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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불성설(語不成說)
말이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치에 맞지 않아 말이 안 된다는 말이다.
語 : 말씀 어(言/7)
不 : 아닐 불(一/3)
成 : 이룰 성(戈/3)
說 : 말씀 설(言/7)
출전 : 장자(莊子)의 천하편(天下篇)
말이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리(事理)에 맞지 않아서 말 같지 않은 이야기라는 뜻의 만불성설(萬不成說)과 말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의 어불근리(語不近理)와 같은 말로 줄여서 불성설(不成說)이라고도 한다.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하여 이치에 맞지 않아 말이 안 되는 것을 가리킨다. 하는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아서 말이 되지 않을 경우에 쓰이는 성어(成語)로 말이 사리와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리(事理)에 맞지 않아서 말 같지 않은 말이란 의미다. 자신을 변명하거나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억지를 부릴 경우에 많이 쓰인다.
맹자(孟子)의 공손추편(公孫丑篇)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제자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다. '스승님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내 장점은 말을 알고 호연지기를 잘 기르는 것이다.' 공손추가 다시 물었다. '말을 안다는 게 어떤 건가요?' 그러자 맹자는 '부동심(不動心)을 가질려면 지언(知言)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의 뜻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람의 말에는 4가지 병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한쪽으로 치우친 피사, 둘째는 외곬에 빠져 판단을 잃은 음사(淫辭), 셋째는 바른 길을 벗어난 사사(邪辭), 넷째는 궁한 나머지 책임을 벗으려는 둔사(遁辭)라고 했다. 이 말을 하면서 맹자는 '성인께서 다시 나오셔도 반드시 내 말에 동의하실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네 가지에 속하는 말의 공통성은 양심과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양심과 성실성이 담겨있지 않은 말은 어떤 경우에도 옳은 말이 될 수 없다. 썩은 달걀이 부화되어 병아리가 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방위비 분담금을 훨씬 더 많이 내야 한다는 미국의 압력이 갈수록 거세다. 50억달러를 요구한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6조원에 가까운 돈이다. 1년 만에 5배를 올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같은 대폭적인 증액 요구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 미국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있다.
주한 미군의 존재는 상호 호혜적인 시각에서 봐야한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며 과도한 비용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맹자(孟子)의 공손추편(公孫丑篇)과 어불성설(語不成說)
맹자(孟子)의 공손추편(公孫丑篇)과 어불성설(語不成說)의 관계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사상적 논리적 맥락에서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맹자는 공손추편에서 도의(道義)와 논리적 정당성을 매우 중요시 합니다. 그는 군주의 정당성, 정치의 올바름, 인간 본성의 선함(성선설)을 조리 있게 설파하며, 말과 이치가 통하지 않으면 결코 따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맹자의 입장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말, 즉 어불성설(語不成說)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그는 왕도정치에 반하는 패도의 논리, 인의를 무시한 통치론, 억지 주장을 철저히 반박하며 그것들을 어불성설(語不成說) 처럼 간주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힘으로 천하를 얻자고 주장하면, 맹자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 책이 존재한다 해도, 그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雖有其書 其語不成說)."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은 맹자가 비판하는 패도적 주장이나 비도덕적 통치 이론을 설명할 때 적절히 적용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공손추편의 사상은 결국 이치에 맞는 말과 도리를 갖춘 정치와 인간됨을 강조하며, 말이 말이 되지 않는 주장(어불성설 語不成說)을 경계합니다.
맹자의 공손추편(公孫丑篇)에서 어불성설(語不成說)에 해당하는 구절은 명시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나 비논리적인 말을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손추편 상(上) 제1장에서는 맹자가 공손추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왕이 인의(仁義)로써 정치를 하면, 천하가 그를 향해 모일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맹자가 도덕과 이치를 바탕으로 한 정치를 강조하며, 힘이나 술수에 의존하는 패도(覇道)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도덕적 정당성이 없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며, 이는 곧 어불성설(語不成說)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맹자는 공손추편에서 도덕과 이치를 중시하며, 이에 반하는 주장을 비판합니다. 비논리적이거나 도리에 맞지 않는 주장은 맹자의 사상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으며,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개념과 일맥상통 합니다.
이러한 맹자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논리적이고 도덕적인 주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참고할 수 있습니다.
장자(莊子)의 천하편(天下篇)과 어불성설(語不成說)
장자(莊子)의 천하편(天下篇)과 어불성설(語不成說) 사이에도 깊은 철학적 연결이 있습니다. 이 둘은 표면적으로는 충돌하는 듯하지만, 장자의 의도를 이해하면 흥미로운 관계가 드러납니다.
천하편(天下篇)은 장자 외편의 마지막 장으로, 당시 제자백가의 사상과 학문들을 종합적·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글입니다. 장자는 여러 사상을 평가하면서 고정된 논리, 인위적 이념, 일방적 주장을 경계합니다. 특히 '말의 한계', '시비의 상대성', '절대적 진리의 부정'을 강조합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은 일반적으로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장자는 오히려 '모든 말이 본래 말이 되지 않는다(語皆不成說)'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즉, 장자는 다음과 같은 철학을 펼칩니다. 첫째, 모든 언어는 상대적이다는 말이다. 시비(是非), 선악(善惡), 진위(眞僞)는 고정된 기준이 없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둘째, 말로 진리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언어는 제약이 있으며, 참된 도(道)는 말로 표현될 수 없다고 보았다. 셋째, 성설(成說) 자체를 의심한다는 말이다. 논리적이거나 그럴듯 해 보이는 말조차 집착하면 도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천하편(天下篇) 中에서 구절을 보자. "천하에 사상과 기술이 매우 많아서 다 셀 수 없도다(天下之治方術者多矣 不可勝數也)." 각기 논리를 주장하지만, 그 많은 학설들이 모두 참일 수는 없다는 비판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맹자는 '말이 안 되는 말'을 어불성설이라 비판했고,
장자는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 조차도 허망하다고 본다.
그러면 장자 천하편과 함께, 어불성설(語不成說) 개념과의 철학적 비교 분석을 정리해 보자. 먼저 장자 천하편(天下篇) 핵심 원문과 해석이다.
天下之治方術者多矣, 不可勝數也.
천하의 다스리는 법술(學派)은 많아서 셀 수 없다.
皆有所謂, 而非其所謂; 有所謂非, 而非其所謂非.
모두 옳다고 하는 것이 있으나, 그 말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고;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 있으나, 그것이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니다.
惡乎定是非?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
시비를 어디에다 정하겠는가? 천지와 손가락은 같고, 만물과 말은 같은 것이다.
모든 학설은 자기 나름의 이치를 주장하지만, 장자는 그 모두를 상대화 합니다. 어떤 말이 이치에 맞는다(成說)는 것도, 그 자체가 고정 불가능하고 가변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기준 자체가 상대적이므로 무의미하다는 입장입니다.
장자의 핵심 메시지는 진정한 도(道)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모든 학설은 부분적 진리일 뿐, 어떤 말이 이치에 맞는 듯해도 그것은 언어의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철학에서는 어불성설이라는 개념조차 성립 근거가 모호하다고 보는 셈입니다.
다음은 장자 천하편과 어불성설의 관계를 주제로 한 철학적 에세이를 작성한 글이다. 학술적인 톤을 유지하면서, 사유의 깊이를 담았습니다.
현대 한국어 표현에서 어불성설(語不成說)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 즉 논리적 모순이나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지적할 때 사용된다. 이는 일반적으로 '말은 곧 이치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며, 공자나 맹자와 같은 유가(儒家) 사상에서도 언어의 정합성과 도덕적 타당성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장자(莊子)의 외편 마지막 장인 천하편(天下篇)은 이러한 전제를 근본부터 해체한다. 장자는 천하편에서 수많은 제자백가의 주장들을 나열하고, 이들이 각자 이치를 세우고 진리를 말하지만, 모두가 서로 충돌하며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옳다 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고, 옳지 않다 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도 아니다(有所謂 而非其所謂, 有所謂非 而非其所謂非)."
이 구절에서 드러나는 것은 언어의 근본적 상대성과 유동성이다. 장자에게 언어는 결코 고정된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언어는 인간의 인위(人爲), 즉 관습과 관점에 따라 만들어진 제한된 상징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어떤 말이 '성립되었다'거나 '말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기준 없는 자의적 판단일 수 있다.
따라서 장자에게는 어불성설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말은 결국 불성설(不成說)이기 때문이다. 말은 언제나 도(道)의 외곽을 맴돌 뿐, 도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으며, 그 어떤 논변도 궁극적 진리를 확정할 수 없다.
장자의 철학은 결국 시비(是非)를 벗어난 세계, 즉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를 지향한다. 시비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사람은 언어와 논리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천하편은 단순한 언어 비판을 넘어, 언어 너머의 삶을 제시하는 글이다.
맹자라면, 비논리적 주장을 어불성설이라 잘라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 말이 맞든 틀리든, 그 또한 말일 뿐."
결국 장자의 철학에서 어불성설이라는 말은 자기 모순이다. 왜냐하면 '말이 안 되는 말'이라는 판단조차, 또 하나의 말일 뿐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우리에게 말의 세계에 머물지 말고, '말 너머의 도(道)'를 직관하라고 말한다.
어불성설(語不成說)
세 번을 신중히 생각하고 말을 하라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의 교훈은 몇 백번 되새겨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이란 본래 완벽하지가 않아 누구나 실수를 범하기가 쉽다. 특히 말로 하는 실수는 돌이킬 수가 없기에 세 번을 생각하고 한번을 말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공인(公人)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중국 당나라에서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의 기준으로 삼았던 신(身), 언(言), 서(書), 판(判) 네 가지 중 말씨(言)가 포함돼 있다. 용모와 글씨와 판단력과 함께 관리가 지켜야 할 품격으로 언변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말에는 신중함과 품위, 정직함이 있어야 하므로 관리가 될 사람의 덕목으로는 당연하다.
말을 잘못하여 어려운 일을 겪게 되는 경우를 구설수(口舌數)에 오른다고 한다. 설화(舌禍)는 혀를 잘못 놀려 당하는 화라는 뜻이다. 또 사람의 언변이 좋을 때 비유하는 말로 삼촌설(三寸舌)이라는 표현을 쓴다. 세 치의 혀라는 뜻이다. 모두 사람 입안에 있는 혀를 두고 나타낸 표현들이다. 비록 세치의 짧은 혀지만 잘 간수하고 신중하게 놀려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혀 밑에 도끼가 있다'는 우리 속담은 말이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계한 말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은 쓰기에 따라 돌아오는 반응도 여러 갈래다. 서양 격언에도 '침묵이 금이다'고 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말에 대한 신중함을 경고한다.
불교에서는 구업(口業)이라 하여 사람이 입으로 저지르는 죄업을 이렇게 불렀다. 남을 욕하거나 속이는 말이 이에 해당하며, 남을 이간질을 하거나 요망한 말로 현혹시키는 것도 구업이라 한다.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구설수에 올라 사표를 내고 말았다. 사표라지만 사실상 문책성 인사로 보인다. 그가 조찬 모임에서 던진 말이 기 막힌다. '50, 60대는 조기 퇴직했다고 할 일없이 산에만 다니지 말고 동남아로 떠나라'란다. 도대체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사람의 발언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이런 때 쓰는 말이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요 인격이라 했다. 삼사일언의 교훈을 되새겨야겠다.
어불성설(語不成說)
어불성설(語不成說)은 한자성어로,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말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말이 이치에 맞지 않거나 조리가 없어서 도무지 말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사자성어는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서인 장자(莊子)의 천하편(天下篇)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문에서는 당시 제자백가들의 논쟁을 비판하며 "그 글은 비록 남아 있으나, 그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其書雖存 其語不成說)"이라고 했습니다.
장자는 이 구절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의 공허한 논쟁을 비판했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 해 보이는 주장이라도 실제로는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입니다.
현대 사회는 정보의 홍수 시대입니다. 소셜 미디어, 뉴스, 각종 매체를 통해 수많은 주장과 정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은 우리에게 이러한 정보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논리적 타당성과 근거를 꼼꼼히 살펴볼 것을 가르쳐 줍니다.
말의 겉모습만 그럴듯할 뿐 실제 내용이 없는 것을 경계하라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의 가르침은, 현대인들에게 진정성 있는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특히 SNS나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정적이고 피상적인 발언들을 분별하는 지혜를 제공합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은 단순히 남의 말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하는 말과 주장에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지,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덕목이 되었습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은 2000년도 더 된 고사성어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정보와 소통의 진정성이 위협받는 현대 사회에서, 어불성설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비판적 사고와 진정성 있는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나침반이 됩니다. 이는 단순한 경구가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야 할 실천적 지혜입니다.
▶️ 語(말씀 어)는 ❶형성문자로 语(어)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언(言; 말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吾(오, 어)로 이루어졌다. 吾(오, 어)는 서로 말을 주고 받고 하는 일이, 나중에 吾(오)를 我(아)와 같이 나 또는 자신이란 뜻으로 썼고, 서로 이야기한다는 뜻인 때는 말이란 뜻을 나타내는 言(언)을 붙여 따로 語(어)를 만들었다. ❷형성문자로 語자는 '말씀'이나 '말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語자는 言(말씀 언)자와 吾(나 오)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吾자는 '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이렇게 '나'를 뜻하는 吾자에 言자가 결합한 語자는 '나의 말'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본래의 의도를 명확히 알기 어렵지만, 자신이 하는 말을 뜻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語(어)는 명사 아래에 붙어 그것이 어떤 말인가를 나타내는 말로 ①말씀, 말, 이야기 ②새, 벌레의 소리 ③논어(論語)의 약칭(略稱) ④기뻐하는 모양 ⑤말하다, 논란(論難)하다 ⑥알리다, 고(告)하다 ⑦발표(發表)하다 ⑧의논(議論)하다, 모의(謀議)하다 ⑨이야기하다, 담화(談話)하다 ⑩대답(對答)하다 ⑪깨우치다 ⑫가르치다 ⑬설명(說明)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말씀 언(言), 말씀 화(話), 말씀 설(說), 말씀 담(談), 말씀 사(辭), 말씀 변(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말이 궁하여 답변할 말이 없음을 어색(語塞), 낱말의 수효 또는 낱말의 전체를 어휘(語彙), 말의 한 토막이나 말의 마디를 어구(語句),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어학(語學), 말의 조직에 관한 법칙을 어법(語法), 말의 가락이나 말하는 투를 어조(語調), 낱말이 생겨나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근원을 어원(語源), 한 낱말의 중심이 되는 요소로서 더는 가를 수 없는 부분을 어근(語根), 훌륭한 학자나 지도자들이 한 말을 간추려 모은 기록을 어록(語錄), 말의 뜻을 어의(語義), 글이나 말에서 낱말의 놓인 차례를 어순(語順), 사람이 생각이나 느낌을 소리나 글자로 나타내는 수단을 언어(言語), 국민 전체가 쓰는 그 나라의 고유한 말을 국어(國語), 사용하는 말을 용어(用語), 같은 음이나 비슷한 음을 가진 단어를 반복적으로 결합한 말을 첩어(疊語), 보통 회화로 쓰는 말을 구어(口語), 문장의 주체가 되는 말을 주어(主語), 글로만 쓰고 말로는 쓰지 않는 말을 문어(文語), 정도에 지나치게 심한 말을 격어(激語), 동아리끼리 저희들만 알도록 특정한 뜻을 숨겨 붙인 말을 은어(隱語), 남이 못 알아듣게 넌지시 하는 말을 밀어(密語),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을 내놓음 또는 그런 말을 방어(放語), 새로 말을 만들어 냄 또는 그 만든 말을 조어(造語),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함 즉 말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뜻하는 말을 어불성설(語不成說), 하는 말이 재미없다는 뜻으로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의 말은 맛없음을 이르는 말을 어언무미(語言無味), 말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어불근리(語不近理), 말을 삼가지 않고 함부로 함을 이르는 말을 어불택발(語不擇發), 사람을 부리는 것이 말을 부리듯 노련함을 일컫는 말을 어언여마(語言如馬), 대단하지 아니한 말의 허물을 일컫는 말을 어언박과(語言薄過), 항간의 뜬 소문이라는 뜻으로 저자거리나 여염에 떠도는 소문을 일컫는 말을 가담항어(街談巷語), 아무 근거없이 널리 퍼진 소문이나 터무니없이 떠도는 말을 유언비어(流言蜚語), 먼저 들은 이야기에 따른 고정관념으로 새로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선입지어(先入之語), 제 주제에 당치 아니한 말을 희떱게 지껄임 또는 그러한 말을 대언장어(大言壯語),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너무나 엄청나거나 기가 막혀서 말로써 나타낼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언어도단(言語道斷), 터무니없는 말 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이르는 말을 호언난어(胡言亂語), 남을 냉정하게 접대함을 이르는 말을 냉어빙인(冷語冰人), 반 권의 논어라는 뜻으로 학습의 중요함을 이르는 말 또는 자신의 지식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반부논어(半部論語),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으로 미인을 이르는 말을 해어지화(解語之花)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成(이룰 성)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창과(戈; 창, 무기)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丁(정,성)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丁(정,성)은 나중에 변한 모양이며, 十(십; 모이다), 午(오; 다지다), 甲(갑; 덮다)이라 썼다. 戊(무)는 무기, 도구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도구를 써서 사물을 만들다, 완성되다, 이루어지다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成자는 '이루다'나 '갖추어지다', '완성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成자는 戊(창 모)자와 丁(못 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戊자는 반달 모양의 날이 달린 창을 그린 것으로 '창'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창을 그린 戊자에 丁자가 더해진 成자는 본래는 '평정하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다. 여기서 말하는 '평정하다'라는 것은 적을 굴복시킨다는 의미이다. 成자는 후에 적을 굴복시켜 일을 마무리 지었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지금은 '이루다'나 '완성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成자에 쓰인 丁자는 유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정, 성'으로의 발음역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떠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을 못을 박는 행위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成(성)은 (1)황금(黃金)의 순도(純度)를 나타내는 말. 십성(十成)이 순금(純金)임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이루다 ②이루어지다 ③갖추어지다, 정리되다, 구비되다 ④살찌다, 비대해지다 ⑤우거지다, 무성해지다 ⑥익다, 성숙하다 ⑦일어나다, 흥기하다(세력이 왕성해지다) ⑧다스리다, 평정하다 ⑨나아가다, 진보하다 ⑩가지런하다 ⑪고르게 하다, 균평(均平)하게 하다 ⑫끝나다 ⑬정하여지다 ⑭기대하다 ⑮완성하다 ⑯어른이 되다, 성인(成人)이 되다 ⑰크다 ⑱층계지다 ⑲화해하다 ⑳정성(精誠) ㉑재판(裁判), 심판(審判) ㉒권형(權衡), 균형(均衡) ㉓총계(總計), 셈한 계산(計算) ㉔북두칠성(北斗七星)이 술의 방위(方位)를 가리키는 날 ㉕길제(吉祭: 죽은 지 27개월 만에 지내는 제사) ㉖사방 10리의 땅 ㉗층 ㉘참으로 ㉙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통할 통(通), 통달할 달(達)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 패할 패(敗), 질 부(負)가 있다. 용례로는 사업이나 일을 한 결과로 얻은 실적 또는 학생들의 학업과 시험의 결과로 얻은 실적을 성적(成績), 초목의 열매가 충분히 여묾 또는 어떤 현상이 충분히 발전하여 무르익은 시기에 달함을 성숙(成熟), 뜻한 것이 이루어짐 또는 사회적 지위를 얻음을 성공(成功), 생물이 자라서 점점 커짐 또는 사물의 규모가 커짐을 성장(成長), 일의 이루어진 결과를 성과(成果), 목적대로 일을 이룸을 성취(成就), 화합물을 조성하는 각 원소 또는 하나의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를 성분(成分), 성년이 됨 또는 성년이 된 사람을 성인(成人), 일을 이룸이나 일이 이루어짐을 성사(成事), 성공과 실패를 일컫는 말을 성패(成敗), 사물이 이루어짐을 성립(成立), 자랄 대로 다 자란 나이를 성년(成年), 외과적 수단으로 형체를 고치거나 만드는 것을 성형(成形), 다 자라서 생식 능력이 있는 곤충을 성충(成蟲), 다 발육하여서 생식 능력이 있는 성숙한 동물 또는 그 동물의 몸뚱이를 성체(成體), 말을 이룸이나 이루어진 말 또는 고인들이 만든 말을 성어(成語), 어떤 내용이나 계획이나 방침 등에 관한 초안이나 방안을 작성함을 성안(成案), 어떤 단체를 이루는 사람 또는 회의를 성립시키는 데 필요한 어원을 성원(成員), 샛길이 생긴다는 뜻으로 덕이 높은 사람은 자기 선전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흠모하는 이들이 모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성혜(成蹊), 여러 부분이나 요소들을 모아서 일정한 전체를 짜 이룸을 구성(構成), 옳다고 동의함을 찬성(贊成), 단지나 삼림이나 택지나 녹지 따위를 인공적 인위적으로 이루어 만드는 것 또는 분위기나 상황 따위를 생겨나게 만드는 것을 조성(造成), 엮어서 만드는 일 또는 조직하고 형성하는 일을 편성(編成), 뜻한 바 목적한 바를 이룸을 달성(達成), 어떠한 꼴을 이룸 또는 어떠한 꼴로 이루어짐을 형성(形成), 가르쳐서 유능한 사람을 길러 냄 또는 실력이나 역량 따위를 길러서 발전시킴을 양성(養成), 사람을 가르쳐서 기르는 것 또는 동물이나 식물을 길러 자라게 하는 것을 육성(育成), 어떤 사물을 완전히 이룸을 완성(完成), 두 가지 이상이 합하여 한 가지 상태를 이룸을 합성(合成), 단체를 조직하여 이룸을 결성(結成), 충분하게 이루어짐을 숙성(熟成),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적이나 육체적 발육이 빨라 어른스러움을 숙성(夙成), 도와서 이루게 함 또는 힘이 되어 성공 시킴을 조성(助成), 사물이 생겨남이나 자라남 또는 사물이 일정한 상태에서 다른 것으로 변화함을 생성(生成), 크게 이룸이나 이루어짐 또는 큰 인물이 됨을 대성(大成), 사물이 이미 이루어짐 또는 어느 부문에서 이미 이름이 남을 기성(旣成), 다 이루지 못함 또는 아직 혼인한 어른이 되지 못함을 미성(未成), 늦게야 이루어짐을 만성(晩成), 빨리 이루어지거나 이룸을 속성(速成), 섞여서 이루어짐 또는 섞어서 만듦을 혼성(混成), 성공한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성공자퇴(成功者退),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나는 순간을 일컫는 말을 성패지기(成敗之機), 다른 사람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점을 도와주어 더욱 빛나게 해 줌을 일컫는 말을 성인지미(成人之美), 여러 사람이 모여 패를 지어 무리를 이룸 또는 그 무리를 일컫는 말을 성군작당(成群作黨), 성공의 열매는 부지런함 속에 있다는 뜻을 일컫는 말을 성실재근(成實在勤), 일이 되고 안 됨은 오로지 천운에 달렸다는 말을 성사재천(成事在天), 옛날 있었던 일에서 만들어진 어구를 일컫는 말을 고사성어(故事成語),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미성년자(未成年者), 발전의 규모나 속도가 높은 수준으로 성장함을 일컫는 말을 고도성장(高度成長),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문전성시(門前成市), 자신의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옳은 도리를 행한다는 말을 살신성인(殺身成仁),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크게 될 인물은 오랜 공적을 쌓아 늦게 이루어짐 또는 만년이 되어 성공하는 일을 이룬다는 말을 대기만성(大器晩成),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이르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농담이나 실없이 한일이 나중에 진실로 한 것처럼 됨을 일컫는 말을 가롱성진(假弄成眞),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함으로 말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뜻하는 말을 어불성설(語不成說), 흙이 쌓여 산을 이룬다는 뜻으로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토적성산(土積成山), 여러 사람의 마음이 성을 이룬다는 뜻으로 뭇사람의 뜻이 일치하면 성과 같이 굳어짐을 이르는 말을 중심성성(衆心成城), 새의 깃이 덜 자라서 아직 날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성숙되지 못하고 아직 어림을 이르는 말을 모우미성(毛羽未成),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후퇴한다는 뜻으로 성공을 이루고 그 공을 자랑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공성신퇴(功成身退) 등에 쓰인다.
▶️ 說(말씀 설, 달랠 세, 기뻐할 열, 벗을 탈)은 ❶형성문자로 説은 통자(通字), 说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언(言; 말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兌(열)로 이루어졌다. 말(言)로 나타낸다는 뜻이 합(合)하여 말씀을 뜻한다. 八(팔)은 분산하는 일, 兄(형)은 입의 움직임을 일컬는다. 음(音)을 나타내는 兌(탈, 열)은 큰소리를 질러 화락함을 말하고, 나중에 기뻐함에는 悅(열)이라고 쓰고, 말로는 그것은 무엇, 이것은 무엇이라고 구별함을 說(설)이라고 쓴다. ❷회의문자로 說자는 '말씀'이나 '이야기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說자는 '말'과 관련된 여러 글자 중에서도 '이야기하다'라는 뜻이 가장 두드러져 있다. 說자의 구성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說자는 言자와 兌(기쁠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兌자는 입을 벌려 웃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기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입을 벌린 모습을 그린 兌자에 言자가 결합한 說자는 누군가에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說자는 주로 '이야기하다'나 '서술하다', '유세하다'와 같이 입을 벌려 크게 말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說(설, 세, 열, 탈)은 (1)일부(一部) 명사(名詞) 뒤에 붙여 풍설(風說)의 뜻을 나타내는 말 (2)견해(見解). 주의(主義). 학설(學說) (3)풍설(風說) (4)중국에서의 문체(文體)의 하나. 구체적인 사물에 관하여 자기의 의견을 서술(敍述)하면서 사물의 도리를 설명하는 문장임. 당(唐)나라의 한유(韓愈)가 지은 사설(師說), 송(宋)나라의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애련설(愛蓮說) 따위. 문학 작품으로서의 형식을 갖춘 것은 당(唐)나라 이후임 등의 뜻으로 말씀 설의 경우는①말씀(설) ②문체(文體)의 이름(설) ③제사(祭祀)의 이름(설) ④말하다(설) ⑤이야기하다(설) ⑥서술하다, 진술하다(설) 그리고 달랠 세의 경우는 ⓐ달래다(세) ⓑ유세하다(세) 그리고 기뻐할 열의 경우는 ㉠기뻐하다, 기쁘다(열) ㉡즐거워하다(열) ㉢즐기다(열) ㉣공경하다(열) ㉤따르다, 복종하다(열) ㉥아첨하다(열) ㉦쉽다, 용이하다(열) ㉧헤아리다(열) ㉨기쁨, 희열(喜悅)(열)㉩수(數)(열) 그리고 벗을 탈의 경우는 ㊀벗다(탈) ㊁놓아주다(탈) ㊂빼앗기다(탈) ㊃제거하다(탈) ㊄용서하다(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뻐할 희(憙), 기뻐할 환(驩)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풀어 밝힘을 설명(說明), 여러 모로 설명하여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알아듣게 함을 설득(說得), 진리가 될 만한 것을 밝혀 듣는 사람의 납득하도록 궤뚫어 말함을 설파(說破), 사실대로 내 놓고 모두 이야기 함을 설토(說吐), 알아듣도록 타일러 그렇게 여기게 함을 설복(說伏), 종교의 교리를 설명함을 설교(說敎), 문제나 물음을 냄을 설문(說問), 여러 사람 앞에서 체계를 세워 자기의 주장을 말함을 연설(演說), 남을 저주하는 말을 욕설(辱說), 예전부터 전하여 오는 이야기를 전설(傳說), 뜻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함 또는 그 책을 해설(解說),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을 역설(逆說), 자기의 의도를 힘주어 말함을 역설(力說), 학문적인 문제에 대해 학자가 내세우는 주장이나 이론을 학설(學說), 사물의 이치를 들어 의견이나 주장을 논하거나 설명함 또는 그 글을 논설(論說), 실상이 없이 떠돌아 다니는 말을 풍설(風說), 망령된 생각이나 주장을 망설(妄說),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를 담설(談說), 터무니없는 헛 소문을 낭설(浪說), 능란한 말솜씨로 각지를 유세하고 다니는 사람을 세객(說客),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자기의 의견을 설명하여서 그것을 채택하여 주기를 바람을 유세(游說),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 함을 이르는 말을 설왕설래(說往說來), 달콤한 말과 이로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남의 비위에 맞도록 꾸민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남을 꾀하는 말을 감언이설(甘言利說), 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를 이르는 말을 가담항설(街談巷說), 말이 하나의 일관된 논의로 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어불성설(語不成說),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말을 도청도설(道聽塗說),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하는 말을 불역열호(不亦說乎),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까지 찾아 온다는 말을 근자열원자래(近者說遠者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