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서 서론 ( 3 )
4] 비참한 최후의 날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미 6: 1 – 7: 7)
미가서 6장 1절-8절은 8세기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전형"으로 종종 불리워지고 있다.
이 부분은 구조적인 면에 있어서는 언약의 범법 문제를 법정 소송 형식으로 다룬 1장의 서론적 메시지와 매우 흡사하다.
그 현장에는 유주적인 차원의 법정이 설치되어 있으며, 산과 언덕, 그리고 땅의 기초가 증인으로 소환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검사와 판사의 역활을 하고 계시며, 이스라엘은 피고가 되어있다(6: 1, 2).
여호와께서는 소송을 제기하고 계신다(6: 3-5).
여기에서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위해 출애굽에서부터 여호수아의 영도하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까지 친히 행하셨던 구원적인 행동들을 차례로 열거하셨다.
그리고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했던 일도 말씀하셨다(6: 5; 민 22장-24장).
싯딤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 그 동편에서 마지막으로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이며, 길갈은 요단강을 건너고 난 후 맨 처음으로 진을 친 장소이다.
그러므로 5절 하반절은 요단강을 건너간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이 기간동안 여호와께서는 줄곧 큰사랑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보살피셨다.
여호와께서 하신 일은 모든 면에서 의로우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들은 변명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죄악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피고인 이스라엘이 변명할 차례가 되었다(6: 6, 7).
하나님은 실제로 어떤 제사를 원하셨는가?
"번제물"은 제사장이나 제물을 드리는 자가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불로 태워졌었다.
"일 년 된 송아지"는 그 밖의 다른 어떤 어린 짐승들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번제물은 부자만이 드릴 수가 있었다.
"맏아들"은 특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별한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두 몫의 분깃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고대 근동 지방에는 맏아들은 신들에게 속한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신들에게 제물로 드려져야만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모세 율법에서는 그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그대로 시행된 적이 있었다.
* 왕하 16: 3 -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 왕하 21: 6 -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질문에 답하고 계신다.
그는 그들의 형식적인 예배에는 관심도 없으셨다.
그는 내적인 정결만을 눈여겨 보셨다.
그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릇된"일에만 마음을 기울였다.
이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올바른"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 주셨는데, 특히 이 내용은 주전 8세기 선지자들의 교훈을 요약한 구절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무엇보다도 아모스는 공의와 의를, 호세아는 불변적인 사랑을, 이사야는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용어들은 사람들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행하는 것과 이웃을 섬김으로 하나님과의 연합을 입증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비극적인 최후에 대해서는 6장 9절-16절에서도 계속 언급되고 있다.
예루살렘은 사마리아가 악했던 것처럼 점차로 악해지고 있다.
그들은 마땅히 멸망 당해야만 한다.
예루살렘의 상인들은 백성들의 것을 무자비하게 탈취하는 악당들이었다.
백성들의 대부분은 정직하지 않았다.
심지어 저울과 자에도 속임이 있었다.
유다의 생활은 오므리나 아합 시대의 그것과 같았다.
그들에게는 저축한 물건들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앗수르인들이 그들이 가진 것들을 모두 빼앗아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비관적인 생각은 7장 1절-7절에서 또 재현되고 있다.
그는 성안에서 의인 한 사람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쁹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한 사람이 추수가 끝난 뒤 열매를 얻기 위해 과수원에 들어갔으나 포도알 하나, 무화과 한 개도 얻지 못한 비유로 소개되고 있다.
이제 유다 안에서는 모든 것들이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혼란 그 자체였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족 관계에 있어서 그랬다(7: 5, 6).
5] 약속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미 7: 8-20)
지금까지의 어조가 여기서 다소 바뀌어지고 있다.
형벌 이후에는 회복이 있게 될 것이다.
유다는 무너지지만 또 다시 일으켜 세워질 것이다.
유다는 장차 임하게 될 심판을 마땅히 받아야 하지만 여호와께로부터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돌보심을 의심하던 이방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사로잡혀 갔던 자들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돌보심을 의심하던 이방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멸망하게 될 것이다.
사로잡혀 갔던 자들이 돌아오게 되고 예루살렘은 더욱더 넓은 터전 위에 재건될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도 각 처에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자비와 용서로 그의 백성들을 또 다시 그 주변으로 불러 모으실 것이ek.
그들을 조롱하던 자들의 입을 막아 버림과 동시에 그가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래로 나타내 보이셨던 신실함과 불변적인 사랑을 또 다시 그들에게 베푸실 것이다.
정녕 그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
7. 본서의 취지
미가의 예언은, 특히 유다에 대한 것인데, 또한 전 이스라엘에도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미가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한 하나님에 의해 격려되었는데, 그것은 십계 중에 보여져 있는 하나님의 품성에 의한 것이다(2: 7, 4: 3-5, 7: 15).
하나님은 친히 공의를 행하시고, 긍휼을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또한 이러한 성질을 그 백성에게도 요구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은 선지자에게 있어서 힘과 분발의 원천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안전은 그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도에 의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7: 20), 또한 다윗의 아들에 집중되어 있는 약속(5: 2-6, 눅 1: 72-76)이다.
* 눅 1: 72-76 -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그러므로 이룰 수는 없다.
제 5장은 시 2편과 같은 진리에 기초해 있다.
또한 사죄와 회복의 메시지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있다(미 7: 8-20).
첫댓글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잠 8:16).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길에는 꽃길이 따로 없습니다.건강 하면 꽃길 입니다.오늘도 줄겁고 신나게
화이팅 하세요.인연 이란 산길 같아서 매일 오고 가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 해진 답니다.
오늘도 서로 안부를주고 받으며 건강 잘 챙기시 고요 향기로운 하루 보내세요
사랑 합니다.가는곳 마다 예쁜 사랑 가슴에 담고 행복 넘치는 하루 되세요.💖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