해 시골로 차를 몰았다.
어릴 적 농촌에서 자란 나는 시골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시골에 집이 있다고 하면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정작 나는 자주 찾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농촌은 고생의 상징이다. 새벽 댓바람부터 밭으로 나간 아버지는 달이 떠오르고 붉은 노을이 어둠으로 변한 한참 후에나 집으로 오셨다. 땀에 젖은 옷과 흙 묻은 바지는 아버지의 일상이었고, 호미와 낫으로 시작된 밭일은 소와 경운기의 힘을 보태도 끝이 없었다. 씨를 뿌리면 물을 주어야 했고, 비가 온 후에는 잡초를 뽑아야 했다. 휴일도 없고, 쉬는 시간도 없는 아버지의 삶. 나는 그런 아버지의 일상을 볼 때면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땅은 진실하다고 했지만 그렇지 못한 듯했고, 누구보다 성실한 아버지의 살림은 부로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었다. 절대로 어른이 되면 농촌에 살지는 않겠다고.
그런데 남편이 아버지를 닮았다. 주중에는 도시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면 시골에서 밭 일을한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씨를 뿌리고 풀을 뽑는다. 풀은 남편의 노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성큼성큼 자라 남편을 힘들게 한다. 지금 베어도 일주일이 지나면 또 고개를 쳐든다. 애초기를 돌리고 호미를 들이대도 밭은 어느새 풀의 바다로 곡식은 풀과 싸워 발버둥 친다.
나는 남편이 일하는 대추밭을 지나 좁은 농노 길을 걸어 들깨밭으로 향한다. 잡초와 깨가 힘겨루기를 하듯 밭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쪽 옆 고구마는 풀과 엉켜 줄기를 뻗고, 고추는 탄저병이 들었는지 거뭇거뭇하다. 제때 약을 쳐주지 않아 시기를 놓친 탓이다. 그러나 깻잎은 다행히 벌레 하나 없이 하늘을 향해 잎을 뻗고 있다. 나는 무릎까지 자란 풀 사이를 고추 지지대 막대기로 이리저리 휘저으며 길을 연다. 혹여 뱀이 있지 않을까 무섭기도 해 막대기로 툭툭 친다. 그러다 밭고랑에 앉아 풀을 뜯는다. 풀을 뽑다 붉은 고추를 따고, 고구마순을 따고, 깻잎을 딴다. 밭은 화덕처럼 뜨겁고 한낮의 더위는 온몸을 후려친다. 모기가 속옷까지 파고들었는지 여기저기 간지럽고 부어오른다. 땀은 사정없이 흘러내리고 눈은 따갑다. 남편이 대추밭의 풀을 다 베었는지 뒷덜미까지 내려오는 모자를 쓰고 애초기를 메고 밭으로 온다. 밭두렁부터 시작해 솟아오른 풀을 기계로 제거한다.
남편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의 굽은 허리, 남편의 젖은 등줄기. 그 등 위로 깻잎이 자라고, 고구마가 뿌리를 뻗는다. 풀을 베지 않으면 작물은 숨을 쉬지 못한다. 물을 주지 않으면 깨 순은 금세 고개를 숙인다. 아버지의 수고로움으로 밭은 초록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의 밥상이 된다. 남편 역시 그것을 알기에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것이리라. 남편이 흘린 땀은 안쓰럽지만, 깻잎 끝에 맺힌 햇살은 아름답기만 하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남편을 따라 시골에 오면 남편은 내가 시골집에 쉬기를 원한다. 하늘을 보고, 안개 낀 산을 보고, 비 내리는 지붕 아래서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풍경보다 고생이 먼저 보인다. 남편의 부은 손, 아버지의 굽은 등이 보인다. 농촌은 나에게 미움이자 애정이고, 원망이자 고마움이다.
점심 도시락을 먹기 위해 쉴 곳을 찾는다. 풀이 뽑혀 훤해진 깨밭을 바라보며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인다. 나는 가지나물에 젓가락을 얹으며 생각한다. 농민의 딸로 혹은 까다로운 소비자로 가격을 흥정할 때 왜 색과 맛만 따지고 농민의 흘린 땀은 잊고 있었을까. 깻잎 끝에 달린 햇살만큼이나 남편의 밥숟가락에 안도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