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개리
가을 들머리 비가 잦았던 구월 초순이었다. 절기가 백로였다만 잦은 비로 풀잎에 영롱한 이슬이 맺힐 겨를이 없었다. 주말을 창원에서 보내고 일요일 와실로 복귀해 월요일 아침을 맞았더랬다. 주중 여느 평일과 다름없이 출근길은 연사 들녘을 둘러 연초천 천변 둑을 따라 산책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들녘의 벼들은 이삭이 패어 고물이 채워지고 천변 길섶은 코스모스가 피는 때였다.
연효교를 건너 효촌교로 향하니 냇바닥에 처음 보는 새가 네 마리 있었다, 덩치 커서 겨울 철새로 주남저수지에 날아오던 고니만 했다. 고니는 겁이 많아 사람이 곁에 가면 경계심을 풀지 않아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가까이서 관찰하기 쉽지 않았는데 이 새는 달랐다. 산책객들이 오가는 둑길과 가까운 냇바닥에서 태연히 풀을 뜯어 먹었다. 고마리와 여뀌가 꽃을 한창 피울 즈음이었다.
나는 주남저수지나 을숙도로도 더러 나가봐 겨울 철새의 종류나 생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내가 사는 창원의 도심 창원천도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여러 종류의 새들이 날아와 서식했다. 삼 년째 머무는 거제의 연초천에도 철새들이 날아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왜가리와 백로는 텃새가 되어 살아 연중 보았다. 흰뺨검둥오리도 북녘으로 올라가질 않고 여기서 새끼를 까서 키웠다.
올가을 연초천에 날아온 낯선 새는 고니만큼 커도 외양은 고니와 달리 거위를 닮았더랬다. 하루는 천변에 낚시꾼이 있었는데도 그 곁에까지 와 먹이활동을 해 사람과 친숙하게 지내려는 듯해 의아했다. 나는 의문의 새를 사진으로 찍어 몇몇 지기에게 날려 보냈다. 그 가운데 도청에서 퇴직한 초등 친구가 회신을 보내오길 ‘개리’라는 새인데, 그 새는 희귀조인지라 아닐지도 모른다 했다.
인터넷으로 개리를 검색해 봤다. 오리과 기러기속으로 야생 거위였다. 물가에 살아 ‘갯기러기’로도 불렸다. 몽골이나 시베리아 강가 살다가 겨울이면 중국 남방이나 우리나라 남녘까지 내려온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한 겨울 철새로 흑기러기와 함께 천연기념물 325호로 서식지의 감소와 남획으로 절멸 위기에 놓였다고 했다. 국제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엔 취약종에 올라 있었다.
개리는 목이 길며 정수리와 목 뒤는 흑갈색이고 몸통은 전체적으로 갈색빛을 띠었고 날개 바깥쪽 일부는 흰색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개리가 우리나라에서 근래 확인되기로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88년 겨울 주남저수지에서 2마리, 그 이듬해 제주도에 4마리 발견된 기록이었다. 그 이후 등재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30여 년 만에 기특하게 거제 연초천으로 찾아온 진객 개리였다.
이렇게 희귀한 새가 주중 아침저녁 연초천 산책길에서 가까이 만날 수 있음은 행운이었다. 지난 시월엔 환경동아리 학생들을 현장 학습으로 데려나가 소개도 해주었다. 개리는 초식성이라 냇바닥에 습지식물로 자란 고마리와 여뀌 잎줄기를 즐겨 뜯어 먹었다. 네 마리 개리는 물 위에서 자유롭게 헤엄쳐 다녔다. 냇물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발레 선수가 수중에서 우아한 춤을 추는 듯했다.
나는 아침 출근을 물론 퇴근 때도 와실로 곧장 들지 않고 연초천 천변을 따라 걷는 산책을 나섰다. 이럴 때면 네 마리 개리가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고 사진으로 남겨 글감으로 삼았다. 내가 보내준 사진이나 생활 속 남기는 글을 보고 후일에 지인을 만났더니 개리의 안부를 물어와 안녕히 잘 지낸다고 했다. 그런데 그 개리가 엊그제 아침부터 한 마리가 보이질 않았다.
입동을 넘긴 그제 새벽 연초천 산책로를 걸으니 개리가 세 마리뿐이었다. 어제 아침에는 몸집이 다소 큰 수컷 두 마리가 물에서 싸우고 있었다. 아마도 두 마리 수컷은 남은 한 마리 암컷에게 힘 자랑을 하는 듯했다. 어제 오후 퇴근길엔 세 녀석이 조정지댐 아래 갈대숲까지 내려와 두리번거리면서 동무를 찾고 있었다. 어쩐담! 사라진 한 마리는 안타깝게도 포식자에 희생된 듯하다. 21.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