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청와대 국무회의 도중 잠시 티타임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자에게 직접 커피를 타주고 본인도 믹스커피를 타고 있는 모습.[노무현사료관 사진]
“이 사람아, 자네 뒤통수를 보면서 어떻게 얘기를 하나?”
서민 대통령과 수퍼 갑부.
노무현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회장이 같이 식사를 한다면 어떤 식당에서, 어떤 메뉴를 들어야 어울릴까. 사실은 잘 어울릴 수 없는 관계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모두 털어 버린 정치지도자였고, 이건희 회장은 재계에서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재벌총수 아닌가.
청와대의 탈권위주의와 재벌의 권위주의가 정면충돌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 취임 초기인 2003년 6월초였다. 대통령이 서울 효자동 삼계탕집 ‘토속촌’으로 재계지도자 26명을 초청하여 오찬 회동을 가진 것이다. 대통령 오른쪽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왼쪽에는 구본무 LG 회장이 앉았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국내 굴지의 재벌 총수들이 다 모였다.
‘토속촌’은 서울에서 꽤 이름 있는 삼계탕집이다. 점심 때 한 끼 먹으려면 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전형적인 중산층 서민 식당이다. 최고급 식당을 찾아다녔을 한국의 수퍼 갑부들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이날 재벌총수들은 무척 당황했다. 그들은 세 가지 점에서 놀랐다고 한다. 첫째는 신발 벗고 방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는 서민식당이라는 점, 둘째는 자신들은 건강상 먹지 않는 닭 껍질을 대통령이 맛있게 먹고 있었다는 점, 셋째는 대통령이 발가락 양말을 신고 있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서민식당을 즐겼고, 재벌총수들은 거북해 했다. 권위주의와 탈권위주의가 확연히 구별되는 자리였다.
스웨덴의 초대형 재벌그룹 발렌베리를 생각케 했다. 발렌베리가 스웨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삼성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발렌베리의 총수가족(오너)들은 서민식당을 자주 애용한다. 스웨덴에 가면 ‘발렌베리 버거’를 사 먹을 수 있다. 발렌베리 오너들이 집에서 즐겨 먹는 메뉴를 대중화시킨 요리다. 맥도널드 햄버거 가격이다. 삼성과 발렌베리, 한국과 스웨덴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노무현의 비서생활을 20년 넘게 한 서갑원(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아직도 1992년의 ‘그 사건’을 잊지 못한다. 대학원 졸업 후 수행 비서로 일할 때였다. 당시 노무현은 김대중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청년특별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첫 출근 날 승용차 뒷좌석에 모시고 나는 당연히 앞자리로 가서 탔다. 그랬더니 뒤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이리로 오게’ 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 사람아, 자네 뒤통수를 보면서 어떻게 얘기를 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주저주저 하고 있자 한 마리를 덧붙였다. ‘자네가 비서지만, 다니면서 뭔 얘기도 하고 일 있으면 시키고 의논도 하고 해야지. 뒤로 오게!’ 처음에는 좀 별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내 옆자리에 동승해 모시다 보니. ‘사람 대접해주시는 분이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1)
박승(전 한국은행총재)의 회고다. 박 총재는 노태우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건설부장관을 했고, 김대중정부에서 한국은행 총재에 임명되어 노무현정부에서 계속 하고 있었다. 박 총재는 2010년 한국일보에 ‘탈권위의 서민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잊히지 않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회의이다. 노 대통령은 주요 경제현안에 대한 정책회의를 자주 저녁에 청와대 관저에서 주재했다. 나는 그 동안 이런 저런 공직을 겪으면서 많은 청와대 회의를 경험했지만 대통령 관저에서의 회의는 처음이었으며 또 그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해보기도 처음이었다. … 회의는 상의를 벗고(때에 따라서는 넥타이도 풀고) 식사를 하며 농담도 주고받으며 진행했다. 그 때 노대통령은 담배를 태우고 있었는데 담배를 권하기도 했다.”2)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만 하더라도 청와대 관저에는 아무나 출입하지 못했다. 일반 국민들에게 청와대는 특별한 공간이지만, 대통령의 ‘사적 공간’인 청와대 관저는 청와대 안에서도 더 특별한 공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관저를 개방하여 필요할 때는 누구나 오게 하여 함께 식사도 하고 회의도 했다. 청와대의 말단 행정관도 자주 출입했다. 여러 대통령을 직접 모셨던 박 총재의 이런 회고는 참여정부 청와대 참모들에게 아주 생소할 뿐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을 할 때에도 그랬고,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권위주의를 그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노무현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담배를 권하는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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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님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서갑원 외, 우공이산, 121~122쪽
2)‘고난 속에 큰 기회 있다(56)’, 한국일보 2010년 10월 27일
2003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이 휴일 아침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배드민턴장을 찾아 주민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맨 왼쪽 사진) 2002년 대선 후보시절 바쁜 일정 속 차량 안에서 문용욱 수행비서와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먹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운데 사진)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 목동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제작센터를 방문했을 당시 지나가던 시민들과 우연히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노무현사료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