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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야호♬ (lil_ili@hanmail.net)
친정 ★ 야호스토리(http://cafe.daum.net/yahofan)
연합 ★ 씨에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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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펌하지 마십시요ㅡ_ㅡ 야호스토리와서 직접 읽으시면 되지않습니까ㅡ_ㅡ
<특별한 손님>
10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왜 나를 알아봐가지고 나에게 시련을 주는거냐는 원망을 담아 이한소를 올려다봤지만 이한소는
내 눈빛에서 어떤 원망의 빛도 읽어내지 못한 듯 서글서글한 눈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웃는 얼굴이 침 못뱉는다는 옛말이 있다지만 그건 다 뻥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침 백번도 넘게 뱉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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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러 온 거에요? 아니면 이제 가는 길이에요?"
"방금 도착했어요. 하하, 이한소씨는요? 식사 안하세요? 아니면 하신 건가?"
"저도 방금 전에 왔어요. 누나랑 피디님이랑 같이 왔는데...아, 그러고보니까 오늘 우리 누나 만났다면서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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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님 계속 여기서 이러고 계실거냐, 이제 그만 너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울부짖음을 완곡하게 돌려 말한 것인데 이한소는
또! 이번에도! 여전히! 내가 내뱉은 말의 속 뜻을 못알아차렸는지 엉뚱한 소리만 해댔다.
난 당신 누나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만나? 오늘 내가 당신 누나를 언제 만났어? 라고 정말 따지고 싶었다.
나한테 허튼 소리나 해대며 날 이렇게 붙잡지 말고 놓아달라고, 나의 방광이 울부짖고 있다고 그의 멱살을 잡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실낱처럼 남아있는 이성의 끈을 가까스로 붙잡고 애써 웃는 얼굴로 이한소에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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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누나가 그러던데, 진군 만났다고. 이름이 '진'이라면서요? 난 그것도 오늘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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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한소 누나를 언제 만났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한소 누나를 만난 기억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1분만 더 미적거리면 정말 방광이 '이젠 안되겠어!!!! 나의 패배다!!!'를 외치며 힘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모습이라든가, 여자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들키지 않은건 정말 다행이지만 어쨌거나 이런
상황은 나에게 유쾌하지 않다. 죽겠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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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제가 지금 진짜 화장실이..."
"여기 화장실 진짜 깨끗한 건 알아줘야해. 어머, 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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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방광에 줬던 힘을 나도 모르게 풀어버릴 뻔 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낭랑한 목소리가 귀에 정확하게 박혀
왔다. 깜짝 놀라 뒤를 휙 돌아보자 무려 오늘 만났던 이현정이 웃으면서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현정 누나..."
"밥 먹으러 왔구나? 나도 밥 먹으러 왔는데. 피디님도 같이 오셨는데 괜찮으면 같이 먹을래? 넌 누구랑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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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물어오는 이현정의 질문공세에 어버버거리면서 고개를 휙 돌리자 나와 시선이 마주친 이한소가 웃으면서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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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우리 누나. 이현정, 이한소. 우리 남매야."
"어머 몰랐어? 나랑 한소 이렇게 닮았는데? 봐, 완전 똑 닮았지?"
긴가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마, 하고 말을 흐리자 이한소가 꽤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머금은 채 자신과 이현정을
가리켰다. 내가 자신들이 남매였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걸 눈치챈 이현정은 박장대소 하더니 동생의 곁으로 다가가서
나란히 섰다. 그제야 두 사람의 웃는 얼굴이 속일래야 속일 수 없을만큼 닮았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와, 진짜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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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이 오싹하다. 만약 이한소를 만나지 않아서 그대로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으면 이현정과 화장실 안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다는 건데...그랬다간 연기 시작도 하기 전에 머리 끄댕이 붙잡혀서 쫓겨날뻔 했다. 엄마도 영영 못만나고.
"누나 말대로 같이 식사하면 좋겠는데, 누구랑 왔어?"
"이모랑 왔어요. 그러니까 제작 이사님이라고 해야하나? 먼저 음식 시킨다고 하셨는데."
내가 내뱉은 말에 이현정은 두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지더니 의아한 듯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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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제작이사님 조카야?"
"네."
"그래? 내가 뭘 잘못 알고 있었나? 아무튼 그렇구나! 어디 계셔? 제작 이사님 같은 여자가 봐도 정말 멋있어. 나도 그렇게
나이 먹는게 소원이야. 제작 이사님 보러 가야겠다!"
내가 무어라 대꾸할 시간도 주지않고 이현정은 혼자 빠르게 말을 내뱉더니 이내 이모가 있는 곳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이모가 얼마나 좋으면 여배우가 저렇게 뛰어갈까? 정신없이 뛰어가는 이현정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이한소에게로 시선을 옮긴 순간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거렸다. 언제부터 날 쳐다보고 있었는지 이한소의 시선이
내게로 향해있던 탓에 그와 갑작스레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하이고 놀래라, 없던 애 떨어질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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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놀라요?"
"뭘 그렇게 보세요?"
동시에 내뱉어진 서로를 향한 물음에 난 벙찐 표정으로 이한소를 쳐다보고, 이한소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웃는 모습은 사람의 성격을 반영한다고 누가 그랬더라? 비열한 사람은 결코 예쁜 웃음을 짓지 못한다고 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한소는 절대로 남의 등쳐먹고 살만큼 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웃는 모습이
무표정일 때와는 달리 순박하다. 마치 갓 시골에서 상경한 열일곱짜리 소년이 아무런 근심없이 웃는 것처럼 말이다.
되게 신기하네, 무표정은 좀 무서운 편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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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어야죠."
"하하, 먹어야죠. 그 전에 '화장실'부터..."
내가 화장실 가려는 순간 네가 말을 걸어와서 내가 지금 방광에 힘 엄청 주고 참고 있거든? 이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일부러 화장실에 악센트를 줘서 말했다. 씹어 내뱉듯이.
그제야 이한소는 찬찬히 나를 바라보았고, 내 안색이 썩 훌륭한 색깔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게 웃기냐? 진짜 잔인하네. 남은 방광이 터져라 온 힘을 쥐어짜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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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몰랐네. 다녀와요. 먼저 앉아있을게요."
"네. 감사합니다."
드디어 저를 놔주시네요. 힘겹게 웃는 얼굴을 보여준 뒤 몸을 돌려 화장실 문으로 점점 다가갔다. 왼쪽은 여자 화장실,
오른쪽은 남자 화장실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으며 힐끔 뒤를 돌아보자 이한소는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고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내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갈까봐 지켜보는거냐?
설마 그럴리 없지만 괜한 죄책감에 주뼛거리며 쉽게 화장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남자 화장실 문을 열어야겠지? 하아.
내 순진함이 이렇게 끝장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갑자기 남자 화장실 문이 안에서 휙 거칠게 열렸다.
"어이쿠."
"젊은 사람이 조심해야지. 정신을 어따 두고 다니는거야?"
"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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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화장실에서 나온 문어머리 아저씨와 제대로 박을 뻔 했다. 깜짝 놀라 주변을 신경쓸 겨를도 없이 쫓기듯이
남자 화장실로 들어왔다. 화장실에 누군가들이 서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후다닥 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내가 큰일이 정말 급한 사람이라고 생각할테지. 후후, 이보세요들 난 당신들의 순결을 보호해준거라고요.
후후후, 후후후, 후후후, 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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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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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아 비키거라, 여자임에도 여자라고 밝힐 수 없는 진낙원이 나가신다!
하, 그래도 방광은 이제 좀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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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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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먹긴한건지, 제대로 먹은건지 살펴볼 겨를도 없이 요란하던 저녁식사가 끝났다. 이모는 내내 웃으면서 식사를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뭐가 불만인지 테이블 밑으로 열 번도 넘게 날 꼬집어댔다. 덕분에 안봐도 시뻘건 피 멍이 들었을
것 같은 허벅지를 쓱쓱 문지르며 가게 밖으로 나왔다.
카운터에서 이모와 피디님이 서로 '내가 계산하겠소'를 외치며 실갱이 벌이는 걸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불쑥 눈 앞에
주먹 하나가 들어왔다.
깜짝 놀라 흠칫하고 뒤로 물러서자 이한소가 웃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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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 싫어해요?"
"아니요, 놀라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준이랑 같이 산다면서요? 괜찮겠어요? 그녀석 단단히 벼르고 있을텐데."
"안그래도 오늘 새벽부터 사부가 불러내서 한바탕 하고 왔어요. 진짜 사부 성격 좀 이상해요. 지옥 대마왕...합! 이건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흐음, 사부라고 하는구나."
"네. 이한소씨가 생각해도 웃기죠? 그런 호칭 같은걸로 막 꼬투리 잡고 그러는거."
"난 좀 이해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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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소가 건네준 사탕을 주머니에 넣으며 그를 올려다보자 이한소는 가볍게 생긋- 웃었다. 호칭으로 투덜거리는 윤준이
이해가 된다고? 잠시 이해할 수 없는 이한소의 반응에 멍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다가 원래 남자들은 이렇게 사소한
것에 목매다는건가 싶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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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그럼 이한소씨도 제가 이한소씨라고 부르는 거 싫어요? 하긴 이한소씨는 좀 그렇다. 그럼 이한소 선배님?"
"앞으로 최소 4개월은 나랑 얼굴 봐야할텐데 그렇게 딱딱하게 부르면 맛난 거 안사줄 건데요?"
"흐헉. 그럼 한소 형?"
"뭐, 괜찮네요. 사부보다는 별로지만 형도 나쁘진 않지. 그럼 나도 앞으로 말 편하게 해도 돼요?"
"네, 그러세요. 제가 더 어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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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소랑 있는 건 어쩐지 조금 불편하다. 차라리 윤준처럼 내지르는 편이면 같이 내질러버리면 편할텐데 이한소는 뭔가
조심스럽고 신중한 타입이라서 어떻게 대하는게 나를 '남자'처럼 보이게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더욱이 이한소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보통 형들이 동생을 대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어보여서(그건 오히려 윤준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득 이 사람이 혹시 내가 여자인걸 알고 이러는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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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계속 가게 안으로 가네. 나랑 있는 거 불편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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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눈치도 귀신 같다.
이한소의 질문에 깜짝 놀라 이모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얼른 이한소에게로 옮겼다. 가벼운 미소를 띤 얼굴이었으나 내게
올곧게 닿아있는 이한소의 시선으로 미뤄볼 때, 결코 농담으로 던진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며 입만 벙끗거리다가 결국 한숨을 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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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 형 같은 성격은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보통 남자들은 이렇게 상대방한테 사탕 같은 거 주거나 하지
않잖아요? 저도 오빠...가 아니라! 형이 있는데 맨날 절 던지면서 놀았거든요. 결코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는다구요. 근데
한소 형은 마치 저를 여자 대하듯이, 그러니까 꼭 제가 여자인 것처럼 느끼게 해서 사실 조금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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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소를 상대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방심하게 되버릴 것 같다. 내가 여자 대접을 받고 있으니 여자구나 라고 말이다.
항상 그렇게 살아왔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건 독과 같은 것이었다. 차라리 윤준처럼 내 뒷통수도 퍽퍽 때리면서 꼬꼬처키
라는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별명을 지어주는, 그런 거친 행동이 나에겐 낫다.
적어도 그런 사람을 상대하고 있으면 '이 사람은 나를 남자로 여기고 있구나'라는 걸 끊임없이 자각하니까 나도 나를 끊임
없이 남자로 꾸미게 된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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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빠르게 내뱉은 말에 이한소는 잠시 당황한 듯 날 쳐다보다가 가볍게 너털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에 손을 턱- 얹었다.
갑작스런 이한소의 행동에 이번엔 내가 당황해서 그를 올려다보자 이한소는 뭐가 그리 웃긴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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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내가 너를 여자로? 내가? 하하, 동생. 그건 과대 망상인 것 같은데."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저한테 너무 친절하게..."
"그럼 못되게 구는 게 좋아? 내가 누나만 있고 동생이 없어서 항상 동생이 있었으면 했거든. 간만에 나보다 어리고 귀여운
동생을 봐서 좀 귀여워해주는 건데 싫다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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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으쓱이며 '앞으로는 쌀쌀맞게 굴까?'라고 눈으로 물어오는 이한소의 얼굴을 보니 네, 그래주세요 라고 대답했다간
윤준보다 더 쌀쌀맞은 얼음 대마왕을 보게 될 것 같아서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지금처럼 한결같은 친절함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소 형."
"응, 고마우면 핸드폰 좀 줘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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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핸드폰은 왜그러나 싶어 건네주면서도 의아한 표정으로 이한소를 쳐다보았다. 급하게 전화할 곳이라도 있는 듯
내 핸드폰을 건네받자마자 이한소는 익숙하게 번호를 누르더니 누군가에게 통화를 걸기 시작했다.
이내 지이잉-하는 진동소리가 나와 이한소 주변에서 들리기 시작했고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한소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뭐야? 내 핸드폰으로 자기한테 전화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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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형 번호니까 언제든지 형 도움 필요하면 전화해. 준이가 지옥대마왕처럼 굴면서 못살게 굴거나, 연기때문에 도움이
필요할 때라든지."
"합! 그건 좀 잊어달라니까요."
"지옥 대마왕을? 절대 못잊지. 완벽 싱크로율이다. 준이가 심각하게 삐뚤어지긴 했지. 하하하."
"하하하, 하하...도움 필요하면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응, 그 번호 너 포함해서 다섯명밖에 모르는 번호야. 함부로 번호 유포시키면 안 돼. 알겠지?"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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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특명을 받은 비밀 수사대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이한소가 나지막이 웃었다. 그를 따라
빙긋- 웃는데, 드디어 계산을 끝낸 것인지 이모와 피디님이 이현정의 손에 이끌려 가게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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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가봐야겠네요. 너무 늦게 들어가면 사부가 또 한마디 할 것 같아서."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다음에 또 보자. 꼭 연락해."
"네,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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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의 인사를 건넨 뒤 이모의 차로 이동하기 위해 돌아서서 몇걸음 옮기고 있는데, 손에 들린 핸드폰에서 지잉-하고
가벼운 진동이 울렸다. 윤준이 또 전화를 한건가 싶어 신경질적으로 액정을 확인하니 이한소였다. 아니 이사람이 노망이
들었나, 할 말이 있으면 부르면 될 걸 왜 전화를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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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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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으면서 휙 몸을 돌려세우자 이현정과 약간의 거리를 두며 차로 이동하고 있는 이한소가 보였다. 이한소는 힐끔
날 쳐다보더니 가볍게 웃었다. 그의 나긋나긋한 웃음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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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네."
- 그리고 형 눈 되게 높으니까 걱정 하지마.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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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이유를 알 수 없는 이한소의 말에 의아한 듯 이한소를 쳐다봤지만, 이한소는 더이상의 설명은 해주지 않고
그대로 통화를 종료시켜버렸다. 저만치로 멀어진 이한소를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대체 뭡니까?'라는 표정으로 항의를
해보았으나, 이한소는 나지막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거참, 진짜 황당한 사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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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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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걸어가던 걸음이 우뚝 멈춰졌다. 이한소의 황당한 발언에 뭐 저런 게 다있나, 황당한 장난으로 치부하려다가 순간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온 몸의 운동이 정지해버린 것이었다.
자기 눈이 높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뭐야? 그러니까 내가 만약 여자였다고해도 지 눈에는 안찬다 이거야 지금? 아, 진짜 황당하네. 나도 눈 높거든요?!"
휙 고개를 돌려 이한소가 서있던 곳을 노려보았으나 이미 이한소는 차를 타고 이동한 듯 이모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피디만 보였다. 아, 억울해!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어!
이 억울함을 풀지 못하면 오늘 밤 홧병으로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서 씩씩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이한소가
친절하게 알려준 그의 번호로 전화를 걸려다가 운전 중일 것 같기에 얼른 문자 메시지 창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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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저도 눈 높거든요? 제 이상형은 안젤리나 졸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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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브래드 피트라고 쓰고 성 정체성에 대해 고백할 뻔 했다. 오타가 나지 않게 한글자씩 또박또박 메시지를 입력한
후, 이한소에게 보냈다. 메시지를 받으면 자신이 나에게 내뱉은 말이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한 것인지 알게 되겠지.
나도 눈 높다고 짜샤!!!! 아우, 뿌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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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하하!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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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가 운전하겠다는 걸 박박우겨 키를 받아내 운전하던 현정이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잠을 청하는가 싶던
자신의 동생이 느닷없이 박장대소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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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래?"
"어? 아니, 별 건 아닌데 너무 웃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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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보더니 큭큭큭, 어깨까지 떨어가며 웃는 한소의 모습에 현정이 덩달아 웃었다. 평소 절대로 집에서 큰 소리내는
일 없고, 웃을 때도 조용히 넘기던 동생이 고스란히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드라마계의 유명한 명대사 '너 답지 않게'가 딱 어울리는 상황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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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웃겨?"
"누나, 그 꼬맹이 이상형이 누군지 알아? 안젤리나 졸리래. 눈 진짜 높다. 그치? 하하, 미용실에서도 그러더니 얘 진짜
웃겨. 물건이야, 물건. 준이랑 지내는 거 볼만 하겠어. 놀러가야겠다."
"꼬맹이? 진이?"
"응. 진짜 웃기다. 한마디를 안지네, 한마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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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메시지를 빤히 쳐다보던 한소가 또다시 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자 현정이 피식 웃었다. 빨간 불이었던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 현정은 얼른 속도를 올렸다.
"진이가 여자였으면 네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 아니야? 작고, 귀엽고. 너 그런 여자 좋아하잖아."
"응? 응. 근데 그건 여자고, 얜 남자잖아."
"난 동성 연애에 대해 그리 적대적인 입장은 아닌데? 야, 그래도 엄마랑 아빠한테는 얘기하지마. 거품 무실라."
"그런 거 아니라구요, 누님. 없던 동생이 생겨서 그래. 재미있잖아. 누나도 나 어릴 때 이렇게 재미있었어?"
"넌 재미없었어. 이래도 응, 저래도 응. 짜식이 반항하는 면이 없어, 반항하는 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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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의 말에 한소가 별다른 대답없이 그저 웃어보였다. 다시 소리내지 않고 말없이 빙긋- 웃는 한소의 모습에 현정이
'이제야 내 동생 답네'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으나 한소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현정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핸들을 쥔 손에 꽉 힘을 주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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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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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 들어갈게요,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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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않는 불편한 식사때문에 가뜩이나 몸이 힘든 상황이었는데, 차를 타고 이동해서 그런지 구역질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모 앞에서 꺽꺽거리며 토악질을 했다간 이모가 기겁하고 걱정할 것이 뻔했기에 겨우겨우 참으며 이모 차에서 내렸다.
숨을 쉴 때마다 구역질이 밀려오는지 속이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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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조심하고,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이모한테 바로 연락해."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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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을 떠민 건 이모였으나, 그래도 막상 내가 윤준과 같이 살게 됐다는 사실을 마주하자 이모는 걱정을 떨칠 수 없는 듯
했다. 몇번이나 계속 '조심해라, 일 생기면 전화해라'를 반복하던 이모는 내가 이제 가봐야한다는 얘길 하자 그제야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모가 충동적으로 구매해준 많은 옷들을 눌러담아 빵빵해진 가방을 들고 윤준의 집으로 향했다.
- 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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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영 좋지 않아서 얼른 구역질로 속을 게워냈으면 좋겠는데, 지옥 대마왕은 벨소리를 못들은 건지 대답이 없다.
아직 윤준네 집 도어락 번호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난 꼼짝없이 밖에서 대기해야 하는
신세였다. 점점 더 심하게 울렁거리는 속을 느끼며 다시 한번 손가락에 힘을 꾸욱 주고 벨을 눌렀다.
- 딩동.
"사부, 저에요! 사부, 자요? 벌써 자요? 지금 자요? 사부! 흐읍."
말을 빠르게 내뱉었더니 속에서 울렁이던 것들이 '자유다!'를 외치며 입 밖으로 내뱉어질 것만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숨을
크게 들이 마신 뒤 입을 다물어버렸다.
- 딩동! 딩동! 딩동! 딩동딩동! 딩동!
- 쾅쾅쾅쾅! 쾅쾅쾅! 쾅! 쾅쾅!
마구 벨을 누르다가 설마 벌써 자는건가 싶어 냅다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쾅쾅거리는 요란한 소리에 놀랐을 이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만약 내가 여기서 토한다면 그게 더 미안할거라는 생각에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사부! 사부 문 좀 열어주세요! 저 진짜 민폐끼치기 싫..."
"아, 거참 되게 시끄럽네! 씻고 있었다! 씻고 있었다고!"
"비켜요...흡!"
목구멍까지 차오른 토기를 느끼며 안절부절 못하던 찰나 문이 활짝 열렸다. 윤준이 무어라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화장실! 윤준을 거의 밀치다시피하며 화장실로 직행했다. 나 오늘 여러번 화장실 찾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얼른 변기를 친구 삼아 확 주저앉았다.
"야, 너 왜그래?!"
화장실 문 밖에서 윤준이 깜짝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꾸해줄 여력이 없었다. 항상 구역질을 달고사는 인생을
살아왔음에도 이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다지 먹은 게 없었던 걸 자랑하듯 구역질은 길지 않았지만, 그 고통때문에
눈물이 꾸역꾸역 차올랐다. 뿌옇게 변하는 시야를 느끼며 변기를 붙잡고 거듭해서 속을 게워냈다.
"야!!!!"
- 쾅! 쾅!
윤준이 부르는 소리가 점점 거세졌으나 결국 내 토악질은 하얗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노랗다고 하기도 애매한 위액을
뱉어낸 뒤에야 멈춰졌다. 고여있던 눈물은 이미 반복되는 토악질에 아래로 추락하고 추락해서 얼굴을 흉하게 만들었고,
세수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앉은 채로 손만 뻗어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야!! 너 무슨...흐헉! 꼴이 이게 뭐야? 너 괜찮아!?"
"네, 괜찮아요."
"무슨 일이야? 너 어디 아파?"
"저녁 먹은 게 체했나봐요."
나지막이 대답하며 기력이 빠져 허허 웃어버리자 윤준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이내 손을 뻗어주었다.
그의 손을 잡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자 윤준이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 뭘 먹었길래 이래?"
"고기요. 사부도 단골이라는 가게였는데..."
"어? 진짜? 거기 음식 되게 잘하는데. 왜 체하냐 아깝게."
"그냥 밖에서 먹으면 잘 체해요. 불편해서."
"뭐가 불편해? 왜 누가 독이라도 탔을까봐?"
"네."
퉁명스레 내뱉어진 윤준의 말에 나지막이 대꾸하며 소파에 앉았다. 내가 내뱉은 대답이 꽤 예상치 못했던 것인 듯 윤준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건 마치 '뭐 이런 게 다있어?'하는 표정이었다.
"진짜 재미없는 농담이다. 죽이라도 끓여줘?"
"아니요."
"왜? 나도 독 탈까봐?!"
"네."
"얼씨구?! 진짜 가지가지 하고 앉았네. 먹기 싫으면 싫다고 하든가. 그럼 우유 따뜻하게 데워줄테니까 그거라도 마셔."
"네."
"너 좀 뻔뻔한 것 같지 않냐? 왜? 우유는 독 안탔을 것 같아?"
"아니요, 그냥 하도 사부가 난리를 쳐서 성의를 봐서 마셔주는건데요."
윤준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다가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 사람이 왜이러나 하고 뒤로
물러날 틈도 주지않고 내 뒷통수를 냅다 쳤다.
"악! 아프잖아요!"
"말 곱게 안쓸래? 성의를 봐서 마셔주는게 뭐야? 이게 진짜 싸가지없이."
"자꾸 사부가 독독거리니까 그렇잖아요. 맞장구 쳐준 건데."
"이게 진짜."
"알겠어요, 잘못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예민해지는 순간이 있다. 적어도 나한테 그 순간은 내가 무언가를 온전히 먹지 못하고 게워내고 난 뒤,
항상 그림자처럼 찾아왔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온전한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억울함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칼날처럼 날카로운 말들을 내뱉곤 했다. 특히 누군가가 내가 '먹지 못한다'라는 걸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그 예민함의 정도는 수치화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본의 아니게 짜증 섞인 표정으로, 축 처진 목소리를 내뱉자 윤준이 몸을 숙여 소파에 앉은 내 얼굴을 살폈다. 신나게
내 뒷통수를 내리치던 기백은 어디로 갔는지 윤준의 표정은 꽤 걱정스러워보였다.
"너 진짜 괜찮아? 우리 집 온 첫날부터 아프면 꼭 내가 괴롭혀서 그런 것 같잖아."
"아픈 거 아니에요. 진짜 체해서 그래요. 그냥 토하고 났더니 좀 예민해져서..."
"사내 새끼가 그런 걸로 풀 죽고 그러면 안 돼. 그럼 여자애들이 싫어해. 기운내 짜샤."
윤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위로겠지? 지옥 대마왕의 어색함의 끝장을 달리는 위로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그러자 그제야 안도의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윤준이 다시 몸을 일으켜세워 부엌으로 향했다.
"저 정말로 식사는..."
"알아, 알아. 우유 데워준다고 우유. 하지마?!"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빡세게 굴릴거야, 라고 투덜거리는 윤준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얼른 눈을 떴다.
그러고보니 나 방금 이현정이랑 밥 먹고 왔다고 얘기해줘야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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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부. 저 오늘 현정 누나랑 같이 식사했어요."
"뭐?"
"단 둘이 먹은 건 아니고, 이모랑 식당에 갔더니 현정 누나랑 한소 형이랑 피디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다같이 식사하게
됐거든요."
"뭐야, 너 설마 현정이때문에 긴장해서 체한 건 아니지?"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이자 부엌에서 우유를 데우던 윤준이 휙 뒤를 돌아봤다. 너무 강하게 부인해서 기분
나빠하는 건가 하고 힐끔 그의 눈치를 살피자 의외로 윤준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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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좀 내가 괜찮게 여기는 너로 돌아왔네. 난 사내 새끼가 축 처져서 우울해있거나 그럼 되게 보기 싫더라고."
"치, 그거 남녀차별이에요."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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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서서 인상을 가볍게 찡그리는 윤준의 모습은 그야말로 '내가 곧 법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지옥 대마왕이니까 지옥에는 네가 법이지 뭐.
"사부."
"또 왜."
"현정 누나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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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고 있는 우유가 뭉치지 않게 휘적휘적 젓고 있던 윤준의 손이 뚝 멈춰졌다. 내가 건드리면 안될 부분을 건드린 건가
뒤늦게 아차 싶어 조심스럽게 윤준의 눈치를 살폈다. 화났으면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하나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다시 내 쪽으로 휙 돌아선 윤준의 표정은 화가 났다기보단 기분이 나빠보였다.
"야, 꼬꼬처키."
"네?"
"너 현정이 좋아해? 너도 반했어?"
"아닌데요."
"근데 뭘 자꾸 꼬치꼬치 캐물어."
"그냥 사부가 누구 짝사랑하게 안생겼는데 짝사랑하니까 그렇죠. 사부 스캔들 메이커였담서요."
"그거랑 짝사랑이랑 무슨 상관이야."
"왜 상관이 없어요! 헤픈 남잔데!"
"이게 진짜!"
"이상하잖아요! 현정 누나때문에 얼굴 빨개져가지고 사부답지 않게 구는데, 그런 사람이 스캔들 메이커라니! 그게 도통
제 머리 속에선 성립이 안된다구요! 지고지순한 짝사랑을 품은 카사노바가 세상에 어디있어요?! 그렇게 이상한 사람한테
제가 연기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하면, 어?! 그거 뭐야, 그러니까...그러니까 단어가 생각이 안나는데 아무튼..."
"시끄럽고, 우유나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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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꽥 소리를 지른 나때문에 깜짝 놀랐는지 윤준이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거실로 나왔다. 이내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열변을 토하던 나를 딱하다는 표정으로 보더니 내 머리를 꾹 눌러 다시 소파에 앉혔다.
아야야, 소리를 내며 내가 소파에 앉자 윤준은 따듯하게 데운 우유를 건넸다. 속에서 열불이 터져 성급하게 한 모금
마시려다가 혓바닥을 잃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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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뜨거!"
"너 그렇게 어버버, 어버버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사극을 할래? 아이고, 머리야.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치냐."
"잘해요, 한국어."
"얼씨구?!"
윤준은 기가 막힌단 표정으로 날 쳐다보다가 가볍게 내 뒷통수를 툭 치더니 몸을 돌려세웠다. 아니 왜 자꾸 남의 귀한
뒷통수를 쳐대? 이러다가 내 뒷통수가 평평해져서 안예쁜 뒷통수로 변하면 책임질거야? 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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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다 마시면 설거지 해놓고 자. 네 방 저거니까 저기가서 자면 돼."
"대답 안해주실거에요?"
"뭐를?!"
"현정 누나 어디가 그렇게 좋냐구요."
"얼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남자는 다 똑같애! 여잔 예쁘고 봐야해!
"사부도 역시 남자..."
"마음."
"에?"
"손가락"
"..."
"발가락"
"..."
"목소리"
"...사부."
"그리고 그외 만 개도 더 얘기할 수 있어. 밤새 떠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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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어딘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잠시 날 쳐다보던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머리가 아픈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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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꼬꼬처키. 너 누구 좋아해본 적 없지."
"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뻔뻔하게 그런 질문을 던질 수가 있어. 건방지게."
"..."
"어디가 좋냐고? 그걸 어떻게 말해. 셀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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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나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윤준은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요란한 소리없이 그의 방 문이 닫히고
뜨거운 우유와 함께 홀로 덩그러니 거실에 남겨진 내겐 어색한 침묵이 찾아들었다.
평소라면 '어디 밤새 얘기해봐요!'라며 윤준에게 지지 않고 대들었을테지만, 차마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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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사랑을 어떻게 해야 윤준처럼 상처받은 표정으로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얘기할 수 있는거지?
그런 사랑이 대체 무슨 사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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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낙원이 너가 하게 될 사랑.
야호♬
+ 댓글 TIME
'momo9985' 님
- 재미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네요! 으허허허허.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Lorna' 님
- 한소는 나이스 타이밍 가이랍니다 으캬캬ㅋㅋㅋㅋ 예견하신 것처럼 우리 낙원이 앞으로 맘고생이 훤하죠 으허허!
'꺄르르잉잉' 님
- 준이가 대마왕이긴하지만 순정파였다는 사실!! 두둥!! 앞으로 우리 낙원이 고생길을 함께 지켜봐주세요 으허허☞☜
'추천을 눌러주신 익명의 여러분'
- 오늘도 역시나 애정합니다♡ 수줍게 추천 누르고 가신 그 마음처럼 저도 부끄럽지만 여러분에게 애정을...♡
(+ 혹시나, 혹시라도 업쪽 받으실 분들은 ♬을 붙여주세요!)
첫댓글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네요....ㅎㅎㅎ 재밌게 잘보고 갑니다...담편도 기대하고 있을께요
역쉬..넘잼나요~
♬낙원이는저렇게상처안받구순찬한사랑하면안될까요ㅠ.ㅠ오늘도잘읽고갑니당!
♬ 맞아요 낙원이는 상처받지 않는 사랑했으면 좋겠어요ㅠㅠ
와 진짜 재밌어요 너무 좋아요!!!!!!!!오늘 야호스토리에 가입했어요 잘부탁드립니다!!!
야호님!!!힘내세요~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