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사진관집 이층 / 신경림
사진관집 이층에 하숙을 하고 싶었다.
한밤에도 덜커덩덜커덩 기차가 지나가는 사진관에서
낙타와 고래를 동무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아무 때나 나와 기차를 타고 사막도 바다도 갈 수 있는,
누군가 날 기다리고 있을 그 먼 곳에 갈 수 있는,
어렸을 때 나는 역전 그 이층에 하숙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꿈이 이루어져 비행기를 타고
사막도 바다도 다녀봤지만, 나는 지금 다시
그 삐걱대는 다락방에 가 머물고 싶다.
아주 먼 데서 찾아왔을 그 사람과 함께 누워서
덜컹대는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 소리를 듣고 싶다.
낙타와 고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
다락방을 나와 함께 기차를 타고 싶다.
그 사람이 날 찾아온 길을 되짚어가면서
어두운 그늘에도 젖고 눈부신 햇살도 쬐고 싶다.
그 사람의 지난 세월 속에 들어가
젖은 머리칼에 어른대는 달빛을 보고 싶다.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첫날을
다시 그 삐걱대는 사진관집 이층에 가 머물고 싶다.
- 『사진관집 이층』, 창비, 2014.
감상 – 이층에 하숙을 둔 역전 사진관은 왠지 도심과 변두리의 그 경계 어디쯤 있을 성싶다. 시인은 하숙을 전전했던 젊은 날의 기억을 산문 『바람의 풍경』에서 소개한 바 있다. 서울로 유학 와서 외갓집 이층 신세를 지냈고, 같은 문예지로 데뷔했던 유종호와 함께 하숙을 했으나 하숙비 마련이 쉽지 않아 떠돌이 신세 비슷하게 지내기도 했다. 임종국과 의기투합해서 청량리 역전에서 한참 떨어진 농가의 행랑방에서 추위에 떨며 한 철을 보내기도 했고, 김관식을 따라 홍은동 무허가 집의 문간방을 얻어 얼마간 지내기도 했다. 사진관 이층 하숙집이란 다소 낭만적 느낌의 장소엔 이런 가난한 날의 경험이 배여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사진관 이층에 잠시 머무는 것을 가정한 시인은 기차를 타고 사막으로 바다로 가는 걸 꿈꾼다. 낯선 세계로 향하는 모험은 시인의 오랜 꿈이다. 새재 넘어 경상도에서 온 소장수가 강 건너 서울로 가는 걸 알고 소장수가 되고 싶어 했던 시인이다. “길과 소장수와 바깥 세상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새 내 속에서 하나가 되어갔다”는 고백이야말로 신경림 시인의 삶을 응축해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시인은 왜 낙타와 고래를 동무 삼아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것일까. 기차가 사막에 닿아 소용을 마치면 이제 낙타가 요긴해진다. 여기에 낙타 같은 동무가 동행하는 배경이 연상되었음 직하다. 또한 기차가 바다에 닿아 소용을 마치면 고래가 뒤를 잇는 그림, 고래 같은 동무가 함께해주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겠다. 어디든 기꺼이 동무가 되어주고 길이 되어주는 낙타 같고, 고래 같은 이는 시인이 정을 담아 부르는 애칭과 다름이 없겠다. 그리고 그 애칭 대상은 곧 먼 데서 찾아오기를 바라 마지않는 “그 사람”으로 구체화되기에 이른다.
“그 사람”의 정체도 좀 더 풀어볼 수 있겠다. 앞서, 어려운 시절의 한때를 공유했던 유종호, 임종국, 김관식 같은 사람일 수도 있고 술도 함께, 고생도 함께, 여행도 함께 지내다가 먼저 간 조태일, 이문구 같은 동료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지난 세월 속에 들어가”서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첫날”을 언급하는 시인의 애틋한 정서로 보아, ‘그 사람’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던 아버지일 수도 있고, 책 좋아하고 싫은 소리 안 하는 어머니일 수도 있고, 아까운 나이에 죽은 아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새로 든다.
“삐걱대는 사진관집 이층”에 등기하지 않고 버젓이 살던 시인이 근래 주소지를 저쪽으로 옮겨 갔으니 “그 사람”과 반가이 만났을 줄 안다. “그 사람”이 한때 시인에게 꿈을 꾸게 하고 기다림을 주고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하더라도 제 버릇을 고이 간직한 시인이라면 또 낯선 길에 눈을 주고 있을 것만 같다.(이동훈)