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금용公으로 부터 13세, 휘는, 안상이며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수군절도사로서 그 기상은 아주 크고
뛰어나서 용맹스러움 또한 월등하여 이에 그 공적을 찾아
공훈을 인정하여 동국여지승람[서훈기록지]에 실려있다,
만년에 이사를 진도군 의신면 활곡리/ 동외리에서 사셨다,
묘는 의신면 만길리 옛 원두리의 강월산에[신좌]서북간
15도에 위치한 곳에 모시고 후손 규현씨는 비문을 짓고
창현씨는 비문을 써서 비를 세우는 덕행을 행하였다,
후연公은 시조로부터 19세로 활곡리에서 진도읍 동외리로 이거하여 살기 시작 하였다.
우보公 은 상기 후연公, 큰아들로 진도 동외리에서 살았다,
동생, 동보公 은 조도로 이거하여 살으셨고,
후손으로 29세 장영태 진도군 의회 부의장, 30세 서진도농협조합장 등이
활동하고 있다.
진도읍 동외리 산 17-1번지에 8,000여평의 가족묘역이 있다.
관리인 장용연(장재호 조부님이 세운 시멘트 소형 표석)
이묘는 시조 금용(公)25세,星성東동公 부부묘로 추정합니다.
(장재호의 현조부모,5대조)
장재호의 고조부 묘비.
시조로부터 27세인 충의참봉두하(화)公할아버지 묘비,장재호(4대,진도군의회 의원)
증조부.
충의참봉 교지.
시조로부터 28세인 용연公할아버지와 김강내 할버니 묘비.
金海金氏 江內 孝烈碑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인동장씨 용字연字님의
부인 김해김씨 강내女史님은
군내면 월가리 김종숙님의 따님으로 태어나셨고
타고난 성품이 좋아
주변의 칭찬을 받으셨다.
결혼한 후 부군의 효성에 감동하여 시부모
공양을 극진히 하고
부군을 잘 섬기셔서 효열의 본이 되었다.
1931년 진도군 유림의 추천과 전남유림의 천거로
당시 모성공회(현,성균관)에서 찬양문을 받으셨다.
회장 판서 김종한님과 찬성장 판서 박기양님 외
19인 연서함.
이에 후손들이 높은 뜻을 기리고 본 받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다.
2011년 9월 13일 세움(辛卯年)
자:시조,금용. 29세. 형문(조동연), 순석(유갑영).
손: 30세. 혜숙(황승룡), 재호(이명혜),
재율(최미라), 환호(오 숙),
재균(주인자), 재만(최서경),
외손: 유각미(이용주)
증손:31세. 황민구(박선미), 황민효(박영미),
원선(허열),원준, 원서(박진선),
여진, 원재, 수영(정지윤),
원용, 유리, 지웅,
준하, 찬웅, 명윤.
외증손: 이민혁, 이은서.
뜻을 함께한 후손
29세 조카. 상우(이남희), 봉문(조영숙).
상기 효열비는 오는 9월13일 제막 예정 입니다.
찬양문(讚揚文) 해석.아들 형문.
위 찬양하는 일은 삼가 전남 유림의 천거를 살펴보면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의 효열부(孝烈婦) 김해 김씨는 진도군 군내면 월가리 김종숙의 따님으로 인동장씨 용연의 아내이다. 타고난 자태가 유완(柔婉)하여 일찍기 알려진 것이 규문(閨門)의 칭찬이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더욱이 그 남편의 효성에 감동하여 시부모를 섬기되 지체(志軆)의 봉양을 극진히 하고 남편을 승순(承順)의 도(道)로써 섬기었고 행동거지가 법도에 맞았으니 효열(孝烈)을 지조(持操)의 부덕으로 삼았다. 시아버지께서 고치기 어려운 병에 결렸을 적에 남들은 가까이 하지 못하는데 김씨 만이 홀로 옆에 있으면서 떠나지 아니하고 대소변을 친히 반듯이 세척하고 똥을 맛보고 약(藥)을 드렸으며 하늘에 기도하길 자기가 대신하게 해달라고 빌더니 마침내 시아버지의 상(喪)을 당하여서는 슬퍼하다 파리해저서 뼈만 앙상히 서있었고 상사(喪事)를 치루는 예(禮)를 한결같이 고례(古禮)를 따랐다. 또 백도(伯道)처럼 자식이 없는 탄식이 있었는데 힘껏 남편을 권하여 다시 다른성씨의 여자를 얻도록 하여 끝까지 후사(後嗣)를 도모 했으니 이것은 선사(先祀)를 받드는 일를 폐하지 않게 하려는 정성에서 유래한 것이지 사람들이 발벗고 따라 갈바가 아니었다. 아 아!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행실은 단지 대의(大義)를 따랐고 반분(半分)만큼의 사사로운 뜻이 없었으니 천고(千古)에 여사(女史)의 모범이 될만 하다. 그의 실적으로써 마땅히 정려(旌閭)를 세워 천양(闡揚)해야 하는데 시제(時制)가 옛과 같지 않아서 아직도 민몰(泯沒)해서 알려지지 않았으니 인륜(人倫)을 갖춘 자로써 어찌 이일을 개탄(慨歎)해 하지 않겠는가?
본 모성공회(慕聖公會)에서 행장(行狀)을 살펴보고 감동하여 의리상 묵묵히 있을수 없어서 인쇄에 부치고 비각(碑閣)을 세운 것은 선행을 더욱 빛내고 미속을 길이 도탑게 하려는 뜻에서 이니 유림의 의론에 따라 이일을 찬양(讚揚) 한다.
공자 탄강 2483년
서기 1931년
모성공회
회장 ; 판서 김종한
부회장: 승지 김병흥
찬성장: 판서 박기양
고문; 보국 민병욱
판서 민영린.
용연公 할아버님 김강내할머님,형문公 아버님과 조동연 어머님 묘역.
부모님 묘비.
인동장씨 시조(始祖)는
1세 (고려초 삼중대광신호위 상장군 )금용(金用)公 이셨습니다.
6세 백림(百林)公은 고려조,우참찬으로 계시다,
진도에 3년 유배후 함평에 머물러 함평파 파조가 되시고.
13세 을중(乙仲)公은,무과 급제하여 수군절도사 이셨다.
만년에 진도 활곡리 거주,진도 입도조 임.
19세 후연(厚延)公이
진도읍동외리에 살기 시작하여,
20세 우보(禹輔)公은 동외리에 살고,
동보(東輔)公께서는 조도에서 살으셨다.
23세 천태(天泰)公은 통정대부 사헌부 감찰을 지내셨고,
24세 구봉(龜鳳)公 은 무과(武科)사과(司果)에 합격하셨고,
25세 성문(星文)公은 가선대부를 지내셨고
26세 철한(喆鶾)公 은 무과급제하여 영광군수 임명.
27세 두하(斗河)公 증조부님 께서는 충의참봉 이셨습니다.
현재,조도출신으로는, 29세, 장영태 군의회 부의장과
30세, 장만윤 서진도 농협장.
활곡출신은, 30세인, 화성의원 장재영원장과
31세인 도의회 장일의원,뉴욕치과 장진영 원장이 활동 하십니다.
동외출신은, 30세,서울, 좋은느낌 산부인과 장재빈원장.장재정(전,대주건설,이사). 32세인, 군청 사무관, 장병인. 담당, 장충식,장병선등이 있다.
효열비를 세운, 김강내 할머니 남편은
28세 장용연(張龍淵)公 조부님으로 후손는
29세 장형문公 부친께서는 (초등학교 교장,진도어업조합 초대조합장)
30세 장혜숙(전,전남도 여성복지국장)
손녀사위,황승룡(전,호남신학대학 총장,신학박사)
장재호( 4대,진도군의회 의원)
손부,이명혜 (의신중앙교회 권사)
장재율(럭키 종합조경 사장, 1급건축기사).
손부,최미라(대학교수,건축학 박사)
장환호(자모산부인과 원장)
손부,오숙(풍암안과 원장)
장재균(아시아나 국제선 수석기장)
손부,주인자,의상 코디네이터)
장재만(광주시청,사무관, 1급토목기사)
손부,최서경(광주 수피아여고 음악교사)
외손녀,유각미(인천 길병원 약국장,약사)
31세증손, 황민구(광주 남부대 대학교수,증손부,박선미,소아과 원장)
황민효(호남신학대학 교수,증손부,박영미,교사)
장원선(목포정명여중 영어교사.증손사위,허열,선관위 주무관)
장원준(쉐보레 목포하당,제일대리점,)
장원서(진도군청 청소년지원센타 상담사)
증손부,박진선(광주계림초등학교 교사)
장여진(동신대 한의대 학생)
장원재(미국거주,컴퓨터 프로그레머)
장수영(동신대 학생,증손부,정지윤,영어강사 )
장원용(연세대 대학원)
장유리(전남대 법학대학원)
장지웅(서울대 법대졸업,군복무중)
장준하(조선대, 군복무)
장찬웅(한림대 의대 제학중)
장명륜(고등학생)
외증손, 이민혁,이은서(고등학생)
김강내 할머니의 사랑으로 후손들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할머니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
첫댓글 혹자넌 요새 시상이
짐성덜도 하넌 내리사랑만 알제
함씨 할압씨 치사랑 켕이는 지 아배엄매도 몰루는 시상이라제만
그래도 요케 조상님의 후덕얼 기리고 본 받는다믄
본대로 밸 것잉께 달라지겄지람짜?
"본데 읎다"넌 말언 보고 배운 것도 없다는 본데없다도 되고
근본 곧 뿌렁구가 읎다넌 말도 되겄지람짜?
훌륭하신 선조님의 뜻을 기리고 배울라넌 지푼 맴에
찬사 디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