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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위만조선의 철기문화에 대하여
콜라캔 추천 2 조회 1,676 15.07.23 15:26 댓글 4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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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8.21 15:17

    첫댓글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할 때 선인왕검이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다시 아사달로 돌아왔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윤내현처럼 주목하고 싶습니다. 즉 기자가 조선에 망명한 이후에도 선인왕검으로 대표되는 고조선의 왕실은 붕괴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므로 평양쪽의 세형동검과 철기문화는 선인왕검의 후기 고조선의 것일 가능성이 있거나 그 후신인 마한이나 낙랑국의 문화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15.08.21 20:55

    조선 이동설에 따라 (연의 공격이 주 원인) 평양일대에 철기문화가 들어왔다는 것은 다소 논거가 약하다..라는게 위 본문의 취지인것 같네요.

  • 15.08.22 00:34

    중국보다 우수한 청동기문화를 일군 우리 민족이 독자적으로 철기문화를 배태시키지 못했을리가 없죠. 따라서 위만의 망명과 동시에 철기문화가 전래 혹은 확산되었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낭설이며 일제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을 추종하는 작태일 것입니다.

  • 15.08.22 01:15

    @大欽茂 철기문화를 독자적으로 배태시키지 않는다면 열등한 문명인가요?

  • 작성자 15.08.24 09:01

    정확하게는 이동설보다는 위만조선대에 한과의 외신관계를 맺은 것을 통해 철기문화가 확산되는 것에 대해 근거가 박약하다는 것이죠

  • 작성자 15.08.24 09:04

    @大欽茂 먼저 중국이 한국보다 청동기의 제작이나 기술에 있어 훨씬 발달하였습니다. 두번째 현재의 자료로 보았을 때 철기문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지 아예 없다고 딱 잘라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세번째 위만에 의해 철기문화가 전래된 것과 일제 식민사관이니 정체성론과는 아무런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 말이 함부로 남용되고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쨌든 일제시대 때는 위의 유물들에 대해 제대로 된 검토가 행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세형동검이나 다뉴세문경 등의 유물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으로 중원 문화 계통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15.08.24 09:14

    @大欽茂 또 낙랑군에 대해서도 중국 군현의 하나로서 보는 것이 아닌 콜로니 즉 식민지로 보면서 여기에 유입된 유물들에 대해 거의 무조건적으로 '지나(중국) 문화의 정수'라고 하는 등의 그리 진전된 시각을 보이지 않습니다. 선입견에 사로 잡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위만대에 철기문화가 들어왔다고 보는 것은 70~80년대 한국학자들에 의해서 주장된 것으로서 이것이 식민사관이라는 틀 내에서 규정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 15.08.24 15:25

    @콜라캔 청동기는 아연합금 기술이 생명인데 우리나라가 훨씬 앞선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위만이 동래할때 철기를 가지고 왔다는 기록은 다 한줄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학자들이 소설쓰듯 추측성 주장을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식민사관에 세뇌되어 문화사대주의적인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15.08.24 16:50

    @大欽茂 당최 한국이 청동기 기술이 앞선다는 건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인데, 근거자료정도는 제시해주면 좋겠습니다...... 제 상식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주시대의 청동유물과 기원전 10세기대의 요하 동쪽의 청동유물의 격차는 눈으로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어쨌든 이는 제 상식선의 문제이니 대흠무님의 생각을 뒷받침할 것을 가져오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작성자 15.08.24 16:52

    @大欽茂 두번째로 위만이 동래할 때는 말씀대로 철기문화가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정확하게는 위만이 동래하기 이전에 이미 철기 그 자체는 사용이 되긴 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철기란 그런 거푸집이라는 틀에 부워 만드는 주조류이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철을 때려서 만드는 단조철기류라는 것을 전제하고자 합니다.

  • 작성자 15.08.24 16:57

    @大欽茂 어쨌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자면, 꼭 기록이 있어야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명확한 설명을 하자면 우리가 땅파서 나오는 유물은 거의 대부분이 기록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문헌상 이 유물이 이렇다 저렇다 다 나와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유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이 유물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추정을 합니다. 일단 70~80년대에 이러한 주장을 하신 분들은 대흠무님이 말씀대로 사실상 소설 쓰듯 추측성 주장이 강했습니다. 문헌상 위만이 어느정도 강력한 국가로서 나오니 당연히 철기를 썼을 것이란 전제를 깔고 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 작성자 15.08.24 17:00

    @大欽茂 다만 이 분들이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은 말씀처럼 식민사관에 물들어 문화사대적인 이해가 아닌 그 저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나왔던 주장인 것입니다. 어쨌든 근거도 부족하였고 비판받을만한 주장은 맞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에 힘을 입게 된 것은 사실상 2000년대에 들어서인데, 위에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낙랑군 유물에 대한 재해석이었습니다. 기존에는 목곽묘에서 나오는 유물을 모두 낙랑군 시대의 유적으로서 파악했으나, 이를 좀 더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이들 유적 중 일부는 위만조선대 유물일 가능성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 작성자 15.08.24 17:03

    @大欽茂 당연 그 철기는 중국제고 이것을 문화사대적인 시각이라면서 무조건 식민사학으로 전제를 깔고 가는 그런 편협한 시각을 하면 제가 뭐라 할 말이 있겠습니까만은 실질적으로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국가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가장 선진적인 문명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닌 받아들인 문화를 현지화하여 우리것으로 한 것이 동아시아 전국가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작성자 15.08.24 17:12

    @大欽茂 말이 길어졌는데 정리하면 위만조선대에 철기문화를 사용했다고 하는 분들의 주장은 사기 조선열전에 효혜 고후 시기에 위만조선이 한나라의 외신을 자처하면서 병위재물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병위재물이 철기문화일 것이다 하는 것에 착목한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한국은 이 때 철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위만조선이 되었든 이후 국가가 되었든 간에 중국으로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뿐만 아니라 옆나라 일본도 마찬가지고 베트남은 잘 모르겠지만 베트남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즉 이것을 식민사관이라는 틀에서 볼 수 없는 겁니다.

  • 작성자 15.08.24 19:03

    @大欽茂 마지막으로 너무나 그런 편협한 시각에서 그 시대를 바라본다면 정말 아무런 결론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문화의 전파라는 것이 전근대시대에는 중국에서 시작해 타국가로 퍼지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고 이것을 굳이 현대와 비교하자면 현대의 문화나 기술 등이 미국으로부터 시작해 전세계로 퍼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그 시대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입니다. 너무 그리 식민사관이라는 틀에 갇혀 보지 마시고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 15.08.26 01:10

    @콜라캔 잔무늬거울에 새겨진 원을 감상해 보시죠. 그 정교함에 혀가 내둘러지고요. 아연합금 기술이 앞서는 것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역사학자의 주장을 대신 피력한 것이고요. 청동기 제작의 기술면에서는 중국보다 선진적이지만 수량면에서는 중국에게 밀리는 것은 사실이죠. 우리는 무기류가 대부분이나 중국은 제기가 대부분이죠. 재물과 무기를 의미하는 '병위재물'를 철기문화 전래로 해석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 작성자 15.08.26 15:44

    @大欽茂 님이 말씀하신 그 잔무늬거울 즉 다뉴세문경은 기원전 3세기경 이후의 유물로서 상주시대인 기원전 16~10세기경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같은 시대의 청동기와 비교하는 것이 맞죠. 중국에서도 청동거울이 제작되는데, 전국시대에는 반리문경이라고 불리는 것이 제작되고, 한대에는 신수경이라거나 기타 여러 청동거울들이 제작이 됩니다. 다뉴세문경의 정교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것은 기하학적 문양 밖게 표현하지 못한 점에서 이미 한계점이 드러날 뿐더러 애초 한대의 중국거울들이 더 정교함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표면상으로만 봐도 드러나는 일이지요;;

  • 작성자 15.08.26 15:48

    @大欽茂 그리고 그 다뉴세문경이 더 좋고 더 화려하고 더 정교하고 기술적으로 앞선 것이었다면 기원후 1세기 이후 기존의 그 다뉴세문경에서 한나라의 중국거울로 교체될 이유가 없었겠죠. 또 그것을 모방한다고 방제경이라 불리는 중국 한나라의 중국거울을 모방한 허접한 모방품들이 나올 이유도 없었을 것이구요.

    저도 '병위재물'을 가지고 철기문화가 들어왔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헌을 지나치게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위의 주장을 하는 분들은 위만조선대에 철기문화를 찾을 수 있으니 위만대에 철기문화가 어떤 경위로 들어왔냐는 것에서 그 기록을 찾는 것이지 기록을 먼저 찾아놓고 그것을 끼어맞추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 15.08.26 20:50

    @콜라캔 상주대 기원전 16-10세기경 청동유물과 우리나라 비파형동검의 아연합금 기술을 비교해 보아도 중국보다는 선진적입니다. 다뉴세문경 동심원의 정교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위만등장과 철기문화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는 바 철기문화의 중국전래를 함부로 언급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죠. 선진적인 청동제품을 생산하던 고조선 사람들이 철기를 발명했다고 보아야 순리적입니다.

  • 작성자 15.08.27 09:46

    @大欽茂 기원전 10세기경의 비파형동검은 매우 조악한데, 대체 무슨 근거로 중국보다 선진적이라고 그렇게 단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비파형동검의 경우 중간에 돌기가 있고 하단부가 부풀어 있는 것이 비파와 닮았다해서 붙여진건 잘 알려진 사실이죠. 여기서 하단부가 부푼 것은 뭐 상징적인 거나 이런 걸 떠나서 청동제작기술이 부족해서 그렇게 밖게 만들지 못해서입니다. 그것이 후에 점차적으로 기술 발전을 이루면서 검형태가 세신화(細身化) 그러니깐 검몸이 얇아지고 길어지면서 실용적이게 되는 건데 말이죠;; 어쨌든 중국꺼보다 발전하셨다고하니 근거가 궁금합니다. 말로만 비교비교가 아닌 정확한 근거를 좀 제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15.08.27 09:51

    @大欽茂 위만의 등장과 철기문화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근거로 내세운 것이 선진적인 청동제품의 생산이라는 거죠. 위에서도 쭉 말하였지만 저는 위만조선대에 철기가 전래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전래되었다는 가정하에 얘기를 하자면, 당최 선진적인 청동제품을 생산한 것과 철기문화를 자체 생산했다는 연관성이 무슨 관계가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남아메리카의 잉카제국이나 아즈텍은 제국帝國으로 발전시켰음에도 석기문화에서 그쳤는데, 님 논리대로라면 얘네도 청동기를 넘어서 철기는 기본적으로 자체 생산해야 정상이겠죠.

  • 작성자 15.08.27 09:57

    @大欽茂 또 님은 고고학적인 유물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전혀 하고 계시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어차피 철기 자체가 전래되어온 것이 위만조선대이든 그 이후이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고조선 사람이든 한반도에 있던 어떤 국가가 철기를 발명했냐는 건데, 기본적으로 우리가 평양에서 보는 철제유물들은 전한대의 철제유물과 양식이 거의 같습니다. 한반도 남부의 삼한 사회의 철제유물들도 당연 모양이 같죠. 직접 발명한 유물이 중국과 형식상 같을 일도 없을 거고 기본적으로 고조선에서 철제유물이 자체 발명되었다면 직접적으로 이것을 생산하였다는 생산유적이 나와야겠죠.

  • 작성자 15.08.27 10:01

    @大欽茂 그런데 고조선 지역에서는 철제유물을 생산하는 야철유적이 발견된 적도 없는 바, 중국과 철제유물의 형식이 같다면 당연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겠죠. 한반도 남부의 삼한사회도 중국 양식이 뚜렷한 철제유물을 처음에는 수입하다가 기원후 1세기 ~ 2세기경 자체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그거와 관련해서 마한 뿐만 아니라 진한 지역에서도 다양한 야철유적들이 발견되죠. 유명한 유적으로서 가평에서 몇개 확인된 바가 있고, 진한에서는 경주 황성동 유적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런 고고학적인 근거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것을 설득력있게 근거를 제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15.08.29 23:18

    @콜라캔 동검 형태가 비파형인 것을 기술수준 저하로 보는 발상 자체가 희안하네요.거푸집을 일직으로 만드는거랑 비파형태로 만드는 것중에 어느 것이 더 손이 많이가고 기술을 요하고 예술적인가요? 요서 요동 만주지역에 야철장은 후기고조선의 것일 가능성이 많구요. 쇠칼이라고 하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마다 형태는 비슷하죠. 우리쪽이 애시당초부터 중국보다 후진적이고 모든 것을 중국에서 전래받아야만 했다는 식의 발상 자체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하가점하층문화를 비롯한 홍산문명이 중국 황하보다 앞선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듯 싶군요. 홍산문명을 우리민족과 전혀 관련없다고 주장한다면 님하고는 더이상 대화는 안되는 것이고요.

  • 15.08.30 00:09

    @大欽茂 님의 여러댓글들을보면 우열, 선진후진, 유불리.. 이런개념을 많이 쓰시네요. 역사를 정치적목적으로 보는경향이 느껴지네요.

  • 작성자 15.08.30 09:38

    @大欽茂 재차 말씀드리는것이지만 먼저 고고학적인 유물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신 거 같습니다. 두번째 다뉴세문경 때도 그렇고 비파형동검에서도 그렇지만 유물의 형태를 아름답다 예술적이다 이런 표현은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지 객관적 지표로서 사용하는 것은 전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즉 아무런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시고 계속해서 자신의 직관에 의존해 이렇다 저렇다하시고 계십니다. 이러니 서로 간에 아무런 접점이 없는 겁니다.

  • 작성자 15.08.30 09:44

    @大欽茂 이제 댓글에 대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가자면 비파형이라는 것이 후진적이라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있는 돌기의 하단부의 부풀어 있는 것이 기술적 한계에 의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요서와 요동에서 출토한 비파형동검을 비교해보면 굳이 과학적 분석이 아니어도 그냥 맨눈으로도 요동의 비파형동검은 조악하다라는 것이 들어옵니다. 또 요서의 비파형동검은 요동처럼 하단부가 그리 부풀어있지않습니다. 실용성으로 따졌을 때 하단이 그리 부풀면 휘두르는데 있어 팔목에 무리가 많이 가서 사용하는데 크게 적절하지 않습니다.

  • 작성자 15.08.30 09:46

    @大欽茂 마지막으로 요동의 무덤에서 기원전 6세기 이전에는 비파형동검 출토 개수가 많지 않고 거의 대부분 석기 유물이 나온다는 점 청동유물도 작은 공구류나 단추류가 나온다는 점에서도 사실상 청동제작기술이 요서에 비해서도 후진적이고 굳이 중국과는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 작성자 15.08.30 09:51

    @大欽茂 그냥 요서 요동의 야철장이라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요서 요동의 어떤 유적의 몇세기의 야철장인지 말씀해주세요 그렇게만 말하면 제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지만 세계 여러나라마다 쇠칼의 형태가 비슷하다는 말은 님의 추상적인 생각이지 근거로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디 철제무기가 쇠칼 뿐이겠습니까?

  • 작성자 15.08.30 09:59

    @大欽茂 하가점하층문화니 홍산문화니 하는 건 현재 우리가 대화하는 시대와는 전혀 관련 없는 시대입니다. 즉 예를 들어 제가 하가점하층문화와 홍산문화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여기서는 대화가 된다 안된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홍산문화는 기원전 4500년경의 신석기문화고 하가점하층문화는 그 후속으로 기원전 2400년경의 신석기 초기 청동기시대의 문화입니다. 애초 모든 걸 다 떠나서 그 시대는 국가라는 것이 없었던 시대이고 그 시대의 문화가 앞섰다고 해서 꼭 후속시대가 앞섰다고 볼 근거따윈 없습니다. 그런 식이면 미국같은 나라가 현재 다른 유럽의 어느나라보다 더 발전할 이유가 없죠.

  • 15.08.31 01:15

    @콜라캔 현 강단사학계가 홍산문명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를 했다고 마치 모든 것을 다아는 것처럼 주장을 펼치는건가요. 수차례 현지답사를 통해 우실하, 복기대와 같은 학자 등은 하가점하층문화가 고조선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요. 비파형동검 하단부 불풀기는 몇몇 단검을 보고 하시는 말씀 같군요. 관점에 따라 역사해석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두 학자의 견해를 전체인냥 싸잡아서 계속 고집부리듯 주장하지 마시고요. 상반된 해석을 내리는 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어 보시길 바랍니다. 송호정식의 연구로는 민족정신 역사의식을 망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작성자 15.08.31 13:23

    @大欽茂 제 글을 이해를 못하시는 거 같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하가점하층문화나 홍산문화가 우리와 연관이 있든 없든을 떠나서 우리가 지금 다루는 시대와는 길게는 이천년 짧게는 천년까지 차이난다는 겁니다. 우리는 기원전 2세기의 위만조선을 얘기하는 것이니 그것이 관련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본주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건 제가 아니 모르니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씀드리는겁니다.

  • 작성자 15.08.31 14:21

    @大欽茂 비파형동검에 대하여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지않은 것은 제 실수이니 인정하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비파형동검은 기원전 9세기경~기원전 7세기말 정가와자유형이 발생하기 이전의 요동지역 전역에서 출토하는 비파형동검을 한정하여 말씀드리는겁니다. 이 시대에서 요동지역에서 출토하는 비파형동검의 조형은 검 돌기 하단부가 부풀었고 검 전체 크기가 작으며 재질이 조악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건 어느 한두학자의 주장이 아니라 이미 중국 또는 일본에서 시작한 연구에서부터 한국까지 폭넓게 수용되는 것입니다. 즉 어느 한두학자의 견해가 아니니 오해마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15.08.31 14:22

    @大欽茂 그리고 님이 말하는 그 송호정 교수식 연구가 뭔지 모르겠지만 송호정 교수는 고조선사 연구자이지 비파형동검연구자가 아닙니다. 이 분이 비파형동검 그 자체에 대해서 연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읽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문헌사학자가 연구한 고고학에 대해서는 딱히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특히나 송호정 교수의 초기 고조선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더더욱 신뢰하지 않는 편입니다. 이미 너무나 낡은 학설이고 최근에 고고학자를 중심으로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학자들 말을 더 경청하여 듣습니다.

  • 15.09.01 01:51

    @콜라캔 중국 황하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홍산문명을 배태시킨 주류는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것이 이미 유물유적을 통해서 증명이 되었고요. 지역마다 약간의 선전성과 후진성이 드러날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다뉴세문경을 통해서 확인되는 바 청동기문화는 중국보다 앞서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여 철기문화도 위만과는 아무련 관련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건데 역사학자가 되실 분이라면 뛰어난 지성으로 누구처럼 소아병적으로 우리 역사를 깍아내리는데 인생을 올인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끝~

  • 작성자 15.09.01 02:15

    @大欽茂 주제에 벗어나는 말로서 자꾸 본 토론을 흘리시고 마음대로 결론까지 내시는군요. 토론하는 자세도 전혀 갖지 않으시고 그렇다고 고고학적인 유물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시니 참 난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더 진행하실 마음이 없다는 것은 알겠고 다뉴세문경을 다시 한번 언급한 것으로 보아 제가 열심히 작성한 것들은 전혀 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죠. 수고 많으셨고 개인적으로 공부를 조금이라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상 님은 지금도 다뉴세문경이 언제적 유물인지도 모르시는 걸 드러내셔서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 15.09.01 02:26

    @大欽茂 마지막으로 님이 언급한 복기대 교수가 최근 행보는 그러해도 적어도 요서의 청동기문화에 대한 고고학적 입장에서는 누구보다도 전문가고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는 분이십니다. 님이 강단학계라 욕하는 그 분들과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통된 의견을 내비치는분이시구요. 복기대 교수의 스승은 길림대 임운 교수로 이 분은 '중국동북계동검초론'이라는 논문으로 한국학계에서 유명한데 30년은 더 된 논문임에도 비파형동검 연구에 있어 아직도 빼놓을 수 없는 논문입니다. 이 분이 비파형동검에 대해 최초로 종합적으로 시기별로 구분하여 분류했는데 하단부가 부푼 것에 대한 설명도 이 분 논문의 연장선상이죠.

  • 작성자 15.09.01 02:29

    @大欽茂 어쨌든 복기대 교수는 이런 사람 밑에서 공부하여 박사를 딴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우실하 교수와 같이 사회학 전공한 사람과는 같은 취급 받기에는 조금 그렇지 않나 싶네요. 말이 길어졌는데 다시 한번 수고 하셨고 또 한번 말씀드리지만 공부를 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15.09.02 01:45

    @콜라캔 복기대교수의 최근행보가 중요하죠. 연구가 심화되면서 견해가 달라진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리고 강단의 식민사학자들 논문을 읽고 마치 그것이 역사의 진실인냥 주장하지 마시고요. 다양한 학설을 검토하고 진지하게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연구해 가시면 좋겠습니다. 본인은 전문학자도 아닐뿐더라 님이 알고 있는 학설 외에 다르게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는 것을 피력했을뿐이거든요. 하여 저를 붙들고 설득하려고는 하지 마시고요.

  • 작성자 15.09.02 09:13

    @大欽茂 복기대 교수의 최근 행보라는 것은 요서의 청동기문화에서가 아니라 다른 분야를 말하는 거구요. 님은 어차피 공부도 안 하시는 분인데 제가 무슨 재주로 설득하겠나요......

  • 15.09.02 23:28

    @콜라캔 님보다는 논문과 사서를 많이 읽었으니 염려 붙들어 매시죠.

  • 작성자 15.09.03 11:06

    @大欽茂 넵 알겠습니다.

  • 15.09.02 15:03

    댓글이 좀 무의미하게 과열인듯한데 대흠무님은 반론글을 주시건 다른 서적이나 논문을 인용하시건 정리해주시는게좋지싶습니다

  • 작성자 15.09.02 20:38

    보시다시피 위의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대흠무님께서 마음대로 결론 짓고 끝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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