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침 일찍 군산을 향해 출발했다.
군산은 나의 고향이었다.
이번 1박 2일간의 여정은 여행도, 트레킹도, 맛기행도, 역사탐방도 아니었다.
잘 익은 '아로니아' 수확이 목적이었다.
고 1때 만나 지금까지 최고의 벗으로 지내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집은 넓은 들판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지평선이 보일 만큼 매우 넓은 평야였다.
곡창지대였으며 온갖 물산이 풍부한 고장이었다.
고 1때, 그 친구의 집에 놀러 가면 부모님이 매번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머니의 음식솜씨가 좋았다.
그 집에 갈 때마다 고봉밥을 두 그릇씩 뚝딱뚝딱 비우곤 했었다.
건강한 체질이라며 아버지도 흐뭇해 하셨다.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팠던 시절이었다.
나무뿌리도 씹어 삼킬 수 있을 만큼 식욕도, 소화력도 왕성했었다.
붙임성 좋고 명랑하며 밥도 잘 먹는 나를 특히 어머님이 예뻐해 주셨다.
고교를 졸업한 뒤로 무수한 세월이 흘렀다.
친구 아버지는 오래전에 하늘의 별이 되셨고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셨다.
다양한 추억과 정감이 서려있던 친구의 시골집엔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도 본가 옆에 있는 농장에선 고구마, 호박, 부추, 깨, 아로니아가 잘 자라고 있었다.
친구가 가끔씩 왕래하며 작물들을 보살펴 준 덕택이었다.
'경남 진주'에 사는 친구는 그 집안의 장남이었다.
이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나실 때 '부친의 유언'에 따라 본가는 장남의 몫이 되었다.
그랬던 까닭에 친구는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경남 '진주'에서 전북 '군산'까지 그 먼 거리를 왕래하며 '주택'과 '전답'을 관리했다.
정성이었다.
친구는 평생 동안 열정과 성실로 열심히 살았다.
그는 금년 12월 31일부로 드디어 길었던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내년부터는 '농장관리'에 좀 더 집중하겠다고 했다.
듬직했다.
잘 해낼 것으로 믿는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건 금년 초여름이었다.
그때까지 농장관리의 주체는 당연히 어머니셨고 친구는 고향에 갈 때마다 농장을 둘러보며 어머니를 도와드렸던 '보조자'였다.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부재하신 이후로는 모든 상황이 급변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친구가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하늘이 파아란 가을이 왔다.
'아로니아'도 잘 여물었다.
수확할 시기가 되었다.
친구 부부의 일손만으로는 하루 동안에 감당할 수 없는 면적이었다.
나도 그 농장을 여러 번 가 봐서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순수한 우정의 발로였다.
주말 점심에 두 부부 네 명이 군산 맛집에서 만났다.
식사와 커피까지 마친 뒤에 '월명공원'과 '월명호수'를 트레킹 하며 옛 추억에 젖어들었다.
가을이 완연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학창 시절의 수많은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시종일관 풋풋하고 살가운 시간이었다.
미소가 그칠 줄 몰랐다.
저녁식사 후엔 황금물결이 넘실거리는 광활한 들판을 따라 산책까지 잘 마무리했다.
친구의 고택에서 단잠을 자고 일요일 06시부터 본격적으로 '아로니아'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점심도 거른 채 오후 3시 30분까지 수확과 선별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친구가 그랬다.
지난 10여 년간 '아로니아'를 수확하면 주변의 지인들, 일가친척들, 형제자매들에게 '생과'를 나눠주었다고 했다.
노력과 고생에 비해 수확물에 대한 처리결과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이번엔 즙으로 짜서 판매하자"
한 번도 '착즙'을 해보지 않았던 친구는 낯설어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만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직접 칡을 캐서 칡즙을 만들어 보았다.
복용도 했고, 주변에 무상으로 나눠주기도 했었다.
공동체에도 전달했다.
'생칡'을 먹거나 '칡차', '칡청', '칡분말'보다 '칡즙'의 효용가치가 제일로 크고 좋다고 생각했다.
받는 사람들도 다 좋아했다.
별것은 아니지만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익혔던 나의 노하우였다.
내가 갖고 있는 평소의 지론이 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무엇이든지 시도해 보고, 두드려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의 생각이자 몸에 밴 지론이었다.
더욱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적극적인 태도와 마인드는 충만한 삶과 넉넉한 공감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믿었다.
수많은 소통과 추억의 정서적, 사상적 토대였다.
정성스럽게 선별한 생과를 가지고 '건강원'으로 갔다.
'아로니아'와 '포도'를 2 : 1로 약탕솥에 넣고 적당한 열을 가해 '아로니아즙'으로 만들었다.
약간 떫고 달고 시고 쌉싸름했다.
건강한 맛이었다.
파우치 100개 들이 9박스가 나왔다.
내가 친구에게 그랬다.
"판매는 걱정하지 말어. 내가 전적으로 알아서 할게"
나는 큰 소리를 쳤다.
자신 있었다.
9 박스가 아니라 90 박스였어도 나는 자신 있었다.
62년 간 살면서 내 이름 석자에 대한 무게와 신뢰를 망각하지 않은 채 살았다.
가족이나 일가친척에게 연락할 필요도 없었다.
그동안 내가 활동했던 꽤 많은 커뮤니티들 중 어느 한 곳일지라도 우리가 직접 착즙 한 '아로니아즙'에 대한 글을 한번 올리면 몇 시간 이내로 다 정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빈말이 아니었다.
객기나 오만도 아니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일요일 저녁에 상경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밤 8시 30분이었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온몸이 뻐근했다.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체력이 나보다 약한 아내는 더 힘들었을 터였다.
그러나 하루 내내 마냥 웃는 얼굴로 임했다.
그 속 깊은 배려가 고맙고 감사했다.
친구에게서 일당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일당'이나 '차비'를 준다고 했으면 아예 군산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순수한 우정과 배려의 발로였고 그래서 더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내 자녀들을 키울 때 가끔씩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좀 손해 보는 듯하게 살아라. 그리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들 주변의 사람들이나 동행하는 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할 수 있고, 그들이 한번 더 웃을 수 있다"
범부에 불과한 나에게 '엄청난 사상'이나 '깊은 철학'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일생 동안 '조금 손해 보는 듯하게 살고자' 노력했었다.
먼저 헌신하고, 먼저 배려하며 먼저 봉사하고자 기도했고, 그런 방향으로 노력했던 건 사실이었다.
굴곡이 많았던 삶이었지만 그런 여정에서도 작은 콩 한 조각이라도 더 나누고 싶어 했었다.
월요일 새벽에 출근하여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했다.
그날 밤, 정원이 13명밖에 되지 않는 친구들 사이트에 글을 하나 올렸다.
취침 전까지 7명이 그 글을 읽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아로니아즙'은 그 자리에서 바로 '완판' 되었다.
읽은 친구들이 모두 댓글을 달아주었다.
완판이나 돈을 떠나 내 마음이 훈훈해졌고 한편으로는 찡했다.
내가 올렸던 원문을 소개해 본다.
(친구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이름을 J로 바꿔 게재함)
땀과 정성을 쏟았다.
어제와 그제.
주말을 맞이하여 군산에 갔었다.
J네 본가에 '아로니아' 농장이 있는데 그 '아로니아'를 수확하기 위해서였다.
J 부부와 우리 부부, 4명이서 정성을 다해 '아로니아'를 수확했다.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아로니아' 좋은 건 친구들도 잘 알 것으로 믿는다.
작은 열매를 따고 선별하여 상품화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아로니아'는 정말 좋은 열매다.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노화예방, 염증완화, 심혈관 가능 향상, 면역력 강화, 대장과 소장 기능 개선, 눈 건강 증진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이른 아침 06시부터 열매를 따고, 한 알 한 알 선별하여 A급 알맹이만 추려냈다.
점심도 거른 채 4명이서 꼬박 오후 3시 30분까지 고군분투했다.
상태가 B급이거나 그 이하인 알맹이는 모두 버렸다.
그래서 알토란 같은 '아로니아' 80 킬로를 세심하게 선별했다.
잘 아는 '건강원'으로 가서 '아로니아'와 '포도'를 2 : 1로 넣고 정성스럽게 즙을 만들었다.
4명이 정말로 최선을 다한 작품이다.
땀과 정성을 쏟았다.
원가를 계산해 보니 파우치 100개 들이 1박스 만드는데 약 13-14만 원 정도 들어가더라.
그런데 우리 모임 친구들에게 100개들이 1박스에 10만 원에 제공하자고 뜻을 모았다.
총 9박스 나왔다.
장사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장사할 양도 안된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건강'과 '정성'을 선물해 주고 싶다.
진심이다.
정말로 열과 성을 다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다.
진리다.
J가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게 좀 그렇다고 하여 대신 내가 글을 쓴다.
쑥스러워하는 그 입장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두 부부 네 명이서 하루 종일 최선을 다했다.
완전 무공해 최상품 '아로니아즙'이다.
파우치 100개 들이 1박스에 10만 원이다.
1년 동안 수고한 J부부다.
'경남 진주'에서 '전북 군산'까지 왔다 갔다 하느라 고생한 친구에게 연료비라도 손에 쥐어 주고 싶다.
9박스 완판해도 큰돈도 안된다.
J의 그 열정과 성심 그리고 정직을 잘 알기에 우리 부부도 1박 2일 간 흔쾌하게 동참했고 조건 없이 힘을 보태고 왔다.
나도 동일하게 10만 원에 1박스를 구입하여 아내랑 같이 복용하려 한다.
우리 4명의 손으로 직접 수확하고, 착즙 한 상품이라 자신 있게 권한다.
이른 봄날, '가지치기'부터 9월 중순에 열매를 수확하여 '상품화'에 이르기까지 수고한 J부부의 땀과 노고에 우리 친구들도 마음을 보태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모임에 얘기를 하는 것이다.
구입을 희망하는 친구들은 아래에 댓글을 달아주기 바란다.
친구들, 오늘도 수고 많았다.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시길,
브라보.
나의 글은 여기까지였다.
글을 읽은 7명이 저마다 댓글을 달았다.
어떤 친구는 2박스, 어떤 친구는 1박스를 요청했다.
2-3시간 만에 완판이었다.
'건강원'에 결제하고 겨우 친구의 연료비 정도 나왔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돈 보다 서로 돕고, 챙겨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 즙을 복용하는 친구들 부부가 더욱 건강해지고 활력이 증진되었으면 좋겠다.
그 바람 하나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는 게 별 건가?
도울 수 있을 때 아무 조건 없이 돕고, 주변을 챙길 수 있을 때 적극 챙기며 살자.
경남 진주에 사는 친구가 그랬다.
"자네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다. 진짜로 고맙다. 머지않아 막걸리 한 잔 살게. 그동안 마음속으로 진상으로 생각했던 '아로니아'가 방법과 길이 보이니까 정말로 건강에 좋은 열매라는 확신이 든다. 아무튼 이래저래 고맙다. 친구야"
"막걸리 좋지. 가을이 쏟아지고 산천이 불탈 때 아름다운 트레킹 루트에서 4명이 함께 보자. 그때 자네가 막걸리 한 잔 사라. 나도 자네가 46년 간 최고의 친구로 곁에 있어 주어 고맙다"
가을이 왔다.
"가을이 왔나 싶더니 언제 가버렸지? 아이고 추워라"
이러면서 놀라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시간은 늘 번개처럼 흐른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건 '재물'이 아니라 신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이다.
건강할 때 더 열정적으로 살고 감사하며 살자.
벌써 내일이 주말이다.
한 주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멋진 주말이 되길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