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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JTS 워크숍 일정을 마치고 팀푸로 이동하여 대학생들을 위해 강연을 하고, 부탄 정부 관계자들과 미팅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5시 30분에 팀푸로 출발했습니다. 이제 막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구름이 내려앉은 아름다운 트롱사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동하는 중에 잠깐 식당에 내려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계속 달렸습니다.
트롱사에서 팀푸까지는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개를 두 번 넘어야 합니다. 해발 3,300미터가 넘는 높은 고개이다 보니 넘을 때마다 안개가 자욱했는데, 오늘은 하늘이 청명하여 저 멀리 히말라야 설산도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0시 50분에 두 번째 고개인 도출라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운전자를 배려하여 잠깐 차를 세우고 함께 차를 한잔 마셨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11시 30분에 팀푸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부탄 방문 일정 동안 통역을 맡은 린첸다와 님의 집에 짐을 풀고 점심 식사를 한 후 강연을 하기 위해 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 50분에 로열 팀푸 대학교(Royal Thimphu College)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학장님과 교수님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강연을 하기 전에 총장실로 가서 대학 총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총장님은 매우 적절한 시기에 학교를 방문해 주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대학은 부탄에서 가장 큰 대학입니다. 1,900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스님 강연을 통해 학생들이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학교로서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8월에 개학했는데 매우 적절한 시기에 방문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어 함께 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삼삼오오 강당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스님은 기후 위기, 소비주의, 행복지수(GNH)에 관해 이야기하며 왜 스님이 부탄에 왔고 부탄의 청년들이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조금은 알고 계시나요?”
“YES!”
“지금까지 우리는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하는 물질 생산 지수를 가지고 잘 사는 기준으로 삼아왔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선진 개발 국가라고 말하는 OECD 가입국의 인구는 12억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해서 중국과 인도도 이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인구는 각각 14억입니다. 즉, 선진 개발 국가의 개발만으로도 지구 환경이 엄청나게 파괴가 되었는데, 만약 중국, 인도, 그 외의 다른 국가들이 모두 이 길을 따라간다면 지금의 기후 위기는 기하급수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가 우리 모두를 공멸하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상황을 멈추지 못하고 더 빠른 속도로 공멸의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그 길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지방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호주나 캐나다 같은 외국으로 가기에 바쁩니다. 지방을 다녀보면 이미 노인들만 남아 있고, 청년들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공멸의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렇게 ‘물질적 생산지수’를 잘 사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1960년에 비해 물질 지수가 크게 늘었는데도 실제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삶의 방향이 지금 지구 전체 생명들에게 생존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이대로 계속 나아가야 할지, 멈춰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놓은 경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숲 속에 많은 동물들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동물들이 한 마리씩 어떤 한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토끼가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노루가 물었습니다.
‘너 어디 가니?’
토끼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정말이니?’
‘정말이야!’
그래서 노루도 달렸습니다. 옆에서 소가 노루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리 빨리 달려? 무슨 일이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있대!’
이렇게 해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숲 속의 모든 동물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숲이 끝나는 지점에 큰 낭떠러지가 있었습니다. 만약에 이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누구도 멈춰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숲 속 동물의 왕인 사자가 큰 소리로 ‘어흥!’ 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동물들이 다 놀라서 멈췄습니다. 그러자 사자가 물었습니다.
‘너 어디로 가니?’
‘몰라요.’
‘그런데 왜 그렇게 달리니?’
‘소가 달려서 저도 따라 달렸습니다.’
‘소는 왜 달렸니?’
‘노루가 달려서 저도 따라 달렸습니다.’
이렇게 계속 물어가다 보니, 첫 번째 달린 토끼 차례가 되었습니다.
‘토끼는 왜 달렸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리를 들어서 달렸습니다.’
‘어디서 그랬니?’
그래서 토끼를 데리고 그 장소를 가봤습니다. 그곳은 도토리나무 밑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도토리 한 알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토끼가 낮잠을 자다가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경전에서는 이 사자와 같은 존재를 부처님이라고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그 숲 속의 동물들을 어리석은 중생들에 비유했습니다. 중생들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줄곧 내달리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문명을 만들기 위해
어쩌면 지금 우리 인류가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너도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고 있는 모습도 경전 속 동물들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자가 큰 소리로 동물들을 멈춰 세우고 질주의 원인을 밝혀 위험에서 구했듯이 부처님께서는 이 길이 파멸의 길이라는 것을 깨우쳐서 우리에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탈의 길을 제시하신 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물질적 욕망을 따라 나아가는 것이 결코 진정한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고 이미 2600년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을 현대 사회에서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부탄의 4대 왕께서 제시하신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국민 총 행복지수 개념입니다. 20년 전에 ‘잘 산다는 기준을 물질적 지수로 정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행복지수로 평가해야 한다.’라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람들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가난하면 행복할 수 있나?’ 하면서 빈정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기후 위기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소비를 적게 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이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정부가 투자할 때 ‘이 투자로 얼마나 생산유발효과가 있느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미 뉴질랜드에서는 ‘이 투자를 하면 얼마나 국민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을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부탄에 왔을 때, 정작 이것을 실현해야 할 부탄 땅에서 오히려 물질 지수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이렇게 만나서 대화하고 싶었던 이유도 ‘개발 국가의 꽁무니를 무작정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기후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나갈 갈 것인가?’ 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개발 중심 관점에서 볼 때는 가장 개발이 안 된 국가를 저개발 국가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환경적 가치의 관점에서 볼 때는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야말로 가장 환경적 가치가 높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개발 국가의 꽁무니를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환경적 가치를 살려서 인류 사회에서 가장 앞서가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제가 부탄에 온 겁니다. 부탄 안에서도 가장 미개발 상태인 젬강으로 가서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가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어떤 모델을 마련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관심이 있다면,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부탄의 가치를 살리는 GNH(국민 총 행복지수) 개념을 우리 인류 사회에 정착시키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쓸데없는 짓이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기후 위기가 점점 더 심해지면 우리가 만든 모델이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학생은 북한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북한은 매우 가난하고 독재가 심한 나라인가요?
“북한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북한이 매우 가난한 나라이고, 김정은의 독재가 너무 심하다고 합니다.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네, 사실입니다. 북한은 1995년부터 2000년 사이에 많은 주민들이 기아로 굶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쪽으로 많은 난민들이 발생하였고, 그중 약 3만 5천 명이 현재 한국에 들어와서 정착하여 살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왔고 또한 중국에서 북한 난민들을 구호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난민들을 불법 입국자라고 해서 그들을 돕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합니다. 저희 자원활동가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구속되었다가 추방된 적도 있습니다.
북한은 현재에도 아직 식량 위기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옛날처럼 기아 상황이 심한 것은 아니지만, 한 달 전에 큰 홍수가 나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다시 식량 위기에 직면해 있지 않나 우려가 되고 있어요. 특히 남한과 북한 간의 군사적인 대립과 긴장이 점점 강해져서 남한에서는 북한을 지원하지 못하게 하고, 북한에서는 또 지원을 안 받겠다고 하고 있어서, 지금 우리로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질문의 내용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치 시스템에 대해 비판만 하기보다는 우리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차별 없이 구호하고 지원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또 다른 학생은 ‘오늘 말씀해 주신 내용에서 부탄이 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사자도 다른 동물을 따라갔으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벌써 강연을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총장실로 이동하여 총장님과 다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총장님은 스님이 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혹시 겔레푸 신도시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부탄 국왕이 겔레푸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도 지원을 해주고 계신가요?”
“아니요. 저는 신도시 개발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거기에 대해 지원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주로 환경적 가치를 보존하는 일과 극빈층 생활을 개선하는 일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할 때는 경제적 지원이 행복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지원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JTS가 부탄에서 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은 일반적인 구호 활동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빈곤율이 가장 높은 젬강주에서 마을 개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5년 동안 젬강과 트롱사의 전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하려고 합니다.”
이어서 스님이 지금 부탄에서 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목적과 방법, 지원 대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총장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갖고 계신 원칙과 관점이 너무 좋습니다. 혹시 젬강 지역에서 대학을 가고 싶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주고 계시나요?”
“대학은 본인이 노력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등학교를 못 간다고 하면 그런 경우에는 무조건 지원합니다. 지진 피해 지역이나 분쟁 지역이라 하더라도 초등학교가 없다고 하면 전 세계 어디든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음 약속 시간이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총장님은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강연해 준 스님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팀푸 대학교를 나왔습니다.
차를 타고 관광청 공무원들을 만나기 위해 타라야나 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재단 1층에 관광청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관광청 부책임자와 관광 인프라 개선을 주제로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부탄에는 현재 약 1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는데 앞으로 30만 명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많은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은 부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자원인 파로 탁상 사원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현재 부탄이 가진 관광 인프라를 가지고는 늘어나는 관광객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관광객을 늘리려고 하면 인프라를 먼저 개선해야 합니다.”
이어서 파로 탁상 사원을 예로 들며 관광 정책, 주차장, 공원, 성지 보전 등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0월 말에 환경 전문가, 국립공원 전문가, 정원 전문가, 설계사 등 한국에서 전문가들을 데려와서 답사한 후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이후 관련 부서와도 협력을 해나가기로 하고 미팅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재단 2층으로 올라가서 저녁 6시부터는 부탄 농업부 공무원들과 미팅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2박 3일 동안 트롱사와 젬강의 공무원들과 함께한 워크숍 내용을 공유해 주면서 부탄 정부의 농업 정책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젬강과 트롱사에서 지역 개발을 하다 보니 부탄 정부의 농업 정책이 어떻게 되는지 알 필요가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왜냐하면 JTS에서는 정부가 지원하지 않는 것을 주민들에게 지원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과수 묘목 지원 정책, 축산 지원 정책, 논밭의 용도 변경 정책 등 마을 주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부탄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고, 어떤 지원은 할 수 없는지 하나씩 물어보았습니다.
“부탄 정부는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하는데, 주민들한테 물어보면 지원을 안 해준다고 하거든요. 그럴 때는 당신에게 연락하면 확인을 해줄 수 있나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앞으로 문의할 것이 있을 때마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기로 하고 미팅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부탄 왕실의 부비서실장과 잠시 미팅하고,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타라야나 재단과 미팅을 했습니다.
타라야나 재단(Tarayana Foundation)은 시골 지역을 중심으로 빈곤 퇴치 사업을 진행하는 단체인데,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 건설, 식수 제공, 화장실 설치, 수공예품 수익 창출, 소액 대출 등 여러 가지 사업 중에서 주거 개선을 1순위로 하여 현재까지 2,600채가 넘는 집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일을 해왔다고 합니다.
재단 관계자들은 스님에게 주거 개선 사업의 진행 과정, 우선순위 결정 방법,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후 스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재단은 스님이 부탄에서 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 방식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스님과 협력하고 싶습니다. 정부의 무상 지원 정책은 사람들을 의존적으로 만드는 한계가 있었고, 특히 정부는 결정이 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스님의 철학에 동의하기 때문에 스님께서 언제든지 의향이 있으면 연락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스님은 타라야나 재단과 JTS는 관점도 비슷하고 하는 일도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며 JTS가 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JTS가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에서 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은 타라야나 재단에서 하는 활동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JTS와 타라야나 재단은 사업 방향이 비슷해서 앞으로 같이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적게 소비하면서도 행복한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런데 부탄에서 지금 JTS가 진행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는 이와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고 하는 환경적 관점입니다. 환경 위기가 점점 심해져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부탄에 가서 살면 되지 않을까?’ 하고 전 세계인들이 떠올릴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적게 소비하고도 최소한의 만족감을 가질 수 있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JTS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 수는 없습니다. 붓다는 그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써 진정으로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출가한 승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런 관점을 가질 때 지금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걸식하며 먹고, 버린 옷을 주워 입고, 나무 밑에서 잠을 잤습니다. 우리가 붓다처럼 살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의식주 문제는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남의 도움 없이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발된 국가의 사람이 여기 와서 한번 살아봤더니 ‘조금 불편하지만, 전기도 들어오고, 공기도 좋고, 물도 깨끗하고, 삶의 여유도 있어서 이렇게 살아도 되겠네!’ 하고 생각이 바뀌어야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문명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최소한의 생활 조건은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개발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의 생존을 위해서 최소한의 개발까지만 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요구에 대해서는 우리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욕망을 부추기지 않고 반드시 자립이 되도록 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후 위기라는 문제와 붓다 담마의 가르침이라는 문제, JTS는 이 두 가지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JTS는 단순히 한 개인의 집을 지어주는 게 아니라, 한 개의 주에서 전체 주민들의 주거 생활 조건을 개선하려고 합니다. 집이 없으면 집을 지어야 하고, 집 내부가 너무 열악하면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반 NGO 활동하고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수원지에서 물을 5km 끌어와야 하는 큰 프로젝트는 정부가 맡고, 동네 안에서 논마다 수로를 놓는 부문은 JTS가 마을 주민들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즉 정부가 하는 일을 좀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JTS도 처음 시도해 보는 일이기 때문에 진행하면서 계속 연구하고 바꾸고 보완해 나가고 있습니다. 내년 5월까지 시범 사업을 해보고 나서 제가 여러분에게 그 결과를 한 번 브리핑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집을 지어준다는 측면에서 사업이 비슷한데, JTS는 한 지역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추진한다는 점에서 조금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3년이든 5년이든 시범 사업을 먼저 해보고 이 방식이 굉장히 효과적이라고 하면 부탄의 전역에 확장할 계획입니다. 그 단계에 이르면 이 일은 이제 부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주민들은 정부가 나서서 모든 걸 해주기를 원합니다. 처음에는 JTS가 사업비를 정부에게 주고,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도록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하면 주민들이 수동적으로 되고 뭐든 정부에 의지할 것이기 때문에 제가 별도의 예산으로 잡아서 추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한테 이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정부가 아닌 라마의 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민들이 ‘라마가 도와주는 일이니까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속가능한 개발의 대상, 방법, 목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타라야나 재단 활동가는 스님이 애쓰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 성과가 나지 않으면 스님에게 많이 미안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스님, 부탄 정부는 뭘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왜냐하면 일이 너무 많고 현장에도 사람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부탄 국민들을 위해 정말 애쓰시는데,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성과가 없으면 미안하고 죄송할 것 같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정부하고 일이 잘되든 안 되든 사실은 크게 신경 안 씁니다. 왜냐하면, 월급 받고 일하는 공무원들이 그렇게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집 짓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
그러나 앞으로 부탄이 발전하려면 공무원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공무원들의 의식이 바뀔 수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부탄 안에서는 공무원들이 문제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나라의 공무원들과 비교해 보면 부탄 공무원들은 정말 괜찮은 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공무원들과 이런 방식으로 협력할 수가 없어요. 지난 2박 3일 동안 공무원들과 대화를 많이 해보니까 희망이 보였습니다.
우선 공무원들이 모두 불교 신자입니다. 전부 염불도 잘했어요. 그래서 제가 공금을 절약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예산은 부탄 국민이 낸 세금, 즉 정부의 돈이 아니고 라마의 돈이다. 라마의 돈은 곧 부처님의 돈이니 만약 여러분이 이 돈을 함부로 쓰면 큰 과보를 받는다. 부처님이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 아주 투명하게 잘 써야 한다.’
그랬더니 왜 돈을 절약해야 하는지 금방 알아들었어요. 이렇게 제가 승려이기 때문에 조금 더 유리한 면도 있습니다. (웃음)
제가 미국에서 만난 두 분의 교수가 타라야나 재단과 같이 협력해야 한다고 이미 제안을 한 바 있어서 저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집을 짓는 게 목적이 아니고 공무원들의 생각을 바꾸고,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지금 시점에서는 다른 NGO와 같이 사업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은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시범 사업을 해보고 나서 필요하면 타라야나 재단에 협조 요청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이후에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협력을 해나가기로 하고 미팅을 마쳤습니다.
타라야나 재단을 나와 한국 음식점인 산마루에 잠시 들렀습니다. 원래 함께 답사를 다녀온 중앙정부 공무원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예약을 했지만, 잇따른 회의로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간단히 죽과 샐러드로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9시가 다 되어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숙소는 통역을 해주고 있는 린체다와 님의 집입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본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으로 오전에는 팀푸에 있는 승가대학과 사찰을 방문하고, 점심에는 부탄 정부 내각 장관을 만나 논의를 하고, 오후에는 파로 공항을 출발하여 방콕 공항을 경유하고, 저녁에는 오세아니아 순회강연을 하기 위해 시드니행 비행기를 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