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TV나 컴퓨터가 없었던 유년 시절엔 라디오가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요즘이야 음악의 소비가 자유롭지만 그 당시만 해도 60분짜리 테이프에 좋아하는 곡을 녹음하여 듣는 것이 최고였습니다. 음악다방이나 레코드 가게에서 원하는 노래를 녹음해 주기도 했지요.
방송국에 사연과 신청곡을 보내고 혹시 내가 신청한 곡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설렘으로 라디오 곁을 지킨 시간도 유년 시절의 한 페이지입니다. 그때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은 MBC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음악 프로였습니다.
별밤의 진행자를 ‘별밤지기’라고 불렀는데 초기에 유명한 이종환 조영남 세대는 아니었어도 이수만 이문세 세대였습니다. 이문세는 무려 11년 동안 별밤을 지켰으니까요. 그때 이문세를 밤의 문교부장관이라고 부를 만큼 큰 인기가 있었습니다.
1969년에 전파를 송출한 별밤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으니 최장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지요. 오프닝으로 Franck Pourcel의 Merci를 사용하였는데 멜로디를 들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곡입니다. 왜 뜬금없이 별이 빛나는 밤을 이야기하냐면 울 학교 화장실에 걸린 그림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이거든요.
이 작품은 고흐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889년에 그려졌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의 한 정신병원에서 그렸다는 것이지요. 별빛 아래, 마을의 풍경을 표현했는데 빙글빙글 어질어질한 것이 그의 내적 갈등과 고독함을 정신병리학적으로 담아낸 것 같습니다.
별은 너무나 멀리 있어 신비한 존재입니다. 인류도 망원경으로 보기만 했지, 근처에라도 가 본 적이 없는 미지의 곳이기도 하고 광활한 덕에 망원렌즈 너머에 무엇이 더 존재하는지 알 수조차 없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중략)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영롱한 별을 보며 꿈을 꾸던 시대가 어제인 듯한데 이제 별의 실종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도시의 빛 공해 덕에 별을 볼 수 없을뿐더러, 바쁨에 치인 현대인들이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별이 빛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모르는 세상이 눈앞에 있습니다. 지구의 유일한 위성 달을 바라보는 사람도 적을뿐더러 달빛에 의지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물리적인 빛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정(情)과 사랑, 꿈과 희망도 엷어져 가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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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녹음테이프에 음악을 넣어 듣곤 했다니 이 분은 확실히 우리보다 어린세대입니다. 우리 학창 시절엔 카세트 녹음기가 아주 아주 귀한 시기였거든요.
녹음테이프에는 남과 다른 추억이 있습니다. 난, 음악을 녹음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녹음했었거든요.
기억이 확실하진 않으나 1984년 쯤 처음 퍼스털 컴퓨터란 것을 가졌을 때, BASIC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녹음테이프에 저장했다가 불러들여 실행시키곤 했죠. 그 후엔 5 1/4인치 시꺼먼 디스크드라이브를 쓰다 2.5인치 콤팩트 디스켓, 그 후에 하드디스크. 이젠 SSD도 지나 nMe Memory 스틱을 쓰니. 불과 30년인데 격세지감입니다.
당시 내 봉급 30여 만원일 때, APPLE 컴퓨터가 75만원, 모니터가 50만원. 녹음테이프를 200여개 정도 가지고 시작했죠. 두어해 후 5 1/4 디스켓이 나왔을 때, 독일제 슈가트 디스크드라이버가 70만원 대, 3M 디스켓 한 장이 3,000원. 그런 디스켓이 500여장,
생각해보면 컴퓨터에 들어간 돈도 만만치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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