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된다.
내가 원해서 경험하는 일도 많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숱하다.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있으나 모르는 분야도 많다.
그래서 인생길이 늘 흥미진진하고 활력이 샘솟는다.
지난 주말에 '젠더 리빌' 이벤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엔 알지 못했던 일이었다.
단어 자체는 쉬운 낱말이라 개념을 잡을 수는 있었다.
젠더(gender)는 '성'이나 '성별'을 뜻했다.
'생물학적인 성'이 아니라 주로 '사회적인 성'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리빌(reveal)은 드러내다(드러냄), 밝히다(밝힘), 폭로하다(폭로)의 뜻이었다.
그런데 '젠더 리빌'이라고 하니 개념은 알겠으나 어떤 행사, 어떤 이벤트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무척 궁금했다.
살다 보면 '신세대'에겐 익숙한 것이 '기성세대'에겐 생소한 일들이 많았다.
청년들을 통해 다양한 문화, 다채로운 이벤트를 접할 수 있어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의 '젠더 리빌' 이벤트도 좋긴 했지만 여전히 낯선 행사였다.
결혼한 여성이 임신을 하여 대략 4개월 정도가 지나면 '여아'인지 '남아'인지 태아의 성별을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담당의사'가 알려준단다.
우리가 신혼일 땐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엔 어떤 의식이나 절차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요즘은 태아의 성별 구분이 끝나면 태아를 축복하고, 젊은 부부에게 축하의 박수를 건네주며 가족 전체적으로 새 생명의 잉태에 대한 감사와 찬미를 고양하는 작은 행사를 연다고 했다.
그게 바로 '젠더 리빌' 이벤트라고 했다.
요즘 신혼부부가 다 하는 건 아니지만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라고 했다.
지난 주말에 1박 2일간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명절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딸 부부와 아들 부부도 함께 갔다.
이 자리에서 예의 그 '젠더 리빌' 이벤트를 진행했다.
축하 글귀를 벽에 부착하고, 행사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엔 풍선과 뾰족한 핀이 있었다.
그 핀을 뽑아 할머니께 드렸다.
"하나 둘 셋."
할머니가 핀으로 풍선을 터트리자 그 안에 있던 핑크빛 둥근 색종이들이 힘차게 분출했다.
태아가 '여아'임을 상징했다.
'남아'는 파란색이라고 했다.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거창한 이벤트는 아니었지만 귀엽고 즐겁고 의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온 가족이 하나가 되어 젊은 부부와 5개월 차에 접어든 태아를 축복해 주었던 그 느낌, 그 공감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가족이 무엇이며 어찌하여 우리가 가족인지를 다시 한번 절감했던 자리였다.
사랑과 감사가 넘쳤다.
귀한 시간이었다.
작은 이벤트였지만 왜 이런 이벤트가 필요한지를 확실하게 체감했다.
도구나 틀이 컨텐츠를 규정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콘텐츠가 가족이란 틀과 울타리를 더욱 공고하게 결속할 수도 있음을 보았다.
일곱 명 모두의 입이 귀에 걸렸던 멋진 시간이었다.
특히 고향에 계신 아흔네 살 할머니 앞에서 축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증손녀'의 잉태와 성장에 할머니도 내내 기뻐하셨고 감사해하셨다.
임신한 서른네 살 손녀의 등을 계속 쓰다듬어 주셨다.
곁에서 지켜보던 우리도 못내 흐뭇했고 뭉클했다.
긴 인생길을 가다 보면 '생로병사'와 '길흉화복'을 겪는다.
비켜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또한 그게 삶이다.
다만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따뜻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긴밀한 소통과 공감이 존재한다면 그 어떤 아픔이나 파도일지라도
능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가슴이 따듯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고 그 중심에 가족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은 아픔이나 슬픔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절망의 깊이' 때문에 죽는다.
청년이나 중년이나 노인이나 사랑, 배려, 공감이 밥보다 더 필요한 이유도 인간은 정과 신뢰를 공유하는 이성과 감성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1년 365일, 입력된 프로그램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뢰가 흐르고, 정이 깊이며 하나 된 마음으로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운명공동체'가 바로 '가족'이 아니던가.
행사를 마치고 비가 갠 금강 둑방길을 홀로 걸었다.
'게리 채프먼'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그는 심리학자이자 상담 전문가였다.
자신의 경험에서 체득한 지혜와 교훈을 책으로 냈다.
그의 교훈과 콘텐츠에 따르면 사람마다 5가지 유형의 '사랑의 메시지'가 있다고 했다.
인정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이렇게 5가지였다.
사람마다 사랑을 느끼는 지점은 저마다 달랐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었다.
사랑을 표현할 때, 자기 언어로 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언어, 사랑의 메시지로 표현해야만 효용이 있었다.
그의 연구 결과는 바로 이것이 핵심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현재 46% 정도라고 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분노지수'가 너무 높다는 얘기도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가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등한시했거나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학 가고 취직하고 승진하고자 애쓰는 것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학습하고 노력했더라면 결과는 현저하게 달라졌을 터였다.
그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애도 기술이며 센스다.
결혼생활도 끝없는 노력이자 배려다.
'역지사지'의 자세와 태도에 달렸다.
긴 시간을 함께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공감할 것이다.
상대방이 느끼는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그 표현방식과 소통 스타일을 나와 당신은 잘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다면 큰 문제다.
설령 알고 있어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지를 진지하게 돌이켜 봐야 한다.
그 학습센터, 그 반복교육의 운동장이 바로 가정이었다.
그리고 가족임을 믿는다.
어떤 행사나 이벤트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소통, 공감, 배려, 감사가 핵심이겠지.
더 사랑하고 더 감사하며 살자.
어느새 2025년도 3분기 마지막 날이다.
잘 마무리하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4분기를 더욱 힘차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온누리에 평안과 은총이 가득하기를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