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상과 건강
돌아온지 2주일이 지났다.
2주내내 소주였고, 피시방이었고, 담배였다.
소주야 어차피 오매불망이었고,
피시방은 넘 더워서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늘 들어가 있었고
(게다가 런던에 얼마나 있었다고 인터넷창 클릭하면 팍! 떠서 심장마비 걸릴 뻔 까지... -_-;;)
담배는 이렇게 쌀수가! 하면서 디립다 피워대는 거고,
했더니, 웰빙 바람으로 살랑거리는 이 땅에서
폐인처럼 덥수룩해진 건강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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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othing to do
나는 한국에 돌아오기 전, 가면 뭐할게에요? 류의 질문공세에 시달렸다.
나는 '그런 건 비행기 안에서 생각하는거야' 라는 시시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실제로 비행기 안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무조건 배만 고팠다.
(망할 BA!)
그러나 돌아오자, 정말로 뭘해야 할지 생각해야만 했다.
뭔가 해야했다. 취직이든, 다시 런던에 나갈 궁리든.
실컷 처 자고 눈을 떴을 때, 도무지 할 일이 없다는 것은
고장난 세탁기 앞에 쌓여진 빨래처럼 궁색한 냄새를 풍겨대는 것이다.
(동지 님들은 꼭, 할 일 정해놓고 돌아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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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웠던 것들
분명히 말해서 딱, 일주일이다.
맛있었던 것, 찾아가서 ' 너 오랜만이야! 이히히힛' 하면서 입에 처 넣는 것,
그 음식의 종류가 뭐가 됐던, 일주일만 그렇게 먹으면 뭔가 굉장히 멍청한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떡볶이가 아무리 맛있든, 오뎅국물이 아무리 시원하든, 짜장면이 아무리 목구멍을 애무하든,
10년전에 헤어진 여자와 만나 헤어질 때의 정황을 다시 논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뿐이다.
맛의 쾌감은 불과 10초 정도에 불과하다.
(런던에서 한식당가서 밥먹을 땐 이런 기분 아니었는데....)
게다가 간장게장, 꽃게탕, 아구찜, 생선회, 갈비, 등등, 정말 맛있는 것들은 정말 비싸다. -_-;;;
일주일도 안되어서 돈 올인되고 집에서 고추장에 밥 비벼먹고 있어야 한다.
더욱 웃긴 건,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피쉬 앤 칩스, 의 그 느끼한 기름기가 돌연 먹고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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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웠던 것 중에 음식만 있는 건 아니다.
평소에 자주 찾아가던 장소들,
예를들면 단골 룸쌀롱, 나만의 노상방뇨 장소, 상설 오바이트 전봇대, 여친한테 따귀 맞았던 골목, 게임비 안내고 튀었던 당구장,
(앗, 예를 잘못 들었다...)
-_-;;; 다시 예를 들면 교보문고, 남산, 명동골목, 종로거리, 단골 Bar들, 좋아하던 라면집, 담배를 처음 배웠던 놀이터, 하루에 2000원어치씩 치던 야구장,
같은 곳들을 그리운 표정을 하고 다시 찾아가 봤댔자,
어, 여기 없어졌네? 혹은 음...이건 그대로 있군...
이라고 확인한 다음에 그 다음은 없다는 것이다 .
인간이 과거에 회귀하면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 안타까워 해봤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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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리웠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 대략 2분 30초 동안은 반갑다가
그중에 누군가는 변해서 이질적이고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친구들은 똑같아서 답답하다, 고 느낀다.
친하게 지내던 여자아이들을 만나려고 해보았으나,
런던에 있는 여친이 감정에 밟히고,
결정적으로 연락처 따윈 이미 다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 사이엔, 떨어져 지낸 거리만큼 거리가 생긴다.
그런 건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이 들고,
런던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반대로, 몹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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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 한국사회
더위는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지만, 여긴 열대야, 정도가 아니라 열대 24시간이다.
새벽 4시에도 침대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누워있다.
이러다가 침대가 땀에 젖어 가라앉아 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랄스럽게 덥다.
더위가 가시기 전 까진 온종일 런던이 그리울 수 밖에 없겠다.
정 견디기 힘들어 런던에 가고 싶을 땐,
햇빛드는 2층버스 앞자리나 만원 튜브속을 생각한다.
그래, 런던도 더웠었지. 하고.
그래도 여긴 버스나 지하철만 타면 시원하니깐.
그러나 그럼 자기 위안은 이상하게도 치사하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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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떤 여자도 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지는 않다.
차타고 가다 친구가 ' 엇 저 여자봐라!' 해서 쳐다보면
여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런 걸 '그게 뭐?' 라고 일일이 대꾸해야 한다는 게
귀찮다.
단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생각하는 방식들 보면 한참 멀었다.
똑같은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들 하루에 300명씩 본다...지겹다..
한국, 한국사회란
일주일 째의 변비처럼 답답하다. 힘을 줘 봤자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정치권에서 대책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위원장을 자기 당 사람이 해야 한다고 싸우면서 일 진행 안되는게 이곳이다.
게다가 와서 뭔가 창업해 보겠노라고 준비하다가 만난 부동산 사람들은 99% 가 사기꾼이었다.
쭈꾸미 떡볶이 같은 이곳에선 정직하기 보단 속이는 것을 철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비열해야만 인생을 잘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세계 어디나 인간 사는 곳은 마찬가지 일 수도 있겠지만
서구사회의 세련된 인생관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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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고국에 돌아오니
여러가지 힘들고 고통스러워 똥 밟은 기분이다.
지겹던 것들은 다시 만나면 반갑지 않고 2배로 지겨우니까.
귀국하고 2주 동안 한건,
겨우 시차에 적응한 것 뿐이다.
새벽 4시 취침, 낮 12시 기상 (늘, 하던대로^^)
그 이외에 모든 <차이> 는 극복하지 못하겠다.
괜히 런던가서 입맛만 높아져서 온 것 아냐? 라고 친구가 말했다.
그렇다. 그게 힘들다 .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길게 큐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 줄의 꿑에 서서
나는 다시 달아날 궁리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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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에휴... 돌아갈 생각 하니 정말 막막하네... 이곳에서 정말 오랫만의 여유에 한것 부풀어 있었는데.. 땅에 헤딩할 날도 몇일 안남았네요..ㅠ.ㅠ
님의 풍자적 귀국적응기...정말 생각도 들게 하고 재미도 있네요..!! 힘네세요..... 그래도 아직 어딘가에는 님처럼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으니깐..대한민국이 굴러가고 있는거 아닐까요?..!!
드디어 글쓰기가 되네요. 남의 땅에서, 가끔 온갖 더러운 일 다 겪으며 짜증내다가도...가끔 중얼거립니다. 아무리 이래도 내 이십년의 일상이 여전히 도사리는 서울집으론 돌아가지 않는다.고요. 우습게도 온 타지에서 버티는 힘은 아름답지 않은 고국의 모습입니다. 제겐.
물론 몸서리치게 소주가 그리운 여름 밤...차선책으로 택한 러시안 보드카는 그 열기에 사람을 체하게하지만....어쩔 도리가 있나요. 1년새 미국으로 영국으로 헤매다보니, 이리저리 비교하게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을 생각해내며 살려고 노력합니다. 살아야죠.
잘 지내시고요...^^ 언젠가 님의 책들을 서점에서 보게 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Borders에서요. ^^
그래도.. 저는 돌아가고픈 생각만 잔뜩한 곳인데.. 하기는 다시가면.. 다시 이를 박박 갈며 살아야 ㄱㅔㅆ죠.. 헤거.. 복잡해.. 삶은..
글 잘읽었습니다 ~~심하게 공감이 가네요.. 언제 같이 소주한잔..^^:;
그럴수도 있겠다 싶네요... 용기내시구요...하루빨리 여기 생활에 적응하시길 바래요.^^
에고.... 저도 돌아가서 저러면어쩌죠? 설마 글 쓰신이후에도 계속 저런생활하시는거아니게쪄? 얼릉 적응하세여~ 아자! 힘!! ^^
영국온지 두달째..잠시 홈씩이라고 우울했었는데...님글을 읽고나니 실감이 나는건 왜일까요? 그리운것들은 그리워할수 있을때에만 좋은거다...그런거겠죠...? 아마두요,.....
공감하는 내용이네요..저도 이제 1주일째인데..다시가고 싶어요~~ 런던이 그리워요 귀국할때는 정말 설렜었는데..1주일지나니깐.. 그저 무료한 일상생활이 지겹네요..
한1년지나면 그냥 이렇게 사나보다 하져..그냥 그렇게 흐르는 인생.. 가끔씩 영국이 그리울때면 혼자서 맥주를 마시면 러브액츄얼리를 보며.....
아 오셨군요..정모때 뵐수있을까요? ㅎ
제가 하고 싶은 말만 딱딱.. 너무 멋져요.ㅋㅋ 저도 한번 뵙고 싶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