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542장 (구 340장) / 누가복음 9 : 49 – 62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542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9장 49절 – 62절입니다.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할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 중에 몇 사람을 앞서 보내시면서 사마리아의 한 마을로 가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마을로 들어갔던 제자들이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되돌아왔습니다. 두 사도는 이런 사마리아 사람들을 혼내주고 저주해야만 한다고 보복을 주장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다 태워버리도록 명하여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그 두 제자를 돌아보시면서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떠한 비난이나 고난이라도 달게 감수하면서 다른 마을로 향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인내를 가지고 사랑으로, 섬김으로, 기다리고 용납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믿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당신들을 통하여 우리를 깨닫게 해주신다고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심판이란 하나님의 권한인데, 우리가 하나님에게 심판해달라고 하는 것은 월권이요, 우리의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심지어 원수 갚는 것도 하나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언젠가는 그래도 예수 믿는 이들이 달라도 정말 다르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 51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할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57절 말씀에 보면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이때 우리 예수님이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 우리 주님은 머리 둘 곳도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결코 푸념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청빈, 물질에 대한 초월, 가난도 기쁘게 감내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아픔이 있어야 제대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은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을 먹고 버티는 것을 경험해야 그 어떠한 어려운 일에도 능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서게 됩니다. 우리 주님을 따라가면 물질에 축복을 받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고, 입신출세할 수 있다고 하면 따라나서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예수님을 따라 나와 입신양명하고 축복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어서 59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때에 우리 예수님께서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60절입니다.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바르게 잘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나선 사람들은 가정에서 지켜야 하는 가족의 그 어떠한 의무도 이행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잘못된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주님의 일이 먼저냐? 가정의 일이 먼저냐? 하는 우선순위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에는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이 아버지의 장사를 지낸 후에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였으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61절 말씀에 보면, 또 어떤 다른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집안 식구들에게 먼저 작별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옛날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는 집에 들어가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하고 따라나서게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집으로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들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엘리야의 요구보다 훨씬 더 엄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전심으로 하지 않는 봉사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6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손에 쟁기를 잡은 사람은 앞에 보이는,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바라보면서 오직 한 길, 오로지 앞만 보면서 가야 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라는 말은 유대인의 오래된 속담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는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과 같습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밭이랑을 제대로 일굴 수 없습니다. 잘 사는 친구들을 돌아보고, 옛날 잘 나가는 직장을 쳐다보면서 그 때를 동경하면 주님의 일을 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를 반대하고 대항하는 이들에게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내로 그들을 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정받는 제자들입니다. 제자의 길, 제자도는 물욕보다 앞서야 합니다. 출세를 위하여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제자는 그 무엇보다도 주님을 따르는 것이 우선입니다. 제자는 전심으로 섬겨야 합니다. 고난의 생활도 각오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몬태나에 사는 한 남자가 러시모어 산 부근 블랙힐스라는 곳에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집으로 가는데, 심한 눈보라가 몰아쳐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지리를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가 눈을 치우고 있는 제설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설차를 보고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 차 뒤만 따라가면 길을 잃지는 않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는 천천히 제설차 뒤를 바짝 따라갔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어디가 어디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한 참 후에야 제설차가 멈춰서더니, 제설차 기사가 그 남자에게로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디를 가시려고 저의 제설차를 따라오십니까?” “몬태나가 집인데 몬태나에 가려고 합니다.” 그러자 제설차 기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합니다. “어느 세월에 몬태나까지 가겠습니까? 나는 지금 주차장에 눈을 치우고 있는 중입니다.” 제설차는 넓은 주차장을 빙빙 돌면서 눈을 치우고 있었고, 이 남자는 제설차 뒤에서 주차장만 몇 시간 동안 맴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를 따라가며, 누구를 닮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2)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비록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지금 당장 부귀영화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잘못된 내 생각 때문에 예수님의 뒤를 따르지 못하거나, 괜한 분노 대문에 예수님의 뜻을 저버리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부르신 그 부름을 받들기 위하여 주님만 바라보고 전진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