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팀 켈러를 통해서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연합'의 중요성이다. 덕분에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교제하는 은혜를 누렸고, 그 중에서 감리교 목사님들과의 만남은 우물안에 있었던 나의 시야를 조금 더 넓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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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처치를 공부할 때 문화파트가 제일 힘들었다. 언급된 책들을 많이 읽지 못했고, 생소한 부분들이 많았다. 작년에 감리교 목사님들이 모인 포럼에서 팀 켈러의 센터처치를 강의하고 난 후 모인 자리에서 많은 목사님들이 문화에 대해 엄청난 지식들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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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또 복음에 대해서는 좀 약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기우였고, 젊은 목회자들도 복음에 대해 선명하고 분명한 이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매 주 모여서 팀 켈러의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임들도 많았다. 그렇게 교제하게 된 청라에 계신 감리교 목사님의 교회에 청년부 수련회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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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났지만, 목사님과의 대화는 뜨거웠고 너무 짧게 느껴졌다. 수련회 설교 시작 전에 만나 식사를 하고 대화를 시작했는데 팀 켈러 모임을 통해서 받은 은혜를 쏟아내셨고, 복음의 감격과 은혜를 나누셨다. 교회 앞에 있는 '교회의 담장을 넘어 청라를 사랑하는 교회' 라는 문구도 팀 켈러를 공부하면서 배운 지역을 섬기는 교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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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복음은 우리를 겸손하면서도, 담대하게 하는 복음의 담대함에 대해서 나누었다. 우리가 힘과 능력을 가져서 내가 담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는 연약한 양이지만, 늑대가 두렵지 않은 이유는 내 옆에 목자가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담대함은 내게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목자에게서 나오는 안정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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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늘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신뢰하고 누리는 것이다. 우리의 승부는 나의 실력과 능력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보리떡 다섯과 물고기 두마리 뿐일지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손에 사용될 때 그 작은 일이 오천명을 먹이고도 남는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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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담대함이 내게서 출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음은 또한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주께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팀 켈러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목회자들을 만났다. 팀 켈러를 공부하면서 가장 큰 은혜를 받는 것이 '복음의 감격' 이다. 복음을 몰랐다가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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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복음은 알았지만 그 복음이 내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다리를 팀 켈러를 통해 알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가슴 벅찬 복음의 감격을 누리는 것은 좋지만, 그 복음의 감격도 겸손이 동반되지 않으면 우상으로 변질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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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복음의 은혜를 누리지만 또 이렇게 말한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복음을 잘 몰라" "우리교회 목사님은 비복음적이야" 팀 켈러가 뉴욕에서 개척을 하고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우리는 뉴욕에게 줄 것이 있다." 라는 교만이었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뉴욕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겸손이 출발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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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은혜가 다른 사람의 비복음을 지적하는 비판의 칼로도 사용될 수가 있다. 결국 복음의 은혜가 나를 더 교만하게 하는 것이다. 복음은 겸손을 동반하며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그 복음을 가지고 "나는 복음을 알고 너는 복음을 모른다."는 식의 사고를 하게 된다면, 가장 아름다운 복음으로 가장 비복음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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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복음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내가 행위가 아닌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은 우리를 담대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 겸손과 담대함이 있을 때 우리의 교회는 교회의 담장을 넘어 지역을 사랑하고 섬기는 교회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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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에 찬양을 불렀다. "주를 더욱 사랑, 아름다우신 주" 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복음을 만나고 난 뒤부터 '아름다운' 이라는 단어에 늘 마음이 벅차다. C.S. 루이스는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 아름다움의 본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고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은 그 본체의 반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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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런 찬양이 시작되면, 설교를 하고 싶지 않고 찬양만 계속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 완전히 지쳐서 더 이상 노래할 수 없을 때까지 노래하고 싶었다. 말씀을 통해 정말 복음의 겸손과 담대함을 가지고 교회를 넘어 지역을 섬기는 귀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