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기 - 화가 화를 부르니 화난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십시오
< 질문 >
안녕하세요.
명상 수행을 하다가 잠깐 순간에 생각이 떠올라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럴 때는 하루 종일 일도 되지 않습니다.
옛 과거에 잘못된 업 때문에 지금 이 고초를 겪고 있나 생각도 들기도 하고 지난 과거를 생각해보면 내가 남들에게 욕먹을 일은 하지 않은데도 왜 이런 상황 이 벌어지는지 이런 일들이
전생에 지은 업 때문이라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화가 날 때 앉아서 명상 보다는 걷기를 하는 명상이 나을까요? 가끔 화가 오를 때 자애 명상도 해보는데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순서로 수행해야 할까요?
법사님, 감사합니다.
< 답변 >
먼저 질문해주신 행행님께 사과드립니다. 오래 전에 질문을 하셨는데 그간 묻고 답하기를 살펴보지 않아 질문하신 내용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늦게 답변을 드리게 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질문하신 내용이 화를 내는 것인데 사실은 이런 일은 모두가 똑같이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 화가 나는 일이 많습니다. 화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때 일어난 화는 성냄으로 어리석은 마음에 속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는 양심이 있어서 생긴 지혜에 속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악한 마음이라고도 하고 번뇌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과보심이며 잠재의식이라서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습니다. 사실 나는 이런 잠재의식의 노예로 삽니다. 그러나 인간은 선한 마음도 함께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선한 마음일 때는 관용과 자애와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는 어리석음이 지배해서 욕심도 부리고 화도 냅니다. 그러나 어느 때는 지혜가 지배해서 관용과 자애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너무 화를 낸 것에 대해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화는 인간의 일상의 일 중의 하나 입니다.
성냄은 일정한 단계를 거치면서 일어납니다. 성냄의 근본은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어서 탐욕이 일어나고 탐욕이 있어서 화를 냅니다. 어리석음이 근본 원인이라고 하는 이유는 어리석음이란 내가 있다는 견해라서 바꾸기 어려운 깊은 무지에 속합니다. 이처럼 내가 있다는 이기적인 어리석음 때문에 탐욕을 부리고 탐욕이 충족되지 않아서 화를 냅니다. 이때 화는 의식의 표면 층에 있어서 누구나 쉽게 내게 됩니다.
하지만 화를 낸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차츰 화가 줄어듭니다. 이때 화가 줄어든 것은 의식의 중간 층에 있는 탐욕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가 났을 때는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리면 내 마음대로 하려는 욕심 때문에 화가 난 것을 알게 되어 차츰 탐욕이 줄어서 화도 줄어드는 것입니다.
화는 화를 낸 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습니다. 화를 내면 그냥 화로 그치지 않고 차츰 분노로 바뀝니다. 다시 이 분노가 원한으로 바뀌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증폭됩니다. 그러므로 화가 났을 때는 더 깊어지기 전에 화를 낸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처 방법입니다. 화는 내가 있어서 낸 것이 아니고 습관적인 마음이 낸 것이므로 화를 낸 것을 자기화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과보심으로 살기 때문에 나도 어쩌지 못해서 화를 낸 피해자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화를 낸 것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그쳐야 합니다.
화가 날 때 어떤 명상을 하거나 다 좋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수행을 하십시오. 다만 좀 더 심도가 있는 수행을 하려면 화가 났을 때 화가 난 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런 뒤에 가슴에서 일어난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이때 느낌을 없애려고 알아차리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차분하게 알아차리십시오. 그런 뒤에 느낌이 고요해지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꺼지는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러면 사념처 수행을 모두 할 수 있어서 빠르게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저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과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수행을 하는데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다시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묘원 올림
첫댓글 요즘 토요 법문 중 다루어 주시는 심념처, 수행의 정수 부분이네요.
수행의 정수로 말씀드림은 사념처 수행 중, 수념처, 심념처는 비물질이라 설명도 가르침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심념처는 알아내기, 익히기 혹은 배우기도 어렵지요.
그러한 조건을 가진 심념처 수행 부분도 한국명상원 묘원법사님 만큼 단계화 문자화 하셔서 가르쳐 주실 분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희는 복이 많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