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나무 수문장 / 이상열
집 앞을 지키는 수문장 둘 있다
10년도 더 부렸지만 월급 한번 주지 않았다
이를테면 고용승계라 할 수 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다
상냥한 미소나 친절한 인사 그런 건 바라지도 않지만
기분 좋게 취한 날이나 더럽게 취한 날, 더러
멱살 잡고 삿대질 해댄 적 있었다
볕뉘 고운 어느 해 봄
낮술에 취해 “야! 목석 같은 자슥아!” 할 때도
아지랑이 바람에 간들간들 알 수 없는 표정만 짓거나
작달비 쏟아지던 여름밤 한마디 대꾸도 없이
폭풍 주사(酒邪)를 다 받아주고
귀때기 시퍼렇게 한설이 몰아치던 섣달그믐
서럽게 길던 소울음도 어제 일인데
짙은 민무늬 전투복은 어디 가고
해지고 바랜 누추한 근무복 입고
꼿꼿하게 기립해 있는 화분 속
측백나무 두 분(盆)
“근무 중 이상 무!”
-『세 그루 밀원』, 애지, 2000
감상- 이상열 시인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기도 하다. 직접 쓴 한시에 먹그림을 더하고 엷게 채색까지 한 멋들어진 그림을 페북상에서나마 몇 번 본 적이 있다.
표제시에 든 세 그루 나무는 헛개나무다. 시인은 헛개나무가 있는 집을 빌려 꿀도 얻으며 시와 그림을 벗하고 지낸다. 기분 좋은 날에도, 그렇지 않은 날에도 술을 찾는 것으로 보아 술의 이력도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시집 해설을 쓴 문동만 시인은 이를 두고, “헛개나무는 간을 해독하는 데 특효이고 술독도 다스린다. 그 나무를 심어 가꾸며 상복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상징적인 아이러니이기도 하다”고 했다.
꿀을 품은 헛개나무 세 그루로 부족한 게 없을 거 같은데 시인은 측백나무 두 그루를 또 가졌다. 헛개나무로 뒤를 든든히 하고 측백나무로 앞을 지키니 이 공간엔 세상의 불운이나 화가 쉽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시인 자신이다. 밖에 외출하면 세상의 때와 슬픔을 묻혀 오고, 밖에서 부리지 못한 주사나 울분을 예서 부리기도 한다. 이건 상징도 아이러니도 아니고 현실이다.
그때마다 측백나무는 옆에서 묵묵히 들어주고 때로 은은한 향으로 시인을 감싸주기도 했을 것이다. 꼿꼿하게 선 자세로 시인의 굴절을 막아서는 소임도 다했을 것이다. 직접 심었든 누군가의 선물이든 간에 측백나무는 이제 단순한 측백나무가 아니다. 눈 맞추며 지낸 정리(情理)가 10년 세월이고 보면 둘의 관계도 주인과 수문장의 관계를 떠나 반려 동지에 가까워 보인다. 화분에 맞춰 자신의 성장을 조절했을 측백나무를 위해 흙마당에 새로 주거를 마련해주는 역사도 이루어지면 좋겠다.
측백나무는 잎에서도 향이 나지만 열매가 익어 터져나갈 무렵의 향이 한층 그윽하다. 시인의 글씨와 그림에서도 그런 향이 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