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점심 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우사인 볼트가 되어 급식실을 향해 달려갔다. 앞을 가로 막았다간 가차없이 밟힐 것만 같은 엄청난 무게를 싫고 달린 그들이 급식실로 들어갔다. 교실에 앉아서 춥다며 나가기 싫다는 연희를 끌고 결국 급식실로 온 일우는 길에 늘어선 줄에 섰다.
" 춥다고 점심을 굶냐? "
" 너 친구들 다 결석이야? "
" 아닌데, 왜? "
" 그럼 걔네들이랑 먹어. 난 갈래. "
연희가 가려고 하자 일우는 다시 있던 자리에 돌려놓았다.
" 네가 안 먹는데 이 오빠가 밥이 넘어가냐? "
" 오빠는 얼어죽을. "
" 조용히 하시고 만찬을 즐겨 봅시다. "
언제나처럼 연희는 짜증난 표정을 짓다가 뒤에 서 있던 인파에 밀려서 식판을 들고 밥을 받았다. 일우와 비어있던 자리에 앉아서 따듯한 김이 나는 미역국에 수저를 넣어서 휘휘저으며 식히고 있을 때 무언가 남성음이 아닌 여성음이 소란스러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지훈이 식판을 들고 여학생들과 밥을 타고 있었다.
" 누구야? "
" 미술. "
" 새로왔어? "
" 응. "
" 너희 반 수업에 들어왔었어? "
" 일우야. "
" 어? "
" 나 밥 먹을래. "
" 아,으응. 먹자. "
" ……. "
연희는 고개를 숙이며 국 그릇에 담긴 수저가 휘저어놓은 미역국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보았다.
" 3학년 4반 28번. "
그의 갑작스런 말에 연희는 그 지목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지훈이 식판을 들고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 맛있게 먹어. "
" 네, 맛있게 드세요. "
지훈이 다시 학생들 속으로 사라지고, 밥을 떠먹고 있던 일우가 다시 물어왔다.
" 오늘 처음왔어? "
" 응. "
" 근데 네 반이랑 번호를 외웠어? "
그 말에 연희가 일우와 눈을 마주쳤다.
" 우리 반이 첫 수업이었어. 한 반에 50명도 못 외우냐. "
" …그런가. "
" 밥이나 드셔.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희는 식판에 받아온 반찬과 밥의 양이 적어들 때까지 일우가 했던 말과 지훈이 했던 말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짜증나도록 윙윙거리며 신경을 거스르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의 반과 번호를 외우고 있는걸까, 그런데 왜 이름은 부르지 않은걸까, 많은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
모든 수업이 끝이나고, 야자를 위해 마련된 쉬는 시간에 연희는 집에 가기 위해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손에 꼈다. 선생님께 야자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자 선생님은 여러마디 하지 않으시고 그럼 그렇게하라고 하셨다. 사실 연희는 스스로 공부를 해서 전교에서 상위권 수준의 성적을 유지 하고 있었기에 선생님이 다른 터치를 하지 않으셨다. 몇몇 친구들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선생님의 단호함에 이제 더는 묻지 않았다.
" 넌 야자해. "
" 겨울은 빨리 어두워져. 기다려. "
" 너 이러면 아줌마가 나랑 너랑 친구하는거 싫어하셔. "
" 우리 엄마가 왜. "
" 네가 나 때문에 툭하면 야자 빠지고, 수업 빠지고 네 담임은 아줌마한테 말하고, 근데 네가 그러는 이유는 다 나고. "
" 너 책 그만 읽어. 얘가 점점 논리적으로 변하네. "
" 교실로 들어가. 야자 해. "
" 너 데려다 주고 와서 해도 몇 시간은 해. "
" 정 일우. "
" 알겠어. 알겠다고. "
" 그럼 내일 봐. "
" 조심히 들어가. 택시 타고 갈래? "
" 네가 이렇게 잡아둔 덕분에 해가 지려고 한다. "
" 알겠어. 얼른 가. "
" 응. "
" 조심히 가고, 문자 할게. "
연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돌아서서 조용해진 복도를 걸었다. 학생들이 야자를 시작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준 덕분에 연희는 조용한 복도를 따라서 걸을 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도서실에 들러서 책을 읽다가 갔을텐데 오늘은 어쩐지 그것도 귀찮게 느껴졌다. 문이 점점 가까워 질수록 바깥 공기가 들어와서 차가운 한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장갑을 낀 손을 꺼내어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을 때, 문이 열렸다.
" 불량학생이였네. "
" ……. "
뒤로 몸을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지훈이었다.
" 지금 땡땡이 치는거야? 고3이? "
" ……. "
" 선생님한테 걸려서 당황한거야? 아님 선생님 말 씹는거야? "
지훈이 연희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살짝 숙였다. 연희는 그런 그를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 원래 야자 안해요. "
" 의무적으로 다들 하던데? "
" 전 안해요. "
" 대단하네. 선생님들이 예뻐하나봐? "
" 저, 선생님. "
" 응? "
연희가 뱉은 말에 지훈은 엘리베이터에서 처럼 또다시 당황하다가 웃어버리고 말았다.
" 그만 가봐도 될까요? "
자신의 말에 웃는 저 얼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째서 저렇게 쉬지 않고 하루 종일 웃어대는 건지-
" 너랑 나랑 이제 아는 사이니까. "
" ? "
" 앞으론 말 건다고 인상 찌푸리지마. "
" ……. "
" 겨울이라 해 빨리진다. 조심해서 들어가. "
" ……. "
지훈은 연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더니 그대로 돌아서서 연희가 걸어온 복도의 길을 따라서 돌아갔다. 멍하니 서서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있었다. 일우가 장난스럽게 쓰다듬어 줄 때와는 다른 느낌,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하여간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저 선생님, 정말 마음에 안 든다.
##
야자를 끝내고, 정리하고 뭐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지훈은 많이 피곤했는지 터벅터벅 걸어와 현관문 앞에 섰다.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누르자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들어가려다 멈춰서서 808호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냥 들어가면 될 것인데 기어이 시선이 한 번 머무르고 갔다.
안으로 들어와서 거실에 불을 켜고 쇼파에 힘없이 앉았다. 고개를 저치며 천장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용수철처럼 튀어올라와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벗고, 니트와 셔츠를 잡아 팔꿈치까지 끌어올렸다. 내일도 아침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려면 샤워를 하고 잠에 들어야했다.
##
늦은 시간인데 아직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한 연희는 침대 끝부분에 두 팔로 무릎을 껴안은 채로 앉아있었다. 그러다 문득 옆집에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집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지금 옆집에 있는 사람이 모르는 이웃도 아닌 자신의 선생님이란 사실이 어쩐지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행여나 자신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까,
" …짜증나네. "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올려 두었던 MP3를 집어서 이어폰을 자신의 양쪽 귀에 꽂았다. 그리고 그대로 한쪽에 누운채로 두 눈을 감았다.이렇게 잔다고해도, 저녁을 굶고있다고 누구하나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 서글픈 현실에 연희는 아직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는 것이 상처라지만 부모님을 잃은 상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소멸되지 않을 것 같았다.
##
다음 날.
어제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연희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송해진 머리를 빗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쪽 벽에 걸어둔 교복을 입었다. 다시 거실로 나와서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꺼내서 한 컵을 따라서 마셨다.
언제나 아침을 거르던 버릇이 있었던 연희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우유 한 컵씩 챙겨서 주곤했다.
" 준비 끝. "
우유를 먹은 유리잔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도 없어 연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안방을 쳐다보았다. 익숙해지고 싶었지만 여전히 홀로 시작하는 아침은 쓸쓸하고 적응이 되질 않았다.
" 학교나 가자…. "
혼잣말을 하며 쇼파에 꺼내 두었던 코트를 입고, 어제처럼 무장을 하고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자 놀이터 쪽에 낯익은 사람이 서서 연희에게 손을 흔들고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손만 흔들고 있던 일우가 빠른 걸음으로 연희에게 달려왔다. 얼마나 기다리고 서 있었길래 코끝이 빨갛게 변해서는 볼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자주하는 짓이 아니니 그렇게 인상 쓰지마. "
" 겉멋만 잔뜩 들어선. "
" 19살에 겉멋 안들면 뭐드냐. "
" 따듯하게 입고 다녀. "
연희는 말을 마치고 앞장서서 먼저 걸어갔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말에 일우는 베시시 웃으며 앞서가는 연희를 쳐다보며 흐뭇해하다가 이내 옆으로 달려가 함께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만원이 된 버스에 타서 학교 앞 정류장에 내렸다. 일우는 옆에서 계속 떠들어댔고 연희는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있다가 가끔 한 번씩 대꾸를 해주었다. 그래도 일우는 멈추지 않고 떠들어댔다.
" 운동장이 꽁꽁 얼어서 축구를 강당에서 해야해. "
" 네 어릴적 꿈이 축구선수니까 얼음 바닥에서도 해봐. "
" 넌 나에 대한 정보를 까먹질 않는구나? "
일우가 앞에 서서 뒷걸음으로 걸으며 연희에게 말하자,
" 응, 네가 캠프가서 내 이불에 오줌을 싼 일도 기억해. "
" 야! 내,내,내가 언제! "
" 노란색 내 이불에 네가 지도 그렸잖아. "
연희의 발언에 일우는 홍당무가 되어서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강한 부정을 했다. 그런 반응에 연희는 재밌었는지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조금 더 자세히 말했고, 그럴 수록 일우는 말을 줄여가며 눈을 깜빡였다.
" 아직 많아. 내 기억에는. "
" 날씨가 참 좋다. 그치? "
" 추워죽겠는데 무슨. "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을 지훈이 차를 몰고 가다가 창문을 살짝 내려서 쳐다보며 지나갔다. 겨울이 점점 더 힘을 받아서 추위를 몰고 다니며, 모든 것을 꽁꽁 얼려버리고 생명을 앗아가고 있었다. 이것은 겨우 초겨울에 불과했다.
##
연희는 자리에 앉아서 조회를 하기 위해 들어온 담임을 쳐다보고 있었다. 담임은 출석 체크를 하며 인원 체크를 하며, 지각한 학생은 복도에 세워두고 있었다. 인원 체크를 마치고, 담임이 출석부를 교탁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 어제 미술 선생님은 봤나? "
" 네!!! "
" 이것들 이제 공부는 뒷전이겠네. "
" 선생님! 미술실 청소 담당 비어있지 않아요? "
" 눈치봐라, 안그래도 오늘 우리 반에서 담당 뽑으려던 참이었다. "
라는 말에 모든 학생들이 손을 번쩍 쳐들며 수업시간엔 찾아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적극성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 너네 이렇게 굴까봐 미리 정해왔어. "
두 눈을 반짝이며 모두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대하고 고대하고 있던 찰라에,
" 연희야. "
" 네? "
" 네가 오늘부터 미술실 청소해. "
" 제,제가요? "
" 응, 그렇게 크지도 않고 수업도 자주 없어서 혼자 하기에 어려움 없을거야. "
" 아,네……. "
" 자, 조회 이만. "
담임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발언을 한 후, 반장의 구령에 맞춰 학생들이 인사를 하자 소리없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삼삼오오 모두들 뭉쳐서는 연희는 흘깃거리며 째려보고 연희에게 들릴 정도의 크기로 대놓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도 공부도 무엇하나 빠지지 않아 언제나 담임이 예뻐했기에 반 친구들에게 시샘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런 시선이, 말소리가 연희에게 신경쓰일리 만무했다.
" 짜증나. 왜 하필 쟤야? "
" 담임은 언제나 이연희 제가 우선이잖아. "
" 아, 생각하기도 싫다. 나가자. "
" 그래. "
자기들끼리의 대화가 끝나자 매점을 가는지 어딜 가는지 교실을 벗어났다. 어제 저녁부터 생각했지만 어쩐지 자신의 마지막 학창시절이 지훈으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릴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없는듯 지내려고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 계획은 초장부터 엎질러지고 말았다.
##
아침 조회를 마치고 출석부를 들고 교무실로 들어온 연희의 담임은 출석부를 꽂아놓는 자리에 꼿고,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던 지훈을 향해 말을 걸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다. 볼펜을 들고 글을 긁적이고 있던 지훈이 자신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고개를 들었다.
" 미술실 청소 담당 정해졌어요. "
" 아,그래요? 누구에요? "
" 연희에요. "
익숙한 이름에 지훈은 저도 모르게 당황했다가 기묘한 인연에 웃어버리고 말았다.
" 모든지 똑부러지게 하는 아이니까 잘할거에요. "
" 네. "
" 그럼 수고하세요. "
" 네, 수고하세요. "
자리에서 일어나 대화를 나누던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은 지훈이 한손으로 입술을 만지며 연희 특유의 표정을 생각하다가 다시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 미술실 청소라……. "
##
4교시에 체육이 있었던 연희네 반은 강당에서 체육 수업을 마치고, 모두들 점심을 먹으러 뛰어나갔지만 연희는 체육복을 입은 채로 강당 한켠에 앉아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러웠던 곳이 어느새 작은 움직임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조금있으면 일우가 연희를 찾아 반에 찾아오겠지만 귀찮은 마음에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마에 맺혀있던 땀이 어느새 식어가고 있었다.
아침 조회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했던 말들이 계속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미술실을 청소하라는 그 말이 왜이렇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생각이 나니 어쩔 수 없이 지훈 생각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 휴……. "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가지고 나왔던 수건을 손에 들고 수돗가로 향했다. 수도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차갑게 얼어버린 수도꼭지를 돌려보았다. 의외로 얼지 않고 잘 버텨주고 있었다. 세수를 하기 위해 두 손에 물을 받는데 그 차가움에 저절로 움찔할 지경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받은 물로 세수를 했다. 얼굴이 어는 것 처럼 얼얼한 기분이 들었지만 연희는 그 기분이 썩 괜찮았는지 몇 번이고 세수를 이어갔다. 눈을 조금 뜨고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잠그고 수건을 올려 두었던 곳에 손을 올려 더듬거리며 수건을 찾았다.
" ……. "
바닥에 있어야하는데 허공에서 손에 무언가가 쥐어지고 말았다. 낯선 사람의 향기도 함께 나자 놀란 연희가 허리를 펴고 자신이 잡은 것과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언제부터, 어째서 이곳에 있는걸까. 이 선생님은-
" 물 떨어진다. 닦아. "
지훈의 손수건인듯 보이는 보라색 천을 쳐다보던 연희는 그것을 자신의 수건이 있던 곳에 내려 놓으며, 자신의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 고집만 세가지고. "
" ……. "
" 이 겨울에 무슨 세수를 밖에서 해? "
" 그냥요. "
" 감기 걸려서 양호실에 누워있으려고 그러지? "
그 말에 연희가 차갑게 굳어버린 얼굴로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선생님과 제자 사이라고 보기엔 무언가 전세가 역전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 두사람.
" 점심 시간인데 밥은 안먹니? "
" 네. "
" 같이 먹을 친구 없어? "
" 저, 선생님. "
" 응. 왜 같이 먹어줄까? "
" 추워서 그런데 먼저 들어가봐도 될까요? "
" 응? 그래, 감기 들겠다. "
" 네. 그럼- "
연희가 수건을 들고 지훈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 미술실에서 보자. "
그 말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연희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지훈이 다른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던 연희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세수하며 젖은 머리 카락이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지훈을 쳐다보았다.
##
점심도 거르고, 일우의 문자도 받지 않은 채 수업에 들고 있던 연희는 계속 오는 문자에 전원을 꺼버렸다. 샤프로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필기하다가 너무 힘을 준 탓인지 심이 부러지고 말았다. 부러지고 나면 그 면적 때문에 글씨가 삐뚫어지기에 연희는 그것을 싫어했다.
그러다 필기를 포기하고 선생님의 수업 내용에만 귀를 기울였다. 5교시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일우는 기다렸다는듯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무언가를 잔뜩 들고선.
" 내가 애도 아니고, 학교 안에서 무슨 일 날것도 아닌데 무슨 문자를 그렇게 보내. "
" 밥도 안먹고 말할 기운은 있냐? "
" 두끼 안 먹으면 송장되겠다. "
" 헤헤, 너 주려고 사둔거야. "
일우는 빵과 우유를 꺼내어 연희의 앞에 내밀었다. 투명한 봉지에 소보로 빵과 흰 우유가 책상에 올려졌다.
" 자, 얼른 먹어. "
" 넌 나한테 이러는게 귀찮지도 않아? "
" 넌 중학교 3학년 내내 미친놈처럼 말썽만 부리던 놈 뒤 따라다니면서 훈계할 때 귀찮았냐? "
" ……. "
" 나도 똑같아. 너한테 해주는거 귀찮다고 생각해본적 없어. "
남이 듣는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아껴주는 연인이라고 보겠지만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일 뿐이었다. 말을 마친 일우가 우유를 따서 연희의 손에 들려주고 빵 봉지를 뜯어서 연희의 입에 물려주었다. 앞에서 헤벌쭉 웃어대는 일우는 보던 연희는 빵을 한 입 베어물고 오물거렸다.
" 참, 너 미술실 청소라며? "
" 정보도 빠르지. "
" 헤헤, 너 혼자 하기에는 버겁지 않겠어? 내가 도와줄까? "
" 자주 쓰지도 않는 곳인데. 뭐 "
" 새로온 미술쌤 인기가 장난이 아니던데? "
" 왜? "
" 맨날 줄줄이 여학생들 달고 다니던데? 말은 또 얼마나 상냥한지. "
" …뭐, 그러든 말든. "
" 내가 너무 말 시켰다. 빵이랑 우유 먹어. "
" 끄덕끄덕. "
입에 빵을 넣고 씹던 연희는 목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지만 무슨 고집인지 우유를 눈 앞에 두고도 먹지 않았다. 목 안에 수분이 모두 없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끝끝내 우유 한 모금 먹지 않았다.
##
모든 수업이 끝나고, 연희는 미술실 청소를 가야했지만 잊어버린 탓에 바로 도서실로 와버렸다. 야자를 하는 시간이고, 학생들이 붐비는 곳이 아닌 1층에 있는 도서실은 연희가 매일같이 와서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거의 옛날 서적이나 수필집이 많아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곳이었다.
자신이 매일 앉는 자리에 가방을 내려 놓으며 손에 들고 있던 목도리와 장갑도 함께 내려 놓았다. 가방에서 읽던 중이던 책을 꺼내고, 노래가 흐르는 이어폰을 두 귀에 꽂았다.
" 재수없어. 아무한테나…짜증나…. "
책을 읽다가 홀로 중얼거리던 연희가 다시 입을 다물고 책과 음악에 집중을 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가득한 도서실은 연희가 앉아있는 자리에만 불이 들어와있는 조용하고 나른한 곳이었다.
##
야자 감독을 하다가 퇴근을 할 시간에 교무실로 들어와 짐을 챙기고 가방을 어께에 메며 남아있는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온 지훈은 아직 이 학교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아직은 조금 헤매고 있었다. 복도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와서 두리번거리다가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현관을 찾았다. 그러다가 깜깜한 복도에서 불이켜진 복도를 발견하고 멈춰섰다.
" 도서실? "
관심을 갖고 그쪽으로 가보려던 찰라에 켜져있던 불이 꺼졌다. 그리고 조금있자 닫혀있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밖으로 나오는 학생을 발견했다. 그냥 가려던 지훈은 그 학생이 연희라는 사실에 멈춰서서 자신에게 가까워져 올 때까지 기다렸다.
" ……. "
" 야자 안 한다며. "
" ……. "
연희는 말없이 귀에 있던 이어폰을 빼냈다.
" 오늘 안 왔더라? "
" 네? "
" 미술실 청소. 너 담임한테 이른다? "
" 아,맞다. "
" 내일 수업있으니까 아침에 와서 청소해놔. "
" …네. "
말을 마친 지훈이 장난을 풀고,
" 시간이 늦었는데 혼자 있었어? "
" 네. "
" 학생들은 다 집에 갔을텐데, 꽤 늦게까지 있네. "
" ……. "
" 이렇게 늦게 다니면 집에서 부모님이 걱정하셔. 일찍일찍 다녀야지. "
지훈이 말을 마치고 웃으려는데 자신의 말을 듣고있던 연희의 눈이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고 당황해서 웃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보다 더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연희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다가,
" 선생님. "
" 으응? "
" 죄송한대요. "
" 응? "
" 저한테 관심좀 꺼주세요. "
" …뭐,뭐? "
" 먼저 가보겠습니다. "
말을 마친 연희는 인사를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사라졌다. 당황스러움에 굳어있다가 돌아보니 연희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자신이 한 말이 그렇게 화를 낼 정도였나 라는 생각과 함께 선생님한테 너무 막말하는 연희에게 화도 조금 나고있었다.
현관을 빠져나온 연희는 흐르려고 맺혀드는 눈물을 빠르게 닦아냈다. 다른 학생들에겐 그저 걱정과 평범한 말이 될 수 있었지만 연희에게만은 그 말조차도 큰 상처가 될 수 있었다. 이 시간에 들어가도 아니 외박을 해도 집에선 누구하나 걱정하는 말이나 전화를 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평소보다도 더 빠른 속도 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울고 집으로 들어가도 누구하나 왜 그러냐고 물어줄 사람도 없었다. 서러운 현실이었다.
* * *
안녕하세요 ^^
첫화를 올리고 여러분들의 뜨거운 반응에 기분이 좋아서 비축분을 열심히
쌓느라고 2화를 가져오는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이해해주실거죠?~
요즘 가을이 오려나, 여름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느라 날씨가 엄청 덥네요.
모두들 가을 맞이하실 준비 잘 하시구요 이번편두 재밋게 읽어주세요.
[인물정보]
선생님 : 이 지훈(28살)
학 생 : 이 연희(19살)
정 일우(19살)
계절 : 겨울
학교 : 성일 고등학교
지난번 편에 쪽지 남겨주신분들 첫화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셔서 감동받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앞으로 보내주신 성원과 사랑에 힘입어 더 열심히 성실 연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끝까지 완결까지 같이해주세요.
^-----------------^*
업뎃쪽지 = 겨울이다
첫댓글 재밌네요 잘봤습니다
겨울이다 재미있게봤어요! 다음편 기다리고있을게요
겨울이다. 이제 2편이군요.... 뭔가 엄청나게 많이 읽은 느낌???ㅋㅋ 얼른얼른 빠른 전개가 되었으면~~~ 관게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요~
겨울이다 잼께봤어요~~~일우 가 연희를~~~ 짝사랑은힘든거같아요..ㅠㅠ
겨울이다/ 재밋어여!!ㅠㅠ 근데 연희가엄청시크하네요ㅋㅋㅋㅋ 기대되네여!!ㅋㅋ
겨울이다. 재미잇어여~~ㅋㅋ연희ㅠㅠ
겨울이다
담편도 기대할게용
겨울이다/ 윽.... 슬프네요ㅠㅠㅠ 9살차이네요.. 흠
연희가 나중에 지훈이를 마음에 들어할때도 선생님 , 제자 라는 틀때문에 힘들어 할것..같은데요..?ㅠㅠ
옆집이라 자주 부딪히고 만나서 얼음공주연희를 다시 따뜻한연희로 바꾸어줄수있을까요..?
나.형.사를 되게 재미잇게 보아서 이것도 재미잇을까? 하면서 봣는데 되게 재미잇네요! 추천하구갈께요!
겨울이다/ 지훈...
아.,아쉽네요,, 가여운 연희..ㅠㅠ
겨울이다. 지훈이는 정말 친절하구 일우도 마찬가지구 아마 연희는 부모님 잃은 후에 정말 차가워 졌을거같네요!ㅠㅠ 지훈이는 지훈이대로 걱정해준건데 연희한텐 상처가 되구ㅠ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예상..과는..달리.......연희는 모범생이었나봐요;; 아닐줄알았는데..ㅋㅋㅋ; 앞으로 기대하구 추천할게요!ㅎ
이름들이다 실존하고있는연예인들의이름이어서그런가.. 왠지그인물들을상상하면서읽게되는것같아요ㅎ 지훈이이중인격일꺼라고생각했는데 아닌가봐요ㅋ 재밌어요
겨울이다//아~좋아요~!!담편도기다릴께요~!!ㅋㅋㅋㅋ
겨울이다/ 재밌어요.
겨울이다 일우 완전 호감형이에요><ㅋㅋ
겨울이다
겨울이다
기대기대해요^^
연희가 짠하네요.
여자애 너무 불쌍해요ㅠㅠ예전엔 성격밝았을것같은데ㅠㅠ 빨랑 밝은 성격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물론 러브라인고 빨리!ㅋㅋㅋㅋㅋ
겨울이다 다음편기대되요~~~~~~
겨울이다 일우가 마음 고생을 많이 할꺼 같네요...
음 연희가 지훈이랑 될거같은데 일우.....어떻게요 ㅠㅠ 일우한테도 ! 이쁜 여자애 한명만요 !
연희한테 그런사정이.. 일우도, 지훈이도 둘다 고생을하는건가요.. 다음편기대되요!
긴거좋아
겨울이다...일우가 연희를 지킬려고 꽤나 고생을 하네요...과연...지훈이랑 연희랑 아무 탈 없이 선생님과 제자 그 이상이 될수 있을요???한편으론 일우가 좀 불쌍하네요..
겨울이다/ 아 역시 몰입 10000% 애달퍼님의 글솜씨는 죽지않앗어여^.^!!! 짱짱 ! 굿!ㅎㅎ
지훈아 네가 연희 울렸으니까 위로도 네가 해 줘야해!! 잘봣어여~
겨울이다!!!더운여름에왠지시원해지는느낌이에용ㅋㅋㅋ잘읽구가요
겨울이다 오홍오홍 좋아요 좋아!ㅋㅋㅋ
겨울이다~
연희가 불쌍해요ㅠㅠ
겨울이다// 연희를상상하니까 수지가상상되네욤ㅋㅋ이번편도 잘보구가욤^^
너무 재밌는데 연재가 늦어영
연희너무차가움ㅋㅋㅜㅜ역시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